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해, 선생의 부음기사를 접하고 묵념의 예를 올렸다. 한국어로 번역출판된 선생의 저서가 수십 권이다. 나는 '인덕경'(人德經)을 가장 좋아한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는 젊은이들에게 '이나모리즘' 강의도 많이 했다. 사숙(私淑)한 건 15년쯤 된다. 열두 살에 결핵으로 죽다 살았다. 그 다음 해에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집이 전소되는 재난을 당한다. 중학교 입시에서 두번 낙방했다. 대학도 오사카 의대에 떨어져서 가고시마 공대에 들어갔다. 취직시험도 모두 실패했다. 소년기 청년기의 선생은 평범 그 자체였다. 27세(1959년)에 교토 세라믹을 창업했다. 지역유지 부부가 집을 담보 잡혀서 300만엔의 자본금을 지원한 덕분이었다. 그후 2022년까지 63년 동안, 세상은 선생의 삶에 감동하는 관객이었다. 근대화 이후, 문명사회는 전통적으로 중시되었던 가치와 도덕률을 팽개쳤다. 개인 기업 국가, 이 모두가 탐진치 삼독의 갑옷을 입고 약육강식 정글의 전사로 종횡무진한다. 그 압도적 대세 앞에서, 선생은 철학을 강조하는 경영자의 길을 택했다. 희귀한 일이었다. 사방은 온통 적대적인 강자들의 세상이었다. "고난은 자기도야를 위한 절호의 기회다", "새로운 도전의 결과는 불굴의 마음에 달려 있다. 염원하고 또 염원하라. 고고하게, 굳세게, 한결같이.", "경영자는 어떤 학자들 못지 않게 철학을 공부하며,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이 순진한 외침과 소통이 지속되면서 놀랍게도 기적이 연달았다. "우리는 모두가 특별한 존재다. 우리 인생은 이기심과 이타심, 성악설과 성선설, 천박한 자아와 양심적 자아가 다투는 전쟁터다. 거기서 나쁜 쪽을 물리친 승자가 리더가 되어야 좋은 세상이 온다."고 갈파했다. 그 치열한 '욕망의 전투'에서 승리한 선생은 기득권, 권위의식을 다 내려놓았다. 동료들은 모두 이나모리즘의 실천자로 진화했다. 그 결과, 교세라(kyocera) 그룹은 매출 70조원, 종업원 13만명의 초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세이와주쿠(盛和塾)는 수천명의 ceo들이 이나모리즘을 학습하는 최고의 경영자스쿨이다. 사재를 기부하여 이나모리 재단을 설립, '교토상'을 제정했다. 첨단기술 기초과학 철학 예술 등 네 분야다. 노벨상에 필적한다. 부실경영으로 몰락, 2010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일본항공의 경영정상화 프로젝트를 하토야마 총리의 삼고초려로 수락했다. 3년만에 완전 회생시킨 업적에 세상이 놀랐다. JAL은 증시에 재상장되어 우량기업으로 부활했다. 역시 '경영의 신'이었다. 선생의 연세 79세였다. 선생은 불자로서, 1997년과 2007년, 두 차례 승려로 불가에 들어간다. 세상이 크게 놀라워 하자, 선생은 죽음을 좋게 맞이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나를 포함,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죽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간에는 인정을, 기업간에는 합리적 협력을, 국가간에는 약소국에게 덕을 베푸는 다정한 세상을 열망했다. '종업원의 행복과 인류사회에 공헌'을 경영의 모토로 정하고, 어린아이들처럼 순정하게 실천했다. 퇴직금 전액은 지역의 학교들에 기부했다. 국내외에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여 다수가 크고 작은 조직의 덕장으로 활약한다. 부디 이나모리즘의 빛이 바래지 않기를 바란다. 선생은 정부가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는 것에 반대하고, 일본이 후덕한 나라(德國)가 되기를 갈망했다. 선생의 음덕이 이 위태로운 지구사회에 축복으로 내리길 기원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설 연휴가 시작된다. 2020년초부터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하고 그 해 1월20일 한국에서 첫 환자가 나온지 오늘로 꼭 3년을 맞아 거의 일상으로 돌아온 첫 번째 설이다. 그런만큼 민족의 대이동이 이뤄지고 많은 사람의 왕래가 예상된다. 하지만 코로나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그 여파는 경제영역을 비롯해 우리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새해들어 올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낮추고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6월만 해도 올 성장률을 3%로 예상했지만 최근 1.7%로 낮췄다. 한국의 성장률 예상치는 더욱 어둡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경제·경영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해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1.25%에 그쳤다. 18일 노무라 그룹 아시아 관계자는 “한국 경제가 경착륙 위험이 있다”며 0..
