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서울영일초등학교에서 개최된 재외한인학회의 ‘찾아가는 간담회’ 행사에 참여했다. 영일초등학교가 중국동포를 포함한 다문화가정 학생이 절반에 이를 뿐 아니라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문화소통세계시민양성 연구학교로 지정되었다는 점에서 방문 대상이 되었다. 재외한인학회는 지난 5월 하순에는 광주 새날학교와 고려인마을을 찾은 바 있었는데, 국내거주 조선족과 고려인 등 ‘재한’동포문제가 글로벌-다문화 한국사회의 현안 중의 하나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는 4년 전부터 매학기 학생들과 함께 가리봉동과 대림동에서 현장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수의 학생이 참여하는 전체 2시간의 수업인 만큼, 지역에서 활동하는 NGO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지역을 둘러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도 매번 새로웠고 학생들도 ‘조선족’을 ‘중국동포’로 인식하게 되고 중국동포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사실과 다름을 이해했다는 소감을 제출하곤 했다. 이번에는 학회 행사라 편안한 마음으로 서울영일초등학교 안이섭 교감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또 토론까지 가졌다. 필자는 그동안 중국동포가 많
서민 술 ‘소주’의 한자 이름엔 술 주(酒)자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소주(燒酒)라고 알고 있겠지만, 희석식 소주의 상표를 보면 분명 소주(燒酎)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소주(燒酒)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온다. 태조 2년인 1398년 12월13일자 기록엔 이 같은 내용도 있다. “임금의 맏아들 진안군(鎭安君) 이방우(李芳雨)는 술을 좋아하여 날마다 많이 마시는 것으로써 일을 삼더니, ‘소주(燒酒)’를 마시고 병이 나서 졸(卒)했다.” 조선왕조실록엔 그 후 영조 13년까지 240여 년 동안 소주(燒酒)라는 한자 술 이름이 176회나 언급돼 있다. ‘세 번 빚은 술’ 혹은 ‘진한 술’이란 뜻의 소주(燒酎)라 쓰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다. 알코올 농도가 높다고 판단한 일제가 이름을 바꿔 썼던 것인데, 지금까지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참이슬, 처음처럼 등 제조 회사의 제품명에 가려져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소주병에 얽힌 또 다른 사연도 있다. 유리병 모양이 같고 색깔이 모두 녹색인 연유다. 초기의 소주병은 투명에 가까운 연한 하늘색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4년 강원도 모 소주회사 출시 제품 이름에 걸맞게 병을 녹색으로 바꾼 것이
체체파리풀꽃을 위하여 /박순덕 얼룩말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무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떨어져 나와 쉬지 않고 빙빙 돌고 있다 무엇을 보았기에 무엇을 위하여 저렇게 둥글게 원을 그리나 보호해야 할 중요한 무엇이 있기라도 한 듯 동그라미를 겹겹으로 둘러치듯 얼룩말은 일정한 동심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풀꽃벌레 체체파리에 물린 얼룩말이 살내리며 뼈내리며 계속 도는 원 안에는 너무도 싱싱한 연자홍빛 풀꽃이 하늘거리고 있다 꽃이다, 죽도록 너를 맴돌게 하는 - 박순덕 시집 ‘자전거 안장을 누가 뽑아갔나’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헤어짐 또한 그에 못지않게 살을 내리며 뼈를 내리는 일이다. 얼룩말이 떨어져 나왔다. 함께 가야 할 무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다. 보호해야 할 중요한 무엇이 있기라도 한 듯 동그라미를 일정한 동심원으로 그리고 있다. 무엇을 보았기에 무엇을 위하여 저러나. 겹겹 원 안에는 너무도 싱싱한 연자홍빛 풀꽃이 나풀거리고 있다. 죽도록 떠나가지 못하고 맴돌게 하는 네가 있다. 사랑이 있다. 체체파리는 주로 사하라 사막 남쪽에 분포하며 포유동물의 피를 빨아 먹고 산다. 한번 물려 적당한 시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른다
경기도내에는 9개의 미군기지가 있다. 그런데 주한미군기지는 탄저균이 들어와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치외법권적인 지역이다. 군사기지 관련 정보는 국가 기밀이기 때문이다. 미군기지는 더욱 심각하다. 미군기지와 관련된 문제점은 많지만 그중 최근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환경문제다.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경우, 기지 외곽에서조차 유류오염물질이 고농도로 검출되고 있다. 서울시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기지 내부 오염조사를 실시했지만 결과는 공개되지 않는다. 경기도내 미군 반환기지 19곳, 14만328㎡가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동두천 캠프 캐슬의 지하수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됐는데 무려 기준치의 268배나 초과됐다. 반환 미군기지의 심각한 유류 오염문제 말고도 그동안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 퇴역 미군의 고엽제 매립 증언, 살아있는 탄저균 반입 사건 등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는 국민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의동 의원(새누리·평택을)이 공개한 정부 자료에 따르면, 조사 완료된 74개 주한미군 공여구역 중 주변지역 오염이 확인된 기지만 46곳(62.2%)이나 됐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매년 성장하는 관광산업이 지역경제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 지역특성을 살린 관광산업의 개발이 절실하다. 지리적 장점과 자원이 풍부한 경인지역의 특색 있는 관광산업개발에 전력해 가야 할 때이다. 지난해 고양시를 방문한 관광객은 57만8천명이며 연간 매출액은 7조2천억 원에 이르고 있다. 새로운 관광도시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여 양적 증가와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해 관광부문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이다. 전체 26.5G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것으로 국가별 관광객 비율은 중국이 35%로 가장 많았으며 일본이 25%이고, 미국, 싱가포르, 독일 순으로 나타났다. 고양국제꽃박람회가 열리는 5월과 고양호수예술축제가 열리는 10월에 관광객이 가장 많았다. 중요한 지역의 이벤트가 해외관광객유치를 끌어드리고 있다. 관광객은 메르스 한파로 6월과 7월에 급감하다가 8월부터 다시 회복세를 나타냈다. 중국 관광객은 2월에, 일본인은 8월에, 미국인은 12월에 각각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와 독일의 방한관광객이 전국대비 상대적으로 높았다. 독일 관광객은 자동차 테스팅 전시회가 있었던 3월에 약 4천800여 명이 넘었다. 해외관광객유치를 위한 지역별 특별이벤트를 자주…
