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벼슬자리에 오르거나 소위 떳떳한 직장이 있게 되면 머리에 宕巾(탕건·갓 속에 받쳐 쓰는 관의 한 가지)을 쓴다. 당시에는 쓰는 갓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벼슬을 달리했다. 白身(백신)이란 벼슬도 하지 못한 사람이니 요즘의 백수다. 그러니 남에게 의지하여 얻어먹거나 신세를 저가면서 살 수밖에 없으니 바로 개걸(丐乞)이다. 젊은 층의 실업문제는 행불행(幸不幸)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 더욱 심각하다. 아침이면 일어나 나가서 일할 곳이 있으며, 배고프면 때맞춰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자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일할 자리가 없거나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어느 선생은 ‘지위가 낮다고 탓하지 마라. 일할 직장도 없는 사람을 생각하면 너는 그보다는 낫지 않느냐.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하지 못하다고 한탄하지 마라. 걸식하며 구걸하는 것은 면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젊은이들의 미래를 달래기라도 하듯 한 말들이지만 희망 없는 현실을 노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높은 자리에 있지 못하고 많은 돈을 쓰지 못하는 것이라 한다. 마음이 부자란 말이 있듯
봉사와 서민을 빙자한 철새들의 계절이 눈앞에 다가왔다. 망둥어가 뛰니까 꼴뚜기가 뛴다더니 선거 때만 되면 그런 짝이 아닌지 모르겠다. 고양시장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들은 언제 그렇게 깊이 있는 학문을 연구했는지, 각종 출판기념회가 줄을 잇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시장출마를 선언하며 자신을 알리는 데 이를 선전의 기회로 삼고 있다. 고양시는 현재 자천타천의 하마평이 무성한 가운데 거명되는 사람만 7~8명, 이들 가운데는 같은 정당 소속인 사람이 많다. 어느 당이라 할 것도 없이 정당마다 경합양상이 치열할 것은 틀림없다. 이들은 대부분 지역에서 서로 아는 사이로, 불편한 관계인 사람도 있고 우군인 사람도 겹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어제의 우군이 오늘의 적이 되는 경우가 적잖다. 우려되는 것은 저마다의 패거리도 따라 움직인다. 특히 이런 분열들은 좋게 갈라지지 않고, 서로 돌아서서 험담하고 모함하는 등 그냥 스치고 지나칠 수만은 없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다. 그 중에는 내심으로 정작 나올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거명 대열에 끼는 사람도 있다. 변방의 태자였던 부처는 칼과 창으로는 불심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버리고 버려, 소유하지 않았기
지난 일요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의 일이다. 조용하던 2층 카페에 웅성거리며 나타난 20~30명 젊은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시작하는 영어회화. 삼삼오오 팀을 이루어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그들은 분명 한국의 젊은이들이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었는지 서로 파트너를 바꾸어 다시 시작하는 반복되는 과정을 보고서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스터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각자의 영어실력 즉 자기 가치를 높이고자, 또 하나의 스펙을 쌓고자 주말 그 이른 아침에 한적한 카페로 모여든 것이다. 내 젊은 날의 시간들도 저렇게 회오리치듯 열정적이었을까. 태풍의 일생처럼 서서히 생성되어 절정의 시기를 거쳐 점차 소멸되어 가는 사람들의 삶. 그렇게 보면 우리의 20대는 태풍의 눈을 향해 달려들어야 하는 가장 위험한 시기쯤이 아닐까 한다. 그 중심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은 회호리치며 몰려오는 태풍을 버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시간 지나 생각해보니 정작 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지, 얼마나 위험한 시간인지, 또 얼마나 엄청난 경험인지 알지 못하고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착실하게 학점만 관리하면 취업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던 나의 20대. 취업재수를 한다는 건 생각도…
