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26일자 인천판 1면)에 실린 인천시 중구 ‘신포 눈꽃마을 청년몰’ 철거현장 사진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눈꽃마을은 지난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15억 원(국비 7억 5000만 원, 구비 6억 원, 자부담 1억 5000만 원)을 들여 조성됐다. 인천의 중심 상권 1번지였지만 침체된 신포동 일대 골목상권을 부활시키자는 취지였다. 우현로 35번지(KEB 하나은행 뒷편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구조물을 조성, 고객들을 유치했다. 눈이 쌓인 유럽 마을을 연상시키는 눈꽃마을, 푸드 트레일러, 광장과 무대, 고객 쉼터 등을 설치하고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했다. 눈꽃마을은 ‘백종원의 골목식당’ 방송에도 나와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방문객들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발길이 끊어졌다. 청년점포들도 문을 닫아 이..
흔히들 우리나라 국민들을 두고 국난극복이 취미인 사람들이라고 한다. 조상들부터 그랬다. 왕조시대 국왕이 의주까지 내뺐어도 백성들은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다. 일본에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쳤어도 만주에서 총들고 싸운건 국민들이었다. 독재정권에 목숨걸고 저항해 민주화를 이룬 풀뿌리 민중들이었으며, 나라가 부도났을 때 금가락지 빼서 보탠 건 권력하나 쥐어보지 못한 장삼이사 국민들이었다. 이런 국민들에게 27일 윤석열대통령은 점잖게 한마디 하셨다. “국민이 어려울 때 나라가 돕고, 나라가 어려우면 국민이 헌신하는 국가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한마디만 하자. “대한민국은 나라만 잘하면 된다. 국민 탓하지 마라!”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제 대통령이 내뱉는 말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워낙 실언이 잦은 터라 본인 스스로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의미를 알고 하는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위의 발언도 대통령이 단 하루도 들어가지 않겠다던 청와대 영빈관에서 행안부, 통일부 등의 업무보고를 받는 와중에 한 말이다.(하긴 요즘 부쩍 청와대 사용이 잦다. 그럴꺼면 뭣하러 수천억 들여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뻘짓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려 충성경쟁을 마다않는 분위기에서 ‘국민이 헌신하는 시스템’이란 워딩이 또 어떤 나비의 날개짓을 불러일으킬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입에 올리면 60명에 달하는 검사들이 야당대표 수사에 올인한다. 200회가 넘는 압수수색에도 뚜렷한 물증조차 없이 소환조사를 거듭하며 모욕주기를 이어간다. 대통령의 말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고 MBC를 대통령 전용기에 타지 못하게 몽니를 부리질 않나, 검찰이 MBC를 가짜뉴스로 수사한다더니 이제는 감사원까지 조사에 나선단다. 그뿐이랴? 이태원참사 희생자명단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12월7일 ‘더탐사’ 강제 압수수색, 1월26일에는 시민언론‘민들레’에 또 압수수색팀이 들이닥쳤다. 1월18일 국정원은 때아닌 간첩단 운운하며 민주노총 압수수색을 벌이더니 28일에는 경남 시민단체 활동가 4명을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체포했다. 무서운 검찰공화국이요 검사독재정권이라 불릴만도 하다. 독재에는 늘 호가호위가 뒤따르기 마련, 세간에서는 법무부장관이 부통령의 권한을 누리고, 진짜 대통령은 김건희여사라고도 한다. 각 부문마다 충성경쟁을 넘어서 이제는 “이 구역 미친 놈은 나야”하는 것을 시전하는 것 같다. 이게 나라냐? 서민들은 난방비폭탄, 치솟는 물가에 신음하며 ‘눈 떠보니 후진국’이란 자괴감에 몸부림치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민더러 국가에 헌신하라니.. 여당 유력 당대표후보자마저 하루아침에 내려놓게 만들 정도로 당신은 대선기간 손바닥에 새기고 나왔듯이 주변으로부터 이미 충분히 ‘왕’대접을 받고 있지 않은가? 무슨 헌신이 더 필요한가? 속내는 “공공요금 더 올리고 복지 후퇴 시킬테니 그래도 참아라”는 말을 하고싶은거 아닌가? 선거에서 38%의 지지로 권좌에 오른 히틀러가 총통이 되어 독일민주주의를 땅에 묻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9개월 남짓한 가시밭길을 지나며 대한민국은 “전두환이 양반이었고 박근혜가 차분한 능력자로 보인다”는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말로가 어땠는지를 알기에 나는 오늘도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피켓을 목에 걸고 일인시위에 나선다.
