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말(馬)의 개량사업이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수원에서는 1915년 왕가의 안마(鞍馬)와 일반 안마를 생산 개량할 목적으로 세운 이왕직(李王職) 화산(花山)목장이 최초의 근대적 목마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1년 뒤인 1916년에 강원도에 난곡목마장(蘭谷牧馬場)이 설립되었으나 1917년 난곡지장으로 개칭되면서 세포출장소도 세포지장(洗浦支場)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924년 세포와 난곡지장이 폐쇄돼 말과 면양(緬羊) 개량사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이때 난곡과 세포지장의 직원과 시설 일부가 화산목장으로 이양되고, 얼마 후 화산목장의 건물과 토지가 근업모범장(지금의 농촌진흥청) 축산부로 통합되면서 이왕직 목장은 없어지고 말았다. 이 때가 1929년이다.
그런데 최근 제주도의 한 향토사학자가 발표한 논문 ‘일제강점기 제주도 공동목장의 운영실태’는 우리나라의 말 사육역사가 엄청 이전부터 있어왔음을 밝히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제주도의 말 사육은 청동기시대부터 있었지만 목장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말을 사육한 시기는 고려말 삼별초군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에 진입한 몽골(원나라)이 1276년부터 제주도 동부지역에 탐라목장(耽羅牧場)을 설치하면서부터라는 것이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국영목장인 십소장(十所場)과 산마장(山馬場)이 운영되면서 여기서 생산된 말을 조정으로 공마(貢馬)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십소장 자리에 마을별 공동목장을 설치함으로써 조선시대의 목축 전통을 이을 수 있었는데 이 공동목장은 전국에서 제주도에만 존재하는 목장제도로, 목장사 측면 뿐아니라 학술연구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고 한 우리 속담이 왜 생겨났는지 알만하다. 말 사육에 관한한 수원과 제주도는 인연이 깊은 고장인 셈이다.
이창식/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