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심치복(推心置腹)이란 말도 있다. 내 심장을 남의 뱃속에 넣어둔다는 말로, 남을 믿고 성의를 가지고 교제함을 비유한 것이다. 옛말에 출호이자반호이(出乎爾者反乎爾)라는 말이 있다. 이쪽에서 마음을 터놓고 손을 내밀어보니 상대방도 은연중에 그 손을 잡아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흉금을 터놓고 기탄없이 대화를 나누다보면 생각밖의 우정이 싹트게 되고, 거북스런 거부감도 먹구름 걷히듯 한다는 것. 고대의 계급사회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고관대작들은 자기만의 담을 쌓아 자기에게 이로움이 있을 때 나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주춤대는 허세를 부렸으며, 불리해지면 온갖 추태를 부리기도 하였다. 때문에 흉금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인간미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시인 김삿갓은 길을 가다가 나무꾼 백수건달(白手乾達)을 만나게 되었는데 주막에 들어가 술잔을 나누는 사이에 서로의 흉금을 털어 놓은 사이가 되었다. 그와 헤어지고 난후 회자정리(會者定離)라 외쳐댔다. 즉,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인간사 이치이니 어찌 할 것이냐며 시 한 수를 남겨놓았다. “오늘 아침 한번 헤어지면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今朝一別後 何處更相逢).” 참으로 인간미 넘치는 장면이다. 분신
남자 나이 마흔여덟은 한창 때이다. 젊은 시절에 부지런히 일한 결실을 거두는 시기가 쉰 살쯤일 텐데, 이를 앞두고 있는 사내들은 어느 정도의 명예와 경제적 안정을 거두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그늘진 그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눈물들이 그려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내 하루는 언제부터인지 그에게 관심을 끌게 했었다.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게 된 그는 공공근로사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경비원에 배치된 그는 날마다 밤을 꼬박 지새우며 순찰을 돌았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고된 일이었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쉰 줄에 접어든 그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하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젊은이들보다 일처리에 서툴기는 하지만, 회사에서 잘나가던 때와 지금의 처지는 남루하기 이를 데 없지만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있다는 점에서 존경심마저 불러일으켰다. 말이 별로 없는 그는 웃음도 말수만큼이나 아꼈다. 회사에서 구조조정으로 내밀려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연 외에는 그의 개인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굳게 다문 그의 입 속에는 명예퇴직 외에 또 다른 깊은 슬픔이 숨겨진 듯했다
벌써 세밑이다. 2012년도 보름 남았다. 한 해의 교육활동을 성찰하고 새해를 준비해야 할 때다. 그간 경기교육은 ‘혁신’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학교문화의 긍정적인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도교육청은 혁신교육의 지속성을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시스템이 구축되었다고 판단한 도교육청은 내년부터 혁신교육을 일반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이는 매우 반길 일이다. 경기도교육청의 혁신교육은 공교육의 대안적 모델로 학부모들의 검증을 받은 셈이다. 남은 과제는 교육주체들의 인식과 학교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교사 개인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와 문화가 문제다. 그래서 학교문화를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쉽지 않다. 일부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진통도 따를 수 있다. 그래서 일부의 저항도 필연적일 수 있다. 저항을 넘어설 수 있는 ‘흐름’을 형성하면 된다.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시행 과정에서 경험한 바 있지 않은가. 교육을 새롭게 디자인하기 위한 방향을 고민해 보자. 가장 먼저 염두에 둘 것은 학생의 학습복지를 실현하는 일이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보편적 교육복지의 담론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의원들이 많기는 하지만 일부 지방의원들은 의원직을 대단한 벼슬 따위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관할 행정청 견제나 예산심의, 주민의견 수렴보다는 어깨에 힘주고 군림하려는 의원들이다. 심지어는 파렴치한 행위를 일삼아 주민들로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는 끊임없이 지방의회 무용론을 떠올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난해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20년이 됐다. 20년 성년이 된 지방자치제에 점수를 매기라고 한다면 그다지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최근까지 일부 기초의원들의 추태와 비리 고발이 잇따르면서 기초의회의 위상은 추락했다. 지난해 1월 성남시의회의 한 의원은 전화로 민원을 제기하다 주민센터의 여직원이 자신의 이름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며 직접 주민센터에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사퇴여론에 그 지방의원은 4개월간 의정활동을 중단했지만 약 1천600만 원에 달하는 의정비는 고스란히 챙겼다. 의정부지방법원에 의해 징역 12년의 중형이 선고된 남양주시의회 전직 의원의 행태는 도저히 맨 정신으로 듣기조차 거북스러울 정도다. 기초의원의 지위를 이용해 수차례에 걸쳐 민원인으로부터 12억 원을 받았고 명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 “살기 힘든데 고향 내려가서 젖소나 키우며 살지 뭐.” 도시인들은 이런 소리를 쉽게 한다. 주로 사업에 실패를 하거나 해직을 당한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이 주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귀농·귀촌 인구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가구는 6천500여 가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농촌으로 이동한 인구가 12배나 급증했단다. 올해 상반기 귀농·귀촌 인구만 해도 8천706가구 1만7천745명에 달했다고 한다. 전기한바 있지만 귀농·귀촌을 원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자영업에 실패하거나 퇴직했거나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다. 물론 자연이 좋아서, 건강상의 이유로 도시탈출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40세가 넘은 사람들이지만 20∼30대도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도시에서의 상상과는 많이 다르다. ㈔전국귀농운동본부 박용범 사무처장은 얼마 전 한 인터넷 뉴스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귀농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5천여 명 중 1천500명이 내려갔고 그 중 150여 명은 실패하고 올라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