지금, 어떤 여행을 꿈꾸는가. 홀로 일정과 동선을 꼼꼼하게 검토하며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이도, 채널을 돌려가며 홈쇼핑 여행 상품을 들여다보는 이도, 모아뒀던 곗돈을 풀자고 모임을 설득하거나 연인과 함께 sns 핫플을 찾아보는 이도 모두 여행자다. ‘지금, 여기’를 떠나기 위한 준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은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평생을 들여 열심히 구축해둔 자신의 세상을 등지고 위험하고 불안정한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일이다. 계획과 준비부터 길에 오르는 과정,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소요된다. 아무리 휴식을 추구하는 여행을 계획했다 해도 일상을 벗어난 미지의 세상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여행을 꿈꾸고, 떠나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뭘까.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삶은..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공정특사경)이 올해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 불법 고금리 대부, 대리입금 등 고강도 집중수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불법 사금융을 발본색원해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공정특사경이 곤궁에 처한 서민들의 약점을 노려 초고금리의 불법사채업으로 피해자를 아예 막다른 내모는 ‘악덕’ 범죄를 뿌리 뽑는 계기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공정특사경은 우선 1~5월까지 대학생·취업준비생 대상 미등록 대부행위·온라인 불법 대리입금을 집중수사한다. 이어서 7~10월에는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불법 고금리 대출행위를 단속한다. 이와 동시에 관계부처와 협업하여 온라인상 신종수법을 연중 단속하며, 각종 예방 활동 및 수사단서 확보를 위한 ‘찾아가는 불법 사금융 피해상담소’ 운영을 확대·..
이해영 감독의 야심작 ‘유령’이 비교적 개봉 초기부터 꺾어진 데는 사람들이 가능한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칭찬이든 욕이든 영화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노이즈 마케팅도 처음엔 도움이 된다. 영화가 안된 것을 보니 그 어느 쪽도 아니었던 셈이다.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는 영화가 비교적 졸작이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가 않고 그보다는 뭐랄까, 지나치게 젠 체를 한다고 할까 뭐 그런 느낌을 줬다. 이 영화는 독립운동 얘기다. 그중에서도 테러리스트들의 얘기다.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의 얘기다. 이런 영화는 사람들이 쉽게 미워하지 못한다. 근데 뭐랄까 영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약간 혀를 차게 하는 느낌이다. 영화 속 테러를 이끌어 가는 인물들이 너무 멋이 들렸다고 해야 하나, 역사적 사명감의 스노비즘 같은 것, 그 이상한 속물성 때문이다.(이준익 감독이 제작했던 2000년도 영화 ‘아나키스트’도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실패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갱스터 영화처럼 꾸민 것은 영화가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해영 감독은 1930년대를 유희의 공간처럼 여겨지게 끔 찍었는데 그게 결국 패착이었다고 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박차경(이하늬)이 묘령의 여인 난영(이솜)과 담배 불을 나누는 곳이 마를렌디트리히 주연의 영화 ‘상하이 특급’ 간판이 그려진 극장 앞이다. ‘상하이 특급’은 1932년작이다. 근데 영화 속에서는 조선총독부의 신임 총독이 문화통치를 천명하느라 유령의 테러 조직인 흑색단을 공공연하게 수색하거나 탐문하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부터 일단 시대의 코드가 맞지 않는다. 1932년이라면 만주사변 직전의 해이고 1937년 중일전쟁으로 가는 길목이다. 다시 무단통치로 가는 때이다. 여러 가지 실제 사회 상을 영화적으로 일그러뜨려 놨다는 얘기다. 이런 부분에서부터 영화가 턱 막힌다. 오히려 영화의 최대 장점은 일본 순사인 무라야마 준지(설경구)란 인물이 가져온다. 그는 조센징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반만 일본인인 경무국 간부다. 그는 일본인 장군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직접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런 출신 성분 때문에 좌천된 상황이며 그렇기 때문에 호시탐탐 복귀를 노리는 중이다.