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특히 6·25 참전유공자들의 목숨을 건 숭고한 희생은 우리들의 가슴에 두고두고 새겨야 하는 명제다. 이러한 때 참전 명예수당을 인상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찬열(수원갑) 의원은 지난 24일 6·25 전쟁 발발 66주년을 맞아 한국전쟁 및 월남전 참전유공자들에 대한 지원 강화를 담은 이른바 ‘참전유공자 예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참전명예수당을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으로 인상하고, 참전유공자 본인이 사망한 경우 그 배우자에게도 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회의원을 단 하루만 해도 100만원의 연금을 주는 현실에서 이같은 개정안은 지극히 타당한 얘기다. 참전 명예수당 인상 얘기는 매년 6월이면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월남전 참전수당과의 형평성과 예산문제가 맞서면서 통과되지 못했다. 이 의원이 지적한 바에 의하면 참전유공자의 상당수가 빈곤과 병마로 고통받고 있다. 그래서 무늬만 보훈 혜택이 아닌, 실질적인 예우가 절실한 시점이다. 국가보훈처가 추산한 6·25 참전용사는 약 90만명으로 이 중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참전용사는 42만명에 불과하다. 그중 상이군경을 제외한 생존자는 12만 여명만이 남아
수원시의회가 의장단 선출을 놓고 대립하느라 후반기 원구성도 못하고 있다. 이른바 감투싸움이다. 감투싸움이야 대부분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시의원들은 명색이 시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공약하고 출마해 당선됐던 공인(公人)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정작 해야 할 일을 미룬 채 이전투구하는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다. 게다가 정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협상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기주장만 하느라 후반기 원구성에 실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7월1일 정례회를 개회하고 각종 민생안건을 처리해야함에도 개회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이렇게 되면 시의회에서 처리해야 할 2016년도 제1회 일반 및 특별회계 세입·세출 추가경정 예산안 심의 의결과 행정사무감사 등 각종 현안 처리가 늦어진다. 이러라고 그들을 선출해준 것이 아니다. 의회는 시민의 편에서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독하는 한편 지역의 중요한 사업을 결정해야한다. 행정과 관련, 지역의 이익이나 주민의 희망사항을 종합해 의견을 표시하고 건의한다. 이처럼 막중한 사명과 책임이 있는 주민의 대표기관인 것이다. 그런데 감투싸움, 밥그릇싸움 때문에 정작 해야할 일을 못하는 식물의회가 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66주년이 되었다. 전쟁은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앗아간다. 문화유산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은 전쟁 속에서 목숨을 걸고 문화유산을 지킴으로써 지금 우리 시대에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간직하게 해준 김영환 장군의 이야기가 담긴 해인사로 여행을 떠나보자. 주차장에 차를 대고 20~30분을 더 올라가면 해인사에 도착을 한다. 주차장에서 해인사까지 오르는 울창한 숲길에 커다란 공적비 하나가 눈길을 끈다. 바로 김영환 장군의 공적비이다. 공군조종사 하면 ‘빨간 마후라’를 떠올리게 되는데, 공군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처음 도입한 사람이 바로 공적비의 주인공인 김영환 장군이다. 김영환 장군은 한국 공군 창설 7인의 멤버 중 한 명이다. 해인사로 들어서는 초입에 김영환 장군의 공적비가 자리한 이유는 6·25전쟁당시 항명을 택함으로써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6·25전쟁당시 김영환 장군은 가야산에 은신해 있던 인민군 1개 대대를 섬멸하기 위해 이들의 주둔지인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지만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폭탄하나로 날려버릴 수 없어 폭탄을 해인사가 아닌 해인사 뒤편에 투하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장마 시작이라더니 아침부터 추적추적 빗발이다. 베란다 창틀에 멈칫멈칫 매달리다말고 뚝뚝 떨어지는 빗물을 보고 있자니. 시골 지붕 처마 끝에서 둥글게 둥글게 떨어지던 빗물의 잔상이 자꾸 생각났다. 잿빛 하늘에서는 구름이 어디론가 끊임없이 오고가고, 막연히 떠다니는 구름의 자유가 부럽기도 해서 우산 받치고 현관문을 나섰다. 빗물 흠뻑 머금은 이들 듬성듬성 앉아 웅성거리는 버스 안. 속내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이웃인 듯 그림인 듯, 함께인 그들이 있어 나는 또 마음 푸근함을 느낀다. 통복시장이라는 말에 별 생각도 없이 버스에서 내리고 말았다. 꽁꽁 얼어붙은 러시아산 갈치 전을 지나 쪽파, 오이가 순서도 없이 나뒹구는 야채전도 지났다. 지붕을 씌어 비오는 날도 부담 없이 뽀송뽀송하게 변해있는 재래시장. 오백 원짜리 믹스커피를 배달하는 아주머니의 스트라이프 난방 소매를 보다말고 퍼뜩 스치는 무언가. 신발 전 앞에 물국수 돌돌 말아 밀가루 솔솔 뿌리고 손님을 기다리는 백발 할머니.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물국수 두 덩이만 주세요. 역시, 이 물국수는 비오는 날 먹는 게 최고지요?” “그럼유, 물국수는 빗물에 말아야…
