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사리 연가
/전건호
물살에 휩쓸리는 낙엽 한 장에 시선을 빼앗겨
몸을 버리고 나뭇잎에 옮겨 탄다
탁란!
마음을 떠나보내니
꽃잎 단장하던 육신도 남루한 헌옷이구나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기니
상상하지 못한 무색계가 열린다
낮은 데로 흐르다보면
그대 내려뜨던 눈썹 밑에
언젠가 도달하리라는 것
그대여,
조금만 더 새침하게 몽산포 해변에 앉아계시라
보름사리 가랑잎 하나
밀려올 때까지
달빛 아래 기다리시라
- 전건호 시집 ‘변압기’
비움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만산홍엽, 그 어찌할 수 없이 몰려오는 허전함에 절로 눈이 깊어지는 가을노래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쓸쓸함에 누군가의 눈빛이 그립다. 화자는 물살에 휩쓸리는 낙엽에 마음을 실어 떠나보낸다. 하여 꽃잎 단장하던 육신도 남루한 헌 옷일 뿐임을 깨닫는다. 남은 몸마저 맡겨 상상하지 못한 무색계가 열림을 느낀다. 이렇듯 낮은 데로 흐르다 보면 그대 내리뜨던 눈썹 밑에 언젠가 도달하리라는 것 또한 깨닫는다. 그리하여 비움의 미학 앞에서 그리운 그대에게 조금만 더 새침하게 몽산포 해변에 앉아계시라. 보름사리 가랑잎 하나 밀려올 때까지 달빛 아래 기다리시라. 마음속 주문을 한다. 이렇듯 썰물처럼 나를 비워야 들어오는 우리의 인연, 우리가 가을을 견디는 것은 분명 그 때문이리라.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