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쓰레기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당장 일 처리 용량이 50톤 이상 모자라는 수도권 지자체만 10곳에 달한다. 주민들의 불안과 불만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처리 용량의 고질적 부족 현상에다가 유해 정보에 대한 불신, 보상책에 대한 불만까지 뒤범벅되어 한꺼번에 논란이 폭발하고 있는 양상이다.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 쓰레기 대란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어떻게든 막아내야 하지 않겠나. 수도권에서 지금 소각장 설립과 관련한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서울 마포구이지만,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인천시는 매일 540톤을 처리할 소각장을 추가로 확충해야 한다. 경기도에서 현재 부족한 일일 소각처리 용량은 고양시 350톤, 부천시 900톤, 안산시 250톤, 남양주 250톤, 안양 100톤, 화성시 5..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1552~1617). 의령 출신. 현풍이 본관이다. 3대가 높은 벼슬을 했다. 임진왜란(1592~1598)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바다의 이순신과 함께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다. 구국의 영웅이지만, 곽재우의 전공(戰功)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최근 선생을 읽으며 나는 십대 소년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대가 부산항에 쳐들어온 날은 1592년 4월 14일이다. 곽재우가 가족을 깊은 산속에 피신시키고, 선영의 봉분을 깎아서 평평하게 해놓은 다음, 거병한 날은 열흘 뒤인 4월 22일이었다.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은 곽씨 집안 머슴들 열 명이 전부였다. 짧은 기간 안에 2000명의 전투병력으로 증원된다. 천석꾼이었던 곽재우는 우선 곡식창고를 연다. 군량미와 의병 가족들의 쌀독을 채워준 거다. 그리고, 계급차별 없이 가족, 형제, 친구, 사제 사이처럼 인격적으로 대하는 장군의 높은 인품과 구국충정의 진정성, 왜장들조차 감탄하면서 두려워하는 천재적 병법, 헌신적 태도 등이 그 놀라운 리더십의 요소들이었다. 부대가 커지고 싸움이 장기화될 경우, 당연히 군량미의 문제가 1순위 과제다. 식량이 떨어지면 관군이건 의병이건 먹거리를 찾아 부대를 떠난다. 그 위기에 곽재우는 노비가 수백 명이나 되는 만석꾼 허언심을 찾아간다. 매부였다. 냉정하게 거절하던 그에게 의병에게 주지 않으면 왜놈들에게 빼앗긴다고 설득하여 엄청난 분량의 식량을 확보한다. 지역의 부자들도 양곡을 기부했다. 곽재우에게 가장 나쁜 적은 경상감사 김수였다. 김수는 왜군이 쳐들어오자 정예군을 데리고 도망친다. 수만의 백성들이 저항할 겨를도 없이 죽임을 당했다. 왜군에게 파죽지세의 북진을 도와준 꼴이었다. 김수를 죽이려고 추적하던 곽재우가 오히려 김수의 모함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다. 선조는 이순신을 괴롭히고 곽재우를 미워했다. 그 절체절명의 시간에 선조는 곽재우를 2년간 유배 보낸다. 그 머저리 선조가 장장 41년 동안 재위했다. 왜장 한놈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낸 편지 한 대목이다. "저희들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소서. 조선 군사들은 저희들이 왔다는 말만 들어도 화살 한번 쏘지 못하고 줄행랑을 칩니다. 게다가 관군들이 버리고 간 곡식이 도처에 쌓여 있습니다. 저희의 군량미입니다." 선조와 김수 같은 공직자들은 왜군 보다 더한 악인들이었다. 곽재우를 비롯한 의병들은 이토록 최악의 조건에서 목숨걸고 싸웠다. 곽재우는 백전백승이었다. 당시 호남은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왜장들은 병졸들의 전의와 사기를 고조시키기 위하여, "전라도에 가면 넉넉한 식량과 미인들이 있다. 너희들은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있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지껄였다. 곽재우 부대는 왜군의 호남진출 욕망을 매번 좌절시켰다. 곽재우는 한 때 가족과 함께 울진으로 옮겼다. 거기서 신분을 감추고 패랭이(평민들이 쓰는 풀로 엮은 모자)를 만들어 팔아서 연명했다. 그 많은 재산은 의병을 유지하는 데 다 썼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지만, 사양한다. 작고하기 몇 년 전부터 밥을 먹지 않고 솔잎을 씹어먹으며 살았다. 그가 택한 죽음의 방식이었다. 곽씨집안에서 공치사는 금기였다. 곽재우는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었던 남명 조식의 수제자였으며, 부인 김씨는 남명의 외손녀다. 남명이 중매했다. 큰 선비의 겸허와 품격이 시공을 초월하여 향기롭고 고매하다. 오늘 우리는 난데 없이 국난에 처했다. 마치 16세기 말 조선처럼, 홍의장군 같은 의로운 선비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유사 이래, 공공분야의 악질들은 세상의 정의가 사라지는 것에는 분노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것을 참지 못할 뿐이다. 위태롭다. 위태롭다. 실로 위태롭다.
