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있을 국민의힘 전당대회 룰이 결정됐다. 지금까지의 국민의힘 당헌 당규는, 당원 투표 70%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 30%로 당 대표를 선출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그런데 이번 전당대회 룰 변경으로, 100% 당원 투표로만 당 대표를 선출하게 됐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당원 투표 90%에 여론조사 10%의 비율로 바꾸자고 했다가, 결국 당원 투표만으로 당 대표를 선출하게 된 것이다. 당원 투표로만 당 대표를 선출하자고 주장한 측의 논리는 이렇다. 첫째, 당원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당원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둘째, 현재 당원 수가 80만 명까지 늘었기 때문에, 과거 20만 당원 시대보다는 당원 투표만 반영하더라도 훨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 셋째, 여론조사의 비율을 늘릴수록 역선택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등이 당원 투표만으로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다. 당원도 4배 가까이 증가했고, 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논리도 설득력은 있다. 그런데 역선택 가능성 때문에 당원 투표만으로 당 대표를 선출하자는 논리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여론조사에 역선택이 혼재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부인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선거에 출마할 당의 후보를 뽑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역선택의 가능성보다는,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역선택이 나타날 가능성은 훨씬 적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선거에서는, 대적하기 수월한 사람이 상대측의 후보가 되길 원해서 역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지만, 상대 당의 대표가 누가 돼야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게 유리한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당원 투표로만 당 대표를 선출할 경우에는, 전당대회의 흥행이 실패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보더라도 그렇다. 이재명 대표를 선출했을 당시, 컨벤션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이재명 당시 후보가 워낙 압도적으로 권역별 투표에서 승리를 이어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론조사가 10% 정도만 반영됐기 때문에, 역전극 같은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국민적 관심을 끌기 힘들었다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당대회의 흥행을 고려하면, 여론조사 비율을 축소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여론조사 비율을 없애는 것이 긍정적이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정당은 대통령실과는 다르게, 여론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야만 선거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당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는 여론의 호응을 얻는 인물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여론조사가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일정 비율을 반영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의 전대 룰 변경 결정을 두고, 뭐라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 정당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결정이 현명한 결정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하시나요./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가수 장사익이 불러서 심금을 울린 「꽃구경」이라는 노래예요. 버려지는 순간까지 자식 걱정만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물을 삼키기 힘든 이 노래 가사는 김형영 시인의 「따뜻한 봄날」이라는 제목의 시랍니다. 고려장(高麗葬) 설화가 소재이지요. 고려장은 고려 시대에 나이 든 부모를 다른 곳에 버려두고 오던 풍습이 있었다는 설화이자 도시 전설이에요. 그런데 연구자들이, 워낙 굶주렸던 시대에 벌어진 단발적인 사건일지는 몰라도 ‘고려장 풍습’ 얘기는 정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네요. 더욱이 유사한 설화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각양각색 전해온다는군요. 먹고살기..
경기도 지역 청년 기초수급자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청년의 삶은 나라와 지역사회의 앞날을 결정하는 지표다.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국가의 지원에 생계를 의존하여 일상을 영위한다는 것은 암담한 현실을 상징한다. 당장 불황이 해소될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 청년 기초수급자 증가세를 방관하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장기적 안목의 ‘새로운 비전’이 절실하다. 기초수급자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기초 생활비를 지급받는 사람을 말한다. 소득 인정액이 최저 생계비 이하이고 부양자가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이에 속한다. 본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 내 20‧30대 청년 기초생활수급자는 최근 5년 사이에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통계..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은 2017년 6월 2일 선을 보인 후 2018년 12월 14일 막을 내린 시즌 3까지 6%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알쓸신잡은 지난 12월 2일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알쓸인잡)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알아두어서 쓸데없는 앎은 없다. 