“지금 우리는 지나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로 더욱 유명해진 이세돌 기사가 공익광고에 나와서 물었다. 경쟁으로 일관한 신산한 삶에서 우러난 강한 설득력을 느꼈다. 이 광고의 시사점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기도 전에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학생들과 그 가족들부터 떠올랐다. 그야말로 고질이 된 ‘지나친’ 입시경쟁 속에서 다시 일어서기가 어려울 정도로 지치거나 회복이 쉽지 않을 상처를 입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지낸다는 학부모는 흔히 만나고,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라고 애원하는 경우, 매 순간의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엉뚱하다고 할지 모를 생각도 했다. ‘그래, 맞아! 이건 분명히 지나친 경쟁이야! 뭘 하겠다고 이러지?’ 그런 생각을 할 학생이나 학부모, 교사가 있을 것 같고,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덕목은 ‘지나친 경쟁은 피해야 한다는 걸 순순히 인정하는 태도’인지 자문(自問)해보기도 했다. 그건 아
뇌물은 선물에서 유래됐다고 하지만 둘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선물과 뇌물 모두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됐고 성격을 규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영어로 뇌물은 ‘브라이브(bribe)’다. 미국 연방법원 판사를 지낸 존 누난은 자신의 저서 ‘뇌물의 역사’에서 적은 것처럼 ‘브라이브’는 원래 자선이나 자비심을 베풀 때 쓰는 선의의 물건을 일컫던 말이어서 더욱 그렇다. 영국에서는 뇌물을 ‘해트(hat)’라고도 한다. ‘집에 가다가 모자나 사서 쓰라’며 공무원들에게 푼돈을 쥐여 주던 관습에서 생겨났다. 우리도 ‘명절에 떡이나 사 먹으라’는 의미의 ‘떡값’이란 게 있다. 이도 역시 뇌물을 뜻한다. 촌지(寸志)도 비슷한 말이다. 당초 촌심(寸心) 또는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 이라했지만 떡값과 같은 의미로 통한다. 정성을 드러내기 위해 건네는 돈이라 흔히 선생이나 기자에게 주는 것이 통례다. 모두 대가성이 있는 것이라 선물보다는 뇌물이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뇌물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에서 공정한 재판을 왜곡한다며 단속했을 정도로 매우 오래됐다. 우리나라도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억류됐다가 푸른색 베를 뇌물로 주고 풀려났다는 얘기부터 고려 조선시대 왕
그때 나는 무엇을 했나 /이미산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버지의 숨소리가 불러 모은 어깨들 둘러앉아 하나의 언덕이 될 때 좁은 구멍을 빠져나가기 위해 아버지는 길고 가느다란 길이 되었다 단추를 만지작거리고 벽지에 핀 꽃 속으로 걸어가고 눈 감은 구름이 되거나 초침 위에 앉아 새로운 규칙을 꿈꾸며 우리는 함께 넘어온 언덕을 등진 채 각자의 행위에 몰두하는 방식으로 이 낯선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때 나는 무엇을 했을까. 눈조차 뜰 수 없었던 쇠잔한 기력 온 우주의 힘을 다해 버티고 있던 우리 모두의 아버지 불러 모은 어깨들은 감은 눈 속에 갇혀있고 그 좁은 구멍을 빠져나갈 때 가느다란 온기의 손가락을 잡아드렸을 뿐 이름을 불러보았다가 화장실에 다녀오기도 하면서 빨리 이 지루하고 고통스런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도한 것은 아닐까.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친구는 눈이 내린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난 아버지를 등지고 창가로가 눈 마중을 한 것도 같고 떨리는 나목의 눈썹을 본 것도 같다. 그렇게 누군 바쁘다고 먼저 자리를 뜨고 누군 달려오고 있고 숨 방울은 점점 더디게 맺히고 떨어지고 /정운희 시인
작가나 시인을 기념하는 문학관은 문화의 산물이다. 문학청소년, 소녀기를 거치면서 문학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지게 된다. 그 애정은 날이 지나면서 하나의 추억으로 기억되게 된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중학교의 교과서에 나오는 단편소설로 어린학생들을 많이 감동시켰었다. 중년층에겐 아련한 추억처럼 기억이 된다. 김동리나 이효석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김동리의 ‘등신불’이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고등학교 교재에 나오는 단편소설이다. 모두가 낭만이 깃든 소설이다. 나이가 좀 들면, 추억의 기억을 더듬어서 그 작가의 문학관, 또는 문학 기념관을 찾게 된다. 고장이 불국사가 있는 경주이거나, 소설의 배경이 된 메밀밭이 있는 봉평이거나, 독자들에게는 역시 추억이 되는 곳이다. 그곳이 문학도로서 그립지가 않을 수가 없다. 전국에 문학관이 84개가 건립되어 있는데, 문학관 협회에 가입한 곳이 61개라고 한다. 그동안 이 땅에서 시와 소설을 쓰다가 가신 분이 이 숫자보다는 훨씬 많을 진대, 앞으로 더 많은 문학관이 건립되어야 한다. 작고하신 문인 이름만으로 만 문학관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존해 계신 이름으로도 문학관은 건립될 수도 있다. 동리문학관이 있는 경주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는데 넓은 하늘은 아득하기만 하다(慾報深恩 昊天罔極)’고 했던가. 명심보감 효행편에 나오는 문구로 ‘부모의 깊은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또 높아서 평생을 갚아도 다 갚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난 5월은 어버이날이 포함되어 있어 부모님에 대한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새삼스레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의 은혜 외에도 갚을 수 없는 은혜의 대상이 하나 더 있다. 어버이의 은혜가 사적 차원의 은혜라 한다면 이 은혜는 공적 차원의 은혜이고, 5월과 대응되는 어버이의 은혜와 달리 이 은혜는 6월이라는 시기와 밀접히 관련된다. 6월과 관련된 갚을 수 없는 은혜란 흔히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으로 명명되는 국가유공자에게서 비롯된 은혜를 가리킨다. 주지하다시피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기리는 현충일을 비롯해 제2차 연평해전과 6·25전쟁일이 모두 6월에 집중되어, 이 기간을 국가유공자에 대한 추모와 감사를 표하고 국민 화합·단결을 달성하는 계기로써 호국보훈의 달로 운영하고 있다. 즉 6월은 일제로부터 조국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