지난 19일은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었다. 세계여성정상기금(WWSF)이 아동학대 문제를 알리고 예방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정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부터 법정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아동학대는 줄어들지 않는다. 특히 지난 2020년엔 서울시 양천구 아동 학대 살인 사건(일명 정인이 사건)이 발생해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생후 16개월 입양 아동이 학대로 숨진 지 2년이 다 돼가지만 아동학대는 계속되고 있다.(관련기사 본보 18일자 1면) 이후 민간단체들은 아동보호체계를 재편하고, 아동 복지 서비스 전문성을 향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50여 건이 넘는 아동학대 관련 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지난해 2월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양천 아동학대 사망사건 등 진상..
치즈광인 친구에게 특식을 사겠다고 퐁듀 전문집에 데려갔다. '다소 비싸지만,아주 맛있다 '는 소개를 듣고 찾아갔는데 전언과 달리 다소 맛있는 정도였고 아주 비쌌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괜히 퐁듀의 기원을 입에 올리며 감정을 푼다. '퐁듀가 사실 옛날 스위스 사람들, 한 겨울에 굶어죽지 않으려고 먹었던 음식인 거 알아? 겨울되면 광 속에 딱딱한 빵, 굳은 치즈만 굴러다녔는데 그걸 먹겠다고 포도주에 치즈 녹이고 빵 찍어 먹은 게 퐁듀의 유래야' 친구는 퐁듀 얘기보다 스위스 사람들의 가난했던 과거사에 관심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스위스의 국가 이미지는 거의 유토피아다. 만년설을 인 알프스와 서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인 레만호를 가진 자연 청정국, 세계 최고 명품 시계, 초콜릿, 치즈로 유명하지만, 실상 관광업, 금융업, 의약품, 제조업 등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 9만달러가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자 나라, 영세중립국으로서 500년간 전쟁 없이 무장평화를 유지해온 나라. 전 세계의 부러움을 받는 스위스도 18세기까지 유럽의 빈국, 약소국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험준한 알프스산이 국토의 70%, 호수까지 치면 75%가 농사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인데, 그나마도 냉해가 잦아 굶주림이 국민의 일상이었다. 떠돌다가 외국까지 나가 살 길 찾던 이들은 전쟁터에 나가 대신 싸워주는 용병에 자원한다. 그 유명한 '스위스 용병'의 탄생 배경이다. 스위스 용병이 왜 유명했는가. 신의와 용맹성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로마 교황과의 갈등 끝에 침략했을 때, 로마 성벽을 지키던 스위스 근위대 500명의 이야기가 있다. 근위대는 교황 클레멘스 7세가 피신할 때까지 끝까지 엄호하며 적에 맞선다. '도망가도 좋다'는 교황의 권고가 있었지만 단 한 명도 이탈하지 않아 결국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후인 1792년,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가 머물고 있는 튈르리 궁에 분노한 민중들이 몰려들었다. 겁에 질린 왕의 근위병들은 모두 도망갔는데, 끝까지 왕실을 사수한 이들이 있었으니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이었다. 시민들은 죄없는 그들에게 퇴로를 열어주었으나 용병들은 이에 응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맞서 모두 전사한다. 여기서 나오는 의문. 왜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 살 길을 주는데도 마다하고 목숨을 내놓고 싸운 것일까. 당시 전사한 한 용병이 가족에게 썼다는 편지에서 그 답을 얻는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신용을 잃으면 후손들은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약을 지키기로 했다' 스위스 시계가 세계 최고 명품이 된 이유로 두 가지를 드는데, 그들의 제조기술과 신뢰다. 스위스의 격을 높이는 '신뢰'의 배경에는 그같이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다. 요들은 어떤가. ('요들송'하면 스위스 현지에서 못 알아듣는다. '요들'이 맞다) 수려한 알프스 초원을 배경으로 '요드레이~ 요드레이~' 하는, 독특한 발성의 스위스 민요. 