속임수나 가짜뉴스도 평소에 넓게 지식을 축적해두면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사실 공부는 꼭 쓸 데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서, 나의 만족, 자아의 발전을 위해 습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적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원시인류가 말을 하게 되고, 따라서 뇌가 발달하면서 조리 있게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해온 원동력이었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다. 이때 흔히 안다고 하는 것(knowledge)은 라틴어로 스키엔티아(sciéntĭa), 즉 지식이었다. 내가 아는 것은 참인가? 단순히 안다는 것과 지식은 다르다. 경험적 실증적으로 검증된 지식이었다. 그래서 브로노프스키는 “과학이라는 말은 지식에 대한 라틴어일 따름이다.” 라고 했던 것이다. 알쓸인잡에서 다루는 내용에는 단순한 앎도 있고, 검증된 과학지식도 있다. 알쓸인잡은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의 모든 인간을 탐구하며 나조차 알지 못했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한다. ‘나만의 영화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인간’을 주제로 한 1회에서는 홍길동전의 허균, 미얀마 출신의 NASA 연구원으로 화성에 헬리콥터를 띄운 미미 아웅, 그리고 진화론의 찰스 다윈을 다루었다. 영화감독 장하준과 BTS의 RM(김남준)이 공동 MC를 맡았고, 김영하 작가와 법의학자 이호 교수,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그리고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인문예술과 과학의 콜라보, 요즘 말로 하면 지식의 융합이다. ‘우리는 어떤 인간을 사랑할까?’를 다룬 2회에서 심채경 박사는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만족한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탐구는 고래로 철학과 예술의 제일가는 사유의 주제였다. 근대 이후 철학이 인문사회분야와 자연과학으로 갈라진 다음에는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었다. 두 문화의 반목은 20세기 말 ‘과학전쟁’으로까지 비화되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접점의 단초를 알쓸인잡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형이상학의 사변철학은 물리학과 천문학, 진화론을 만났을 때라야 비로소 인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고갱이 딸의 죽음에 비통해하면서 그린 작품,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 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다윈의 『종의 기원』(1859)에 나와 있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이라고 했지만, 실제 내용은 보석 같은 지식들로 채워져 있다.
행정 부재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형태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160명 가까운 희생의 사회 참사는 유족은 물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특히 참사를 흔적 없이 지워버리려는 정부의 의도적 참사 대처 방식은 사람들의 분노를 더욱 유발했다. 그런 방침은 참사 이튿날인 10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결정이었다. 희생자들에 대한 49재 시민 추모제가 지난 주 이태원역 앞에서 있었다. 정부의 방해 공작과 무책임한 변명 속에 분노한 국민 모두, 유족의 슬픔과 함께 하며 참사 희생자를 기리고, 다시는 이와 같은 참사가 없기를 바라는 행사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굳이 그날 살던 아파트 주민들에게 감사 떡을 돌리고, 특정 행사에 참석해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환히 웃는 모습을 연출했다. 세상을 향해 눈물 흘리는 예수를 십자가에 올린 로마 권력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법대로’만이 진리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정치 검찰에 의한 검찰독재국이 되어, 이제 ‘민주’가 아닌 ‘법주공화국’이 되었다. 사람을 노예로 생각하며 법을 주인으로 모시는 나라다. 법주공화국에선 정치 검찰에 의한 정치 폭력이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성직자로서 성공회와 가톨릭 신부가 그의 퇴진을 상징하는 비행기 추락 그림을 공유했으나, 각각의 종단으로부터 면직과 정직 조치를 당했다. 이는 법주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피상적 인식 속에 진정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렸음을 말해준다. 종교와 정치의 공통 기반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함께 함’이다. 기독교에서 ‘이웃을 자신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나 불교의 ‘자타불이’ 및 ‘동체대비’가 다르지 않고, 정치 역시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 아픔과 함께 한다. 외형과 방식은 다르지만 그 뜻과 지향점에서 종교와 정치가 닮음꼴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한 이가 그런 의식 없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면, 그런 위선자들의 정치 폭력으로 인해 무고한 이들이 참사로 희생되는 상황에서 종교는 침묵하고 외면해야 하는가? 종교에서 사회에 대한 무개입이나 ‘중립’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박제화된 종교의 허황된 주장이다. ‘중도’ 역시 치우침을 경계하는 것이지 중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을 피폐케 하는 폭력에 저항하며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불교적 수행이고, 기독교적 소망이며, 고도(Godot)를 기다리는 자세이자 깨어 있는 이들의 모습이다. 정치검찰의 정치 폭력에 대항하여 거리에 나서거나 자신의 위치에서 당당히 맞서는 것이 종교의 본질인 사랑을 위한 우리 각자의 실천이자, 생명 존중이다. 진영을 떠나 참사와 유족 슬픔을 이용한 정치적 접근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 그가 보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물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어쨌든 당신은 국정 책임자 아닌가? 과연 그대는 누구인가? 역대 현역 대통령은 그래도 국민 마음을 생각해 '척'이라도 했다. 그 흉악한 전두환조차.
