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45년 8월 15일에 태어난 해방둥이들이 팔순을 맞이한 노인이 됐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보다 먼저 태어난 일본군위안부피해자와 강제징용피해자들은 거의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가해자인 일본의 진정한 과거사 반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 노력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독도 문제, 한일역사교과서 문제도 생각을 올바르게 바꿀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식민지 조선은 일본의 통치로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망언까지 쏟아내고 있다. 더 딱한 것은 이에 동조하는 우리나라의 이른바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친일 세력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윤석열 정권 때 절대 차지해서는 안 될 자리에 앉기도 했다.
오는 15일 오후 8시 광화문 광장에서 광복절 80주년엔 국민대축제가 열린다. ‘광복 80년, 국민주권으로 미래를 세우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행사에서는 ‘이재명 대통령 국민 임명식’도 진행된다. 애국지사와 독립·국가유공자를 포함한 약 1만 명의 국민이 초청된다. 1945년에 출생한 해방둥이와 1956년 한국증권거래소 발족 후 처음으로 상장한 12개 기업 관계자, 1971년 카이스트 설립을 주도한 관계자, 파독 노동자와 중동 건설노동자, 국민 주권을 실현한 국민, 기업인, 연구인, 경찰·소방관과 한국전·베트남전·이라크전 참전 용사, 순직 공무원 유가족, 사회적 참사 및 산업재해 유가족 등 각계각층에 망라돼 있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그 가운데 특별히 김향화 지사 관련 행사가 눈에 들어온다. 일제 강점기에는 지식인, 종교인, 학생, 노동자, 농민 등 모든 계층이 자신의 몸과 가족의 안위를 내던지고 항일투쟁을 벌였다. 김향화 지사는 당시 가장 천대받던 기생의 신분이었음에도 분연히 일어섰다. 김 지사는 1897년 한성부(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수원으로 와 혼인했지만 곧바로 이혼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수원권번의 기생이 됐다. 그는 기생이면서도 동료들에게 일본군에게는 술도 따라주지 말고 권주가도 부르지 말자 종용했다고 한다.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은 기생 김향화 지사는 1919년 3월 29일 수원권번 기생 33명과 함께 일본 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곧바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두 달 간 구금된 상태에서 극심한 고문을 받은 뒤 서대문형무소로 넘겨져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복역 이후 김 지사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950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 정도다. 수원시는 김 지사의 공훈을 찾아내 국가 공훈 심사를 올렸고 드디어 2009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받을 후손을 찾지 못해 수원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
수원시립공연단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9월 5일부터 7일까지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창작 뮤지컬 ‘향화’를 선보인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9일자 10면 ‘여성 독립운동가 김향화 생애 속으로’) 작품을 통해 여성 독립운동가 김향화 지사의 생애와 시대상을 바탕으로, 기예를 갖춘 여성들이 일제의 탄압에 어떻게 저항하며 살아 왔는지 알 수 있다. 전통 국악에 기반한 창작곡과 안무, 장구춤, 검무, 선유락 등 전통 기예도 무대에서 재해석돼 다채로운 볼거리를 더한다는 것이 공연단 관계자의 귀띔이다.
그의 말처럼 김향화 지사는 수원의 자랑이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다. 이에 수원지역에서는 김 지사를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역연극인 고영익 씨는 최근 김 지사의 이야기를 담은 희곡집 ‘잊혀진 혼! 예기’를 출간했다. 수원시 여성문화공간-휴(休)는 김 지사 등 여성독립운동가의 족적을 답사하며 삶과 수원의 역사를 되새기는 특별 탐방 프로그램 ‘여성독립 운동가, 그 길 위의 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다.
국권 회복을 위해 당시 최 하위계층인 기생까지 나섰던 자랑스런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김향화 지사 등의 이야기는 반드시 후세에 전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