전통의상 드린딜을 입은 여성들과 레더호젠 입은 남성들이 손에 손잡고 춤춰야 할 것 같은 이 신나고 재미난 노래는 사실, 높은 산 깊은 골짜기에서 홀로 양치던 목동이 먼 산의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였다. 늑대같은 위험한 짐승의 출현 등 갈급한 신호를 보낼 때, 홀로 산을 지키다 외로움에 못이겨 먼 산의 누군가를 부를 때 내던, 고독과 공포에서 나온 외침이었다. 퐁듀 맛처럼, 요들도 역사를 알고 나면 다르게 다가온다. 깊고 다채롭다. 그 맛을, 요들의 대가, 독일의 프란츨 랑(Franzl Lang)이 목소리로 느껴보시길.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유럽-아시아 대륙의 끝에 달린 반도지역이라 예부터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외침을 숱하게 받은 곳이지만 상대적으로 대륙과 해양의 문화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위치다. 역사적으로도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국가들의 진출 무대이자 각축장이었고 또 두 세력의 완충 역할과 중재 화합의 장이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한반도는 때로는 위험하고 때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지켜왔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은 남쪽의 영토를 섬 아닌 섬나라로 만들어 놓아 버렸다. 우리가 중국대륙이나 러시아대륙을 가려면 일본과 똑같이 비행기나 배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세가 분단의 결과였다. 남북은 80여 년 가까운 세월을 대립과 반목으로 보내다 보니 때로는 우리가 대륙국가이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북쪽의 자원, 인력이 남쪽의 자본, 기술력과 결합된다면 엄청난 시너지가 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우리의 철도가 연결되는 꿈을 꾸고 있다. 이 구상은 당대의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세대의 희망과 의지 그리고 대륙진출의 열정을 몇 배로 올려줄 것이기에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대륙국가의 꿈이다. 아세안 정상회의와 G20 회의를 통해 윤석열 정부는 그토록 원했던 한미, 한일 그리고 한중 정상회담을 이루었다. 대통령실은 외교적 성과를 자찬하기 바쁘지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매우 위험한 정상회담이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도 독자성을 주장하며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에 앞장서는 한국은 완벽하게 미국과 일본의 안보적 하위체계로 편입되는 모습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해상 진출을 봉쇄하기 위하여 인도양과 태평양에 벨트를 형성해 해양국가들 간의 군사안보동맹을 강화한다는 인태전략은 원래 일본의 아베 전 수상의 구상이었다. 오바마는 매우 위험한 전략이라며 거절했지만, 트럼프는 대중국 견제로 이것보다 좋은 카드가 없다며 수용했고, 바이든 역시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정작 인도를 포함한 아세안 국가들 대부분은 수용하기를 꺼리는 정책임에도 우리가 신나서 총대를 멘 형세는 앞으로 해양국가들의 척후병 내지는 돌격대를 자원하는 셈이다. 대륙국가의 해양진출을 군사적으로 억제하는 데 앞장서면 그들로부터 역으로 우리의 대륙진출이 봉쇄된다는 것을 지명하다. 대륙을 향하고자 하는 우리 청년 세대의 꿈도 함께 무너지는 것이다. 이미 우크라이나에 미국을 통한 포탄 10만 발이 전달된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대표를 앞에 놓고 국제법 위반이라고 호통치는 윤 대통령.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경제파트너이자 공동 이슈가 많은 중국.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서 군사적 위험까지를 자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직 대륙국가의 꿈을 버릴 수 없는데 이제 대한민국은 해양국가임을 선언하는 것인가. 한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과의 악수를 위해 해맑게 웃으며 다가가는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이 내용과 후과(後果)를 알고는 있는지 의심스럽다. 순간 황당하다는 듯한 시진핑의 멋쩍은 표정이 오래 각인된다.