이천이십이 년, 한 해의 시간이 노루꼬리만큼 남았다. 누가 세월의 백지에 365개의 선을 그어 하루, 한 주, 한 달, 한 해의 캘린더를 만들어 365일 읽어가며 살도록 하였는가. 어느 의사가 사람의 열을 재면서 36.5 ℃의 체온을 유지해야 정상이라고 하였는가, 따라서 365와 36.5라는 숫자의 의미에는 어떤 깊은 뜻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 밤은 너무 밝다>>의 저자인 아테네 ‘크롭베네슈’는 무수한 인공조명 때문에 식물도, 그 식물의 수분을 도와주는 곤충도, 밤에 이동하는 철새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혼란에 빠져 본래의 생체리듬을 잃어버린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빛 공해 노출 면적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다고 한다. 늦게 잠자고 깊이 잠들지 못하는 현상에 빛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일은 각박한..
1.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를 빌리자면, 성(性)에 대한 관심은 우월적 종족 보존을 위한 DNA의 절대 명령입니다. 거부할 수도 뿌리칠 수도 없는 유혹이지요. 사랑과 섹스 이야기가 세계 각국의 신화와 전설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폼페이(Pompeii)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근처에서 융성했던 환락도시였습니다. 그런데 A.D. 79년 8월 24일 비극이 닥칩니다. 근처의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한 거지요. 거대한 용암과 유독 가스가 도시를 덮칩니다. 수만의 생명이 불길과 화산재 아래 묻혀버렸습니다. 이 도시는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졌다가, 1592년 밭을 갈던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됩니다. 본격적 유적 발굴은 1748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로마 전성기의 문화와 생활풍속이 기적처럼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요. 2018년 폼페이의 레지오 브이(Regio V) 유적지구에서 새로운 프레스코 벽화 하나가 발굴됩니다.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발견이었지요. 그리스 신화를 다룬 내용이었습니다. 천하의 난봉꾼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하여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를 유혹하는 이야기. 이때 레다가 임신을 해서 알을 낳게 되는데, 그 알에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절세 미녀 헬레나가 태어나게 됩니다. 2천 여 년을 훌쩍 뛰어넘어 모습을 드러낸 연인의 모습을 보세요(그림1) . 관능적 포즈로 의자에 걸터 앉은 레다의 다리 사이에 고개를 치켜든 백조가 애무 동작을 취하고 있습니다. 저절로 `눈길이 끌립니다. 다른 주제의 그림이었다면 흥미와 관심이 그토록 크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것이 섹스어필의 힘입니다. 광고에서도 성적 소구(sex appeal)가 빈번히 사용됩니다. 주로 섹시한 인간의 몸이나 포즈, 상징물 등을 보여주고 소비자 반응을 유발시키는 거지요. 하지만 이 표현 방식은 부정적 평가가 적지 않습니다. 미디어 학자 윌슨 브라이언 키는 섹스어필 광고가 ‘성적대상화를 통해 인간의 잠재의식을 자극하는’저열한 설득기법이라 직격합니다. 무엇보다 광고 효과 측면에서 브랜드 기억도가 낮거나 구매의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가 빈번히 제출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주의를 성적 요소에만 집중시킴으로써 광고 제품에 대한 인지와 태도변화를 가로막는다는 겁니다. 이른바 방해가설(distraction hypothesis)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에서 섹스어필이 즐겨 등장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이보다 더 강렬하고 집중적인 주목을 일으키는 무기가 없기 때문이지요. 광고가 태동하고 발전한 서구에서는 오랫동안 광고표현이 기독교적 도덕률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20세기가 열리기 전까지 섹스어필 광고가 암묵적으로 금기시된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그 같은 한계를 뚫고 뚜렷한 목적의식 아래 창조된 최초의 성적 소구가 있습니다. 역사상 넘버원 여성 카피라이터로 손꼽히는 헬렌 렌스다운 레조(Helen Lansdowne Lesor)의 우드버리(Woodbury) 비누 광고였습니다. 1910년 탄생한 이 작품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알론조 킴볼(Alonzo Kimball)이 그렸습니다. 옅은 갈색 머리에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젊은 남자의 반쯤 가려진 얼굴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헤드라인은 더욱 묘합니다. “만지고 싶은 피부”. 