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싸움질하는 자는 모두 자기는 옳고 남은 그르다고 여긴다. 무릇 군자이면서 소인과 더불어 서로 적해(賊害)한다면 이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여우로써 이미 죽거나 도망간 개나 양을 대신하는 격으로 그 몸이 스스로 도탄(塗炭)에 빠질 것이니 이 어찌 심한 과실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도 지혜로운 자라고 여기니 이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어디 있겠으며, 또 스스로 그것을 이익이 되는 줄 알고 있으니 손해가 이보다 더 막대한 것이 어디 있겠으며, 이것을 영광으로 여기니 이보다 더 욕됨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옳은 일을 했을 뿐 그릇된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吾能於是而不願於非). 그러나 그가 한 행동을 잘 살펴보면(考之行事) 옳은 일을 적고 그른 일은 많다(於是者寡)란 말이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해 한 일도 자세히 따져보면 옳은 것보다 그른 것이 더 많다. 그것은 쉽사리 자기 주관으로 바라보고 행사하기 때문인데, 특히 경계해야할 일은 국민을 위한 정책입안자적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로 인해 무슨 일이 발생하고 난 뒤에 죄의식 같은 것을 가져봐야 무슨 소용 있으며, 개개인에게 있어서도 시과비중을 새겨둔다면 인생에 있어 허물은 가벼질 것이
겨울이 제 모습을 보여주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농촌에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것 없이 계절의 행보에 맞추어 산다. 가을걷이를 마치면 김장을 하고, 메주를 쑤고, 가을 떡을 해서 고사도 지내고 집집마다 돌려가며 나누어 먹으며 한 해 농사를 마무리 하는 게 보통이다. 그 사이에 누구네 혼사나 회갑 같은 경사가 끼어지는 것도 대부분 이때쯤이다. 물론 예고 없이 찾아드는 일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평온하게 저무는 농촌을 시끄럽게 하는 일이 순간에 벌어졌다. 그날도 고사떡을 해먹은 어느 집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처럼 한가하게 웃음보따리를 펼치고 있었다. 그 중 한분의 손자가 한참이나 재롱을 부리다 진저리를 치기에 자연스럽게 한쪽에 있던 술병을 대주었다. 첫돌 지나 막 걷기 시작하는 남자 아이가 소주병에 쉬를 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겨울이라 기저귀 속에 있던 고추가 귀여워 한 할머니가 장난을 시작하셨다. 방안에 앉은 모든 사람들에게 고추를 따다주는 흉내를 내면 모두들 맛있다고 먹는 흉내를 내면서 예쁘다고 아이를 어르고 노는 일은 심심풀이 이상 재미있었지만 불씨가 될 말을 묻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해가 서향미닫이로 들어오면서 모두들…
우리사회는 전통적으로 술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정서를 가지고 술로 인한 실수라면 웬만한 탈선행위도 쉽게 용서를 받고, 취중에 한 행동에 대해선 관용까지 베풀며 그다지 책임을 묻지 않는 게 보편적으로 만연해 있다. 근간의 쌀쌀해진 날씨와 연말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는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욱 조장하여 의외로 많은 음주운전자들이 단속되곤 한다. 그 저변에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음주문화가 그 한몫을 차지하고 있어 사회적 개선이 절실해 보인다. 모든 대소 모임에서는 날이 새도록 취하게 마시는 것이 마치 큰 전투에서의 전과로 여겨지고 ‘어제는 몇차까지 술을 했다’느니 ‘술값만 몇 백이 나왔다’는 게 자랑거리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잘못된 음주문화 때문에 건강을 해침은 물론 인사불성이 되어 길에 누워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음주문화에 편승하여 공공연히 자행되는 음주운전은 마치 사지(死地)를 탈출한 투사의 무용담처럼 ‘어느 곳의 음주단속을 슬기롭게 피해 나왔다’느니, ‘새벽 몇시에 통과하니 경찰이 없었다’느니, 한술 더 떠서 ‘술
/허만하 나는 골목길을 택했다. 골목에는 녹슨 양철 처마와 불빛 꺼진 꾸부러진 창과, 팔짱 낀 발자국 소리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신의가 있다. 골목 끝에 간신히 그곳만이 환한 가게가 있다. 잠드는 일을 태만이라 믿는 반질반질한 사과 알들이 베개 맡 책갈피처럼 잠들지 않고 있는 심야의 가게. 지워진 어릴 적 기억 속 풍경의 한 단면이 망각의 깊이 밑바닥에서 정다운 오렌지 빛 삼투압을 띄고 조용히 수면 위에 떠오르는 별빛 얼어붙는 겨울 하늘 골목 끝. -- 허만하,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 문예중앙 2013 우리 곁에서 자꾸만 사라지는 골목이 그립다. 꿈속에서도 복기되던 어린 날들의 골목이 사라지고 있는 도시가 퀭하다. 골목마다 끓어 넘치던 따뜻한 밥냄새, 양파조림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서 환하다. 어느 날 걸었던 북창동 좁은 골목길이 기억에 남아 있다. 좁은 길이 구부러지고 구부러져 막다른 골목에 조그맣게 달려있던 가게, 가게 옆 한그루 나무가 깃발처럼 서있던 모습이 오래된 편지에 붙어있는 우표 같이 반가웠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발자국 소리 정겨운, 고만고만하게 마주한 집과 어깨를 나란히 한 집에서 튀어나오는 하루와 마주치기도 하는 좁은 골목은…
지난해 오래된 친구가 세상을 떠나, 다른 이들보다 일찍 상가(喪家)에 앉아, 쪼그리고 앉아, 둘만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차마 돌도 되지 않은 핏덩이를 남기고 발걸음이 떨어지더냐, 부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망자(亡者)와의 대화가 좋은 건 내가 끝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컥컥, 무엇인가 목젖을 계속 쳤다. 여럿이 모여 망자보다 자신들의 이야기에 열중하는 분위기가 싫었던 터라 다른 문상객이 오기 전 서둘러 자리를 떴다. 돌이켜보면 오래된 화두(話頭)였다, 죽음은. 적확한 삶의 진실인 그 벽을 넘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부처에게 기대기도 했다. 해탈의 달인이었으니. 그런데 그는 내게 답을 주지 않았다. 어차피 불립문자(不立文字)니까. ‘스스로 알아서 가라’가 다였다. 당신은 이미 강을 건넜으므로 너는 스스로 배를 만들어서 넘어오라, 뭐 그런 이야기겠다. 밤이면 죽음의 신이 올까, 두려워 거리를 떠도는 사람이 어디 나 하나 뿐일까. 그렇게 죽음은 생방송이었다. 이순(耳順)이 가까워서야 비로소 알았다. 그런데, 자신에게 다가오는 임종(臨終)의 순간을 생방송으로 불립(不立) 아닌 문자(文字)로 중계하는 이가 있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나는 외갓집이 시골이었던 관계로 방학이면 그곳에서 보낼 때가 많았다. 