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소망과 꿈을 키우며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아동을 보살펴 주어야 한다. 아무리 생활이 어렵고 힘들어도 아동학대는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아직 선악의 분별과 욕구의 자제가 어려운 어린이들이기에 진실 되고 정의롭게 생활해갈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 모두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이 절실하다. 최근에 아동학대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우리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아동은 보호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해 가야 한다. 경기도가 아동학대와 관련된 사건이 전국에서 1위라는 불명예를 차지하였다. 철저하게 보호시스템을 확립하여 학대받는 아동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알코올 중독을 비롯해서 자포자기한 부모가 아동을 학대할 경우 보호시설로 인계해서 양육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대한 관리를 위한 지역사회주민들과 경찰관의 각별한 관심이 절실하다. 현실적으로 학대 전담경찰관은 인력부족과 과중한 업무 때문에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아동학대 검거 건수는 전체 1천754건이다. 이 중 경기도가 579건으로 33%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에서 아동학대 건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7월 기준 전체 1천509건 중 경기도가 416건으로 계속
수년 전에 캄보디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공항에서 줄을 서서 입국절차를 밟고 있었는데, 제복을 입은 한 근무자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1달러” “1달러”. 그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던 우리 일행은 1달러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는 우리 일행의 팔을 잡아끌어서는 기다리고 있는 줄 맨 앞쪽에 넣어주는 것이었다. 그 절차가 끝나고 다음 수속을 밟기 위하여 다시 줄을 서자, 그가 또 나타났다. “1달러” 인도에 갔을 때의 일이다. 배를 타기 위하여 줄을 서고 있던 중이었다. 뒤를 돌아서 일행과 이야기하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니, 못 보던 사람이 내 앞에 줄을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씩 웃어버린다. 그리고는 잠시 후 저만큼 앞 줄의 다른 사람 앞에 또 다시 가 서더니, 이내 또 다시 몇 줄을 건너서 줄을 섰다. 위 에피소드 상황에 대하여,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때를 상기해 보면, 우리는 줄서기에 그렇게 익숙하지는 않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오면 사람들은 구름처럼 버스로 몰려가기 일상이었고, 관공서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불평을 늘
아침에 행궁재로 가기 위하여 차안에서 화성행궁을 바라보면 팔달산으로부터 가을이 들어오는 것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예술가에게 작품을 만들어 내는 스튜디오란 영혼의 쉼터와 같은 곳이다. 오랜 마음의 방황을 끝내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을 때 팔달산 중턱에 화성행궁이 언덕이 환하게 들어오는 이곳에 마음을 빼앗겼다. 실내전시는 물론 야외 설치미술까지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조금만 내려가면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방길로 연결되지만 약간 언덕길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마음 먹어야지 올라올 수 있는 한적함이 무척 맘에 들었다. 인연이 닿아서 그런건지, 어쩌면 정조대왕이 행궁을 세울 정도의 명당이라 그런지 점점 안식과 평온을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몇년 동안 2층을 개인 스튜디오로 쓰다가 너무 아름다운 공간을 나만 보고 있기에는 미안하고, 대중들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2012년 복합문화공간 행궁재로 개관 준비를 할 때 동네 노인들이 말씀을 하셨다. 아름다운 은행나무, 밤나무 아래 평상이 너무 낡고 오래되고, 언덕이 가파라서 20년동안 겨울만 되면 노인들이 내려가지 못하고 집에 칩거하게 된다고. 행궁재 개관식때 오신 염태영 수원시장님께 주민들이 부탁드려 언덕위에 아름다운