이어지는 카피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품 구입동기를 자극합니다. "당신도 다음 순서에 따라 (우드버리)를 사용하기만 하면 그녀의 매력을 당신 걸로 만들 수 있어요(You, too, have it's charm if you will begin the following treatment tonight)“. 문장의 백미는 쉼표 다음에 들어간 ‘당신도(You, too)’입니다. 어떤 여성이라도 우드버리 비누를 사용하기만 하면 광고에 나온 여인처럼 남자를 푹 빠져들게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인 거지요.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명확한 성적 암시가 담겨있습니다. 멋진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싶은 아가씨치고 누가 이런 유혹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이 광고는 동일한 헤드라인에 비주얼만 살짝 바꿔서 계속 반복 집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드버리 비누는 8년 만에 매출액이 무려 10배나 늘어나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3. 섹스어필이 광고에 체계적으로 등장한 것은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부터입니다. 주인공은 엘리엇 화이트 스프링스(Elliott White Springs)였습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지식인이자 제 1차 세계 대전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전쟁영웅이었지요. 전쟁이 종료되자 스프링스는 오랜 가업이었던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스프링스 면직물 회사> 경영자로 복귀합니다. 이 회사는 엘리엇의 선대 시절 미완성 직물인 회색 면포(grey cloth)를 만드는 작은 규모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업이 확장되어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즈음에는 미국 3위의 섬유기업으로 부상합니다. 표백 가공된 시트 천은 물론 여성 언더웨어 등의 다양한 면제품을 제조 판매했지요. 스프링스는 창조적 재능이 번뜩이는 인물이었습니다. 광고 카피와 비주얼 아이디어를 대행사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떠맡을 정도였지요. 전후 호황 국면이 이어지고 제품 수요가 급증하자 그는 과감한 도전을 결심합니다. 자사의 면제품 광고에 섹시한 여성을 등장시킨 거지요. 1948년 첫 집행된 이 광고는 세상에 파문을 던집니다. 남성 파트너와 춤을 추다가 턴(turn)을 하는 금발 미녀. 그녀의 스커트가 위쪽으로 한껏 솟구친 것이 보이시지요? 팬티를 입은 하체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겁니다. 수준급 일러스트레이션과 우아한 레이아웃이 노골성을 완화시켜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자극적입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그러한데, 74년 전에는 보는 이의 심장이 덜컥할 정도였을 겁니다. 스프링스는 섹스어필 광고를 몇 년에 걸쳐 구상했다 합니다. 문제는 당대의 미국 사회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보수적 기독교 윤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그가 만든 광고작품을 실어주겠다는 매체 자체가 없었습니다. 표현 수위가 너무 높다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스프링스가 쓴 원래 카피와 비주얼의 대폭 수정을 요구하거나 게재 자체를 아예 거절했던 겁니다. 그의 시도는 1948년에 가서야 성공하게 됩니다. 광고전문지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가 스프링스의 광고를 처음으로 받아준 겁니다. 이듬해 잡지 <리버티 앤드 룩(Liverty and Look)>에 두 번째 광고를 게재했을 때 마침내 폭풍 같은 반응이 일어납니다. 미국 전역에서 광고 복사본을 발송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한 거지요. 광고가 실린 잡지는 가두(街頭)에서 완판을 기록하고 판매부수가 18만부로 급상승합니다. 이 성공을 기점으로 세상의 편견을 정면으로 깨트리는 야심찬 도전이 시작됩니다. 10년에 걸친 섹스어필 캠페인이 착착 진행된 것이지요. 그 결과 스프링스 밀스는 브랜드 인지도와 매출액에서 동종 업계 최고를 기록하게 됩니다. 4. 섹스어필 광고가 완전히 꽃피어난 것은 1990년대였습니다. 수십 년 간 억눌렸던 에너지가 분출하듯 도발적 캠페인들이 연이어 발표됩니다. 배경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화된 클러터(clutter) 현상 때문입니다. 클러터란 매스미디어와 광고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수용자의 주의집중을 방해하는 메시지 혼잡상태를 말합니다. 출퇴근의 러시아워 때 좁은 차선으로 한꺼번에 차량이 몰리는 모습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한정된 소비자를 두고 주목을 이끌어내기 위한 어마 무시한 쟁탈전이 벌어진 거지요.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 주목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섹스어필 광고를 대거 소환시킨 겁니다. 