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맹문재
불타버린 낙산사에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다가
이렇게 웃어도 되는가?
날이 저물어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연둣빛 촉을 틔운 봄이
낙산사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가 쉬는 것처럼
편안한 얼굴
나는 그 모습이 좋아
폐허의 낙산사에서 미소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맹문재 시집 ‘책이 무거운 이유’
그렇다. 희망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온다. 새까맣게 불타버린 낙산사에 연둣빛 촉을 틔운 봄이 찾아오듯이, 새까맣게 불타버린 우리의 마음에도 희망의 촉이 움틀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다. 지금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지난한 시간이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곧 편안한 얼굴을 갖게 되리니, 마음의 폐허를 뒤적거려 이제는 촉을 틔울 씨앗을 찾아나서도 좋으리라.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