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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궁(宮) 스테이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낙선재(樂善齋)’. 낙선재 상량문(上樑文)에는 이름의 유래와 함께, 단청을 칠하지 않은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듣건대, 순(舜)임금은 선(善)을 보면 기뻐하여 황하가 쏟아지는 듯하였다. … 붉은 흙을 바르지 않음은 규모가 과도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화려한 서까래를 놓지 않음은 소박함을 앞세우는 뜻을 보인 것이다.’

이 같은 기록으로 보아 낙선재란 이름은 중국의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순 임금의 고사에서 유래됐으며 단청을 칠하지 않은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헌종은 낙선재 건립 이듬해인 1848년 동쪽에 석복헌(錫福軒)을 지었다. 석복헌은 ‘복(福)을 내리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복(福)은 왕세자를 얻는 것이었다. 헌종은 왕비 효현왕후가 승하한 뒤, 효정왕후를 계비로 맞았으나 3년 동안 후사가 없었다. 헌종은 석복헌을 새로 지으면서, 그 옆의 수강재(壽康齋)도 함께 중수(重修)했다. 육순을 맞이한 대왕대비의 처소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이 같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낙선재는 국권을 빼앗긴 조선 황실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며, 특히 황실 여인들이 최후를 마친 곳으로도 유명하다. 낙선재는 1884년 갑신정변 직후 고종이 집무실로 사용했으며, 순종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이후인 1912년 6월부터는 주로 여기서 집무를 봤다. 그리고 1963년 환국한 영친왕은 1970년 이곳에서 생을 마쳤고, 이방자 여사도 귀국해 1989년까지 여기서 여생을 보냈다. 또 석복헌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가 1966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수강재에는 마지막 황실 가족인 덕혜옹주가 볼모로 끌려간 일본에서 돌아와 1989년까지 머물다 숨진 곳이다.

최근 국가 보물로 지정된 이곳을 문화재청이 외국인을 위한 고가의 숙박시설로 개방하는 ‘궁(宮) 스테이’를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황실의 마지막 여인들이 생을 마감한 이곳을 왜 하필이면 숙박시설로 바꾸느냐며 반발도 심하다. ‘보존이냐 활용이냐’ 어느 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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