요새 정치판을 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온통 난리다. 여당은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둘러싸고 친윤과 비윤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고, 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곤혹스러운 환경에 처해있다. 특히 민주당의 상황이 더 어려워 보이는데 그 이유는, 검찰이 성남 FC 문제와 관련해 이 대표를 소환한 데 이어, 15일 다시금 이재명 대표 소환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로만 보면, 이 대표가 검찰 소환에 다시 응할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번 신년 기자회견 당시, 이재명 대표가 “검찰의 (소환 등) 요구들은 매우 부당하고 옳지 않은 처사다. 검찰이 그야말로 권력의 하수인이 돼서 정치를 하고 있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봐서는, 이번 검찰 소환에는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지역 방송(경남MBC)에서 만든 다큐 '어른 김장하'가 SNS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60여 년 이상 경주 최 씨 못지않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묵묵히 실천해 온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런 사람을 이제 알게 됐다는 것도 한몫했을 터이다. 또한 오랜 세월 지역 언론의 가치를 위해 싸워 온 경남도민일보 출신의 김주완 기자가 100여 명을 인터뷰 하는 등 완성도가 높은 것도 감동을 주는 요인이 아닐까한다. 김장하 선생은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명의로 이름을 떨친다. 직원이 20명 가까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직원들의 월급은 다른 한약방에 비해 3배나 많았다. 그의 사회 공헌이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다 급기야 현대적 시설의 고교를 설립해 자립시킨 뒤 100억 원이 넘는 학원을 미련 없이 국가에 헌납한다. 지역 언론과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운동 등 지역 사회 곳곳에 지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선생은 지원은 하되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지역 국회의원이 자신이 추천한 사람을 고교 교사로 임용하라는 청탁을 무간섭 원칙으로 일언지하에 거절해 온갖 감사를 받았던 것이다.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이사장인 선생의 뜻에 따라 학교가 투명하게 운영돼왔기 때문이다. 선생은 행사장에 참석할 경우 매번 주목받는 중앙이 아닌 끝에 앉는다. 연설을 할 때도 상식적인 이야기 몇 마디로 끝낸다. 그의 사회 공헌이 권력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구체적 예이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아 홍보 홍수 시대에도 알려지지 않은 이유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더욱이 선생은 좌니 우니 따지지 않는다. 사회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섞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공이데올로기 사회에서 "당신 빨갱이 지?"하는 공격을 자주 받을 수밖에 없다. 선생은 그때마다 "그런 쓸데없는 말 하지마라"고 점잖지만 단호하게 응대한다. 선생에게는 좌나 우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어른 김장하'를 보면서 우리가 감동하는 깊은 이유일지 모른다. 다큐에서 선생이 돈을 똥으로 표현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그의 핵심적인 철학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성들여 번 돈을 여러 봉투에 담아 놓았다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불쑥 꺼내어 손에 쥐어준 행위를 설명할 길이 없다. 돈은 궁극적으로 자기 것이 아니라는 철학, 똥이 고루 뿌려져야 식물이 잘 자라는 것처럼 돈도 막힘없이 나눠야 사람이 잘 자랄 수 있다는 철학 아니겠는가. 우리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걸 잊고 산다. 현실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자살률뿐 아니라 노인 자살률도 OECD 국가에서 수위인 실정이다. 31세의 청년이 돈을 목적으로 무고한 택시운전기사를 살해한 것처럼 끔찍한 대형 범죄도 잊을만하면 발생한다. 살인적 양극화와 돈이 신이 돼버린 세상을 외면하고 원인을 파악한다면 연목구어일 것이다. '어른 김장하'는 이런 세상에 일대 파문을 일으킨 대사건이다. 소리 없는 혁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닿아야할 세상을 그의 표현대로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하며 온몸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신이나 영웅을 거부한 그는 진정 우리 시대의 '찐'이다. '찐' 어른!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 ‘2차 가해’ 문제는 단기간에 드러났다. 국민일보가 낸 “혐오 발전소 댓글창” 기획보도를 보면 이태원 참사 당일부터 열흘 뒤까지 ‘이태원’ 내용이 들어간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 혐오를 포함한 댓글은 58.27%로 절반을 넘었다. 참사 이전 코로나와 대선이 있던 시기조차 비혐오 댓글 비중이 절반을 넘었던 것과 대비된 결과다. 전형적인 사회적 재난을 두고 충격이나 애도 등의 반응보다 혐오 감정이 더 높게 포착된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자들은 경찰을 비난하는 분위기에 주목했다. 경찰의 상황 통제가 실패했었기 때문에 참사를 키웠다는 언론 보도 이후, 경찰에 대한 비판이 당연해졌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개 질타가 더해지면서 “모두가 공격하는” 공방의 장으로 나아갔다고 진단했다. 2차 가해는 포털 댓글에만 있지 않..
