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가정폭력은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범죄라고 인식하기보다는 가정 내의 문제로 치부해버려 경찰이나 제3자의 개입을 꺼려하는 경향이 강하게 남아있다.
“할아버지가 때려요, 빨리와 주세요”라는 112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했던 사례를 떠올려보면, 당시 백발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폭행하고 있었고, 이 상황을 제지하려는 경찰관에게 할아버지는 “경찰이 왜 왔냐? 내 마누라 내가 때리는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냐? 남의 가정사에 참견하지 말고 당장 나가라!”라며 고함을 쳤었다.
비단 백발의 할아버지 사례뿐만이 아니라 가정폭력 신고사건 대부분의 가해자의 상당수가 가정폭력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인식을 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예로부터 비롯된 가부장적 사회문화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013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부부폭력 발생률 중 신체적 폭력 발생률 7.3%, 정서적 폭력 37.2%, 경제적 폭력 5.3%, 성학대 5.4%, 방임 27.3%로 나타났으며 부부폭력을 경험한 응답자 중 6.2%가 신체적 상해가 있었다고 응답해 충격을 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부부 간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동·청소년기에 부모 간에 폭력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관찰하고 접촉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이러한 경험이 또래 집단에서는 학교폭력이라는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성인이 된 후에는 부모들의 폭력적 패턴을 자신도 모르게 학습하고 수용하면서 가정 내 발생한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이 가정 내 존재하는 한 마치 바이러스처럼 어떤 형태로든 전이되고 무서운 모습으로 변이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찰은 가정폭력이 중요한 사회문제이자 범죄임을 널리 알리고 지속적 예방활동을 통해 건강한 가정을 지키는 백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