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는 그런 그의 경쟁자이다. 무라야마는 경성에 들어온 유령을 체포해 공적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유령을 잡으려는 자가 오히려 더 거물인 유령일 수도 있다. 그건 마치 프랑스 비시 정부에서 독일군 앞잡이 노릇을 했던 프랑스 장군이 사실은 레지스탕스가 심어 놓은 스파이였다는 것과 같은 식이다. 무라야먀도 겉으로는 독립운동가들을 잡아서 고문하는 쪽이지만 사실은 더 큰 거사(총독 암살)를 위한 위장일 수 있다. 이해영 감독의 ‘유령’이 만약 그 같은 플롯이라면 꽤나 흥미로운 반전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설경구의 정체는 비교적 일찍 드러나지만 설경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교적 마지막까지 그에게 희망을 걸게 된다. 진짜인지, (이중 스파이어서) 그러는 척하는 것인지, 무라야마는 영화 속에서 줄곧 이런 얘기를 한다. “아직도 조선이 독립할 수 있다고 하는 헛된 희망을 가진 자가 있다. 틀렸다. 조선은 결코 독립하지 못한다. 영원히 일본 천황과 함께 내선일체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못하든 1930년대의 지식인들 가운데는 이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일본이 러시아도 이기고 이제 만주도 차지하고 곧 중국도 이길 판이다. 누가 감히 일본을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암살자 유령이 소속된 흑색단이? 어림도 없는 얘기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의 명장면도 의외로 배신자의 고백에서 나온다. 최대의 밀정이었던 염석진(이정재)은 저격수 안옥윤(전지연)과 명우(허지원)에게 처단당하기 직전 이렇게 말하며 애걸한다. “내가 조선이 정말 독립이 될 줄 알았겠는가. 그때 그걸 알 수가 있었겠는가”라고. ‘암살’과 ‘유령’이 보여주는 흥행의 갈림길은 그런 역사적 패배주의에 맞서는 사명감의 진정성이다. ‘암살’의 안옥윤이 겪게 되는 비련(하와이 피스톨, 하정우가 그녀를 두고 죽는 것)과 그녀의 동지 속사포(조진웅)와 황덕삼(최덕문)의 희생은 멋있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멋있는 것이었다. 영화 ‘유령’에서 암약하는 독립운동가들에게서는 바로 그런 분위기가 떨어진다. 인물들이 보여주는 진정성의 근거가 다소 불분명하다. 관객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그 지점이다. 독립운동의 행동동기들은 다소 인공적이고 억지스러운 것으로 보이는데 반해 반(反) 독립의 설법은 오히려 내추럴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래서는 궁극적으로 악이 이기는 세상이 된다.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 ‘유령’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시대를 그대로 묘사하려 했지만 서사를 촘촘하게 엮어 내는 능력이 부족해 실패의 길을 걷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유령’에서 유령을 잡으려고 설치는 자처럼, 그리고 영화 ‘암살’에서 밀정인 염석진처럼, 지금도 주변이 온통 부역자 천지이다. 변절한 지식인들 천지이다. 지식인의 본산인 언론이 그렇고 대학이 그렇다. 변절자들이 점점 승승장구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이래선 이기지 못한다. 변절한 지식인들의 수를 줄이거나 없애지 않는 한 시대는 바뀌지 못한다. 영화 ‘유령’의 마지막 장면처럼 잔뜩 멋만 부려서 될 일은 안될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1930년대 일본 식민지 시대를 빼닮았다. 영화 ‘유령’이 낱낱이 보여 준 대목이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로나마) 속시원하게 시대적 해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 흥행이) 실패한 이유이다. 이래저래 답답한 시절이다. 영화도 답답하고 시대도 답답하다.
신년사에서 윤대통령은 노동, 연금, 교육개혁을 정권과제로 삼았다. 화물연대 파업철회에 따른 자신감인지 노동개혁을 우선과제로 꼽았다. 노동, 연금개혁은 절실하다.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한 그러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민노총, 한노총엔 113만,115만 명의 조합원이 가입, 국민의 4%가 조금 넘는다. 현재 민노총이 주도하는 강경파업은 기득권 노동자의 이기심으로 비칠 때가 많다. 보수층은 물론이고 중도적 국민도 동의 못하는 경우가 많고 민주당 지지층도 상당수 반감을 보인다. 국민들로부터 유리된 노동쟁의다. 세부정책이 나와야 판단하겠지만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보상체계 등의 개편을 통하여 개혁을 하겠단다. 현재 노동시장은 이분화되어 대기업, 공공부문이 주도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의 구조 속에..
