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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수련은 지루함을 즐기는 일

 

세상은 휴대폰으로 말하면 소위 LTE급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하기만 하면 반가운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가장 ‘빠름’을 말하며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흐름에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다. 그 혜택 중 하나인 의료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평균수명이 과거보다 수 십 년씩 늘어났으니, 좀 더 길게 그 빠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무예도 상대보다 빠르게 사고하고 움직이기 위하여 빠름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수련을 거듭할수록 눈이 빨라지고, 몸이 빨라지고, 무기의 속도가 빨라진다. 사방팔방에서 빠름을 위하여 쉼 없는 경주를 하다 보니, 우리의 삶은 그 격류에 휘쓸려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빠르게 돌아가니 우리네 마음 속도 LTE급으로 뭔가를 판단하고 실행하려 한다. 그 ‘빠름’의 이유와 적정성을 사고할 여유도 없이 그저 시류에 편승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도처에서 기다린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렇듯 시작은 ‘0’에서 시작한다. 움직이는 것 역시 멈춰 있다가 천천히 가속도를 붙이며 서서히 속도를 올려가야 무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는데, 우리의 삶은 여전히 느리기 하기에 잠시 한눈을 판다면 나와 세상은 천리만리의 거리로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고는 뭔가를 좌절하고 포기한다.

무예를 수련할 때도 기본은 ‘지루함을 즐기는 것’이다. 수천 아니 수 만 번의 반복을 통하여 천천히 제 몸과 마음의 속도를 올려가야 한다. 고작 몇 번 아니 몇 년을 수련했다고 무예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무예에서 지루함을 즐기는 일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 지루함을 마음껏 음미하고 풀어 갈 때 무예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지루함을 즐기지 못하면 수련복을 벗어야 하고, 무기를 내려놓아야만 한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도 이런 경험을 자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책을 한권 사고, 앞 몇 페이지를 넘기지만 으레 반도 못가서 책을 덮어 버리고 다시는 그 책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읽기를 비롯한 모든 공부역시 지루함을 바탕에 깔고 풀어가야 답이 보이는 것이다. 초심자들이 느끼는 배움에 대한 갈망도 크지만, 그 지난한 수련의 과정을 천천히 익히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고 그것이 참 스승인 것이다.

공자가 쓴 ‘논어(論語)’에 보면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노나라의 작은 지역인 거보(?父)라는 곳의 관리자가 되어 스승에게 질문을 하였다. “스승님, 이 지역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그러자 공자가 이런 말을 하였다. “빨리 뭔가를 하려고 들지 말고(無欲速) 작은 이익을 보려고도 하지 말아라(無見小利). 빨리 하려고 들면 도달하지 못하고(欲速則不達), 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없다(見小利則大事不成).”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가끔 사자성어처럼 쓰는 말 중에 ‘욕속부달(速則不達)’이라고 하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공자의 대답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뭔가를 성급하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자기 스스로 지쳐버리고 만다. 혹은 자기는 힘껏 앞에서 끌기는 하지만, 그와 함께 풀어갈 많은 사람들이 지쳐버려 더이상 한걸음을 제대로 나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만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의 속도를 적정하게 유지해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지루함을 즐기는 일은 느림의 미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 미학의 본질은 내 안의 중심잡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세상의 빠름과 내 안의 여유로움을 적정히 읽어내고 풀어갈 때 내가 세상의 어느 부분에 서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나의 위치가 확인되면 그때 비로소 세상과의 속도를 맞출 수 있게 된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 시작은 동일하지만, 그 결승점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금 빠를 수도 있고, 조금 늦을 수도 있지만 묵묵히 제 길 걸어간다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풀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루함을 즐기지 못한다면 ‘아무나’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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