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계절이다. 집을 나서면 초목이 열매를 익히느라 분주하다. 누렇게 넘실대는 들판에 꼬투리를 만들고 알곡을 채우는 콩이며 들녘의 사연을 빼곡히 저장하는 해바라기까지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즐겁다.
이런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다. 낭창낭창 허리를 흔들며 바람을 불러들이는 갈대숲엔 제 몸을 반쯤 강물에 동동 띄운 오리가 물질이 싱거운지 낮게 날아올랐다간 이내 갈대숲으로 들어 분탕질을 한다.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며 서해의 해넘이를 보았다. 붉은 하늘을 끌고 바다로 잠입하는 하루의 마지막 태양을 전송하며 뭔가 모를 새로운 다짐을 한다. 짝꿍은 바다낚시를 하고 나는 파도에 기대어 별을 세다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이내 등대 옆에 앉아 졸기도 했다.
자정이 넘도록 바다와 놀았다. 낚시가 잘 안된다며 자리를 옮긴다고 했다. 안면도에서 대산 쪽으로 이동하던 중 자동차가 쿨럭쿨럭 한다. 가슴이 덜컹한 나와는 다르게 ‘어 타이어 펑크인가’하며 짝꿍은 대수롭지 않게 차를 갓길에 정차한다. 뒤쪽 타이어가 펑크 난 정도가 아닌 아예 터져버렸다고 했다. 타이어 교체시기가 지난 것이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망설여지긴 했지만 예비타이어도 있고 긴급출동 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보험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다행히도 오래 기다리지 않아 출동한 기사의 도움으로 타이어를 교체했고 상황을 종료했다.
낚시는 그만 하고 집으로 가고 싶어 하는 나와는 다르게 짝꿍은 아쉬움이 남는지 기어이 낚시를 서너 시간 더 했고 먼동이 틀 무렵 귀가를 하던 중 차가 또 덜컹댄다. 뒤쪽 타이어 한쪽이 마저 터진 것이다. 난감했다. 예비타이어도 사용했고 보험사에 연락하기도 민망하고, 그렇다고 갓길에 마냥 있을 수도 없고.
할 수없이 또 전화를 했다. 직원이 몇 시간 전 신청한 서비스가 아직도 해결이 안 되었느냐는 물음에 정말 죄송한데 나머지 한쪽이 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연락을 주겠다던 보험사는 30분이 지나도 연락이 없고 우리는 긴급출동을 기다리는 동안 여러 가지 궁리를 했다.
시간도 이르고 일요일이라 타이어 매장도 영업을 하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타이어를 교체하기 위해 주문해놓은 상태라 다른 매장에서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도 어렵고 평택까지 견인서비스를 받으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보험사를 재촉하여 긴급출동 기사가 왔고 다행히도 공단 안쪽에 일찍 문을 여는 곳이 있으니 그리로 안내하겠다며 견인차에 자동차를 매달고 정비공장까지 와서 잠자는 주인을 깨웠으나 자동차에 맞는 타이어가 없단다. 난감한 상황이다. 주인은 폐타이어가 수북이 쌓여있는 곳을 뒤적이더니 며칠은 탈 수 있으니 원한다면 교체해 준다고 했다.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못 되니 남이 벗어던진 신발을 자동차에 신겼다. 무사히 집까지 올 수 있음에 감사했고 늦은 시간, 새벽 시간에 달려와 준 기사님도 미안하고 고마웠다.
긴급출동 일을 몇 년째 하면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는 말에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여행의 시작은 즐거웠으나 귀가 길은 험난했다. 다행히 큰 사고로 발생되지 않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동차 운전자의 필수조건인 타이어 점검을 게을리 했고 제때 교체하지 않아 생긴 불상사다. 그 후 먼 길 나설 땐 타이어 점검 먼저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