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낮 개방 분수대에서 수십 개의 물줄기가 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른다. 물줄기를 맞으며 동동거리는 아이들의 '꺄악', '와' 하는 신나는 함성이 들린다. 시원하고 행복하다. 노자 (도덕경)에는 최고의 선이 물과 같다고 비유한다.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는 물. 정신적 가치에 대한 비유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이롭게 하는 최고 좋은 것이라고 할 법하다. 물은 지구 상의 수많은 생물과 인간 생명의 근원이다. 성인의 경우 몸의 약 60-70 %를 차지하며 음식은 3주를 굶어도 버틸지라도. 물은 며칠만 못 마셔도 생명이 위태롭다. 물의 중요성을 알긴 하지만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잘 안 먹거나 못 먹는 분들을 많이 만난다. 맹물을 먹으려고 하니 목에서 안 넘어가 못 먹거나, 물을 마시면 흡수가 안되고 그대로 소변으로 자주 나와 화장실 가기 번거로워 안 먹기도 한다. 심지어 입이 마르고 눈이 마르거나, 변비, 어지럼증, 두통 등 탈수 증상이 의심되는 경우에도 그렇다. 좋은 물을 요약하자면 염소와 각종 오염물질이 함유되어 있지 않고 미네랄 성분과 산소가 균형 있게 함유된 약알칼리성 물이다. 성인의 경우 대체적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임자들과 비교해 미디어에 비우호적이라는 평가를 받지요. 최근에는 마음에 안 드는 질문을 해대는 기자를 공박하다가 말썽이 나기도 했어요. 언론을 매개로 하는 미국 대통령의 대국민 접촉은 대단히 활발해요. 인터뷰뿐만 아니라 심야 토크쇼에 출연해 장기자랑까지 하지요. 공식 기자회견에다 미디어 스테이크아웃(Media Stakeouts), 미디어 풀스프레이(Media Pool Spray)라고 하는 약식회견을 수시로 갖는답니다. 일본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하는 도어스테핑(Doorstepping) 비슷한 관행이 있어요. ‘부라사가리’(매달린다는 뜻의 동사 부라사가루에서 파생)라고 부르는 일상적 약식 기자회견인데요, 2001년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때부터 계속했다니 역사가 좀 됐지요? 언론기피형인 아베 전 총리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 등도 매달 10여 차례 응하며 이 관행을 이어왔대요. 윤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도입한 도어스테핑 관행을 놓고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군요. 특유의 직설화법에다가 초보 정치인으로서의 미숙함 등이 빚어내는 이런저런 논란 때문에 대통령실에선 여간 고민이 아닐 거예요. 이것저것 꼼꼼히 따지지…
“계파정치를 배격하고 통합정치를 하겠다” 지난 17일,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한 언급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이재명 의원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기는 하다. 그는 당내 “계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파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가, 계파를 배격하겠다는 본인의 의지 때문인지, 아니면 비주류이기 때문에 계파를 갖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인지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계파정치란 배격돼야 하는 “부정적 존재”만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계파정치는 민주적 정당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같은 정당이라고 해서 반드시 똑같은 생각을 해야 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적 정당이라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맞고, 같은 입장이나 생각을 가진 이들끼리 무리를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상당수 국가나 일본의 정당에서도 계파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계파의 존재가 영국 민주주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영국은 내각제 국가의 대명사이지만, 양당제하에서 내각제를 한다는 것이 문제를 야기할 수…