‘종이 책 대신 신기한 ‘사람 책’을 빌려드립니다’라는 슬로건을 내 건 ‘휴먼 라이브러리’ 운동이 전 세계에 신선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휴먼 라이브러리, 사람 책 운동의 한 중심에는 최초로 아이디어를 낸 창립자 로니 애버겔이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편견을 없애고자 이 운동을 시작했다는 그가, 덴마크 사람인 그가 한국엘 왔다. 휴먼 라이브러리의 새로운 한국형 운동 발상지인 이곳 한국엘 말이다. 필자는 그의 초청 강연회엘 다녀왔다. 참으로 신선한 아이디어와 열정적 전파력에 충격적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발상도 그려하려니와 지금 그를 따르는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의 휴먼 라이브러리 움직임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휴먼 라이브러리 즉, ‘사람 책 운동’은 ‘표지만으로 책을 판단하지 마세요’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한다. 커버가 그 책의 전부나 실체는 아니라는 당연하면서도 잊혔던 그 슬로건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사람 책 휴먼 라이브러리의 창립자인 로니는 말한다. “남을 이해하는 건 별 것 아닙니다. 오해는 무지에서 비롯되고 이해는 알아가는
/정준성 논설실장 120년 전, 경복궁 향원정(香遠亭) 연못에서 이색 행사가 열렸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피겨스케이팅 시연회를 벌인 것이다. 이날 행사엔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참석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자연 빙판으로 조성된 한국 최초의 피겨스케이트 링크 향원정에서 벌어진 시연회를 당시 조선에 머물렀던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인 이자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은 저서 ‘조선과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1894년 겨울, 꽁꽁 얼어붙은 경복궁 향원정 연못에 서양 외교관 부부들이 모였다. 날 달린 구두를 신고 얼음을 지친다는 ‘빙족희(氷足戱)’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던 고종황제가 시범을 보여 달라고 청한 것이다. 빙족희를 구경하던 명성황후가 ‘남녀가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게 꼭 사당패와 색주가들 같구나’ 하며 못마땅해 했지만 얼음판 위에 놓인 의자를 훌쩍 뛰어넘는 곡예를 부렸을 때는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보기에도 생소했던 피겨스케이팅은 당시엔 장안의 화제였으며, 빙족희 또는 ‘얼음 굿’ ‘빙예(氷藝)’ 혹은 ‘양발 굿’이라 부르며 신
중국 초나라 제갈량이 그 자식에게 남긴 말이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며, 일찍이 우리나라 학자들도 이 말을 학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마치 전통처럼 내려왔다. 제갈량은 ‘군자의 행동은 마음을 고요히 하여 몸을 닦고 알뜰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그 덕을 쌓아야 한다(靜以修 身儉以養德). 마음이 넉넉하고 담백하지 않으면 뜻이 밝을 수가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 무릇 배움은 요란하지 않고 반드시 평온한 마음으로 임해야 하며, 재능은 모름지기 배움에서만 길러진다. 배우지 않는다면 재능을 넓힐 수가 없고, 뜻이 없다면 학문을 이룰 수가 없다. 거만하거나 나태하면 정미롭고 치밀한 이치에 접근할 수 없고, 조급하거나 버둥대면 성품을 잘 다스릴 수가 없다. 세월은 말 달리듯하고, 의지는 차츰 미약해진다. 설사 뜻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차츰 쇠락하는 것이거늘, 막다른 곳에 가서야 한탄하고 궁색함을 안다고한들, 이미 흘러간 세월을 돌이킬 수가 있겠는가’라는 유명한 글을 남겨 동양 정신문화 순화와 학문고취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곧 ‘마음을 비워야만 세상 이치를 깨칠 수가 있고, 심성이 맑고 편안해야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린 왕자라는 책이 있다. 아이들 동화 같기도 하면서 제법 심오한 내용으로 어른들도 읽어 보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요즘엔 책의 종류도 다양해 전문 성우들이 책을 녹음해 소리로 들려주는 오디오 북이라는 게 있다. 얼마 전 집에 온 며느리가 안아달라고 보채는 손녀에게 이 책을 오디오 북으로 들려주며 달래고 있는 것을 봤다. 이제 갓 4살 난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는 할까 궁금했지만, 스피커에서 나오는 신기한 음악소리와 앳된 어린 왕자의 목소리에 마냥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모습이 신통할 뿐이었다. 내 자식 어렸을 때보다 손자·손녀가 훨씬 더 예뻐 보인다는 옛 어른들 말씀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암튼 손녀 옆에서 무심코 듣고 있자니 마치 아이가 모든 어른들에게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겁니다’ 하고 훈계하는 것 같았다. 책 첫 머리부터 아이들의 상상력을 이해 못하는 어른들의 무심함과 아이의 친구를 부모의 소득과 집 크기로만 평가하는 어른들의 편협함을 꾸짖는다. 그래서 지은이는 말한다. 어린이들은 미래의 자신이 될 어른들을 관대하게 대해야 한다고.