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시 섬돌마을. 해마다 이맘때면 할아버지는 장대 끝에 그물망을 만드셨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던 어린 손주들은 그 주위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갸우뚱거렸다. 마침내 완성. 할아버지께선 마을 뒷동산에 오르셨고, 우리들은 마냥 즐거웠다. 다다른 곳은 감나무 아래. 장대를 높이 곧추세운 그 팔뚝은 세상 모든 것을 떠안아도 흔들림 없을 것처럼 든든했다. 장대 끝 그물망을 잘 익은 감 아래 넣어 한번의 손놀림으로 툭, 감이 떨어졌다. 신기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손주들 손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감은 배급됐고, 세상은 아름다웠다. 할아버지는 그 맛있는 감을 모두 거두지 않고 남기셨다. 가지에 달려있는 감만큼 의문을 남긴 채 그렇게 유년의 추억은 감빛으로 채색됐다. 할아버지의 이상스런 행동을 어슴푸레 눈치 챈 것은 이 시를 만나고서다.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신경림 시 ‘가난한 사랑 노래’ 중에서) 아,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새빨간 감’을 남겼구나, 우리 선조들은. 그래, 할아버지도 추운 겨울을
만월 /배영옥 어머니는 먼 남쪽으로 밥 지으러 가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식은 아랫목은 다시 데워지지 않았다 식구들끼리 달라붙어 서로 몸 뒤채며 체온을 나눠 가지다가 문득, 달그락달그락 그릇 씻는 소리에 문 열고 마당 내다보니 차고 맑은 우물 속 어린 동생에게 밥 한 술 떠먹이고 싶은 고봉밥그릇이 떠 있었다 -- 배영옥, 「뭇별이 총총」, 실천문학 2011 세월의 작은 마디가 또 훌쩍 지나간다. 해가 짧아지고 밤이 길어졌다. 동쪽이 서서히 밝아진다. 새들의 방문이 늦어졌다. 석양은 서둘러 창가로 내려앉는다. 어두워진 귀갓길, 달이 환하게 웃고 있다. 종이같이 얇고 창백한 달은 아직 모자란 조각을 모으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달빛에 지친 몸을 쬐인다. 자꾸만 동그랗게 굽어지는 몸을 힘겹게 펼쳐내며 마른 손으로 찌개도 끓이고 나물도 무쳐서 한 상 차려놓으시고, 아랫목에 밥 묻어둔 채 깜박깜박 졸음에 겨워하시던 어머니. 무딘 손끝으로 전화번호 꾹꾹 눌러 언제 오냐고 보채시던 어머니. 빈자리, 데워지지 않는 자리 달빛으로 내려와 꼭꼭 여며주시는 손길이 그리운, 시리고 맑은 가을이다. /이명희시인
이천시 백사면 이장단협의회가 최근 긴급회의를 소집, ‘백사면 수목장 반대 비상대책위’를 구성하는 등 백사면 수목장지 조성 움직임에 집단 반발하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신둔면 소재 A교회는 지난해 11월 조읍리 산 518-7번지에 수목장 건립을 위한 조성허가를 시에 접수했다. 그러나 해당 지역 주민들이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반발하자 시는 지난 4월 이를 불허가 처리했다. 하지만 A교회 측은 다시 6월 행정소송을 통해 불허가 불복 소장을 접수시켰다. 이에 법원은 지난달 이천시에 패소판결을 내렸다. ‘이미 신청자 주변은 공원묘지로 주변 환경과 조화의 부적절로 볼 수 없고 한솔아파트와 신청지의 이격거리가 먼 점’ 등이 판결내용이었다. 이에 면민들은 역량을 결집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주민들의 반대 운동은 얼핏 님비현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런데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처지도 이해가 된다. 백사면의 경우 장례시설을 비롯해 공원묘지, 시립 추모의 집 등 장사·장묘 시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주민들 간 극한 갈등을 빚었으며 행정력도 크게 낭비됐다. 주민들은 무산됐던 이천시립화장장이 또다시 이 지역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최근 경기도내 용인·화성·김포·수원·남양주 등에 대규모 신도시가 조성됐거나 건설이 진행 중이다. 이들 입주민은 서울에 직장을 둔 이른바 ‘서울 생활권 인구’가 많다. 따라서 서울을 이어주는 대중교통이 원활하게 운행돼야 하지만 광역버스 확충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서울시 측에서 내세우는 ‘도심 혼잡’이 이유다. 실제로 서울시내의 교통정체를 겪어보면 이해가 된다. 그래서 서울도심지역으로 가야하는 버스이용객들은 출·퇴근 시간대 정말 콩나물시루 같은 차내 혼잡으로 인한 극도의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이에 경기도는 지난 2월 파주 운정지구∼서울역을 운행하고 있는 ‘좌석지정 정기이용권 버스’(이하 정기이용권버스) 시범노선을 도내 총 7개 도시로 확대 운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기이용권버스는 1개월 이상 정기이용권을 구매한 회원을 대상으로 좌석을 지정한 후, 출·퇴근 시간대에만 1일 4회 이내로 운행하는 버스다. 도는 이 버스가 도민들의 쾌적한 출·퇴근을 도울 뿐 아니라 자가용 출퇴근자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앞으로 정기이용권버스 신규 노선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었다. 도는 파주 운정신도시∼서울역 노선에 이어 파주·
정부가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최우선 국정목표로 내세우면서 창조경제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을 재점화시키고, 고용 없는 성장에 대응하며, 범정부 국정과제인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거 모방경제에서 창조경제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서는 기업은 과감히 창조적인 마인드로 세계적인 제품을 생산해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이루는 선순환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창의성을 갖춘 창업기업이 우선적으로 많이 생겨나는 것이 필요하다. 창업은 경제의 혁신성과 유연성을 제고시키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시켜 경제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무한상상 아이디어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창업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초기에는 국가 차원의 지원이 중요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 실천전략 중 그 핵심도 개인과 기업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창업 또는 사업화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창업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다. 지난 5월 중기청이 정부합동으로 발표한 벤처·자금 생태계 선순환 방안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다행히 새 정부 들어서 그 동안 추진해온 시책의 효과로 신설법인 및 벤처기업