정조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재위 기간 내내 왕으로서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했고,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끊임없는 암살 위협을 견뎌야 해서다. 덕분에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집념은 누구보다 강했고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학문에 정진, 깊은 학식을 갖추기도 했지만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개혁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더욱 그렇다. 그러나 군주로서의 치적은 실로 놀랍다. 특히 탕평정치를 통해 붕당을 타파하는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했고, 사회 통합 및 경제 개혁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역대 왕 중에서 가장 많은 행행(行幸:임금이 궁궐 밖으로 거동하는 의식)으로 백성의 민원을 직접 듣고 처리했으며, 신분 차별의 단서도 없앴다. 정조의 탁월한 리더십과 남다른 통치사상을 보여주는 것이 국가 대개혁 프로젝트인 ‘화성(華城) 축성’이다. 수원 화성은 익히 알려진 대로 당대의 실학정신과 미학, 혁신적 과학기술이 집약된 계획 신도시다. 정조는 화성 완공 직전인 1775년 어머니 혜경궁홍씨와 현륭원과 화성에 행차하는 행사에 나선다. 왕복 200리가 넘는 길을 행차하는 것은 조선왕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어머니의…
목련나무 /김중 흔들리는 꽃잎 울렁이는 지붕 망설이는 신작로 쏟아지는 은빛 칼날…… 비수! 비수를 등에 꽃은 채 흐르는 검은 강물과 강물을 가슴에 꽃은 채 아픈 듯 웅크린 검은 땅 위에 목련나무 한 그루 배시시 피어나며 엄청나게 下血하네…… 흩날리는 하양 저 피톨들 너머, 안타까운 月下 멈추지 않는 저 月下의 분수 오래전부터 우리는 땅을 파헤치고 시멘트벽을 심어 아파트 숲을 만들었습니다. 새를 몰아내고 길고양이들을 몰아낸 자리, 그곳에 삶에 지친 육신을 눕히고 일으켜 세우며 생을 피워내다 스스로 생의 염증을 토해내곤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가 저 강물에 저 땅위에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비수를 꽃은 것입니다. 검은 물을 흘러 보내고 있습니다. 목련은 피기도 전에 강과 땅을 앓다가 하혈로 마무리하는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점점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김유미 시인
주민들의 쾌적하고 건강한 생활환경이 중요하다. 악취에 대한 주민들의 민원이 날로 늘어나고 있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수도권에 위치한 경인지역의 악취가 심해서 주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경기도의 악취가 전국에서 1위이고 인천시는 2위에 이른다.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악취민원은 총 4만3천492건에 이른다. 이 중 인천의 경우 2013년부터 작년도까지 총 6천459건이 악취민원이다. 인천과 경기지역의 악취는 전국 총 악취민원 중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정도가 심각하다. 유형별로는 사업장 시설로 인한 악취민원이 3만740건인 70.7%로 가장 많다. 음식점·하수구·정화조 등으로 인한 생활 악취민원도 7천199건으로16.6%를 차지한다. 원인불명 악취민원이 5천553건으로 12.8%이다. 인천시는 현재 남동 국가산업단지 등 8개 권역의 109개 업체의 악취관리지역과 남동유수지 등 2개 취약지역의14개 업체 등 총 12원 개 업체에 대해 주기적으로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업체의 엄격한 배출허용기준을 적용해 관리를 강화해가야 한다. 경인지역의 산업과 지리적 특성에 맞는 악취 근절대책 수립이 절실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공동노력
광교산은 그 품안에 살고 있는 수원시민들뿐만 아니라 용인 의왕 안양 화성 오산 등 주변도시 시민들이 사랑하는 산이다. 그리고 산 입구엔 광교저수지가 있고 그 주변에 벚나무를 심어 봄철이면 벚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한 가득이다. 또 저수지를 둘러싼 수변산책로는 ‘명품’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수려한 경관을 빚어낸다. 그런데 이 저수지로 인해 인근 장안구 상·하광교동 일대가 1971년부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상수원보호구역은 우리가 먹는 물을 공급하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호해야 하지만 그후 주민들의 불편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주민들이 집 한 채 짓는데도 복잡한 절차를 거치거나 아예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특히 이곳에서 등산객들을 상대로 영업 중인 보리밥집들은 광교산의 또 다른 명물이 될 정도로 소문난 맛집이 됐지만 영업허가를 받지 못해 불법영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행정관청이 고발할 때마다 벌금을 내면서 영업을 유지해 왔다. 광교보리밥집과 관청과의 갈등은 매년 되풀이 됐다. 따라서 광교산 식당 주인들은 벌금전과가 없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따라서 주민들은 생존권을 위해 상수원보호구역을 해제하라고 주장해왔다. 상수원을 보호하는 것도 필요하지