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어딘지 뜨끔함이 느껴지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책 속의 ‘어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외로움에 떨어본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지워지지도 않는다. 이런 경험을 한두 번 치르고 나면 하교를 하거나 밖에서 돌아오면 으레 소리치는 말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부르는 ‘엄마’라는 단어다. 하지만 곧 대답이 없으면 ‘콩당’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톤을 높여 다시 한번 부른다. 그러나 대답은 없고 집안에 자신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면 기운이 쏙 빠지며 풀이 확 죽는다. ‘어디 가셨나? 금방오시겠지’. 위안을 삼고 기다리지만 이내 초조함은 서러움으로, 서러움은 미움과 눈물로 바뀌고 사방이 컴컴해질 무렵, 뒤늦게 돌아온 엄마를 보는 순간 울음이 ‘빵’ 터진다. 외로움은 이처럼 여린 마음이라고 해서 비껴가는 법이 없다. 오히려 더 무섭게 엄습하기도 한다. 성장을 거쳐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너, 나 사정은 틀리고 정도는 다르지만 시도 때도 없이 우리 곁을 파고든다. 경우에 따라 짧고 가벼울 수도 있고 공연이 끝난 다음 무대 뒤의 공허함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또 사랑하는 사람의
때는 바야흐로 1936년 8월9일이었다.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 모여든 12만여명의 시선은 한 곳에 집중해 있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누가 첫 번째 주자로 스타디움에 들어올 것인가’였다. 그 가운데 히틀러도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오직 한 생각뿐이었다. 아리아인이 결승점에 처음으로 나타나 그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스포츠에 정치를 접목시킨 발칙한 상상력이었다. 그래야 나치의 정당성이 생기므로. 동서를 막론하고 독재자들은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한다는 공통점을 지니나보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인어공주의 그것처럼 물거품이 된다. 처음 모습을 보인 것은 아리아인도, 나치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인도 아닌 식민지 조선의 손기정(孫基禎) 선수였다. 당시 장내 아나운서는 손 선수가 일본 출신이 아닌 조선인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독일역사박물관(DHM) 독일방송기록보관실(DRA) 자료에 따르면 당시 그는 이렇게 멘트했다. “(당시) 조선의 대학생(koreanischer Student)이 세계의 건각들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조선인(der Koreaner)은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로 뛰었습니다. 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를 뚫고, 거리의 딱딱한 돌 위
지금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책임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오히려 도발을 일삼는 일본에 있다.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한·일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 이후에도 일본의 과거사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국민들을 더욱 격분케 한 것은 최근 발표된 일본의 ‘교과서 독도지침’이다. ‘중·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이 포함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일본 교과서 제작 시 이런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그릇된 역사를 후세에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의 일반 국민들도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76%가 해설서에 독도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명기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일본은 최근 한국에 대한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별도의 홈페이지를 여는 등 연초부터 망언과 망동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바짝 정신을 차리고 엄중하면서도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선 우리 국민들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