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김영승 베어진 나무도 그 자체로 大만족으로 그냥 안개에 젖어 있다 오늘 새벽은 내 인생 최초로 상륙한 새벽이다 차곡차곡 쌓여진 소나무는 솔잎을 속눈썹처럼 깔고 누워 있다 뺨을 맞대고 엎드려 있는 소나무는 소나무를 그러나 잘려 있다 - 김영승 ‘화창’ / 세계사 누군가에 의해서 ‘베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늙고 병들어 더는 살 수 없을 때, 아직 어리고, 젊고, 건강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무엇인가에 의해 단절되고, 소외되고, 분리되어졌을 때 우린 ‘이별’이라는 말로 일축한다. ‘차곡차곡’ 쌓여지는 이별은 늘 있는 일이다. 이별은 이별을, 비 바람 속에서도 청정했던 ‘소나무는’ ‘소나무를’ 죽음으로 만난다. ‘새벽’은 언제나 ‘오늘’이었고 ‘최초’이기 때문에 젖은 ‘속눈썹처럼’ 안개로 가득하다. /권오영 시인
가을이 서둘러 행장을 꾸린다. 풀들은 파삭해졌고 영근 씨앗들 옮기느라 바람은 동분서주다. 은행나무 아래 서면 노란 잎보다 먼저 쏟아지는 것이 그리움이다. 묵정의 가지에서 파릇한 새 순 꺼내며 입덧을 시작하다가 한눈 잠깐 팔다보면 짙푸른 잎들 사이사이 은행을 주렁주렁 매달더니 이내 노란 옷으로 갈아입는다. 노란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옷깃으로 스미는 한기를 따끈한 차 한 잔으로 여며보지만 옆구리는 여전히 허전하다. 집으로 돌아와 장롱을 열었다. 며칠 째 미루던 옷장정리를 하기 위해서다. 정리라기보다는 옷을 바꾸기 위해서다. 간절기 옷들을 개켜 서랍에 넣고 털스웨터며 기모바지 등 두툼한 옷을 주섬주섬 꺼내 놓는다. 막상 입으려고 하면 마땅찮은 옷이 왜 이리도 많은지 수북하다. 안 입는 옷가지는 과감하게 버리자고 다짐했지만 두어 가지 골라내고는 또 망설인다. 몇 년 째 자리만 차지하던 옷도 집어 들고 보면 이런저런 사연이 있고 추억이 있어 차마 버릴 수 없어 또 보관하게 된다. 어떤 옷은 아들이 첫 월급으로 사준 거라 못 버리고 어떤 옷은 몇 번 입지 않은 새 옷이라 아까워서 안 되고 이렇게 쌓아둔 옷이 옷장 가득하다. 옷을 잘 입는 사람은 적은 옷으로도 코디를
지방자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분권이 필요하다. 지방자치가 말뿐이고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중앙이 갖고 있는 권한을 지방으로 넘겨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이 골고루 잘살기 위해서는 지방자치가 활성화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권한을 과감하게 지방으로 이양하는 지방분권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점을 잘 인식하고 있기에 현 정부는 지방분권의 강력한 추진을 천명하고 있다. 특히,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지방선거시기에 지방분권을 포함한 개헌을 언급하는 등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을 만들겠다는 의지에 맞추어 지방분권 개헌에 앞서 분권에 필요한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법제처는 금년 안에 자치행정권 및 자치입법권 강화를 위한 20개의 대통령령을 국무회의를 거쳐 일괄 개정하겠다고 한다. 더 나아가 내년에는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임을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강력하게 지방분권을 추진한다는 것을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중앙집권
대학은 사회적 책임이 큰 지역사회의 학문 및 연구의 전당이다. 모범이 돼야 할 대학 캠퍼스 안에 불법으로 설치된 가설물이나 가건물이 즐비하다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한경대학교에는 현재 임시창고로 사용하는 컨테이터 등 15개가 넘는 교내 가설건축물이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일부는 지난 1월과 4월에 각각 안성시와 ‘공용가설건축물 축조 협의’를 진행해 설치했으니 나머지는 무단으로 설치된 가설건축물이라는 것이다. 한경대는 경기도내에서 유일한 국립이다. 법적·도덕적으로도 더욱 모범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오히려 불법 또는 무허가 건축물을 보란 듯이 설치하고,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해당 지자체는 이를 나 몰라라 한다면, 누가 이 나라를 법치국가라 부르겠는가. 한경대 이외에도 대학이나 공공기관의 불법건물은 그전부터 말이 많았다. 그러나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지방자치단체는 공익성이라는 명분에 강경 대응을 하지 못하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불법 건축물의 관리감독을 소홀한 나머지 각종 대형사고가 터져 불법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정부는 이 때마다 ‘건축물 안전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해 불법 건축물을 척결하기 위한…
우리나라에서 반려 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약 1천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반려동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또한 과거에 비하면 크게 달라졌다. 반려동물 관련 산업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최근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시장규모는 2012년 9천억 원에서 2016년 2조3천억 원으로 급증했다. 2020년에는 6배인 5조8천100억원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거대한 시장을 형성한 반려동물 산업은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정에서 가장 많이 키우는 동물은 개다. 약 440만 마리로 추정된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신분이 ‘격상’됨에 따라 호사를 누리는 동물도 많다. 호화스러운 애견 전용 호텔과 수영장이 생겼고 미용실, 장례식장에다가 애견 전용 TV가 있으며 외국에서는 개가 직접 채널을 돌릴 수 있는 리모컨도 개발됐다고 한다. 최근엔 애견 전용 보험상품까지 나왔다. 이와 관련된 직업도 다양하다. 애견 미용사, 동물 간호사, 동물 훈련사 및 관리사, 동물 초상화 작가, 동물 전용 의류나 가구 등 용품 디자이너와 제작자,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등도 수요가 늘고 있다. 장례지도사들은 수의 마련부터 관,…