다음 달 9일 14명의 김포시의회 의원들이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다고 한다. 여기에 드는 ‘혈세’가 무려 1억 원에 가까운 9198만 9000원. 이와 관련해 김포시민들의 눈초리가 곱지 않은 것 같다. ‘관광성 외유’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7박 9일간 연수 행선지는 미국 동부 뉴욕과 워싱턴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본보(17일자 8면)에 따르면 선진사례 연수 분야는 지방행정(시청) 및 의회 기관 방문 또는 대중교통 활성화(노면전차, 노면전차 등) 현장답사, 열병합 발전소(소각장) 또는 매립지 선진사례, 데이터 센터 건립 운영 사례, 교육 시설 등 기타 기관 등이다. 본보가 소개한 김포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이를 데 없다. 가뜩이나 고환율과 수출 부진으로 나라 경제가 큰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지금 한 푼의 외화가 아쉬운데 굳이 혈세 1억 원을 외국에 쏟아부어가..
요즘 여당에서는 친윤, 찐윤, 비윤, 반윤, 친윤감별사 등 다양한 용어가 등장했다. 특히 더욱 주목 끌게 된 것은 대통령 산하 저출산고령화위원회의 장관급 부위원장인 나경원씨가 국민의힘당 당대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중에 해임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당사자인 나경원씨는 해임에도 불구하고 애처로울 정도로 친윤 임을 강조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끈다. 하지만 집권 여당의 이런 상황과 여론의 집중도는 보며 씁쓸함을 금치 못한다. 2025년에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는 우리 사회의 절박한 문제로서 인구 절감이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해당 의제가 국가 유지의 장기적 근간에 직결되기에 대통령 산하에 저출산고령화위원회가 있고 장관급의 부위원장을 둔다. 그런데 개인 정치 활동을 위해 취임 몇 달 만에 그런 자리를 던져버리는 모습 속에 국가 중대사를 다루는 위원회가 여당 정치인들에게 배급되는 임시 싸구려 자리로 전락한 셈이다. 더욱이 언론도 나경원씨와 대통령실 간의 갈등에 주목할 뿐 그런 행태의 의미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개인 당대표 출마와 관련해 중요한 국가 위원회는 거추장스러운 자리가 되어 사직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주요 국가 의제라고 말하며 각종 논의와 정책, 조직을 구상한다 해도 현실에서는 '그런 문제의식과 관련 의제는 정치적으로 소비될 뿐이며, 우리 역시 눈길을 빼앗기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국가 대계를 위한 자리를 몇 개월 만에 그리 가볍게 내던지는 나경원씨의 정치 욕심이나 당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정치검찰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을 당연하게 보는 국내 언론도 탄식을 자아내지만, 더욱 묻고 싶은 것은 그동안 저출산초고령화 사회에 목소리 높이던 여야 정치인들과 시민단체, 지식인들의 문제의식은 어디로 실종되었는가다. 이들의 침묵은 그리 강조하던 의제가 단지 자신들을 내세워 보이기 위해 내걸기 좋은 주제에 불과했거나, 유력 정치인 앞에서 숨죽이는 것으로 보인다. 초고령화와 인구 절감이라는 주요 국정 사안보다는 당대표 선출이라는 정치 문제에 몰두한 여당과 대통령실의 모습에만 주목하는 우리 스스로도 사회를 걱정하기보다는 정치 계산에만 집중한 셈이다. 이 점은 야당도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에, 여야 모두 사회개혁의 주요 의제보다는 단지 당내외의 권력 싸움과 정치 계산만이 강조되는 구태 정치문화가 강고히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터 국가 대계의 주요 의제나 문제의식이 이처럼 별 볼 일 없고, 정치권력을 위한 정치 놀이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국가와 사회를 생각하기보다는 정치권력 싸움이라는 와중에 개혁 의지의 인물들만 하나, 둘 스러져 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 스스로 정치 계산으로부터 벗어나 문제 의식에 깨어 있지 않는 한, 적폐 정상화나 사회개혁은 늘 구호에 그치고 결과적으로는 저들의 정치 놀이에 함께 하는 것 외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움푹 꺼진 박에 원숭이가 손가락을 펴면 손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파고 바나나를 넣은 다음 나무에 묶어둔다. 나무에서 내려온 원숭이가 박 안에 있는 미끼 냄새를 맡고는 손을 넣어 움켜쥔다. 그때 사냥꾼들이 나타난다. 주먹을 펴고 미끼만 놓아버리면 손을 뺄 수 있는데, 욕심 많은 원숭이는 미련하게 바나나를 움켜쥐고 있다가 잡히고 만다.’ 전설 같은 고대의 ‘원숭이 사냥법’이에요. 원숭이가 사냥꾼의 속임수에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다른 원숭이들이 교훈을 얻는다면 같은 속임수는 통하지 않을 텐데요. 안타깝게도 원숭이라는 동물의 지능은 그 한계를 넘지 못한다네요. 역사에도 전설 같은 게 있어요. 플러스 게임을 하지 않고 어리석은 마이너스 게임을 하다가 망한 이야기가 고비마다 수두룩하지요. ‘원숭이 사냥법’ 얘기와 ‘뺄셈정치’의 공통적 본질..
