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포시 속달동에 있는 동래정씨 동래군파 16대 종손인 정운석(98)옹과 그의 9남매가 종택(宗宅·경기도문화재자료 제95호)과 그 관련 대지 및 전답(1만8천176㎡)을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에 기증키로 하고 3일 오후 2시 종택에서 체결식을 가진다고 한다. 공시지가로 따져 35억 2천만 원, 시가로는 80억 원이 넘는다. 군포 수리산 동쪽 자락에 자리 잡은 종택의 역사는 조선 중기의 문신 정광보(1457~1524)가 마을에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현재 안채와 사랑채, 작은 사랑채, 행랑채 등 5동 60칸이 남아 있다. 안채는 정조 때인 1783년, 사랑채는 고종 때인 1877년에 고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살림집의 전형적인 특징인 맞배지붕의 아름다운 외관을 갖췄다. 정운석 옹은 일찌감치 자식들에게 집과 농지의 소유권을 넘겨줬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남을 위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 형제들은 6~7년 전부터 종택을 공적(公的) 공간으로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번 기증의 주역이기도 한 셋째 용수(63)씨가 넌지시 종손인 큰형과 둘째형에게 묻자 형들이 선뜻 동의한 것이다. 형제들은 소유권을 포기함으로써 종택을 영원히…
조현오 경찰청장이 ‘화살표 3색 신호등’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 중이다. 조 청장은 “우리나라는 보통 3~4개씩 도로에 차로가 많다. 운전자들은 우회전할 때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며 “제대로 정착되면 이런 혼란을 걷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신호체계 변경으로 인한 혼란과 예산낭비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홍보해 더 이상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들과 네티즌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다음 아고라 토론게시판을 비롯한 트위터 등 실시간 소통미디어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그 실효성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굳이 돈을 들여 바꾸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이가 없네”, “누구에게 편리한 것인가”, “더 혼란스럽다” 등의 내용이다. 27일 경기지방경찰청의 ‘화살표 3색 신호등’ 시연회를 본 취재기자로서도 의문이 든다.. 차로별로 신호등을 제각각 설치하고, 좌회전 차로에서는 화살표 신호등을 설치한단다. 하지만 좌회전 2개 방향이 있는 교차로에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구상도 못한 상태며, 차로별로 제각각 설치하다보면 설치비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차로가 많은 구간의 설치방안도 두리뭉실하다. 특히…
고려시대는 여자의 지위가 남자 부럽지 않았다. 그런 만큼 이혼과 재혼도 자유로웠다. 재혼을 한 부모를 둔 자녀들도 사회진출에 차별을 받지 않았고, 여자가 전(前) 남편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하는 일도 꽤 있었다. 심지어 성종과 충숙왕, 충선왕 등은 이혼을 한 여자들을 왕비로 맞아들이기도 했다. 중국 송나라의 서긍이 고려를 방문한 뒤 돌아가 쓴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인들은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진다’라는 기록이 나올 정도였다. 조선시대는 이혼이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적인 규범이나 제도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아내가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잘못을 저질렀어도 ‘삼불거(三不去)’에 해당하면 이혼을 할 수 없었다. 또 이혼을 하려면 왕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더구나 조선시대 초기에는 재혼이 가능했으나 성종 16년(1485) 재혼이 법적으로 금지되며 중기 이후로는 이혼한 여자는 자식도 남편에게 빼앗기고 남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했다. 조선시대에 이혼이 어려웠던 것은 조선사회의 가치관이 유교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옥
‘혜이부지위정(惠而不知爲政)’.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는 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그만큼 정치가 어렵다는 말이다. 정치인에게 덕(德)은 필수이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 고대 정나라의 정치가로 자산(子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진 재상으로 이름이 나 있었는데 그가 진수와 유수를 지나다가 백성들이 물을 건너기 위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자기의 수레에 함께 타고 건너게 해주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러나 맹자는 자산의 이야기를 듣고 정치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자산은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를 할줄 모른다. 11월에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작은 다리를 놓고, 12월에 수레가 지나 다닐 수 있는 큰 다리를 놓으면 백성들이 물을 건너는데 근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면서 백성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치는 삼류정치라고 비판했다. 맹자는 백성들을 수레에 실어 냇물을 건너게 하는 것은 온정을 베푸는 것이지 정치가 아니라며, 백성들의 농한기를 이용해 인도교를 세우고, 수레가 다닐 수 있는 차교를 시설하면 백성들이 물을 건너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 될 수 있는데 몇 사람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으로 소임
이번 4.27재보궐선거 결과는 민심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현 체제와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메세지를 강력하게 전달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텃밭’인 분당을을 잃은 것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데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며 패인을 분석했다. 성장 소외계층의 반발, 20~40대의 외면이었다. 분당을에서 출마를 준비했던 정치초년생인 장석일 예비후보는 “분당2세대인 20~30대의 표심을 잃지 못하면 ‘천당 아래 분당’이라며 전통적인 한나라당 텃밭으로 여겨지던 분당도 외면받을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지만 이를 귀담아 듣는 당직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나라당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젊은 대표론’이 급부상하면서 혼란에 휩싸이고 있다. 한나라당 참패로 막을 내린 4.27재보궐선거 결과는 적지 않은 정치권의 빅뱅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한나라당에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젊은 대권후보 반열에 오른 김태호 당선자의 정치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당선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차기 대권후보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내에서도 당당한 영역을 구축하게 됐다. 