나는 지난 해, 선생의 부음기사를 접하고 묵념의 예를 올렸다. 한국어로 번역출판된 선생의 저서가 수십 권이다. 나는 '인덕경'(人德經)을 가장 좋아한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는 젊은이들에게 '이나모리즘' 강의도 많이 했다. 사숙(私淑)한 건 15년쯤 된다. 열두 살에 결핵으로 죽다 살았다. 그 다음 해에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집이 전소되는 재난을 당한다. 중학교 입시에서 두번 낙방했다. 대학도 오사카 의대에 떨어져서 가고시마 공대에 들어갔다. 취직시험도 모두 실패했다. 소년기 청년기의 선생은 평범 그 자체였다. 27세(1959년)에 교토 세라믹을 창업했다. 지역유지 부부가 집을 담보 잡혀서 300만엔의 자본금을 지원한 덕분이었다. 그후 2022년까지 63년 동안, 세상은 선생의 삶에 감동하는 관객이었다. 근대화 이후, 문명사회는 전통적으로 중시되었던 가치와 도덕률을 팽개쳤다. 개인 기업 국가, 이 모두가 탐진치 삼독의 갑옷을 입고 약육강식 정글의 전사로 종횡무진한다. 그 압도적 대세 앞에서, 선생은 철학을 강조하는 경영자의 길을 택했다. 희귀한 일이었다. 사방은 온통 적대적인 강자들의 세상이었다. "고난은 자기도야를 위한 절호의 기회다", "새로운 도전의 결과는 불굴의 마음에 달려 있다. 염원하고 또 염원하라. 고고하게, 굳세게, 한결같이.", "경영자는 어떤 학자들 못지 않게 철학을 공부하며,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이 순진한 외침과 소통이 지속되면서 놀랍게도 기적이 연달았다. "우리는 모두가 특별한 존재다. 우리 인생은 이기심과 이타심, 성악설과 성선설, 천박한 자아와 양심적 자아가 다투는 전쟁터다. 거기서 나쁜 쪽을 물리친 승자가 리더가 되어야 좋은 세상이 온다."고 갈파했다. 그 치열한 '욕망의 전투'에서 승리한 선생은 기득권, 권위의식을 다 내려놓았다. 동료들은 모두 이나모리즘의 실천자로 진화했다. 그 결과, 교세라(kyocera) 그룹은 매출 70조원, 종업원 13만명의 초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세이와주쿠(盛和塾)는 수천명의 ceo들이 이나모리즘을 학습하는 최고의 경영자스쿨이다. 사재를 기부하여 이나모리 재단을 설립, '교토상'을 제정했다. 첨단기술 기초과학 철학 예술 등 네 분야다. 노벨상에 필적한다. 부실경영으로 몰락, 2010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일본항공의 경영정상화 프로젝트를 하토야마 총리의 삼고초려로 수락했다. 3년만에 완전 회생시킨 업적에 세상이 놀랐다. JAL은 증시에 재상장되어 우량기업으로 부활했다. 역시 '경영의 신'이었다. 선생의 연세 79세였다. 선생은 불자로서, 1997년과 2007년, 두 차례 승려로 불가에 들어간다. 세상이 크게 놀라워 하자, 선생은 죽음을 좋게 맞이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나를 포함,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죽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간에는 인정을, 기업간에는 합리적 협력을, 국가간에는 약소국에게 덕을 베푸는 다정한 세상을 열망했다. '종업원의 행복과 인류사회에 공헌'을 경영의 모토로 정하고, 어린아이들처럼 순정하게 실천했다. 퇴직금 전액은 지역의 학교들에 기부했다. 국내외에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여 다수가 크고 작은 조직의 덕장으로 활약한다. 부디 이나모리즘의 빛이 바래지 않기를 바란다. 선생은 정부가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는 것에 반대하고, 일본이 후덕한 나라(德國)가 되기를 갈망했다. 선생의 음덕이 이 위태로운 지구사회에 축복으로 내리길 기원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설 연휴가 시작된다. 2020년초부터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하고 그 해 1월20일 한국에서 첫 환자가 나온지 오늘로 꼭 3년을 맞아 거의 일상으로 돌아온 첫 번째 설이다. 그런만큼 민족의 대이동이 이뤄지고 많은 사람의 왕래가 예상된다. 하지만 코로나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그 여파는 경제영역을 비롯해 우리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새해들어 올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낮추고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6월만 해도 올 성장률을 3%로 예상했지만 최근 1.7%로 낮췄다. 한국의 성장률 예상치는 더욱 어둡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경제·경영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해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1.25%에 그쳤다. 18일 노무라 그룹 아시아 관계자는 “한국 경제가 경착륙 위험이 있다”며 0..