이전 시기의 성적 소구는 당대의 규범적 가치기준을 과하게 넘어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90년대에 불어 닥친 광고 주목율 경쟁은 더 이상 그런 눈치 볼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전쟁 속에서 모든 금기가 파괴됩니다. 대표적 사례가 1995년의 캘빈클라인 진 광고입니다(그림 4). 금발의 틴에이저가 다리를 벌린 채 누워있습니다. 진 소재의 미니스커트 아래 흰 색 속옷이 살짝 드러나 보입니다. 여자 아이의 시선이 카메라 너머 독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네요. 심지어 왼 손가락으로 늘어뜨려진 금발을 잡고 입술로 빨고 있습니다. <플레이보이 잡지> 못잖은 수위입니다. TV광고와 연동되어 대대적으로 런칭된 이 캠페인이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지요.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이라는 강력한 비판을 했습니다. 가톨릭교회 등에서 격렬한 항의가 제기되었고 FBI가 아동포르노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벌일 정도로 파장이 커졌지요. 광고를 하나 더 보시지요. 원더브라(Wonderbra)입니다. 푸시 업 타입의 이 브래지어는 특수 와이어가 아래에서 위로 받쳐줘서 가슴을 더 커보이게 하는 특징이 있지요. 처음에 캐나다에서 발명되었지만 판매가 그리 활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이 광고를 통해 재런칭(re-launching)을 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됩니다. 1990년대를 풍미한 체코 출신의 슈퍼모델 에바 헤르지고바(Eva Herzigova)가 모델입니다. 매스미디어들은 이 광고를 ‘100퍼센트 관능 그 자체’라고 평가했습니다. 검정 색 브래지어와 망사 팬티만 걸친 반라의 모델, 그리고 “헬로 보이스(Hello Boys)”라는 유혹적 카피가 불러 일으킨 시너지 효과 때문이었지요. 2018년 발행된 광고 전문지 <캠페인(Campaign)>에서 지난 50년간 나온 최고의 광고 중 하나로 뽑힌 이 작품의 인기는 그야말로 선풍적이었습니다. 옥외광고로 처음 노출되었는데, 광고판을 보기 위해 멈춰선 차들 때문에 일대에 교통정체가 일어날 정도였으니까요. 5. 섹스어필의 전성기는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광고 메시지 혼잡현상을 극단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을 통해 주목과 관심을 획득하려는 필사적 노력이 경주되고 있지요. 날이 갈수록 섹스어필 광고의 충격성(impact)이 강해지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제 웬만한 자극에는 꿈쩍을 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또 하나의 광고가 등장합니다. 이브생로랑의 오피움(Opiunm) 향수 포스터입니다(그림 6). 당대 최고의 인기 모델 소피 달(Sophie Dahl). 그녀가 몸에 걸친 것은 로잇펠드(Roitfeld)가 디자인한 황금 액세서리와 끈으로 된 하이힐 뿐. 어두운 보라색 벨벳 위에서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 누워있는 모델의 무릎 위에 브랜드 로고가 살짝 올려져있습니다.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레이아웃입니다. 이 작품도 발표되자마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킵니다. 대중의 관음증적 흥미를 정면으로 자극한 거지요. 역사 상 가장 많은 논란을 야기한 광고 포스터란 평가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광고심의를 담당하는 영국 ASA(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를 향해 무려 948건의 공식항의가 접수되었습니다. 마침내 포스터의 게재 금지명령이 내려졌지요. 여성을 한낱 성적 도구로 삼고 여성성의 가치를 폄하하는 노골적 성차별 광고라는 비판 때문이었습니다. 게재는 금지되었지만 이 공격적 섹스어필 광고의 영향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확산됩니다. 심지어 순수 예술 분야에서 모방작이 나올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예를 들어 스웨덴 화가 세실리아 클레멘트손(Cecilia Ulfsdotter Klementsson)의 회화작품을 보시지요. 포스터에 등장한 모델을 남자로 바꾼 다음, 똑같은 포즈를 취한 그림을 그린 겁니다. 더욱 적나라하고 더욱 사실적으로. 21세기에는 미디어 플랫폼의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광고의 모습 자체가 바뀌는 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표현 방식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섹스어필 광고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제 생각에, 사랑과 성에 이끌리는 인간의 본능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소구방법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 봅니다. 오히려 보다 자극적이고 세련된 구조로 진화해 가지 않을까 합니다.
