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대국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경력 27년의 세계 최고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은 취재진들의 열기와 바둑 애호가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평소에 바둑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일반인들도 여러 매체를 통해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측은 빗나갔고 불계패라는 결과를 맞았다. 어떻게 보면 예정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화면을 통해 보는 이세돌 9단의 얼굴은 온갖 수를 계산하면서 점점 굳어갔다. 형식적으로는 여느 대국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이나 이는 사람과 사람의 대국이 아닌 알파고의 계측된 수를 대리인의 손을 빌리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대국이 시작되기 전부터 사람과 기계의 대결에서 사람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던 나는 대국이 시작되고 곧 채널을 돌렸다. 바둑에 대해 아는 것도 없어 지루하기도 했고 사람을 기계와 싸우게 하고 그 장면을 지켜본다는 사실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기계는 감정이 없지만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상당부분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랬지만 일을 하는 내내 궁금증을 떨치지 못했다. 몇 시간이 흘러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결과는 허탈하고 씁쓸했다. 인류 측 대표의 패배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최첨단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단계를 넘어 오히려 인류가 설자리를 잃고 위협을 당하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예전에 본 공상과학 영화의 장면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되풀이 된다. 우선 인공지능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앞으로 20년 이내에 사라질 직업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거기에는 지금 억대 연봉을 받는 선망의 대상인 직업도 있고 전문직으로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직업도 있다. 그러나 지난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위기와 함께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굶주림과 추위를 피하고 보다 안락한 생활을 위해 노력했던 결과로 농업이나 수산업이 발달을 했고 의류 산업도 발전을 거듭한 결과 오늘날에 이르렀다.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각종 기술과 장비가 등장한다. 물론 지나친 욕심과 편리를 추구함으로 건강을 해치고 환경파괴라는 부메랑을 피하지 못했다. 그 폐해와 위험성을 인식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 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여러 단체와 국제기구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늘의 결과에 허무하게 무릎을 꿇고 몰락할 인류가 결코 아니다. 맹수와 재해 숱한 전쟁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처할 방안을 찾지 못할 리가 없다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이번 주는 꽃샘추위가 있어 평년기온을 밑도는 날씨가 이어진다는 예보가 있다. 그러면 다음주부터는 봄이라는 애기가 된다. 흔하게 말하기를 겨울나기가 힘들다고 하지만 봄을 맞기까지는 얼마나 더 힘이 드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 언 땅을 뚫고 돋는 새싹, 비명을 삼키며 꽃망울이 터지는 아픔과 눈물 한 방울도 없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그림자를 드리울 산란의 장소를 찾아 날아다니는 애절한 날갯짓을 상상해 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큰 아픔을 통해 우리 앞에 봄이 오는가를. 오늘의 패배가 남은 대국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기는 하겠지만 섣부른 생각은 하지 말자. 축구도 전반전 성적으로 경기가 종료되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봄은 이제 시작이니까. 이세돌 9단에게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