요사이 우리나라를 보면, 감정이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는 것 같다. 그것도 “완전히” 지배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성직자가 입에 담지도 못할 언어를 퍼붓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직자마저 증오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균열이 얼마나 깊고 심각한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신과 다른 견해, 다른 이념적 지향을 가진 이들을 증오하는 것이 정의의 구현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정치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과정은 아니다. 정치는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수단도 아니다. 정치는 권력적 현상일 뿐이다. 정치인들이 정의를 말하고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는 것은, 권력을 잡기 위함이다. 권력을 잡으려면 선거에서 이겨야 하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우리 부모님은 툭하면 싸우셨다. 다정한 대화는 지리멸렬한 싸움으로 끝났다. 시시비비는 폭언이 되고 폭언은 폭력이 되었다. 그 광경을 일상처럼 지켜보던 어린 날들, 너는 내게 유일한 친구이자 놀이였다.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나는 언성이 높아지면 너의 세계로 숨바꼭질하듯 숨곤 했다. 거기서는 뭐든 할 수 있었다. 네 뒤에 숨어 현실의 고통을 이리저리 피했다. 수 년 후 부모님은 갈라서기로 했다. 그러자 이제는 누가 아이들을 키울 지로 다투기 시작했다. 양육권을 서로 가지려는 아름다운 싸움 따윈 없었다. 이혼 소송 기간 아빠와 엄마의 고향을 짐짝처럼 오갔다. 도시에서 어촌, 농촌으로 또래들과 친해질 새 없이 전학을 다녔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버스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가야 하는 단조롭고 지루한 세상을 네게 기대어 버텼다. 장난감도 딱히 없던 시절 나는 사물에 너를 입혀 놀았다. 쓰임새 없는 막대기도 너는 왕자와 공주로 변신시켜 로맨스 가득한 세계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시외버스로 장거리 이동을 할 때면 차 창 밖 굽이굽이 끝없는 산들을 너는 거대한 무덤이라 했다. 그러면 정말 거인이 긴 잠에서 벌떡 깨어나 저벅 저벅 걸어오는 것 같아 긴장감에 숨죽였다. 어떤 겨울날 슬픔에 젖어 울고 있을 때 너는 고개 들어 밤하늘 별을 보라고 했다.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슈퍼맨-오리온이었다. 내가 널 지켜줄게. 내게 말 건네는 것 같았다. 을씨년스러운 겨울 오리온이 있으면 무섭지 않았다. 어두운 밤길도 씩씩하게 걸을 수 있었다. 너는 일종의 생존방식이기도 했다. 자라면서 현실에서 부딪히는 벽만큼 고통도 커졌다. 악당 같은 이가 호되게 꾸짖어도 네가 있어 속상하지 않았다. 돌아서 그가 문턱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장면을 떠올리며 피식 웃고 말면 그뿐이었다. 악담을 퍼붓는 이가 있어도 다가오는 말들이 먼지처럼 흩어지는 이미지를 그리면 그걸로 됐다. 너를 쓸모없다 불온하다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너로 인해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존재와 인식의 세계를 넓히며 내 호기심과 함께 너는 “사회적 상상력想像力”으로 변해갔다. 너는 나 중심에서 벗어나 타인의 입장에 서보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일러주었다. 타인의 삶과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며 공감과 이해를 배웠다. 서로가 연결되어 상생하는 삶의 기쁨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너를 부여잡고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일들을 현실에서 이루고자 했다. 감성이 더해지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생기면서 꿈꾸는 대로 현실을 만들어 가려 애썼다. 너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었고 나를 이끌어 경계를 넘나들었다. 너를 만나는 동안 사유의 깊이도 더해져 스스로 짊어지던 짐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사회가 그려놓은 인간상에서도 해방되었다. 주어진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 끝없이 현실 너머 세계를 그렸다. 너를 잃은 채 성장했더라면 나는 주어진 조건에서만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밋밋하고 따분한 어른이 되었을 거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은 너를 만난 일이었다. 상상력想像力, 너로 인해 나는 삶을 붙들고 최선을 다했다.
