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반려이자 맞수이다. 한 이불을 덮고 살지만 잠자리를 벗어나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그들에게 양보는 미덕이 아닌 악덕일 뿐이다.
프로기사 루이나이웨이(芮乃偉ㆍ40) 9단과 장주주(江鑄久ㆍ41) 9단. 이들은 세계 최강의 바둑 커플이다. 합이 무려 18단이니 어느 부부가 감히 도전장을 내겠는가. 중국 출신이지만 4년째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이들은 한국 바둑사상 최초로 '반상의 부부 대결'을 벌였다. 맥심배 9단전 3번기 제1국이 그것이었다. 이들은 내로라하는 한국의 9단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정상에서 마주 앉았다.
제1국은 남편인 장주주 9단의 승리. 그는 조금의 허점도 보이지 않은 채 아내에게 항복을 요구했다. 제2국은 이달 12일 열릴 예정. 여기서 루이나이웨이 9단이 이기면 2월중 예정된 최종국에서 자웅을 겨룬다.
한국 연예인들이 중국에서 '한류'(韓流)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면 이 부부는 '한류'(漢流) 폭풍으로 한반도를 뒤흔든다. 특히 루이나이웨이 9단은 2년 전 이창호 9단과 조훈현 9단 등 한국 바둑의 기라성들을 녹아웃시키며 국수전에서 우승한 바 있다.
바둑인들은 이들 부부에게 장난삼아 "누가 더 세냐?"고 묻곤 한다. 서로 상대가 더 강하다며 겸손해하지만 막상 바둑판 앞에 앉으면 이들의 태도는 단호해진다. 봐줄 게 따로 있지 반상에서만은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고국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일본과 미국에서 10년간 떨어져 살며 '바둑 집시'가 됐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왜 한국에 왔으며 바둑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두 부부는 자전적 기록인 「우리 집은 어디인가」(전2권ㆍ마음산책)를 나란히 냈다. 제목은 같지만 제1권은 루이나이웨이의 이야기이고, 제2권에는 장주주의 인생사가 담겨 있다. 수담(手談)이 아닌 필담(筆談)으로 삶을 들려주려는 것이다.
출판사는 지난해 중국에서 출간된 이들의 공저 「천애기객(天涯棋客)」을 보고 각자의 이야기를 별도로 들려달라고 청했다. 루이나이웨이는 바둑 입문과정과 선수생활, 일본 유학시절, 결혼 후 미국을 거쳐 한국에 온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놨다. 장주주 역시 입문에서 선수생활, 미국 활동 등을 수록했다.
먼저 루이나이웨이 9단.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난 그는 10살 때 처음 바둑돌을 만졌다. 한 가지 특기만 있어도 산다는 양친의 기대와 권유 때문이었다. 소극적 성격으로 늘 열등감에 시달리던 그녀는 바둑에서 길을 발견했다. 그래서 1978년에는 대학진학을 포기하는 대신 상하이시 대표팀에 들어가 프로기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수줍은 외양과 달리 바둑판에서 그녀는 매우 공격적이다. 한때 슬럼프가 있긴 했지만 중국과 일본의 프로기사들을 뻥뻥 나가떨어지게 하며 '철녀'의 탄생을 예고했다.
그러나 1987년 싼샤(三峽)에서 열린 중-일 대항전은 그녀에게 시련을 안긴다. 대회 도중 규율을 어기고 일본 남자기사의 방에서 연습대국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도부가 심하게 질책하자 그녀는 중국에서 바둑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일본 유학을 추진, 1990년 고국을 떠났다. 그녀는 당시의 아픔을 '싼샤의 좌초'라고 표현했다.
일본 유학은 사랑하는 장주주와의 이별을 의미했다. 장주주는 '싼샤 사건'으로 수렁에 빠진 그녀를 따뜻하게 위로하곤 했다. 한편 일본에서 마음껏 바둑을 두리라던 기대는 크게 빗나갔다. 너무 바둑을 잘 두어 일본 바둑계는 그의 독식에 우려를 나타냈다. 정식 시합에 참가하기 어려웠던 루이나이웨이는 1993년 장주주와 결혼한 뒤에도 길이 열리지 않자 미국으로 떠났다.
다음은 장주주 9단. '우리 집'을 찾지 못하기는 미국에 있던 장주주도 마찬가지였다. 산시성(山西省) 출신인 그는 할아버지 때부터 바둑을 즐겨 두던 집안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돌과 친했다. 문화혁명의 와중에 아버지가 반동분자로 몰려 집안이 오지로 쫓겨났지만 장주주는 산시성 대표로 국가대회에 참가해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국가대표팀 선수가 된 것은 1978년. 특히 1984년에 열린 중-일 슈퍼대항전에 출전해서는 고바야시 사토루 등 일본의 고수들을 잇따라 격파하며 5연승을 달성, 대륙을 열광시켰다. 중국인들은 쾌거의 주인공인 장주주를 '항일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 그가 루이나이웨이를 안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알고 지내던 미국인의 초청으로 홀로 미국에 건너갔으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싸늘한 배신.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매우 불리한 계약에 선뜻 서명한 게 잘못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취업비자를 받은 그는 루이나이웨이와 결혼해 잠시 일본에서 산 뒤 다시 미국행 길에 올랐다.
떠돌이나 다름없던 이들 부부를 한국으로 불러들인 사람은 재미 프로기사 차민수씨였다. 타고난 도박사이기도 했던 차씨는 이들의 한국행을 적극 주선해 집시생활을 청산하게 했다. 드디어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바둑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99년 4월, 서울에 첫 발을 디딜 때 이들 부부는 길가에 즐비한 기원 간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의 바둑 저변이 이토록 탄탄한 줄은 미처 몰랐다는 얘기다. 이들의 서울 정착은 한국 기사들은 긴장시켰다. 특히 여성 바둑계는 루이나이웨이가 손쉽게 장악했다. 그녀의 기력은 여성이라는 한계에 가둘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 이번 책은 이런 바둑 이야기 뿐 아니라 삶의 이면도 잔잔하게 들려준다. 두 사람은 "바둑을 둘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 집"이라고 강조한다. 각권 270쪽 내외. 각권 9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