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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표류하는 희망리본사업

 

내 나이 또래 사람들에게 고생은 누구나 하는 것이었지만 내 경우에 좀 특별했다. 가난한 농사꾼의 딸도 모자라 어릴 때 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아버지의 무능력함으로 고등학교 때는 납부금을 내지 않아도 됐다. 기초생활수급자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에 학교도 가기 싫었다. 그 때 내가 선택한 길이 공부였다. 1등을 하면 가난해서 납부금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잘해서 받는 장학금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난과 장애로 아픔과 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야 했던 어린 시절, 가난한 사람도 싫었고 가난한 삶도 싫었다.

2011년 복지정책과로 부서를 옮기면서 ‘희망리본사업’과의 첫 만남이 시작됐다. 희망리본사업은 저소득층에게 복지혜택과 일자리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참여자에게는 연간 최대 100만원의 참가비가 지급되며 취업에 성공할 경우 의료비와 교육비, 목돈 마련을 위한 희망 키움 통장가입도 지원된다.

희망리본사업 참가자들은 나의 아픔보다 더 큰 상처를 가지고 작은 끈이라도 잡고 싶어 찾는 이들이다. 상담을 통해 아픔을 풀어주고 일자리도 같이 찾아 준다.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이어지고 마음의 상처도 같이 치유해 간다. 복지와 고용이 연계되는 ‘희망리본사업’의 특성 때문이다.

희망리본사업이 시행 6년째를 맞았다. 경기도에서만 8천730명, 전국 통계로는 12만4천여명의 취약계층이 희망리본의 문을 두드렸다. 희망리본의 일자리매니저는 일자리를 찾는 취약계층이 다소 시간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마음을 읽어주고, 아픔을 치유해 가며 내 일처럼 일자리를 찾아 준다. 집에 불이 나서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119에 전화하지 않고 희망리본사업의 일자리매니저에게 가장 먼저 도와달라고 전화할 만큼 그들의 가까이에 희망리본사업이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수레에 태우고 열심히 끌고 가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 열심히 밀어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희망리본사업’과 자활가족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알았다.

이런 사업이 중앙정부 사업 계획의 변화 속에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많은 어려움 속에 봉착해 있다. 어쩌면 2015년부터는 희망리본사업이 취소돼 많은 저소득층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되고, 헌신을 다해 이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숙련된 복지일자리 매니저들의 일자리도 함께 잃게 될 수도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가족들이 똘똘 뭉쳐 헤쳐나가면 3년 안에 자립하더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옛말이다. 경제적 어려움은 가족해체와 정신·육체적 건강까지 해치는 사슬고리처럼 문제들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난 속에서도 서로를 아끼며, 서로 격려하면서 일자리를 찾아 희망을 꽃 피우려는 복지 현장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보물이고 밝은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지와 고용을 연계하는 일자리 사업, 희망리본사업은 4년간의 시범기간을 거쳐 본사업 궤도에 오른 지 2년차가 됐다. 이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거둬가야 하는 시점에 사업이 취소된다면 참여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취약계층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찾아주고 희망을 갖게 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는데 전력을 다했던 숙련된 복지일자리 매니저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지금은 복지부서를 떠나 가까이에서 이들과 함께 할 수 없지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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