어떻게 불쾌한 마음을 극복할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겸허’한 태도로 극복해야 한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지적한다고 어떻게 화를 낼 수 있겠는가? 지적하는 쪽이 친절하지 않다 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음은 냉정한 ‘판단’으로 극복해야 한다. 누가 지적하든 안하든 역시 원래 너 그대로이며, 만약 네가 자신을 지나치게 존경하고 있다면 자기 평가를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이웃이 아무리 불친절해도 실제의 우리는 어디까지나 실제의 우리이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용서’에 의한 극복이다. 우리에게 악을 행하고 우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선으로 대하고 선으로 분노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극복함으로써, 그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자신을 통제할 수는 있다. (아미엘) 선량함을 띠지 않는 눈길에 무슨 가치가 있으랴? 선량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부(富)이다. 평범한 재산은 선인이나 악인이나 다 가지고 있다. 참된 길에 서서 선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라. 가령 네가 모든 종교의 교리를 다 알더라도, 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선량함뿐이다. 선량한 마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은 결코 어두운…
글처럼 그리운 게 또 있을까. 그립고 그리워서 보물 같은 게 또 있을까. 보물은 박물관에만 있지 않아서, 달력에 적힌 글 몇 줄도 보물일 수 있다. 이를테면 농촌지도소에서 농민들에게 배포한 달력도 그중 하나다. 그림은 없고 숫자만 커다랗게 인쇄된 달력에는, 음력과 절기와 국경일이 적혀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날마다 그 달력에 기록을 하였다. 날짜가 인쇄된 네모난 칸 안에 ‘찹쌀 한 말(육손네)’, ‘비료 열 포대(화원댁)’, 같은 글귀를 써넣었는데, 빌린 것과 빌려준 것의 수량과 액수를 분명하게 밝혀 적었다. 빼곡하게 적힌 글귀가, 그러니까 잡다한 기록들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음을 그녀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시골집 방에 걸린 달력이 그녀의 눈에 처음 밟혔다. 하마터면 불쏘시개로 태워지고 말았을 달력이었다. 아버지의 하루는 무엇으로 기록되었을까. 어떤 생각들이 아버지의 하루를 채웠을까. 달력을 들추다 그녀는 울고 말았다. 이빨 틈으로 흘러나오는 울음의 정체는 부끄러움과 죄송함이었다. 달력 앞장의 기록이 거래내역이라면 뒷장은 금전출납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매달 수입과 지출내역을 달력 뒷면에 적었다. 적을 때, 모아두어야
여름이 깊었다. 에어컨 환경이 좋은 도서관으로 가는데, 인도블록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지렁이 사체가 눈에 띈다. 구리철사 토막인가 싶었다. 멈춰서 보니 지렁이 사체가 분명하다. 한 생명의 계절적 희생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어느 신문에서 김형석 씨가 쓴 ‘100년 산책’을 읽게 되었다. 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워싱턴 DC 부근 마운트버넌이라는 곳에 있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저택과 농장과 그의 묘를 보고 소개한 글이다. 생전의 워싱턴은 자기를 내 농장 집 내가 지정한 장소에 그를 묻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국회의사당으로 옮기지 못하고 그의 유언대로 자기 저택 왼쪽 돌들이 쌓여 있던 경사지에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주변의 간곡한 연임 권고를 거부하고 사저로 돌아와 살았을 때다. 찾아온 손님들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면 워싱턴은 ‘나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지금 백악관에 계십니다. 이름만 부르기가 어색하면 ‘파머(farmer농부)’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살아 있을 때 창고 비슷하게 사용하던 건물 안에는 그의 애용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장 눈에 띄
알다시피, 한겨레신문은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다 군사정권에 의해 해직된 기자들이 만든 신문이다. 그 해직기자들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분이 바로 리영희 선생이다. 선생은 한겨레신문의 창간 멤버로서 재정적인 면에서의 기여는 물론이고 뼈를 깎는 실천으로 저널리스트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한겨레신문이 추구해야 할 정신과 방향을 제시해준 셈이다. 선생의 저널리즘 철학은 한 마디로 해서 진실의 추구였다. 선생이 『역설의 변증』(1987)에서, “이 글들을 쓰는 목적은 오로지 진실로 통용되고 있는 허위의 진상을 밝혀내고, 허위의 모임으로 이루어진 ‘허위구조’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회고한 글이다. “사실 말이지 나에게 있어서 글 쓰는 작업은 자료수집이 거의 90퍼센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자니 그 고생은 보통이 아니었다. 매 순간마다 국제관계 전반에 대해서 날카롭게 살펴야 하고, 하찮은 것같이 보이는 어떤 힌트가 있어도 그것이 빙산의 일각으로 돌출한 그 수평 아래 숨어 있는 거대한 진실의 덩어리를 찾아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이런 일은 소위 국제정치학자들은 하지 않고 또 하지도 못하는 일이다.”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