요새 정치판을 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온통 난리다. 여당은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둘러싸고 친윤과 비윤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고, 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곤혹스러운 환경에 처해있다. 특히 민주당의 상황이 더 어려워 보이는데 그 이유는, 검찰이 성남 FC 문제와 관련해 이 대표를 소환한 데 이어, 15일 다시금 이재명 대표 소환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로만 보면, 이 대표가 검찰 소환에 다시 응할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번 신년 기자회견 당시, 이재명 대표가 “검찰의 (소환 등) 요구들은 매우 부당하고 옳지 않은 처사다. 검찰이 그야말로 권력의 하수인이 돼서 정치를 하고 있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봐서는, 이번 검찰 소환에는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지역 방송(경남MBC)에서 만든 다큐 '어른 김장하'가 SNS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60여 년 이상 경주 최 씨 못지않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묵묵히 실천해 온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런 사람을 이제 알게 됐다는 것도 한몫했을 터이다. 또한 오랜 세월 지역 언론의 가치를 위해 싸워 온 경남도민일보 출신의 김주완 기자가 100여 명을 인터뷰 하는 등 완성도가 높은 것도 감동을 주는 요인이 아닐까한다. 김장하 선생은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명의로 이름을 떨친다. 직원이 20명 가까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직원들의 월급은 다른 한약방에 비해 3배나 많았다. 그의 사회 공헌이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다 급기야 현대적 시설의 고교를 설립해 자립시킨 뒤 100억 원이 넘는 학원을 미련 없이 국가에 헌납한다. 지역 언론과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운동 등 지역 사회 곳곳에 지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선생은 지원은 하되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지역 국회의원이 자신이 추천한 사람을 고교 교사로 임용하라는 청탁을 무간섭 원칙으로 일언지하에 거절해 온갖 감사를 받았던 것이다.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이사장인 선생의 뜻에 따라 학교가 투명하게 운영돼왔기 때문이다. 선생은 행사장에 참석할 경우 매번 주목받는 중앙이 아닌 끝에 앉는다. 연설을 할 때도 상식적인 이야기 몇 마디로 끝낸다. 그의 사회 공헌이 권력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구체적 예이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아 홍보 홍수 시대에도 알려지지 않은 이유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더욱이 선생은 좌니 우니 따지지 않는다. 사회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섞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공이데올로기 사회에서 "당신 빨갱이 지?"하는 공격을 자주 받을 수밖에 없다. 선생은 그때마다 "그런 쓸데없는 말 하지마라"고 점잖지만 단호하게 응대한다. 선생에게는 좌나 우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어른 김장하'를 보면서 우리가 감동하는 깊은 이유일지 모른다. 다큐에서 선생이 돈을 똥으로 표현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그의 핵심적인 철학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성들여 번 돈을 여러 봉투에 담아 놓았다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불쑥 꺼내어 손에 쥐어준 행위를 설명할 길이 없다. 돈은 궁극적으로 자기 것이 아니라는 철학, 똥이 고루 뿌려져야 식물이 잘 자라는 것처럼 돈도 막힘없이 나눠야 사람이 잘 자랄 수 있다는 철학 아니겠는가. 우리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걸 잊고 산다. 현실이 팍팍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자살률뿐 아니라 노인 자살률도 OECD 국가에서 수위인 실정이다. 31세의 청년이 돈을 목적으로 무고한 택시운전기사를 살해한 것처럼 끔찍한 대형 범죄도 잊을만하면 발생한다. 살인적 양극화와 돈이 신이 돼버린 세상을 외면하고 원인을 파악한다면 연목구어일 것이다. '어른 김장하'는 이런 세상에 일대 파문을 일으킨 대사건이다. 소리 없는 혁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닿아야할 세상을 그의 표현대로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하며 온몸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신이나 영웅을 거부한 그는 진정 우리 시대의 '찐'이다. '찐'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