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된 땅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은 서럽다. 78년이라는 너무나 긴 세월 동안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지도, 방문할 수도, 서신도 주고 받을 수 없는, 전 세계의 유일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남북당국자 회담 끝에 나온 합의 이후 극소수 인원만이 몇차례 상호방문을 했을 뿐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은 버려진 채 분단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현재 북한과의 접촉은 철저히 차단돼 있다. 정부의 허락 없이는 서신 교환이나 만남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 국가보안법(보안법)이 엄존하는 현 상황에서는 통신-회합 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만과 중국도 2008년 ‘3통 조처’로 이산가족이 본토 방문과 서신 교환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보안법은 1948년 과거 독립운동을 탄압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제의 치안유지법과 보안법을 그대로 답습해 제정된 법이다. 이 법은 숱한 남용 사례를 남겼다.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이승만 정부 아래서 농림부 장관을 지냈던, 이승만의 최대 정적 조봉암마저 이 법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는 이른바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돼 1심 무죄 선고를 받고도 1958년 2심과 대법원의 유죄 판결을 거쳐 죽임을 당했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2차 사건)도 똑같은 사례이다. 무고한 인사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이듬해 4월8일은 지금껏 ‘사법살인의 날’로 기록되고 있다. 이들은 앞서 1964년에 대학생들과 함께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을 뿐인데, 배후인 ‘인혁당 간첩’(이른바 1차사건)으로 몰려 곤욕을 치렀던 현직교사들이었다. 당시 담당검사 3명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장기간 고문수사를 했던 사실이 밝혀지자 “양심상 기소할 수 없다”며 기소를 거부하기도 했다. 악몽이 1974년에 재연된 셈이다. 이들 인사는 10월 유신 이후 저항운동을 벌인 대학생들의 배후로 또 다시 조작된 것이다. 고문이 얼마나 혹독했던지 한 사람은 그 후유증으로 옥사했고 다른 2명은 고문 흔적을 없애기 위해 시신이 화장 처리됐다. 억울한 누명은 재심 끝에 1차 사건 관련자 13명 전원이 2013년 무죄 또는 공소 기각조처로, 2차 8명 모두에게는 2007년 무죄가 선고됨으로써 풀렸다. 민주화 또는 통일 운동가뿐 아니라 납북 어부들을 비롯한 무고한 시민들에게도 보안법은 무차별로 화를 입혔다. 보안법은 미국 국무부 장관이 1993년 인권보고서에서 밝혔듯이 남용될 우려가 큰 법이다. 국제사면위원회도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유엔이 정한 표현의 자유에 관한 규약을 위반하므로 긴급히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4년에는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도 보안법 폐지를 공식 권고한 바 있다. 보안법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헌법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헌법에 반하는 법률이다. 이 법이 멀쩡히 살아 있는 한 이 땅의 민주주의는 온전해지기 어렵다. 남북 교류나 협력을 통한 민족의 공존과 번영도 불가능하다. 민족의 평화 만들기는 보안법 개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이산가족의 만남부터 제한 없이 허용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분단을 극복하는 첫 걸음은 보안법 개폐이다.