오색찬란한 단풍으로 물든 산의 기운이 늦가을의 정취로 가득하다. 산을 오르다 보이는 돌 틈에서 피어난 들꽃은 가냘픔과 강인함을 함께 품고 한 세상을 산다. 돌과 돌 사이 피어난 꽃에게 비좁은 흙속에 자리한 뿌리는 곧 생명이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란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만고의 진리다. 그 진리는 문화에서도 통한다. 우리나라 문화행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오래되지 않은 그 역사 동안 문화정책은 중앙으로부터 시작해 지자체로 옮겨지는, 즉 하향식 구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중앙의 문화정책을 따라야 하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지자체의 문화정책이 발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기초문화재단들은 이러한 하향식 문화정책 흐름의 한계 극복을 위해 지역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으며, 이러한 결과로 지난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이 새로이 제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기초문화재단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이라는 ‘나무’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역 문화라는 ‘뿌리’의 견고함에 힘을 쏟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용인문화재단 역시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간을 두고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에 맞춰 올림픽 성화 봉송도 이뤄지고 있는데, 그리스 올림피아시에서 채화한 성화는 인천을 출발해 101일 동안 2천18㎞의 우리나라 전국 17개 시·도 및 강원도 18개 시·군을 달려 내년 2월 9일 평창 올림픽플라자를 환하게 밝힐 예정이다. 올림픽 성화가 한반도를 달리는 것은 88 서울올림픽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한반도에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이 두 차례나 열린다는 것은 무척 뜻 깊은 일이다. 성화가 가로지르는 이곳이 불과 67년 전에는 탱크와 포탄이 가로지르고 전쟁의 화마가 짙게 드리워져 폐허나 다름없었던 곳이었다고 생각해본다면 더욱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올 것이다. 실제로 88년 서울올림픽 당시 6·25전쟁에 참전했던 유엔군 참전용사들이 올림픽을 개최할 정도로 발전한 한국의 모습에 큰 감동과 보람을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30년 전보다 더 발전된 한반도를 접한다면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더욱 큰 놀라움과 뿌듯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67년 전 유엔군이 찾았던 대한민국은
고요하고 신비롭고 엄숙한 분위기의 성화를 기대했다면 이 작품은 조금 의외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안니발레 카라치의 ‘아피아 가도에서 성 베드로에게 나타난 그리스도’에서는 예수의 모습이 꽤나 생생하고 건장하게 묘사되어 있다. 한손과 한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있지만 그것을 워낙 번쩍 들고 있기 때문에 전혀 고통스럽거나 힘겹게 보이지 않는다. 예수를 보고 놀라움에 몸서리치는 베드로에게 그는 나머지 한손을 곧게 뻗어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키고 있다. 자신감과 확신에 찬 모습의 예수이다. 성자의 모습보다는 우리의 주변에서 익히 볼 수 있는 지도자의 모습에 더 가깝다. 당시 교회는 정교분리와는 정 반대의 입장을 표방하고 있었고, 정교분리를 의당 올바른 가치로 여기지도 않았다. 종교개혁 이후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카톨릭 교회는 예술가로 하여금 보다 강력하고 생생한 시각적 효과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성상과 성화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겼던 신교와 정반대의 노선을 걸으면서 그것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서 언제나 예술은 교회의 선전수단으로 활용이 되어왔지만, 이번에야말로 그 효력이 강력해지기를 바랐다. 그 효과란 작품을 바라보
유골항아리에서 나온 모래 /파울 첼란 망각의 집은 곰팡이 슨 초록빛. 나부끼는 문마다 너의 머리 없는 악사가 푸르러진다. 그는 너를 위해 이끼와 쓰라린 치모恥毛로 만든 북을 울려 주고 곪은 발가락으로 모래에다 너의 눈썹을 그린다. 그것이 달려 있었던 것보다 더 길게 그린다. 또 네 입술의 붉음도. 너는 여기서 유골 항아리를 채우고 네 심장을 먹는다. - 파울 첼란시집 ‘죽음의 푸가’ / 민음사 아무리 읽어도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시를 먹는다. 아프다는 것으로는, 인간의 통점으로는 느낄 수 없는 저 너머를 읽는다. 디디 위베르만이 아우슈비츠를 다룬 영화 ‘사울의 아들’을 왜 괴물이라 했는지 끔찍하게 느끼는 새벽이다. 우리는 분단이 되어있고 지구 최후의 휴전 중인 나라이다.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지나 전쟁까지 겪으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학살당하고 이 아픔을 깨트리려 몸부림치고 고문당하고 죽어갔는가. 시인은 아우슈비츠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는 누구인가 나이고 또 우리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저 광화문의 촛불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시 살아난다. 그러나 왜 시인은 센 강에 몸을 던져야했을까 나도 먹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