고1부터 나의 별명은 ‘이천’이었다. 이천에서 대도시로 진학한 나를 친구들은 그렇게 불렀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천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나에게 농담어린 친구의 시비조(“야, 이천! 3·1운동 때 이천 사람들은 만세 안 불렀냐?”)는 창피함을 넘어 자존심까지 조금 상하게 했지만, 정말 친구 말대로 역사교과서에는 3·1운동이 일어난 지역에 이천은 비어있었기 때문에 나는 반박 한번 못하고 쓴웃음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이천 시립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펼쳤을 땐 충격을 넘어 미안함까지 밀려왔다. 이천문화원에서 발간된 책의 기록에는 1895년 을미사변 이후 한일강제병합 전까지 이천은 저항 없던 굴욕의 땅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해 민족자존의 회복을 염원하는 의병운동의 뜨거운 용광로였다는 것이 요지였다. 기록된 내용 중, 먼저 끔찍했던 ‘이천충화사건’을 살펴보자. 1907년 8월1일, 을사늑약 이후 한반도를 차례로 침탈하던 일본은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해산하게 되는데, 해산된 군인들은 의병군에 가담하면서 보다 체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며 자화상이다. 정서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그대로 보고 배울 수밖에 없다. 아동학대,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구타와 육체적인 처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과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성폭력, 가혹행위, 방임, 유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행위자의 80% 이상이 부모라고 한다면 국민들 또한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부분의 가정폭력은 취중에 발생하고 서민층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어린 자녀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때리고 욕설을 하면서 흉기를 휘두르는 행위를 보게 된 자녀들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고 자녀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분명 악순환이 된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욕조에 감금하고, 락스를 뿌리고, 찬물을 퍼붓고, 굶주림과 타박성 피하출혈, 옷을 벗겨 저체온증, 어린이집 급식판에서 김치를 먹게 하다 아이가 뱉어내자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 진정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학대할 수 있단 말인가! 훈육이란 부모가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연일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1월 새벽 2시쯤 112신고가 접수됐다. 내용인즉 자신이 여자친구를 집에 돌려보내 주지 않고 있으니 잡아 가라는 것이었고, 옆에서는 한 여성이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신고를 접수한 즉시 순찰차량과 경찰서 형사기동대 112타격대 등 18명이 투입해 수색을 실시했으나 조롱이라도 하듯 전화기를 꺼버리는 등 오라고 했던 장소 부근을 다 수색해도 관련자를 찾지 못했다. 다음날 늦은 오후 연락이 되어 주소지 경찰서의 강력팀과 공조해 사실여부를 파악한 바, 취중에 애인과 말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신고를 하게 된 것으로 엄중하게 경고한 후 훈방하는 일련의 해프닝 같은 사건이었다. 이와 같은 112허위신고에 대해 경찰은 형사책임은 물론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실제로 작년 불과 20여일 사이에 총 26회의 상습적인 허위신고로 공무집행을 방해한 35세의 피의자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하는 등 강력하게 대처하고 있다. 현행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와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112허위신고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6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 등으로 각각 처벌할 수 있고 민사적으로 손해배상 청구
시각장애를 뛰어넘어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에 오른 인물이 있다. 바로 故 강영우 박사(1944~2012)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장애인들에게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정신을 삶으로 보여준 강영우 박사는, 사실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열다섯 살 때, 날아오는 축구공에 두 눈을 맞아 시력을 잃게 되면서 평범했던 그의 삶은 하루아침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아들의 실명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얼마 후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이미 아버지를 여읜 상태에서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누나는 밤낮없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두 눈이 실명되고 가족마저 떠난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비통한 마음을 부여잡고 수없이 이렇게 외쳤다. “앞도 못 보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이제 나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도서관에서 점자책을 읽다가 한 문장을 발견했다. ‘가지지 못한 한 가지에 불평하기보다 가진 열 가지에 감사하라.’ 강영우 박사는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갇혀 불평하던 것을 멈추고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