정부는 작년 12월 28일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였다. 자유, 평화, 번영의 비전을 선포하고, 그 협력원칙으로서 포용, 신뢰, 호혜를 내세웠다. 그리고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인태 지역 질서 구축, 비확산·대테러 협력 강화, 기후변화·에너지 안보 관련 역내 협력 주도, 상호 이해와 교류 증진 등을 포함한 9대 중점 추진과제를 선정하였다.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은 대체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용하고 있다. 다만 미국형이 중국의 견제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하여 한국형은 “보다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관계의 구현”을 추구한다. 한중의 긴밀한 경제적 상호의존관계를 고려한 국익 우선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지지를 표명하였지만, 구체적 정책 실행과정에서 계속 한국을 유인 또는 압박할 것이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적합한 행동 전략은 무엇인가? 자유무역의 국제규범과 규칙에 근거한 헤징 전략이 최선이다. 예를 들면 국제규범과 규칙에 따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는 동시에 중국, 일본 등과 함께 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F)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도, 인도네시아 등 제3의 중립지대에 미래 투자를 분산 배분하는 우회 전략을 펴는 것이다.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의 대중국 정책은 전 정부의 정책과 큰 틀에서 차이가 없으나 그것을 명문화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내 정책에 대하여는 다른 가치에 근거한 다른 정책으로 서로 대립할지라도 대외 정책에 있어서는 대체로 같은 목소리를 낸다. 2021년 발표한 바이든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도 그 서문에서 “냉전 종식 이후 ‘양당의 정부(administrations of both political parties)’는 이 지역에 대한 약속을 공유하였다.”라고 명확하게 표명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대외 정책을 지속하는 전통을 세운 바람직한 사례로 보고 싶다. 대북한 정책과 관련하여 협력의 지역적 범위에서 북한을 제외하고 ‘비확산·대테러 협력 강화’의 대상으로만 언급한 것은 ‘포용적’이지도 ‘담대’하지도 못한 조치로 보인다. 최소한 보건·기후 협력을 포함한 “상호 이해와 교류 증진”의 대상에 북한을 포함하였어야 한다. 또 아프리카와 유럽·중남미까지 포함하면서 중동을 포함하지 않은 것도 눈에 걸린다. 중동지역은 핵심 에너지 안보 대상 지역일 뿐만 아니라 올해 예상되는 심각한 경기 침체를 돌파하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매우 유망한 투자 및 수출 대상 지역으로도 거론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궁극적 목표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 또한 마찬가지여야 한다.
대장동 불길이 언론계로 번지고 있다. 언론인 출신의 김만배, 전직 언론인 남편 남욱 등 대장동 관련자들과 거액의 돈거래를 한 기자들이 속한 언론사가 공개됐다. 한겨레신문, 중앙일보, 한국일보다. 관련 기자들의 이름은 이미 언론계에 비밀이 아닐 정도로 회자되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손쉽게 기자 이름을 찾을 수 있다. 명품구두를 받았다는 채널A 기자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그들이 보도헀던 기사를 찾아내 교묘하게 편파보도 한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채널A 기자는 김만배와 머니투데이에서 같이 근무했던 2011년 5월 31일, 50억 클럽 멤버 곽상도 변호사를 공동 인터뷰 해 《저축은행 비리, 처벌 강화해야 발본색원》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곽상도는 완벽한 법조인으로 그려졌다. “검찰권은 국민을 대신해 수사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검찰이 돼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검찰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그의 말과 함께 더 이상의 찬사가 없을 정도다. 한국일보 기자는 지난해 10월 《30%에 갇힌 민주당》이란 칼럼에서 “대장동 수사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 턱밑까지 파고들었다.”며 “민주당 내부에서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고, 민주당발 정계개편설이 거론되고 있다.”고 소수의 목소리를 대세인 것처럼 인용했다. 한겨레 기자는 검찰 입장을 대변하는 칼럼으로 논란이 됐다. “거의 모든 정치인은 돈을 받는다. 돈을 받은 정치인은 처음 수사가 시작되면 거의 모두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한다. 검찰이 아무 증거 없이 수사하진 않았을 것이다”라며 검찰을 무오류 집단으로 묘사할 정도로 무리한 글도 썼다. 한겨레신문은 자사 기자가 김만배와 돈거래를 했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 날인 6일 인터넷판에 《독자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는 사고를 냈다. 2019년 간부 한 명이 ‘타사 기자’였던 김만배와 금전거래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김만배를 타사 기자로 언급했다. 부적절했다. 한겨레에 우호적인 인사들의 비판이 빗발쳤다. 