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들이 얼룩말 되어
/김은옥
창밖으로까지 뛰쳐나간 너의 얼룩말은
내 자동차 범퍼를 발길질하기도 한다
커피 속에 잠긴 야생의 내장들
코뿔소가 들이받아 흩어진 창자 속 신선한
신맛이 쓴맛 뒤에서 열대를 음미하는 사이
주술을 하듯 기다란 주전자 주둥이가 천천히 기울어진다
본차이나 찻잔 바닥으로 에티오피아의 햇빛 한 줄기가
미끄럼을 타며 부드럽게 내려온다
카페는 어둡고 어둠의 깊이만큼 휘황했으나
찻잔에는 검은 대륙이 눈을 뜨고 있다
벽걸이 사진 속 어린 커피노동자의 눈동자가
재갈이 채워진 허기진 땀방울을
사진 밖으로 흘려보낼 것만 같다
고원의 상록수는 한 해에도 여러 번 수태를 한다
그 출산을 돌보는 수많은 아이들
커피콩 고르는 예닐곱 살 손길들이 찻잔 속에 보인다
먼 천둥소리로 사자가 우는
이 밤 내내 흑인 소녀의 얼굴이 주전자 주둥이에서
킬리만자로의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 계간 예술가 2015 가을호
세계는 또는 이 문명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커피콩 고르는 예닐곱 살 먹은 손길처럼 나지막이 더듬고 있는 시이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곧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와 어린 커피노동자의 눈물을 동일시하는 이중 삼중의 아픔이 녹아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대문명을 커피 한잔으로 더듬으며 시인은 사자처럼 먼 천둥소리로 울고 싶었을 것이다. 말言들은 많으나 제대로 된 말들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을 바라보며 아프리카의 눈물과 더불어 우리들의 속울음까지도 감싸주고 있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