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원 기호일보 사장, 인사차 [ 경기신문 / 인천 = 이인수 기자 ]
인천교통공사는 22일 육상교통본부 공식 출범에 발맞춰 공사가 운영하는 버스와 장애인콜택시 등을 이용하는 취약계층에게 쾌적하고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장애인단체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인천교통공사는 인천도시철도 1·2호선 외에 시내버스 4개 노선과 청라~가양 간 BRT(간선급행체계), 청라~가정 간 GRT를 운영하고 있고, 장애인을 위한 특별 교통수단인 장애인콜택시(특장차 145대, 바우처 택시 270대)를 운행하면서 장애인 등 교통서비스 취약계층에 대한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정희윤 공사 사장은 “버스, 장애인콜택시 등 육상교통을 이용하는 교통 취약계층의 요구를 경영에 반영하기 위해 7명의 자문위원을 위촉했다”며 “학계와 전문기관 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육상교통본부 출범에 맞춰 고객 안전과 서비스 개선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교통공사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육상교통본부 출범식을 생략하고 자문단 위촉도 참석자를 최소화해 진행했다. [ 경기신문 / 인천 = 이인수 기자 ]
1945년 9월8일 오후 2시쯤 인천항 객선부두. ‘해방군’으로 3·8선 이남에 진주하는 미군을 환영하기 위한 인파가 빼곡했다. 천황의 항복선언이 나온지 2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치안유지 권한을 부여받고 있던 일본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 곳곳에서 작은 실랑이가 잇따랐다. 그때 인천보안대원과 조선노동조합원들이 환영 현수막, 연합군기 등을 들고 부두에 도착했다. 이들이 일경의 경비구역을 통과하려던 순간 난데없는 총성 몇발이 울렸다. 권평근(당시 47세)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회 위원장과 이석우(26) 보안대원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여럿이 다쳤다. 이들의 장례는 이틀 뒤인 10일 시민들의 극렬한 분노 속에 답동성당에서 시민장으로 치러졌다. “일본인을 한 명도 남기지 말고 죽이자”는 처절한 외침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지만, 발포 경관에 대해 어떤 법적 처벌도 없었고 인천에 살던 일본인들은 그해 말까지 무사히 귀국길에 올랐다. 기나긴 대한민국 미군기지의 역사는 이렇게 무고한 시민들의 피와 분노가 뿌려진 가운데 시작됐다. 이 땅에 상륙한 미군은 1939년 일제가 중·일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 생산을 위해 부평에 건설한 조병창에 제24군단 예하의 군수지원사령부(ASCOM)를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이 21일 등교수업 재개, 추석연휴 방역안전망 구축, 초등학생 형제 화재사건 등 현안과 관련한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 = 인천시교육청 제공 ]
인천시 중구의 옛 개항장 일대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세계적인 역사·문화·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다른 곳과 확연하게 차별화되는 관광콘테츠가 마련되고, 주변 교통인프라도 대폭 확충된다. 1883년 개항 이후 이곳은 서울 못지않은 나라의 중심이었다.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서양문물이 인천을 통해 물 밀듯 쏟아져 들어왔고, 세계 각국 사람들이 오가고 머문 국제도시였다. ‘국내 최초’의 수식어가 붙은 역사·문화·외교·교통시설 등이 숱하게 들어섰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100여 년의 풍파를 견뎌내고 남아 당시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400여 년 간 도호부청사(오늘날의 시청)가 있던 관교동을 밀어 내고 인천의 수부(首府) 역할을 하던 이곳은 1980년대 들어 시청 등 주요 공공기관과 학교 등이 빠져나가고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대표적 원도심’으로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최근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역사·관광 관련 사업들이 간헐적으로 이어져오던 터에 지난 15일 정부의 ‘스마트관광도시 시범사업’ 대상지로 최종 선정됐고, 시가 이에 발맞춰 대규모 개발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 인천항 내항 1·8부두 재개발 본격화 2007년 시민청원으로 시작된 내항 1·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진촌6리의 만개한 메밀밭을 찾은 주민들이 사진을 찍으며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사진 =옹진군 제공 ]
박인서 인천시 균형발전정무부시장이 17일 시청에서 열린 '마스크 기부 전달식'에서 김두민 아성기업 대표로부터 노인복지시설에 전달할 마스크를 전달받고 있다.(왼쪽 세번째부터 심재선 인천공동모금회장, 박인서 부시장, 김두민 대표) [ 사진 = 인천시 제공 ]
인천은 광역시 가운데 가장 많은 168개나 되는 섬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섬이란 사방 팔방이 바닷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 간조와 만조에 관계없이 해수면 위에 노출되고 물이 있어 식생이 가능한 지역으로 정의됩니다. 인천의 섬은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황해가 생길 때 낮은 지형은 바닷물로 덮이고 비교적 높은 산봉우리들이 노출돼 현재의 모습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제가 인천 섬에 관심을 갖고 20여 년 간 직접 방문해 본 결과 각각의 섬이 간직하고 있는 자연과 역사·문화유산은 사람의 얼굴이 서로 다른 것처럼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섬이 소유한 유산의 특징과 접근성 등을 고려해 지형·지질유산이 우수한 백령권 섬들은 국가지질공원과 세계지질공원으로, 남·북 간 충돌의 역사를 간직한 연평권은 평화체험의 공원으로, 인천앞바다에서 가장 많은 섬이 몰려 있어 인천의 다도해라고 할 수 있는 덕적·자월권은 섬섬옥수 해상공원으로, 접근성이 탁월한 영흥·중구·북도권은 섬문화체험공원으로, 풍부한 역사유물과 유적을 보유한 강화권 섬은 역사체험공원으로 각각의 지역성에 맞게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매주 금요일에 연재
▲허종식(더불어민주·인천동구미추홀갑) 국회의원
1. 제과란? 제과는 밀가루를 주원료로 해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한 뒤 반죽을 거쳐 화기의 힘을 이용, 만들어내는 제품을 통칭한다. 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키는 것을 빵, 베이킹파우더나 계란의 기포 힘을 이용해 부풀리는 것을 과자라 하는데 반죽방법과 넣는 재료에 따라 수백 종이 넘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2. 제과(과자, 빵)의 역사 과자와 빵을 만드는 재료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밀가루이며 밀이 재배되면서부터 과자, 빵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밀의 재배는 이란·이집트문화를 중심으로 성장했고, 이에 따라 밀의 제분 및 가공기술도 발달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쌀을 가공한 밥, 떡, 과자가 만들어졌듯 서양에서는 밀가루를 가공한 빵과 케이크가 만들어졌다. 서양의 케이크가 동양의 과자와 다른 점은 일찍부터 단맛을 내는 꿀과 계란, 동·식물성 기름, 버터, 치즈 등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부풀림을 활용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 과자의 기원 빵, 과자의 기원은 1만년 전부터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의 빵은 무발효 빵으로 현재 우리가 분류하고 있는 빵·과자의 개념 이전의 사항으로, 밀을 이용한 식품의 차원이었다는 것과 BC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