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헌, 이어령 그리고 남정현 얼마 전에 돌아가신 두 분의 고인(故人), 한승헌 변호사와 이어령 선생은 동갑내기 1934년생이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을 하나로 엮어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활동영역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과 한 살 터울이자 조금 앞서서 고인이 된 작가 남정현 선생(1933년생)의 작품 『분지(糞地)』는 이 세 사람을 한 자리에 모은다. 1965년, 법정에서였는데 셋 다 30대 초반의 젊은 시절이었다. 『분지』는 홍길동의 10대손 홍만수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우리와 미국의 관계를 우화적으로 묘사한 작품인데 반미(反美), 북한 동조 혐의로 반공법 위반 재판을 받게 된다. 이 시기 박정희 정권은 한일협정을 맺는 과정에서 대일 굴욕외교라는 지탄과 함께 국민적 저항에 처해 있었다. 그런 터에 미국에 대한 비판적 소설이 나왔으니 그냥 둘리가 없었다. 공안통치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제목은 ‘똥 덩어리가 넘치는 땅’이라는 뜻이고 그건 당대의 한국 현실을 비유한 것이 틀림없으니 말이다. 뭔가 국면을 바꿀 건수가 없을까 싶은 때에 잘 걸려든 것이다. 한일협정반대의 선두에 서 있는 지식인, 문인들에 대한 탄압의 구실 하나가 생
1. 1974년 9월, 미국 제 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한 달 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발표했다. 일요일 저녁 교회에서 돌아온 다음 (개인적 고민이 깊었다는 뜻이리라) 행한 조치였다. 논란이 분분했다. 하지만 사면을 단행한 포드를 향한 ‘인간적 비난’은 드물었다. 해석은 천차만별이었으나 정치적 맹우였던 닉슨에 대한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한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3월 15일 정경심 교수에 대한 사면을 요청하는 글을 이 칼럼에서 썼다. 법적, 정치적, 국민통합적 관점에 있어 당위성을 곡진히 말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문 대통령의 의중을 짐작케 하는 일은 있었다. 4월 25일 열린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내놓았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사면 등에 대해서는 국민 공감대가 판단기준”이며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하지만, 결코 대통령의 특권일 수는 없다”라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정 교수에 대한 사면이 마치 부당한 특권행사일 수 있다는 논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스로 손으로 박근혜 전…
금융은 필요하지만 꼭 은행은 아니다. 1994년 빌 게이츠가 한 말이다. 무서울 정도의 혜안이다. 미디어로 치환하면 좋은 콘텐츠를 보고 싶지만 반드시 지상파 방송일 필요는 없다가 된다. 플랫폼 혁명에서 시작한 생태계 변화는 유통, 금융을 넘어 미디어까지 변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방통위 조사를 보면 10대는 일상생활의 필수매체로 스마트폰 96.9%, TV 0.1%, 60대는 스마트폰 44.1%, TV 54.3 % 를 꼽았다. OTT이용률은 2019년 52%에서 2021년 69.5%로 급상승했다. 넷플릭스 이용률도 19년 4.9%,20년 16.3%,21년은 24%가 되었다. 기존 방송 내부를 들여다보면 현재 150여 개 유료방송채널 중 대부분이 영화, 드라마, 스포츠, 음악, 오락 채널이다. 다큐채널이 몇 있지만 지상파 다큐를 구매 편성하는 채널일 뿐이다. 보도, 교양, 오락이라는 방송법상의 거시적 장르에서 교양이라 부를 수 있는 프로그램은 찾아볼 수 없다. KBS의 문제는 보도가 야기한 이미지에 있다. 정권과의 관계에서 진보, 보수가 바뀌어도 친여적 보도 태도가 공영방송의 이미지를 훼손해 그 상흔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다른 유료방송채널이 하지 못하는…
중국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의 4대 구성요소로서 파이브아이즈(five eyes), 쿼드(Quad), 한미일 3국 안보동맹, 그리고 한미, 미일, 미·필리핀 등 양자 군사동맹을 든다. 그리고 이를 5-4-3-2 세력 진법, 다시 말해서 오목(五目)동맹 – 사각체제 - 3각 안보동맹 – 쌍무군사동맹 진법이라고 지칭한다. 파이브아이즈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앵글로 색슨 5개국으로 구성된, 최고 수준의 안보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동맹체이다. 쿼드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4개국인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미일 3국 안보동맹은 오바마 정부에 이어서 바이든 정부가 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한미일 공동안보협력체이다. 한국은 진법 ‘3-2’와 관련되어 있으며, 중국이 이를 자국 포위전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3각 안보동맹은 동맹 또는 군사협력의 수준에서 미국 주도로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이 문제에 대하여 긍정적인 발언을 한 바 있으나, 당선 후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하여 신중 모드로 전환하였다. 문제는 한미동맹이 중국이 인식하는 바와 같이 대중국 동
