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외판원
/김명이
넘어져야 의자가 무사했다
건물 비상계단으로
감쪽같이 스며들어
성급한 콧바람
헛디딘 구두짝 날아가고
스틱 놓친 불법 채취자처럼
렌즈 같은 공기들
알파벳 모호한 깔창 속 옮길까봐
후다닥 신었다
무릎 반 뼘에
푸른 싹이 돋아나고
제각각 검붉은 꽃
내게도 꽃밭이 생겨났다
‘지탄’이 꽃이름이랴만
바닥에 앉아 빙 둘러보았다
초보 딱지 참 깊고 위태로웠다
- 김명이 시집 ‘모자의 그늘’ / 지혜
고객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 거기에 ‘초보’라면……. 삶의 무게가 짐작 가능하다. 초보로서의 위태로운 하루가 눈앞에 선하다. 외판일이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된 직업이다. 수없이 넘어지는 대가로 자신의 의자가 무사할 수 있다. 그 역경을 통과하는 자가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성공을 향해 혹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뚱이 하나로 전진하는 것. 외판업계의 신화는 종종 매스컴을 장식하며 인간승리로 표현되곤 한다. 초보는 넘쳐나지만 눈물을 감추며 완주하는 자에게만 보상이 따른다. 초보시절은 이후의 어떤 역경도 이겨내는 숨겨진 보물이기도 하다. /이미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