결국 《대표이사·편집국장 사퇴를 알려드립니다》라는 사고를 10일자 1면에 실었다. 창간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다. 한국, 중앙, 채널A는 사과조차 없다. 이 정도가 우리 언론 수준이다. 윤리강령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전통언론이라며 출입처 기자단 만들어 형님놀이 하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조선일보는 이번 언론인 금전거래 사건을 연일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사설로도 다뤘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만 그 사설에서 중앙일보와 채널A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다른 편파다. 자사 기자가 연루되지 않아 보도에 적극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야 한다. 조선일보도 2016년 주필이 대우해양조선으로부터 2억원 상당의 접대를 받아 언론계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이번 사건은 처절한 자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 연루 언론사는 물론 언론단체도 나서야 한다. 윤리강령에서 출입처 시스템까지 총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죽어야 산다
요즘 인기를 끄는 아파트는 공원이 있는 ‘공세권’, 숲이 있는 ‘숲세권’,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이나 내가 있는 ‘수세권’이라고 한다. 주거지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쾌적성 등 자연환경의 중요도가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길고 긴 코로나 팬더믹을 겪으면서 주거환경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아파트 주변의 공세권, 숲세권, 수세권을 갖춘 데 더해 단지 내 제대로 된 조경 공원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은 ‘2025년 미래주택시장 트렌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들의 35%는 주거지 선택 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연이 주는 쾌적성’을 꼽았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2016년에 나온 것이니 이미 이전부터 교통(24%)이나 교육(11%)보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더 선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2021년 자사 어플리케이션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후 주거공간 선택 시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은 ‘쾌적성(공원, 녹지 주변)’이 31.6%로 가장 많았다. 분양시장에서는 공세권 숲세권 아파트가 우수한 분양성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연구원이 아파트 녹지를 녹색기반(그린인프라)으로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정부, 지자체, 민간이 협력체계를 구축해 지원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발간해 눈길을 끈다. 도시에 존재하는 도로, 철도, 교량 등이 회색기반(그레이 인프라)이라고 한다면 그린 인프라는 공원, 숲, 녹지 등 생태계 순환에 이바지하는 자연적인 시설들을 의미한다. 도시 열섬 효과를 감소시키고, 공기를 정화해 대기오염을 개선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보전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도시 경관이 좋아지고 쾌적한 환경이 조성된다. 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경기도 내 조성녹지는 208.8㎢다. 이 가운데 도시공원이 97.8㎢, 시설녹지가 63.2㎢이고 아파트(공동주택단지) 녹지는 47.7㎢다. 오산시 면적이 42.7㎢이니 아파트 녹지 면적이 이보다 크다. 2.9㎢인 여의도 면적과 비교하면 16배가 넘는 것이다. 최근 5년간 조성된 면적만 해도 11.9㎢나 된다. 연구원은 앞으로 도시공원의 증가속도 보다 아파트 녹지의 증가 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공동주택단지 내 녹지관리를 위한 법과 제도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내 녹지 면적은 늘어나고 있지만, ‘사유지’라는 이유로 공공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 아파트 단지의 관리비 사용내역을 분석해봤다. 아파트 연간관리비의 약 4.7% 정도만 녹지관리에 사용되고 있었다. 그나마 단위 면적당 관리비는 도시공원 유지관리비의 1/4 수준(827/1㎡)밖에 되지 않았다. 아파트 녹지에 대한 관리가 소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라서 그린인프라 확산을 위해서는 민간, 중앙정부, 지자체의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관련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수원시는 민간녹지의 효율적인 운영노하우를 전수하며 지속가능한 탄소절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는 ‘공동주택 민간조경 지원사업’을 통해 2년간 수원지역 19개 아파트에 공동주택 민간조경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민간 조경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모든 도시가 아파트 녹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길 바란다.