크로아티아를 가면 시내 곳곳 붉은 글씨로 ‘KRAVATA’라고 쓰인 간판을 만날 수 있다. 크로아티아의 수제 넥타이 판매점이다. 프랑스에서는 이 단어를 넥타이로 쓴다. 기원을 알면 재미있다. 17세기, 기독교 신·구교간 ‘30년 전쟁’(1618-1648)은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 등 대부분 유럽 국가가 참여한 국제전이었다. 프랑스 우방이었던 크로아티아는 파리로 파병을 한다. 파리 시민들은 크로아티아 병사들의 목에 맨 붉은 스카프를 보게 된다. 국왕 루이 14세도 스카프에 관심을 갖고 한 병사에게 정체를 물었다. 국왕의 질문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병사는 얼결에 ‘크라바트’라고 답한다. 크라바트는 ‘크로아티아의 군인’이라는 말이다. 병사는 답을 이렇게 했어야 했다. ‘우리 크로아티아에서는 남편과 아들이 전쟁에 나갈 때 목에 붉은 스카프를 매어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마귀를 쫓는다고 생각해 부적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무사귀환을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루이 14세의 눈에 그 붉은 스카프가 멋있게 보인 듯하다. 루이 14세는 ‘크라바트’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후 파리에서 유행하게 되는데 모두 이를 ‘크라바트’라 불렀다. 크라바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이 패션 소재로 쓰면서 크게 유행하게 됐는데 프랑스 혁명과 함께 수그러든다. 그러다 19세기 초, 영국 패션 디자이너 ‘보우 브러멜’의 ‘보우 타이(bow–tie)’ 일명, 나비넥타이가 인기를 끌면서 ‘넥타이’라는 이름으로 전 유럽에 퍼지게 된다. (이야기 나온 김에) 크라바트의 변주로 나온 오늘날의 길게 매는 넥타이를 ‘포 인 핸드(four-in-hand)로 부르는 설도 재미있다. 포 인 핸드는 ’네 마리 말이 마차 한 대를 끈다‘는 의미에서 나왔는데, 목에 Y자로 맨 넥타이가 ’마부가 말을 몰 때 쓴 Y자형 고삐와 닮은 데서 나왔다는 이야기다. 크로아티아의 넥타이 상점 ‘KRAVATA’의 간판 앞에서 재미난 역사를 떠올리면서 동시에 발칸반도 스타 ‘고란 브레고비치’를 떠올린 기억이 난다. 그레고비치를 알게 된 것은 그가 영화 음악을 담당한 고전 명작, ‘집시의 시간’(1989)을 보면서였다. 발칸반도를 무대로 한 집시들의 삶을 그린 영화로 1989년, 제42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 영화 속에 나온 ‘Ederlezi’를 얼마나 반복해 들었던지! 집시의 광기와 한이 내 몸에 불을 붙였다. 브레고비치는 보스니아 출생인데, 아버지는 크로아티아인, 어머니는 세르비아인이다.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 브레고비치. 그런데 궁금증이 인다. 왜 브레고비치는 아버지의 나라, 크로아티아의 상징인 넥타이를 절대 매지 않는 것일까? 공연에서도 수많은 홍보사진에서도 넥타이 맨 브레고비치를 본 적이 없다. 넥타이 매지 않는 그의 패션에서 혹, 발칸의 피 묻은 역사를 읽어낼 수 있을까.