사람을 ‘울 줄 아는 짐승’으로 그린 시구에 깊이 끌린 적이 있다. 얼마 전 타계한 백수(白水) 정완영 시인의 표현인데, 여느 시구보다 여운이 길었다. 사람은 대부분 울 줄 아는 짐승임에 틀림없으니 새로울 것 없는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보통 짐승들도 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웃음 보기가 더 어렵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실 우리는 ‘새가 운다, 귀뚜라미가 운다’고 예사로 말해왔듯 ‘노래한다’보다 ‘운다’가 몸에 더 배어 있는 표현이다. 그렇게 보면 ‘울 줄 아는 짐승’에 감동하는 게 과잉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놀라운 수사처럼 끌렸는지 짚어보면 고구마줄기처럼 생각을 줄줄이 매달고 나온 함축 때문이다. 운다는 행위 자체를 자기감정에 충실한 몸의 즉각적 반응으로 보면 울음은 일종의 무장해제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의 필수품처럼 되어버린 가면 따위를 벗어내는 눈물의 분출은 카타르시스 효과도 크다. ‘남자는 일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느니 자기 검열을 가해온 사회적 억압 등을 생각하면 그런 힘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런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밖으로 나가려면 덧옷이 필요할 것 같아 서랍을 뒤지는데 불을 켜지 않아 어둑한 방에서 손대중으로 더듬어 찾다보니 마땅한 옷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벽에 걸어 놓았던 옷을 걸치고 나서는데 한 쪽으로 쏠리는 느낌이다. 손을 넣어 보니 무언가 단단한 덩어리가 손에 잡힌다. 집히는 생각이 있어 얼른 꺼내보니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 받았던 햇밤이 두 알이 나온다. 대녀로부터 늘 바쁜 나를 생각해 몇 톨 되지 않는 알밤을 맛이나 보라며 건네받은 일이 생각난다. 다른 사람보다 지능도 떨어지고 덩치답게 먹성이 좋아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먹는 일이 유일하다며 시집살이도 호되게 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시부모를 차례로 잃고 남편과 둘이 토닥거리며 살고 있는 불쌍한 사람이다. 나중에 울타리가 되어줄 자식도 못 낳았으니 다투지 말고 서로 아끼고 살라고 타이르기는 하지만 다툴망정 둘이 붙어 다니며 사는 모습이 그래도 대견하다. 난전에서 파는 싸구려 반지나 팔찌 같은 잡살뱅이를 사도 자랑을 하고 매니큐어만 새로 발라도 보여주러 오는 대녀를 신랑이 연달아 핀잔을 준다. 하도 뚱뚱해서 어울리지도 않는다, 다리통이 웬만한 허리만 하다느니 얼굴이 수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따옥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한정동의 동시 ‘따오기’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읊었다. ‘동요 따오기’는 여기에 윤극영이 곡을 붙여 태어났다. 그러나 일제는 이 노래가 조선민족의 애환을 읊었다며 금지시켰다. 해방과 더불어 해금돼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됐고, 1960년대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주제곡으로도 사용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따오기는 한동안 노랫말처럼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새가 됐었다. 1979년 판문점 근처에서 관측된 것을 마지막으로 국내에서는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사실 따오기가 사라진 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최다 서식지였던 중국 러시아에서는 물론 ‘따오기’를 길조로 여기던 일본에서조차 멸종위기에 처해 1급 보호조류로 지정받을 정도였다.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한 따오기가 ‘부활’한 것은 1979년 중국이 전국을 뒤져 찾아낸 7마리의 따오기를 인공번식 등을 통해 대대적 복원사업을 벌인 결과다. 지금은 약 1500마리까지 증식 시켰다. 중국은 희귀새 따오기를 ‘판다’와 함께 외교동물로 곧잘 이용한다. 1998년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