초등학교시절 어느 겨울방학 때 일이다. 역시 외갓집에 있었던 나는 ‘귀한 새끼’ 왔다는 외할머니의 호의(?)에 힘입어 과일이니 떡이니 연일 맛나게 먹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단이 났다. 추운날씨에 급히 먹은 음식이 체한 것이다. 배가 아프다는 호소에 외할머니는 약을 찾는 대신 배를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중얼거리셨다. “할미 손은 약손, 할미 손은 약손.” 하지만 차도가 없자 실과 바늘을 가지고 와서 내 엄지손가락을 묶고, 바늘로 손톱 밑을 따셨다. 급한 나머지 민간요법을 동원한 것이다. 얼마나 아팠던지,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누구나 한번쯤 체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갑작스레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음식이 목에 걸린 듯한 느낌을 동반하는데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그 증상의 고약함을 잘 모른다. 특히 명치 부위가 결리고 아플 때에는 식은땀까지 흐르며 견디기가 더욱 어렵다. 결국 약 먹고 누워야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는데 한동안 트림이나 메슥거림, 구역질이 지속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기 일쑤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체한 음식을…
심신을 닦고 집안을 안정시킨 후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정한다는 뜻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한자성어가 있듯이 가정은 사회의 근간을 이룬다고 하였다. 가정이 건강해야 국가가 건강해진다는 뜻으로, 정부가 근절을 목표로 추진하는 4대 사회악 중 가정폭력이 있다. 가정폭력의 폐해가 매우 심각하여 4대 사회악의 하나로 선정된 사실을 보면 최근 가정 폭력이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증거다. 경기도에서는 매일 129건 정도의 가정폭력 신고를 접수·처리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단순히 말다툼을 넘어 폭력·학대·감금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같은 가정폭력은 개인 문제가 아니므로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정폭력이 자기 주변에서 발생하였을 때 이웃의 가정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경찰에 적극적으로 신고를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아이는 학교폭력·성폭력에도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 여러 연구결과에서 나타났다. 부산 여중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김길태, 여성 20명을 연쇄 살인한 유영철 등도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경험했다는…
미국에서 살 때의 일이다. 1993년 뉴욕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딘킨스 시장이 지고 공화당 줄리아니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과거 민주당 시장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을 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이름으로 뉴욕 시내에 대형 할인점의 개점을 허가해 준 것이다. 민주당 시장들이 대형 할인점의 개점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은 중소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뉴욕 시내에는 길거리마다 잡화가게, 철물점, 구두, 신발, 가방가게들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이들 가게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주는 업소들로서 중산층 형성에 더 없이 소중한 자산이었다. 특히 이 업종에는 한국 이민자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줄리아니 시장이 당선되자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뉴욕 시내에 대형 할인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플러싱의 옛 비행장 자리가 첫 타깃이 됐다. 비행장이 있던 자리니 얼마나 면적이 넓겠는가! 홈디포를 비롯한 내로라하는 할인점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덕분에 최저임금을 주는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졌다. 그 대신 뉴욕시는 엄청난 숫자의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하락하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한국교포들이 하던 잡화점, 철물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브로드웨이 도매상보다 더 싼…
김황식 전 총리는 며칠 전 새누리당 의원 60여명이 소속된 ‘대한민국 국가 모델 연구 모임’에 강연자로 참석해서 “우리 헌법에 왜 국회해산 제도가 없는지 모르겠다”면서 “국회해산 제도가 있었다면 지금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취지의 강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그의 발언 취지는 백번 공감한다. 지금 국회는 도대체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여야의 극한 대립이라는 게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도 여야가 극한적으로 대립하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셧다운이 된 상태가 이토록 오래 지속될까를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의회 해산’ 운운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민주주의란 효율적이지는 못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정치체제라는 사실을 미국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민주주의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하는 이유는,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설득하고 역지사지하며 타협을 이끌어내는 데 상당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