대학 입시철이다. 요즘이 수능 점수를 기반으로 한 정시모집 전형과 합격자 발표가 집중되는 시기이다. 입시를 앞둔 학생들은 제도권 교육의 최종 선택을 하고, 대학은 이들 지원자를 전형하여 합격 여부를 정한다. 지난 연말 역내에 소재한 분당영덕여고에서 진로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에 대해서 소개하고, 향후 입시 공부를 위한 동기부여를 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일 때는 늘 많은 고심을 하게 된다. 한마디 한마디가 어쩌면 학생들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비효과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인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신중하게 내용을 구성하게 된다. 학생들에게 대학은 무엇일까부터 시작했다. 대학은 BTS이다 학생들은 고교과정까지 길고 긴 학습의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12년 동안 배운 내용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너의 노동은 0원. 너의 노동은 자원봉사. 너는 과로하는 백수” 나의 실상이다. 나는 ‘무급’ 마을활동가이다. 그 시작은 이랬다. ‘아이 셋을 데리고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은 없을까?’ 세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과 병행하면서 점차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마을공동체 영역으로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그러다보니 아이를 데리고서 하려던 일은 아이를 데리고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돌봄교실에 알아봤더니 자녀를 맡기려면 ‘맞벌이 부부’라야 한단다. 일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재직 증명서’와 ‘의료보험 납부 확인서’를 제출하라는데. 그건 뼈 빠지게 일해도 내가 만들어낼 수 없는 문서였다. 그때 처음 무급으로 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돈으로 노동의 가치를 매기는 사회에서 돈을 받지 않는 노동에 ‘공권력’이 발부하는 성적표였다.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에 대한 증명서와 확인서였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이라는 용어를 고안했다. 마을활동은 육아와 가사노동과 함께 대표적인 그림자 노동에 속하고 나는 주구장창 그림자 노동을 해왔다. 임금노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노동, 그것도 아니면 열정을 구실로 강요된 저임금 무임금 노동착취인 열정 페이(熱情Pay) 그 언저리쯤으로 간주되는 노동자였다. 하지만 나는 내 노동이 이렇게만 정의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마을활동은 임금노동과는 다르다. 고되기만 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우리 꿈과 대립하지도 않는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혹독한 삶과 극한 경쟁에 균열을 내고 느슨한 연대와 느린 속도와 느긋한 태도로 숨 쉴 틈을 만드는 작업이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공공(公共)의 행복을 이루고자 하는 활동이다.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마을 활동은 노동보다 인도 “카르마 요가”에 가깝다. 카르마 요가란 자신의 삶에서 실천적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가다듬어 해탈에 이를 수 있는 요가의 갈래이다. 대가를 바라지 말고 공동체에 헌신하는 수행의 방법이다. 공적(公的) 임무에 집중하되 보상에서 멀리 떨어진 활동이다. 《깊이 생각할 것》, 《순수한 동기로 할 것》, 《의무를 다할 것》, 《최선을 다할 것》, 《결과는 잊을 것》, 《봉사일 것》, 《모두를 위한 일일 것》, 《학습이 따를 것》이 원칙이다. 물론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길을 잃고, 기우뚱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요가의 본질 아닐까. 중심을 잡으려 애쓰며, 여기까지인가 싶다가도 ‘딱 한 걸음만 더!’ 가다보면 새로운 나날들과 미래의 약속에 다다를 것이다. 카르마, 그러니까 내가 사는 날까지 나도 모르게 쌓여가는 ‘선한 업(業)에 대한 믿음, 나를 만들어가는 감사가 거기에 스며 있다.