우리의 속담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하지 않았던가. 옛 詩(시)에도 떠나와 멀어져 버린 고향을 바라보면서 애달프게 몸부림치며 그리워한 내용이 있다. “성문을 나서서 바라보니 보이는 것이라곤 언덕과 무덤뿐이네(出郭門直視但見丘與墳). 옛 무덤 뭉개져서 밭이 되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베어져서 장작이 되었네(古墓與爲田 松佰최爲薪).” “사시나무엔 슬픈 바람이 휘몰아쳐 쓸쓸히 사람의 애간장을 끊는구나(白楊多悲風 簫簫愁殺人). 고향마을에 돌아가려 마음 먹어보지만 돌아갈 수 없는 처지를 어이할꼬(思還故里閭 欲歸道無因).” 인생무상을 노래했다. 어릴 적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 슬퍼하며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떠난 자는 멀어지듯 잊혀져갔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는 절망과 서운함에 의욕마저 잃고 매일 長醉(장취)하던 날이 그 얼마였던고. 눈 속에 꽉 차있던 첫사랑의 여인도 세월이 가면서 점점 희미해져 가지 않던가. 언젠가는 고향도 멀어지고 사람들도 멀어지고 누구나 멀어지면서 이별하게 되는 것. 우리는 그리 많지 않은 소중한 시간 속에서 오늘 하루도 따뜻한 사람들과 맑고 향기롭게 보내고 싶다. /근당 梁澤東(한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의 특징으로 과거회귀성을 들 수 있다. 이런 과거회귀성의 결정판이 바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 거기에 대한 맞불 성격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전교조의 대선개입 논란이다. 이런 기관 혹은 단체들의 대선 개입 문제는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가관인 것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이런 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이다. 그나마 새누리당은 민주당보다는 좀 나은 편이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민주당은 다르다. 민주당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철저히 파헤쳐야 하지만 전공노나 전교조의 대선 개입 문제는 “당시 문재인 후보와 정책 협약”을 했으니 괜찮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 국정원이나 국방부 그리고 전공노, 전교조는 기관의 성격상 차이가 있다. 전공노나 전교조는 이익집단이기에 자신들의 이익을 선거 때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전공노와 전교조의 구성원들은 공무원 혹은 준(準)공무원들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이들은 신분상 특정 정파에 대한 지지선언이나 정당 활동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국정감사는 민생 현안보다 해묵은 이슈로 정치권은 연일 대결과 파행으로 이어졌다. 더욱 더 실망스러운 것은 대선 초기부터 제기된 댓글공방의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윤석열 국정원 정치·대선개입 의혹 전 특별수사팀장의 서울중앙지검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감장 직원수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쟁점에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첫째, 국정원 원장의 ‘진술거부 지시공문’에 대한 윤 전 팀장의 증언은 ‘허위 또는 착각’으로 판명됐다. 윤 전 팀장은 “국정원이 원장의 진술거부 지시공문을 체포된 직원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해서 검사가 전달하면 범죄행위라고 생각해 변호인들이 와서 전달하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 17일 국정원은 “검찰이 국정원직원법을 위배해 사전 통보 없이 직원을 체포했고, 직원들이 직무상 비밀을 진술하는데 있어 원장의 진술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라 조사 중지 및 석방이 필요하다”는 공문만 검찰에 보냈다. 즉 국정원은 원장의 진술허가가 없었다는 취지를 직원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검찰은 전달할 의무가 없
지난 1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재정절벽 합의안을 백악관에 공식 전달하고 가족들과 남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하와이로 떠났다. 합의안 최종 서명시한 10여 시간을 남겨놓은 상태였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합의안에 서명을 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었다. 의회 임기가 끝나는 시간까지 서명을 하지 않으면 합의안은 헌법적으로 죽은 법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 합의가 끝나자마자 하와이에 있었음에도 마치 백악관에 있었던 것처럼 서명을 마쳤다. 어떻게 했을까. 정답은 ‘오토펜’이었다. 대통령의 지시 아래 백악관이 승인하면 대통령의 서명을 합의안에 자동으로 ‘새겨 넣는’ 서명장치가 사인을 대신한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 같은 사실은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2011년 애국법을 연장할 때 유럽을 순방 중이면서도 오토펜을 사용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거셌다. 공화당 의원 21명은 대통령에게 법안에 다시 사인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오토펜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통령이 일반인으로부터 오는 서한까지 일일이 답해주다 보면 하루에 1만장 이상의 서류에 사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