의심할 여지없는 행복의 조건은 노동이다. 그 첫째는 자기가 좋아하는 자유로운 노동이며, 둘째는 식욕을 돋우고 깊고 고요한 잠을 자게 해주는 육체노동이다. 세상 번뇌가 없는 낙원같은 생활이나 동경해 마지않는 호화로운 생활이 매력적인 것은 틀림없지만, 둘 다 어리석고 부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쾌락만 있는 곳에는 결코 진정한 쾌락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틈틈이 찾아오는 짧은 휴식만이 진정으로 즐겁고 또 유익하다. (칸트) 육체노동은 지적인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적 활동의 질을 향상하고 이를 자극하고 촉진한다. 지적인 활동과 상상력의 활동은 둘 다 특수한 활동으로, 그 천직이 주어진 자에게만 의무이고 행복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천직인지 아닌지는 학자이든 예술가이든 거기에 몸을 바치기 위해 자신의 평화와 안녕을 얼마나 희생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영원한 게으름은 지옥의 고통으로 생각해야 하거늘, 사람들은 반대로 천국의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다. (몽테뉴) 가장 평범한 노동에 있어서도, 인간의 영혼은 그가 일을 시작하자마자 차분히 가라앉는다. 의혹, 비애, 상심, 분노, 절망...... 가난한 자도 남들처럼 이런 모든 악령에 시달린다.
상대에 대해 나쁜 감정이 일어나면 그를 비난하고 싶어지는 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난을 하기 시작하면 그에 대한 나쁜 감정이 더 커지기 마련이다.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퍼져 있는 미신 중의 하나는 인간은 저마다 정해진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착한 사람, 나쁜 사람, 현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열정적인 사람, 냉철한 사람 등이 있다는 미신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일 때보다 좋은 사람일 때가 더 많고, 어리석을 때보다 현명할 때가 더 많으며, 냉정할 때보다 정열적인 때가 많다거나 그 반대로도 말할 수는 있지만, 만약 어떤 사람은 언제나 선량하고 현명한데 다른 사람은 언제나 사악하고 어리석다고 말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너는 이웃의 약점을 보고 있지만, 그의 선행 하나가 너의 한평생보다 더욱 신을 기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네 이웃이 불행히도 죄에 빠졌을 때, 너는 그가 그전에 흘린 눈물도 모르고 그 뒤의 참회도 모르며, 그의 슬픔과 상심의 목격자인 신은 그를 용서했는데도 너는 여전히 그를 비난하고 있다. (성현의 사상)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양쪽에 다 잘못이 있다. 만약 한쪽이 완
5월 9일이면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게 된다. 한국사회의 정치권력이 바뀌는 순간이다. 정권이 바뀌면 우리 사회의 많은 곳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책의 기조는 물론 행정부와 기타 국가기관의 인적 구성도 대폭 물갈이되는 것이 관례이다. 원칙적으로 현 대통령이 임명한 기관장의 임기는 보장되지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미래 권력과 코드가 맞는 인사가 중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같은 기관들이 새로운 기관장을 맞이하게 된다. 이 와중에 올 7월에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2002년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웠고 현 문재인 대통령이 출범을 마무리 지은 교육계의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과정 제정·고시 권한 등 미래 한국사회의 교육정책을 디자인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디자인한 교육정책은 교육부를 통해 실행되고 각 시·도 교육감은 교육부와의 협조체제를 통해 교육대계를 만들어갈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을 기획한 국가교육위원회는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그 인적구
윤석열 당선인의 한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윤 당선인이 지난 4월 20일 tvN의 토크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자신의 삶과 당선인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퀴즈’는 방송인 유재석과 김세호가 진행하는 tvN의 간판 예능 중 하나로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보여’ 주면서 퀴즈를 통해 정보와 재미도 제공하는 ‘명품’ 프로그램이다. ‘유퀴즈’는 2022년 4월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한국인 방송프로그램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고, 유재석은 지난 2021년 《시사인》이 발표한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조사에서 손석희 앵커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 20일 방송된 ‘유퀴즈’ 150회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라는 제목으로 갑자기 인생의 방향을 바꿔 성공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날 윤 당선인은 첫 게스트로 등장하여 약 18분간 달라진 일상, 고시 9수와 검사시절, 야식과 민트초콜릿, 고민거리 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진행자들은 크게 당황한 듯했고 ‘유퀴즈’ 특유의 밀당이나 재담도 보이지 않았다. 윤 당선인도 ‘할 말’이 있어 나온 사람 같지는 않았다.