넷플릭스의 오스트리아 6부작 드라마 ‘우먼 오브 더 데드’의 주인공 블룸(안나 마리아 뮈에)은 직업이 장의사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하도 시체를 많이 봐서인지 살면서 그리 무서운 것이 없다. 성격도 냉랭한 편이다. 말하는 것도 남을 배려하거나 하지 않는다. 도무지 살가운 성격이 아니지만 오직 한 사람, 곧 남편 마르크(막시밀리안크라수스)에게만은 예외였다. 하지만 마르크는 아침 출근길에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그 광경을 블룸은 두 눈 뜨고 지켜보게 된다. 블룸은 차차 남편의 사고가 의도적이었으며 누군가, 어떤 집단이 남편을 살해했음을 알게 된다. 블룸의 가혹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원래 이런 류의 자경단(自警團) 영화는 (그 이름도 추억에 젖게 만드는) 찰스 브론슨의‘데스 위시’ 시리즈가 원조였다. 아내를 살해하고 딸을 강간해 죽인 범인들을 찾아 일일이 응징하고 죽이는 중년 남자 폴 커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형편없었으며 찰스 브론슨의 대표작 ‘빗속의 방문객’, ‘원쓰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황야의 7인’ 등에 비해 그의 명성을 몇 단계 떨어뜨리는 작품이었지만 오히려 대중적 인기는 치솟았다. 찰스 브론슨은 이 영화로 일약 세계적 인지도의 대 스타가 됐다. 사람들은 그의 복수에 열광했다. (특히 남자는 뉴욕의 전형적인 화이트 칼라였다는 것이 환호의 이유가 됐다.)이 영화의 인기는 1편이 1974년에 만들어진 후 5편이 만들어지는 1994년까지 20년간 계속됐다. 찰스 브론슨은 그 10년 후인 2003년에 죽었다. ‘데스 위시’ 시리즈의 명성은 2018년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을 정도다. 공권력의 행사, 엄정한 법 집행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분연히 일어서는 사람들의 얘기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모은다는 것은 거꾸로 그 사회의 내부가 심히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적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데다 사람들에게 엄청난 불신을 사고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시즌 드라마 ‘우먼 오브 더 데드’의 주인공 블룸도 경찰을 향해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한다. 당신들 수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며 소리 지르고 힐난하기 일쑤다. 실제로 경찰은 별반 미동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남편은 경찰이었다. 블룸짐작으로 남편은 어떤 조직적인 범죄의 뒤를 쫓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우먼 인 더 데드’에서 보이는 블룸의 복수극은 기이한 특징을 지닌다.‘찰스 브론스 시절’에는 상대가 아무리 흉악범이라 하더라도 여러 가지 계산과 고려가 앞세워졌다. 주인공이 상대를 죽이기까지, 그 개연성, 그러니까 주인공이 벌이는 또 다른 살인의 이유와 명분을 앞자락에 이렇게 저렇게 많이 깔아 놓는다. 그런데 ‘우먼 인 더 데드’는 그렇지가 않다. 그게 이 드라마의 유별난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블룸의 복수극은 실로 가차 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녀에겐 일말의 고려가 없다. 고민 따위는 없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는 이로 하여금 지금 응징을 당하는 인간들이 정말 나쁜 놈일까, 그런 놈들의 수장 급에 해당할까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들 정도다. 특히 동네 신부에게 휘발유를 들이붓고 그를 불태워 죽이는 장면은 여주인공 블룸이 나가도 조금 너무 나가는 가 아닌 가 싶을 정도다. 그런데 찰스 브론슨의 영화가 197,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이 드라마 역시 요즘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모양이다. 유럽에서나 한국에서나, 세계 그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고 있다는 얘기다. 거기나 여기나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삶에 내몰리고 있다. 끝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과 원칙, 공정한 사회란 구호만 앞세우는 건 실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얘기이며 법과 원칙은 일부 소수의 권력자들 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조사는 무슨 얼어 죽을 조사. 사람들이 듣는 것은 그저 몰랐다 아니면 (내 책임이) 아니다는 말 뿐이다. 이러니 유가족들이 피를 토할 수밖에. 게다가 유가족들의 뒤에서는, 심지어 정면에 대고 ‘자식의 시체팔이를 해서 보상금을 벌려고 한다’며 미치광이 집단이 야유까지 보내고 있는 마당이다. 유가족들의 마음속에서는 응징과 복수의 마음이 싹틀 것이다. 얼마나 그들을 죽이고 싶겠는가. 예전의 폴 커시나 지금의 블룸처럼 그들에게 휘발유를 들이붓고 불을 댕기고 싶을 것이다. 어쩌면 그럴 유혈극을 (바라는 대중들의 마음을) 영화나 드라마가 달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복수극의 아이러니이지 역설이다. 좀 적당히들 하자. 행안부 장관도 이제 적당히 물러나고 대통령도 이제 적당히 진심 어린 사과를 하자. 아이들 죽은 걸 두고 자존심 싸움을 내세울 때인가. 일국의 지도자가 그러면 되겠는가.