분당을에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중년 이상으로 진입한 세대들은 바쁘고 삭막한 도시를 떠나 흙냄새 나는 전원에서 말년을 보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은퇴를 앞두고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우선 전원주택이 들어설 땅이 있어야 되고 전원주택이라고는 하지만 건축비가 만만치 않다. 또 농사경험이 없는 도시인들은 농촌이나 산간에서 무엇을 하고 지내야 할지도 막막할 것이다. 귀농, 전원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지만 막상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정부는 극심한 취업난과 인구의 고령화가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에서 귀농, 귀촌을 지원하는 전원주택 구입비 일부 지원, 귀농교육 및 컨설팅 제공, 농촌 체험 프로그램 등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한 조사에 따르면 도시인들은 여유롭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여가형, 노후생활형 전원주택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이 아니므로 그저 텔레비전에나 보는 부자들의 호사처럼 여길 수밖에 없다. 이런 실정에서 경기도가 전원생활을 꿈꾸는 도시민의 큰 걸림돌인 토지 구입과 주택
진도 9.0의 강력한 대지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이후 일본 열도와 주변의 나라들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후쿠시마 원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능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핵폭격 피해국이면서 지진의 나라인 일본이 지진파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핵발전소를 54기나 겁 없이 지어 운영하다가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 버렸다는 것이다. 일본이 강진과 전투기의 충돌에도 절대 안전하다고 자랑하던 후쿠시마 원전의 5중 차단벽은 지진으로 촉발된 쓰나미 앞에서 맥없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핵사고로 기록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건을 몇 배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후쿠시마의 6기의 원자로 중 일부가 이미 노심 융용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노심 융용이 시작되면 현재의 기술로는 방사능 유출을 막을 방법이 없어 대기와 해수를 통해 퍼져나가는 고농도 방사능은 일본 열도와 주변국뿐 만 아니라 전 세계를 지속적으로 오염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핵은 인간이 개발한 것 중 가장 위험한 물질에 속한다. 원자로를 운영하는 전력회사와 핵발전
내가 처음 그를 만난 것은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날이었다. 제대 후 서울로 올라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던 때였다. 출퇴근 시간이면 버스 안에서 그를 종종 만났으나 서로 말은 없었다. 그는 평소 말은 적은 편이었으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다. 내가 바쁜 일로 밤샘을 하던 어느 새벽이었다. 그날따라 당직이었던 그는 창문으로 비추는 불빛을 보고 확인 차 왔다고 하면서 책상 위에 널려 있는 서류를 만지작거리다 도와 줄 것이 없냐고 물었다. 그는 의자를 당겨 내 곁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 이라고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아주 가까워 졌는데 얼마 안 돼 그는 내가 있는 부서로 옮겨와 같이 근무를 하게 됐다. 그는 급한 일 일수록 침착하고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했다. 하지만 그런 장점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타내 보이기를 꺼려했으며 마음은 언제나 겸손하고 진실했다. 그의 생활은 항상 바빴지만 매우 부지런 했다. 그해 가을 어느 날, 전철 안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 그의 자택을 가게 됐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
걷기 열풍이다. 수원에는 걷기에 제격인 곳이 두군데있다. 하나는 5.74km의 화성 둘레길이고 또 하나는 길이 2.72km의 수원천 길이다.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을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 생태하천은 광교산에서 발원한 물이 광교저수지를 거쳐 화성시 경계지점인 황구지천으로 흘러든다. 이곳에서는 수원천 복원사업이 진행중이다. 수원시는 26일 복원사업이 진행중인 영동사거리 수원교에서 현장 브리핑을 열고 오는 9월말까지 복원사업을 완료할 계획임을 밝혔다. 수원천 복원사업은 콘크리트로 복개된 매교~지동교 780m 구간을 철거하고 서울 청계천처럼 도심 생태하천으로 바꾸는 사업으로 지난 2007년 9월부터 676억원이 투입된다. 이 복원구간 공사가 완료되면 물길 따라 걷는 수원시민들의 걷기열풍이 재연될 조짐이다. 수원천 둔치에는 시민들이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할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하광교지역에서 시내쪽으로 출퇴근 하는 시민들의 자전거 출퇴근로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수원천 길이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길이라고 본다면 화성 둘레길은 200년전 우리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역사 탐방길로 손색이 없다. 본사는 오는 30일 토요일 오전
광릉수목원에 있는 ‘숲의 명예전당’이라는 곳에 가면 조형물에 여섯 사람의 동판 초상이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산림 발전에 공헌을 한 주인공들이다. 먼저 눈에 띄는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다소 의외인 듯 하지만 그가 재임 중 산림녹화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하면 명예전당의 첫 번째 자리에 있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오히려 엉뚱하다 싶은 초상은 다섯 번째 인물이다. 뿔테 안경이 걸린 오똑한 콧날이 아니더라도 풍기는 인상부터가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정희로부터 시작돼 나무할아버지 김이만, 육종학자 현신규, 독림가 임종국으로 이어지는 앞 서열의 네 명과 맨 끝자리에 있는 SK그룹 창업주 최종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낯선 얼굴의 이방인은 누구일까. 또 무슨 이유로 전직 대통령과 함께 국가적인 기념물에 이름을 올리게 됐는가. 이런 의아심을 갖고 초상 아래로 시선을 내리면 ‘민병갈 像’ 네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계속해 초상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양각돼 있다. ‘이 땅과 나무를 사랑한 민병갈(Carl Ferris Miller) 1979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 1962년부터 40여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충남 태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