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인간은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욕망의 하나로 모방의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지금 문명의 변장술을 쫓아 그 욕망적 상징을 박제를 통해 변화시켜 놓으면서 대한민국은 그 변장술의 대명사인 성형이라는 이름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합쳐 세계적 미인들이 많았지만, 그중 같은 동양권의 미인들 중 당연 중국의 4대 미인을 들 수 있는데, 이를테면 서시, 양귀비, 초선, 왕소권이다.
당시 ‘서시’는 얼마나 미인이었던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보려면 돈을 내고 봐야할 정도로 미인이다 보니 결국 당시 오나라의 왕도 그 미인에 빠져 나라를 돌아보지 않다 패망에 이르렀다.
물론 오나라에게 패망한 월왕의 미인계였지만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오나라 왕의 정치 태만이 멸망의 길을 걷게 한 것이다.
오나라왕 뿐인가. 당나라 현종도 마찬가지다. 가무에 뛰어났고, 군주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총명함을 겸비한 미녀 양귀비에 빠져 양국충 등 친척들의 국정농단을 바라만 보아야 했고 안록산의 난을 겪는 등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기도 했다.
양귀비의 미모에 사로 잡힌 당시의 패망은 왕의 ‘경국지색’에 따른 한 나라의 패망이었으나, 지금 이 시대는 성형에 의한 망국적인 정신적 패인은 당시의 왕보다 더한 나머지, 우리의 정체성마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제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행의 모방 물결에 따라 화려함을 쫓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 생명을 건 오늘의 모방병에 걸린 대한민국의 성형유행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사회 곳곳에서 미인을 요구하다 보니 성형유행이 불길처럼 번져나가는 이유가 당연하다 치부하면 그런 사람들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씁쓸하기만 하다.
이뿐인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빠르고 편리성을 추구하다보니 급기야 우리민족의 전통사상의 하나인 조상의 벌초마저 전문가에게 맡기더니, 결국 편리하다는 이유로 제사상 음식도 주문식단제로 변하면서 전통문화까지 박제당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의상의 박제, 음식문화의 박제, 주거문화의 박제, 거리의 박제, 놀이문화의 박제, 야경문화의 박제, 한 발 더 나아가 명절문화의 박제까지, 지금 거리에는 온통 낯선 정체들이 들어와 혼돈의 도가니다보니, 지금 누가 이 땅의 주인이고, 누가 나그네인지 도무지 갈피를 못잡는다.
결국, 오늘날 이 시대의 유행의 박제병은 사회적 혼란과 함께 우리의 정체성의 DNA까지 바꿔 놓고 말았다. 그 잘못된 문명의 폭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으니, 거리마다 분수를 뛰어넘은 자동차문화의 과시를 보라! 모두가 하나같이 유행의 쏠림문화 속에 밀려가는 개인주의 과시의 편향적 파도속에 욕망의 거품들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지를 않은가.
가뜩이나 양극화되어가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사회와 나라를 좀 먹는 악성 ‘바이러스’가 되어 우리의 삶을 병들게 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않게 일어나는 빈곤층들의 자살사건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간 현실의 문제도 급선무이지만, 더 큰 문제는 좀벌레처럼 파먹고 들어오는 우리의 정신문화까지 박제가 되지 않을까. 이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
객관적으로 얼굴의 성형을 통해 화려하게 거듭나기 위한 박제는 개인적인 일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민족문화까지 총체적으로 황폐되어 잠식당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제 우리의 자존심인 정신문화 유산을 더 이상 박제화시킬 수는 없다.
이제부터 정체성 ‘힐링’(healing)을 통해, 결코 우리의 정체성의 DNA 까지 박제당하지 않도록 민족적 ‘패러다임’의 정서적 틀만은 보존해야 한다.
이 기회에 그 내면의 ‘혼불’인 우리의 ‘주최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 치유가 사회에 불길처럼 번져나갈 수 있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