작년 말부터 2023년 벽두까지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들은 올 한 해에 대한 여러 예측을 쏟아내고 있다. 대체로 낙관적인 예측보다 비관적인 예측이 더 우세하다. ‘위기’ 또한 가장 인기 있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위기’는 옮음과 그름, 삶 혹은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등을 의미했지만, 근대에서 위기는 선택조차 쉽지 않은 위기의 일상화 시대로 변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와 타이완의 위기, 식량 불안 위기, 경기침체 위기,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부채 위기, 이란 핵문제, 기후변화 악화 등은 단골이거나 중첩되는 위기 속 예측 소재들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은 거의 상수로 자리 잡아 국제정세 예측의 기본 축이 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예측에 한반도가 빠질 수 없다. 북한의 무인기 기습과 군의 허술한 대응 모습은 계축년의 한반도가 더 격랑 속으로 빠져들어 갈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본 적이 없는 지각변동’이 한반도에도 밀어닥치고 있음을 예고한다. 김정은 정권은 그간의 북한이 구사해온 對남한 전략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핵무기와 미사일의 고도화가 거의 달성되었다는 나름의 자신감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마디로 한반도는 변침점(way point)에 놓여 있는 것이다. 변침점은 선박이나 비행기가 목적지까지 여행하면서 중간에 항로를 변경하는 지점을 말한다. 문제는 김정은 정권의 철저한 ‘모호성 전략’ ‘속내 감추기 전략’으로 그 진정한 음모를 선제적으로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 부시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역임한 도널드 럼스펠드의 표현을 빌리면 ‘unknown unknowns’이다. 즉 모르는 것은 모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미 정보기관이 중요한 국제적 사건에 대해 사전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자 이에 대응하여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 정보기관은 럼스펠드의 자조적 단어를 수용하면 안 된다. 김정은 정권은 기발하고도 효험 있는 음모를 꾸미고 있을 것이다. 2008년 연평도 기습 포격 사건으로 상당한 재미를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슬로건 앞에 상당수 국민들은 중국 송나라식 굴종적 평화를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김정은 정권에게 크나큰 자신감을 부여했을 것이다. 따라서 대북강경노선을 표방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기를 꺾기 위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술책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공격 방법과 상징적 장소, 시기를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정보기관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무력화 내지는 ‘동네 국정원’으로 전락한 오명을 이번 정부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그 길은 ‘위기 대응능력’과 ‘예측 능력’ 및 ‘상상력’을 보여주는 길 밖에 없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마틴 셀리그만 교수가 언급한, 인간은 예측하는 동물 즉 ‘호모 프로스펙투스(Homo Prospectus)’임을 국가정보기관이 먼저 실증해 보이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강해야만 전쟁터가 되지 않는다”는 대만 차이잉원 총통의 말은 우리에게도 딱 부합한다.
기업 실적발표 시즌을 맞아 삼성전자를 필두로 국가산업의 대표주자급 기업들의 잇따른 ‘어닝쇼크(예상보다 저조한 실적발표)’가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전 산업계의 실적 부진 결과가 수치로 증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상사태가 발생한 현실 앞에서도 권력다툼에만 혈안이 돼 도무지 범국가적 경제위기 탈출구를 모색하지 않는 정치권은 큰 문제다. 기업과 정치권이 가용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시즌 첫 주자였던 삼성전자의 실적은 놀라움 그 자체다. 삼성전자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은 연간 매출 300조 원 돌파라는 신기록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동기 대비 69%나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LG전자의 영업이익은 무려 91.2%나 줄어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최악의 반도체 업황에 SK하이닉스는 흑자는커녕 적자 전..
가장 멀리 간 사람들이 가장 가까운 데 있다, 가슴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