-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연구 “계엄령으로 군대가 조선인을 죽이기 시작하지요. 동시에 경찰은 조선인 폭동을 선전합니다. 이를 본 민중은 자신들도 나라를 위한다며 재향 군인, 청년단, 소방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자경단을 조직합니다. 그들은 조선인 사냥에 나서서 조선인이 판명되면 죽였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과 관련한 재일 사학자 강덕상(姜德相)의 진술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단지 보통의 일본인들이 저지른 학살이라기보다는 이 학살에는 국가가 개입, 주도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이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계엄령은 내란 또는 전쟁 때 발령됩니다. 그런데 왜 지진이라는 자연재해에 대해 계엄령이 발령되었을까? 그리고 내란을 일으킨 자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러한 질문을 실마리로 해서 강덕상은 1975년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을 펴낸다. 국가에 의한 학살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진행되었는지를 사료(史料)와 증언으로 분석한 결과물이다. 그는 이후 『여운형 평전』을 2002년부터 시작해서 2019년까지 무려 17년간 네 권까지 마무리해서 출간하게 된다. ‘강덕상’이라는 이름이 국내까지 뚜렷하게 알려진 결정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30% 초반대로 하락했다. 조중동은 사설로 ‘인사, 검찰, 대통령 발언, 김건희’를 원인으로 지적했다(미디어오늘, 7.13자). 지지율 회복을 위해 여권은 ‘서해 공무원 피살’ ‘어민 북송’이라는 ‘신북풍 몰이’를 전략으로 삼은 듯하다. 하지만 매카시즘(초보수적인 반공주의)에 불과하다. ‘해묵은’ 전술이다. 어떻게 해야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할 수 있을까?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된 ‘김건희 여사’는 윤 대통령의 나토회의 참석 후 ‘두문불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대통령 이미지(President Identification)’도 관리를 해야 한다. ‘인사’, ‘검찰’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대단한 사건도 아닌 대통령의 발언, 혹은 복장 등이 대단한 문제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하지만 도어스테핑 중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냐?” “(지지율) 의미 없다. 신경 안 쓴다”는 발언은 대다수의 사람이 ‘틀렸다’고 봤다. 그것은 상식이다. 국민과 언론이 두렵지 않다는 뉘앙스가 풍겼다. 대통령의 발언은 영향력도 영향력이지만, 국민적 관심거리다. 대통령 발언의 중차대함을 간과한 과실(過失)이 아
미국 언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아베 총살과 관련해 우리나라 안중근 장군의 이등박문 총살(1909년)을 언급한 것을 두고 국내 일각(一角)에서 ‘말’이 일고 있다. ‘이토(이등박문)를 처벌한 것은 독립운동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WSJ가 말하듯 ‘정치폭력 역사’에 해당하지 않으니, 미국인들의 역사인식 부재(不在)가 드러났다는 얘기다. 먼저 명확히 할 것이 있다. 안중근 장군의 이토 총격은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그것처럼) 한일(韓日) 간 전쟁에서의 전투행위다. ‘독립운동’을 넘어서는 뜻이다. 우리 임시정부 김구 주석 등과의 협의를 거친 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 두목을 처벌한 하얼빈 역의 총격은 당연하다. 또 당당하다. 그게 그거 아녀? 할 이 있을까? 우리나라를 남한(South Korea)으로 부르는 것과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으로 부르는 것의 차이보다 훨씬 큰 의미의 차이가 있다. 미국(언론)의 ‘정치폭력’ 시각(視角)도, 국내 일각의 ‘독립을 위한 민간운동(캠페인)’ 시각도 교정(矯正)되거나 조정(調整)되어야 마땅하다. 다만 처절한 전쟁이었다. 흔히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할 때) 했듯, 뒤통수를 몰래 봐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