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로그에게서
/김구슬
엘리엇은 라프로그에게서 말하는 법을 배웠다.
보들레르에게서는 가장 비시적인 것도
시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단테에게서는 인간 영혼의 깊이와 높이를 배웠다.
엘리엇은 스스로
은폐하며 폭로하는 법을 익혔다.
그리하여 축축하고 황량한 세계를 창조했다.
말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시를 써야 한다면서
말 할 줄 모르면서
가장 시적인 시를 쓰겠다고
영혼의 다양성을 맹목적으로 믿으며
모두가 조야한 세계를
번쩍거리며
너무나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로 거칠고 가치관이 무너져서 꿈이 없는 세상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시인도 엘리엇처럼 버려진 세상을 외면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로 노래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황무지보다 더 뛰어난 시를 쓰려는 열정을 가졌음도 내비치고 있다. 말은 소통의 수단이나 불통일 때는 비극이므로 말을 씨줄과 날줄로 시를 짜가는 능숙한 솜씨가 돋보이는 시라 좋다.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