수원은 초기삼국시대의 벼농사 흔적이 발견됐고 조선 정조 대 국영농장이 시범운영 된 곳이다. 정조는 1800년 6월 1일 “내가 화성(華城)을 건설한 진짜 이유는 조선의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새로운 농법을 실험하고, 이를 성공시키고, 성공시킨 농법을 조선 전체에 보급하여 모든 백성이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했다. 수원이 농업혁신지역으로 선택됐다. 서호(축만제)와 서둔이 그때 조성됐다. 서호는 유엔 국제관개배수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정도로 세계 농업사에 획기적인 농업유산이다. 농촌진흥청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수원에 자리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제 감정기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원은 우리나라 ‘농업의 성지’였다. 수원의 농촌진흥청은 우리나라 농업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농업의 성장을 견인..
‘빈곤(貧困)포르노’라는 반응도 나왔다. 미술의 한 장르(갈래)인 피에타상(像)의 원용(援用)이라는 해석도 있어 이채롭다. 대통령실이 제공한 ‘그 사진’에 대해 세상 관심이 크다.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심장병 아동을 안고 있다. 언론을 많이 타서 익숙해진 이 사진, 아픈 아이를 보살피는 그녀의 이미지에 대한 세상의 눈길이 동정적(同情的)이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님을 느끼게 한다. 명암(明暗)과 구도(構圖)가 김 여사에게 포커스(초점)를 맞추고 있다는 (학구적인) 이미지 분석 또는 감상평도 주목을 받는다. 빈곤포르노는 포르노 기법으로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그려 ‘어떤 목적’을 이루려는 시도다.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난민을 구하자는 국제적인 TV 캠페인에도 그런 지적이 가해진다. 포르노건 (예술)작품이건 세상이 그로 인해 색다른 느낌을 가졌다는 것은 작가나 제작자의 의도와 숙련도 때문이겠다. 이를테면, 관객이 색정(色情)이나 감동을 느끼게 하는 ‘힘’이다. 이 힘이 감수성을 승화시키거나, 장삿속 같은 (숨겨진) 의도를 구현하게 하는 것이리라. 그 (심장병 아동과 찍은) 사진은 전형적인 모자상(母子像) 이미지다. 상당한 수준의 기획과 기법이 보인다. 기독교도나 서양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은 성모자상(聖母子像)을 연상할 터다. 피에타는 성화(聖畫·아이콘 icon)의 대표적 장르다. 수난(受難)의 예수를 마리아가 보듬은 그림으로 수많은 그림과 조각(彫刻)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서양 문화의 심벌 중 하나다. 피에타는 마리아와 예수 훨씬 이전, 이집트 신화의 걸출한 여신(女神) 이시스가 갓난 아들 호루스 신(神)을 어르며 젖먹이는 조각상 이미지를 이어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동아시아문명에도 이런 모자상 이미지 또렷하다. ‘좋다’는 뜻 好(호) 글자가 그것이다. 자비롭고 아름다운 말(이미지)이다. 그런데 한자(漢字)가 한국문화에서 왕따 당하며 이 기꺼운 뜻을 잃었다. 문자 속 좀 안다는 이들도 이 말을 음담패설(淫談悖說)의 주제로 삼는다. 여자[女]와 남자[子]가 ‘붙었다’고 킥킥댄다. 그래서 ‘좋다’는 말이란다. 아니다. 엄마와 아들 그림이다. 고대 갑골문 살필 필요도 없다. 보라, 여(女)에 젖꼭지 두 점 찍은 그림(글자)이 어머니 모(母)다. 자(子)는 ‘남자’아닌 아들이다. 어머니(母)와 아들(子)를 합친, 好와 같은 뜻과 발음의 문자[㝀]도 있다. 엄마가 꼭지를 물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그림, 모두의 아련한 꿈이자 안식처(安息處)다. 그래서 ‘좋아한다’ ‘좋다’는 뜻이(됐)다. 동아시아 문명이 빚은 문자의 인본주의다. ‘好’를 포르노로 착각하는 오해나 빈곤포르노의 (숨겨진) 어떤 의도, 본디를 망실(忘失)한 채 사는 현대인들의 패륜적(悖倫的) 생각의 습성 아닌지. 자식을 살피는 모성을 ‘(이용의) 수단’으로 삼는 것, 불결하고 불쾌하다. 우리는 ‘어머니’를 되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