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밥그릇
/유홍준
못쓰게 된 밥그릇에 모이를 담아
병아리를 기른다 병아리가
대가리를 망치처럼 끄덕거리며 모이를 쫀다
부리가 밥그릇 속에 빠져 보이지 않는다
더 깊이 주둥이를 먹이에 박으려고
앞으로 기울어진 몸
발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깊은 밥그릇은, 병아리를 죽인다
유홍준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 中
우리는 이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깊어지는 밥그릇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밥그릇은 어쩌면 삶일지도 모른다. 쪼아대면 쪼아댈수록 그릇은 더 깊어지고더 배가 고파지고 항상 모자라는 그러한 삶, 먹이를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고그릇에 머리 좀 더 깊게 박아보며 우리는 생을 위해 얼마나 위험한 행로를 하였던가?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마지막까지 발목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을 버리지 못하고 자라나는 자식을 위해 그 위험한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이제야 생각된다. /정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