작달막한 체격에 허리 굽은 할머니가 날씬한 손녀의 손을 잡고 힘겹게 걷고 있다. 이른 아침 풍경이 한 폭 그림 같다. 그림 속에는 생명의 아침 빛이 저녁의 어둠과 함께 세월의 흐름까지 내포되어 있다. 인생이 이렇듯 흐르고 흘러서 죽음의 마지막 페이지로 향하는가? 그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생각났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2천 년 전, 로마 공화정의 개선식에서부터 비롯된 이 말은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하게 행동하라. 는 오묘한 진리를 승리에 도취된 장군에게 하늘이 들려주는 소리로 여기도록 했다고 한다. 오늘날도 어느 탈옥수의 입에서 터져 나온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여전히 개연성을 갖는 사회다. 법은 선(善)을 떠나버린 세계에서 선의 대리자나 된 양 눈을 부릅뜨고..
인간의 이기적 본성은 호모사피엔스의 타고난 특질이다. 이러한 성질은 지적 활동이 활발하던 고대국가 시절부터 간파되었다. 그래서 공자는 정치와 형벌로써 다스리려 하면, 백성들은 피해가려만 할 뿐 부끄러움을 모를 것이라고 했다. 1년여 전 허위날조 보도에 대해 징벌적 책임을 부과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은 기자단체들의 저항으로 무산되었고, 새해 벽두에는 소위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본회의까지 통과되면 공영방송은 정치적 통제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법과 제도부터가 허점투성이다. 1987년 체제의 산물이라는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제왕적 대통령의 독주를 제어하지 못한다며 대통령 중임제나 내각제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지도 오래 되었다. 그렇게 바꾸면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경험적 증거라도 있나? 미국은 대통령 중임제인데 민주주의에서 그다지 모범적이지 않고, 일본의 내각제는 제왕적 파벌이 군림하고 있는 형편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확실한 대안이라고 주장할만한 법과 제도는 없다. 서구 국가들의 방송을 모델로 거론하기도 하지만, 딱히 법과 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숱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거쳐 정착된 문화인 것이다. 민주주의도 그렇고, 대통령제나 내각제도 그렇고, 또 역시 공영방송의 독립성도 법 이전에 운영, 관행, 문화의 문제다. 한국언론학회와 방송학회의 1월 9일 세미나에서 조항제 부산대 교수는 “제도에 준하는 관행이 된 정치적 후견주의가 방송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정치권력의 인사권을 매개로 공영방송은 권력의 도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소위 ‘정치적 후견주의’라는 관행을 문제로 지적한 것이다. 모든 정치권력이 인사권을 매개로 공영방송을 권력의 도구로 삼은 것도 아니다. 그러니 바꿔야 할 것은 법이 아니라 관행이다. 굳이 법을 바꿔야 한다면, 제시하는 대안이 논리적 방법론적 정합성에 부합해야 한다. 외국의 사례를 제기한다고 할 때, 그때는 경험적 귀납적 논리에 따라 우리의 조건에서 도입하면 확실히 좋아질 수 있다는 개연성을 명징하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위론을 앞세워 관성적으로 성급하게 도입해서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다. 현재 2월 말에 임기가 만료되는 MBC 사장 선임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방통위원장의 임기가 유지되는 가운데 현행의 지배구조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새로운 관행이 산고를 겪고 있는 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