6·25와 함께 최빈국으로 몰락한 우리 사회는 ‘먹을수 만 있으면’ 하는 시절을 겪게 되었고, 우리의 부모와 선배들은 가난한 보릿고개를 힘들게 견디고 견뎌 지금의 자랑스럽고 훌륭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밑거름(초석)이 되었다. 당시의 공무원은 힘겨움에 찌든 국민을 개혁의 선봉으로 이끌고 나아가고, 부르짖고, 개선하는, 시대의 큰 일꾼이었다.
농촌에서는 배고픔의 한을 풀기위한 식량자급자족을, 도시에서는 환경이 열악하기 이를데 없는 공장에서의 희생을 함께하며 70년대 근대화의 길로 들어 설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공무원의 느낌은 외모와 행동에 95% 이상을 나타내고 다녔다.감청색 단벌 양복으로 수많은 다림질로 인한 반짝이는 양복 바지, 흰색 와이셔츠와 2:8 가르마 머리, 무엇인지 모른는 거만함 등이 ‘나는 공무원이다’라는 외형이 몸에 배어있다고 한다. 이러한 외관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비록 많은 봉급을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직 국가만을 위하고, 청빈함을 부끄럽지 않다는 신념을 가족에게 주지시키는한편 모든일에 조심스런 행동을 하게 하는 순기능이 많아서였다.
공무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대하여는 개인이 아닌 팀원이 함께 움직이므로서 빠른시간에 성과를 이루는 집단적 조직력을 중시하여, 당시 국가정책이 시달되면 최일선 기초자치단체로부터 중앙까지 모든 공무원의 일관성 있는 집행을 보여 주었다. 공무원 조직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우선보다는 계장이, 계장보다는 과장이, 부시장·부군수가 우선하며 결속력은 보여주었다.
공무원 조직의 혁신적 변화 또한 IMF를 겪으며 민간기업의 구조 조정과 함께 공직사회에도 명예퇴직 제도의 활용과 함께 진화의 계기가 되었다.기업이 부도와 폐쇄로 인하여 취업의 기회가 줄어들며 고급인력이 보수는 적지만 안정적이며 퇴직의 부담이 없는 공무원시험에 몰리며 공직에 대한 또다른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이시점에서 공무원 사회의 변화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꼭 돌아 봐야 할 현실도 있다. 일명 ‘고질민원’이라고 하는 민원처리 방법이다. 대다수가 반복된 민원을 보면 처음 시·군을 거쳐 도청으로 다시 중앙을 거쳐 지방으로 되돌아오는 민원이다. 모든 공무원은 적극적인 자세와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가급적 민원인의 입장에서 답변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민원 당사자가 인정치 않고 승복하지 않는데 있다. 대부분의 이유는 비슷하다. 내 입장에서 내 답답한 얘기를 들어주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 달라는 것이다.
과거 우리 선배 공무원들은 민원에 대하여는 업무를 분담하여 직원은 기안을 열심히 하고, 계장과 과장은 주민의 얘기를 들어주고 상담하는 해결사로서 역할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민원의 상담도 직원의 몫, 법령을 검토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것도 직원의 몫이다. 이러한 조직 운영은 항상 문제만 야기시킬 뿐이었다.
과거 6~70년대의 일반적인 지방사무 처리에 있어서는 공무원들로 하여금 개인의 창의성 보다는, 과장과 계장의 위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하며, 직원은 상급자가 시키는 대로 밤늦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열심히 일만 하면 되었다. 또한 직원들과의 대화를 하다보면 왜 우리부서는 직원과 직원, 직원과 상급자, 서로간에 말이 안통하는지 답답하다는 표현을 많이 하고 있다. 소통이 안되었던 것이다. 즉, 공감이 없기 때문이다.
민원사항에 대하여 법령과 규정을 우선 설명하고 그 테두리안에서 원칙론만 제시하는 공무원을 도민은 필요 없다고 할 것이다. 도민의 입장에서 애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면서 민원사안 처리과정 및 애로점 등을 이해시키고, 사안 해결이 어려운 점에 대하여는 법령 및 현실 제도의 부족함에 대하여 양해를 바라야 할 것이며, 부족한 제도에 대하여는 개선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임하여야 할 것이다.
간부 공무원이 앞장서서 민원인에게 먼저 다가가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해결 하려는 진정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민원인은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공무원을 이해하려 할 것이며, 아랫사람은 그러한 선배공무원을 존경하며 앞으로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롤모델로 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