굳이 점잖을 필요 없었다. 정치인의 아들이 퇴직금조로 50억 원을 받고, 부친을 통한 농지법 위반, 배우자의 몇 십억 원 주가조작 혐의, ‘이해충돌’ 상임위 소속 의원 가족회사의 몇 천억 원 관급공사 수주에도 “어쩔 건데?”라는 뻔뻔했던 표정들. 국민의 절반은 짐짓 모른척했다. 이름 모를 대학의 표창장 하나로 온 세상이 들썩거렸었건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건들거리는 언행은 대수도 아니었다. 그저 절반의 국민은 문재인 정부가 싫었다. 부동산정책이 싫었다. 가치와 이념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듯한 ‘선비다운’ 모습에 피로했다. 대통령의 권한은 제대로 사용도 못해봤다. 되레 국민의힘과 절반의 국민으로부터 ‘독재’라는 비난을 받았다. 억울할 것이다. 그런데다가 대체로 민주당을 지지하던 서울시민도 등을 돌렸다. “이번 생에서 집을 마련하기는 글러 먹었어”라는 무주택 청년, 세금을 왕창 내는 게 두려운 주택 보유자들은 민주당을 외면했다. 경기도의 신도시 주민도 대동소이(大同小異)다. 이들의 입장 변화는 불문하고, ‘지선 빅매치’는 한 달여를 앞두고 있다. 언론은 ‘제2의 대선’이라며 호들갑이다. 하지만 민주당 인사들은 여전히 점잖다. 후보들이 ‘실용주의’를 주창
5년의 임기를 거의 마쳐가는 대통령의 얼굴은 부어 보였고 표정은 굳어있었다. 역대급 임기말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통령은 마지막 대담에서 하얗게 불태우고 재만 남은 신갈나무 그루터기처럼 보였다. 그는 때로는 짙은 아쉬움과 회한을 비치기도 하였고 한편으론 작심한 듯 세간의 비판에 항변하고 깊은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나는 대담을 보면서 분노를 억누르며 말하고 있음직한 대통령의 항변과 우려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스스로 아이러니라 언급했던 야당후보로 변신한 검찰총장의 당선! 곧바로 숱한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벌이는 집무실 이전을 둘러싼 기행들, 또 차기정권 각료인선에서 불거지는 목불인견의 잡음들을 지켜보는 대통령의 마음은 어떠할까? 탄핵이란 폐허를 딛고 애써 쌓아 올린 대한민국이란 공든 탑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밤잠을 이루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나를 안타깝게 만든 것은 정작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패인을 묻는 질문에서 “나는 한번도 링 위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는 대목이었다. 아니.. 선거는 힘을 모아 교대로 싸워야 하는 태그매치였다. 야당은 합종연횡으로 태그매치 상대까지 바꿔가며 링에 오르는데 여당은 현직 대통령이 링을 떠나버렸으니 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