선은, 받는 자에게 필요한 정도나 베푸는 자의 희생의 정도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성립되는 신과의 합일의 정도에 의해서만 헤아릴 수 있다. 삶은 반드시 선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좋은 삶만이 선하고 행복하다. (세네카)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선보다 자신이 입을 피해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선은 금방 잊혀지지만, 모욕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세네카) 우리가 대가를 기대하면서 의무를 행할 때, 그것은 선이 아니라 기만에 찬 선의 모형, 선의 유사품이다. (키케로) 비난과 불명예가 거꾸로 너를 덮치지 않도록 남을 비방하지 말라. 악령은 앞에서 덤벼들지만 비방은 언제나 뒤에서 몰래 덮친다. 분노에 몸을 맡기지 말라 분노에 몸을 맡긴 사람은 자신이 할 일을 잊고 자신의 선행을 놓치기 마련이다. 근면하고 과묵하며, 자신의 노동으로 살고, 자기가 생산한 것 중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저축하라. 그러한 습관은 네 행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어리석은 자와는 시비를 따지지 말라. 악인한테는 돈을 빌리지 말라. 비방하기 좋아하는 자와는 함께 일하지 말라. (동양 금언) 하나의 선행을 다음 선행으로 연결시켜서 그 사이에 틈새가 전혀 없도록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행복한 생활이라고 나는 부르고 싶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우리가 진심으로 선을 실천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신한테서 나가 그 사람 속에서 살 때이다. ‘씨ᄋᆞᆯ은 친한다. 사랑한다. 혹은 새롭게 한다’ 함은 건전한 사회정신 혹은 국민정신을 세움이다. 아무도 제 인격을 온전히 이루고 혼을 기르는 데 역사적 사회를 떠나 외톨이로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 내가 내 책임을 다했다 하는 종은 충성된 종이 아니요, 내 믿음이 옳다 하는 믿음은 구원 얻는 믿음이 아니다. 내가 믿음 있다 해도 믿음 아니요, 믿음 없노라 해도 믿음 아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믿음은 이런 믿음일 것이다. (함석헌)/ 주요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플레이션 정점론 신호가 잇따라 나오면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 속도조절론과 경기 연착륙 기대감이 감돌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동기 대비 8.0% 올라 전월(8.4%)보다 상승률이 0.4%p 하락했다. 전년 동월 대비 PPI는 올 3월 11.7% 급등해 역대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후 상승 폭이 꾸준히 완화하고 있다. 앞서 발표된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7%대로 하향 진입한 데 이은 이같은 PPI 둔화로 인플레이션이 꼭지점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증시를 비롯해 한국 증시가 꿈틀거리고 있고 한때 1500원대로 질주할 것 같은 원-달러 환율도 지금은 1300원대로 급락한 이후 횡보세여서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다소나마 안도감을 갖게 하고 있다. 그..
날씨가 점차 추워지면서 막바지 주말 산행을 즐기러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등산을 하면 심폐기능 향상과 하체 근력과 지구력을 강화해 줄 뿐만 아니라, 주중에 회사 업무로 인한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데도 도움을 많이 준다. 하지만 바쁜 업무로 한동안 운동을 하지 못하여 굳어져있던 몸을 갑자기 무리해서 쓰게 되면서 등산 후 무릎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매년 무릎관절 통증으로 병원 진료를 받는 환자는 겨울 전후에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등산을 하면 평지보다 체중의 8배 정도의 하중이 무릎에 실리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산행을 하게 되면 오르내리는 것을 반복하게 되면서 무릎 관절의 연골과 인대가 손상될 수 있다. 등산 후에 무릎 앞쪽에 통증이 느껴질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으로 대퇴슬개관절염, 대퇴사두근염, 슬개건염 등이 있으며 이렇게 무릎 앞쪽 관절인 대퇴슬개관절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게 발생하고 있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무릎 통증이 나타나면 우선 움직이는 것을 최소화하며, 휴식과 무릎 주변을 냉찜질을 해주는 것이 좋고, 혹시 붓거나 염증 증상이 동반된다면 붕대로 무릎 주변을 압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통증은 보통 3일 정도 경과되면 조금씩 호전된다. 하지만 그 후에도 통증이 지속된다면, 병원을 내원하여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양주 에스엘서울병원 김도훈 원장은 “등산 시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대퇴사두근 근력 강화 운동을 꾸준히 하고, 등산 전에는 반드시 충분한 스트레칭을 한 후에 올라가야 하며, 또 운행 시 스틱을 이용해 올바른 11자 걸음으로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등산을 하는 것이 좋다”며 “등산 초보자라면 너무 가파르거나 긴 코스는 오르지 않는 것이 좋으며, 본인에게 맞는 가벼운 코스를 선택하여 소요시간, 휴식장소 등 정보를 미리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김 원장은 “등산 중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관절에 손상을 입었을 때뿐 아니라, 아무 일 없이 등산을 즐긴 후에 지속적인 무릎 통증이 느껴진다면 조속히 정형외과를 내원하에 이에 대한 진단을 받고, 적절한 처치로 증상이 더욱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