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팅
/정호령
바람에 나뭇잎들이 살짝 흔들렸다.
주위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바쁜 버스들, 자동차들이 달리고
불쑥불쑥 솟은 빌딩들은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죽은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다.
친구들끼리의 비밀을 훔쳐보는 느낌은 아니었다.
편지라기보다는 자신의 독백을 써 놓은 듯, 한 느낌이었다.
외로운 자의 독백. 자신의 신전이 사막화 되어가는 것을 보는 자의 독백.
여전히 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에 나뭇잎 하나 잘릴 때 쯤,
떨어진 것은 나의 눈물이었다.
-계간 리토피아 가을호에서
인생은 순간이다. 인생 100년이 엄청나게 길어보이기는 하지만 100수에 가까워지면 남은 시간에 따라 시간의 개념이 달라지기도 할 것이다. 그 와중에서 어느 한순간에 어떤 존재가 사라져버린다면 그야말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식간에 잘려나간 것처럼 허무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컷팅에 대해 그가 아닌 우리들의 느낌은 무엇일까. 그가 남긴 흔적을 들여다보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안타까운 것일까. 슬픈 것일까. 아니면 당장 언제라도 내게 닥칠 비극의 조짐으로 다가와 몸을 떨게 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어떤 일에도 내 눈물의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을지 모른다. /장종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