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아크로바트
/이운진
등이 휜 여자가 중년의 여자를 업는다
중년의 여자는 살굿빛 소녀를 어깨에 올리고
어깨에 앉은 살굿빛 소녀는 요람을 안고 흔든다
하얀 구름 한 장의 지붕을 걷어내면
요람 속에서 등이 휘고 있는 여자, 여자들
수없이 쌓인 그녀들을 밟고
눈을 감은 남자가 허공에 문패를 건다
- 이운진 시집 ‘타로카드를 그리는 밤’
세계의 역사는, 민족의 역사는, 부족의 역사는 그리고 이 모든 역사의 근원인 한 가계의 계보는 어떤 힘으로 진행되고 완성되는가. 여기 곡예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위태롭고 아슬아슬하면서도 질기게 계보를 이어가는 여자들의 내력이 있다. 계보를 잇는다는 것이 그저 자연스럽게 순리를 따를 것 같지만, 구름 한 장 정도의 환상을 걷어내면, 등이 휜 여자가 등이 휠 중년의 여자를 업고 역시 언젠가 등이 휠 소녀가 중년 여자의 어깨에 앉아 또 언젠가 등이 휠 어린 여자의 요람을 흔들어 주는 것. 등이 휜 여자들의 수없이 쌓인 고난을 근저로 한다는 것. 그런데 문패를 달고 계보를 완성하는 이는 이 모든 역경에 눈을 감고 있는 남자다! 우리의 서러운 어머니들, 누이들을 어떻게 쳐다볼 수 있을 것인가.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