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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근칼럼]아픈 가시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아픈가시 한 두개씩은 가지고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아마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가시가 가장 많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자녀나 배우자 부모 가족 관계로 인한 갈등과 상처가 가장 예리해서 폐부를 찌르는 고통을 줄 수 있다. 주변 사람들 가시는 잘 해결해 주면서 정작 내 몸속에 있는 가시는 해결하지 못할 때도 있다. 아니 애써 외면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회피 한다. 이러한 가시가 생채기로 표출되어 피부 속을 뚫고 나오는 현장이 바로 법정이 아닌가 싶다. 가족 간 금전이나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 이로 인해 협박 살인에 이르기까지 확대되는 사건 사고, 이혼 양육비 부양료와 관련된 치열한 감정다툼.

최근 내가 다녀온 어느 법정에서의 쟁점은 오래전 이혼한 부부사이의 자녀 양육비 청구 사건이다. 과거 15년 동안의 양육비에 대한 청구이니 그 금액은 두 자녀 합계 2억원 가까이에 이른다. 문제는 양육비 청구를 당한 남자 입장이다. 이혼 협의때 이미 양육비를 면제받았고 현재 양육비를 주고 싶어도 그 금액을 감당할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 처지라는 점이다.

청구인측인 부인은 그간 두 아들을 키우느라 감내한 울분이 일시 분출하는 탓에 목소리가 톤이 매우 높고 상대방이 해명할 틈도 주지 않는다. 나의 의뢰인인 남자측은 묵묵히 이혼 당시의 상황과 최근의 근황을 설명하며 두 자녀 양육비는 부인이 부담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이 없으니 법적으로 끝까지 해보자 버티고 있으니 괜스레 나까지 민망한 분위기다.

재판으로 끝까지 가서 판결을 받으면 양육비 청구권이 인정될 가능성도 있지만 남자쪽에게는 압류할 재산이 없기 때문에 법원의 판결을 강제집행할 기회가 없다. 남자측을 설득해서 자발적으로 지급하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여 합의가 성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장에서 조정위원으로 봉사하는 분은 그 지역 왕고참인 변호사와 법원의 중견 직원 두명이었다. 이들은 어머니를 따라와 울먹이고 있는 다 큰 아들에게 주목하고 성인이 되어버린 아들과 아버지 두 사람만 남기고 모두 퇴장토록 했다. 이제 조정실엔 부자만 남게 되었고 구체적인 대화내용은 들을 수 없지만 미안한 감정과 분노, 한편으로는 서로를 그리워한 여러 가지 복잡한 사연들이 분출되었으리라.

법정 복도에서 많은 시간이 흘러가고 가끔씩 내부 상황을 확인하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였다. 퇴근시간이 임박해오자 담당 판사가 조정실로 내려왔다가 그런 상황을 확인하더니 자리를 비켜주고 하던 대화를 계속 하도록 했다.

누구보다 가까이 지내야할 가족 사이에 대화할 기회가 없거나 여러 사정으로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둔 사연이 있다면 이 또한 아픈 가시가 되어 남는다. 나에게도 이러한 아픈 가시가 있다. 그냥 묻어두고 외면해 버리고 있다. 풀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발생할 수 있을까 염려되어 그냥 세월과 함께 묻어두고 있으니 조금은 답답한 심정이다.

이번 조정 과정에서 아들은 그간 힘든 과정을 설명함과 동시에 친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였을 수도 있고 양육비를 청구하는 어머니의 입장을 대변하였을 수도 있겠지만 오랜기간 관계의 단절로 인해 서로의 가슴에 박힌 아픈 가시를 설명하고 공감하는 자리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분쟁의 해결과정에서으로 한쪽이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지 않고 오랜 기간 붙어있다는 것은 좋은 결과를 암시한다. 모두 들어오라는 손짓에 따라 조정실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이미 아들이 어머니를 대신하여 최종 금액까지 결정해 놓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두 조정위원의 집요한 노력끝에 조정이 성사되었으니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조정 금액의 절반 정도는 일시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은 20개월 분할하는 것으로 하여 남자측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었다.

조정을 마치고 법정 출입구를 나서니 퇴근 시간 이후가 되어 문이 잠겨져 있었다. 내 의뢰인은 법원 마당을 곧바로 빠져나가길 주저하였는데 감정의 여운이 남은 듯 했다. 혼자 법원 벤치에 남아 생각 좀 하다 갈테니 나에게 먼저 출발하라고 한다. 차에 시동을 거니 노을진 서쪽하늘이 밝게 보인다. 부부 이혼과정에서 자녀들 만큼은 보호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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