‘여러분의 한 표! 우리 아이들의 미래입니다’, ‘걱정 대신 열정으로! 한숨 대신 함성으로! 기권 대신 투표로! 용감한 유권자들’ 등등의 투표 독려 현수막을 고민하던 나는 파주시 도시경관과의 불가 해석에 경악했다. 아니, 바로 옆의 고양시뿐만 아니라 관악구, 동대문구, 서초구, 서울시 등등의 현수막을 직접 본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투표 독려를 하는 현수막이 <공직선거법>이나 <정당법>이 아닌 <옥외 광고물 등 관리법>에 의거하여 행정게시대 외에는 걸 수 없다는 해석이었다. 어떤 일을 하다보면 해석이 달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논쟁을 하게 된다. 상식적으로 해석하고 공감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결국 법리 해석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변호사와 통화하였다. <공직선거법>은 ‘선거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공정히 행하여지도록 하고, 선거와 관련한 부정을 방지함으로써 민주정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옥외 광고물 등 관리법>은 ‘옥외광고물의 표시&
얼마 전 이혼소송 중인 사건을 조정하다 보니 이혼사유와 관련한 내용이, 두 당사자 간의 시시비비보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가 주로 이야기 된 사건이 있었다. 당사자 모두 아이들에게 주었던 관심과 사랑에 대해선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가정생활의 대부분이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가고, 부부중심의 생활이 밀접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정리되었다. 아이들에 관해서는 매우 관대한 부부였지만, 자신들의 부부관계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거나 배려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였다.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의뢰인과 함께 온 아내는,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격앙된 마음을 누르며, 왜 이혼할 수밖에 없는지 조근 조근 이야기해 나갔다. 이야기가 이어지자 맞은편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남편은 고개를 떨구기도 하고, 긴 한숨을 내쉬기도 하며, 원고인석의 아내를 쳐다보지 못했다. 사업파산 이후 수년의 가출로 이어진 남편의 공백 기간에 대한 불성실함과 무능함을 이혼사유로 말하며, 그동안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하다 보니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고 한다. 피고인석의 남편은 자녀 둘에 대한 과다한 교육의 결과가
선거일이 코앞이지만, 이제는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 추이를 알 수 없다. 선거법에 따라 12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만을 공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13일 이후부터 선거일인 19일까지 후보들의 지지율을 모른 채 ‘카더라통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유권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여론조사의 결과다. 같은 시기에 동시에 실시한 각 언론사와 조사기관의 지지율이 천차만별이다. 13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간 차이는 0.5%P부터 6.8%P까지 다양하다. 0.5%P 차이는 오차범위를 감안하면 무의미하다. 그러나 6.8%P는 특정후보가 이미 오차범위를 벗어나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음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각 선거캠프는 여론조사결과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국민들을 헷갈리게 한다. 한쪽은 이미 승기를 잡았다는 해석이고, 또 다른 쪽은 여론조사 수치에서 역전의 흐름을 읽어낸다. 서로 우세를 장담하는 것은 편승효과인 ‘밴드웨건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표심이 앞서는 쪽에 쏠린다는 과거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여론조사의 이상한 점이 있다. 독자들도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특
맹자(孟子)는 인간 본성의 근본(四端)은, 남을 측은해하는 마음(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이는 인(仁)의 시작이고, 부끄러워(羞惡之心)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이는 의(義)의 시작이고,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이는 예(禮)의 시작이고, 잘잘못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이는 지혜(智)의 시작이라 했다. 즉 인간은 예(禮)와 염치심(廉恥心)이 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면 다시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스스로 사람다워지려고 한다. 그런데 작금의 사회현상을 살펴보면 민주주의를 앞세운 개인중심주의, 해이(解弛)된 법질서와 갈등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우리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러한 때인 지난 7월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하고 160여개 단체 등이 참가한 가운데 <인성이 진정한 실력이다>라는 경구(警句)를 내걸고, 인성교육범국민실천연합을 결성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는 “오늘날 한국교육은 학교폭력과 자살, 청소년 범죄 등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공공장소에서 버젓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이를 꾸짖는 어른들에게…
18대 대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북한이 12일 장거리 로켓을 전격 발사해 대선정국을 흔들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오차범위 내 박빙의 승부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불거진 이번 ‘신북풍(新北風)’이 대선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북한이 어떠한 의도로 대한민국의 대선판국에 장거리 로켓을 쏘아 올렸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두 후보의 외교·안보·대북 공약과 더불어 한반도 위기관리 능력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 국정 최고책임자가 누가 되는지에 따라 우리의 안보정책을 좌우하는 것이어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야 하는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중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와 5천만 국민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보면 된다. 유권자들은 남은 선거운동 기간에 대선 후보들의 국가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도덕성, 국정운영 비전 등은 물론이고 국가 안보관을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헤쳐 나가야 할 국가적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저성장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확보하면서 재벌개혁 등 경제민주화를 실현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