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식물 /김윤이 침을 흘렸다 아이는 붉은 벽돌을 갈았다 아이는 그 사이에 낀 이끼를 긁었다 아이는 밥상을 차렸다 아이는 손바닥만한 그늘 안에서 놀았다 아이는 문은 밖에서 잠겼다 아이는 땅따먹기를 했다 아이는 넓어졌다 아이는 이파리의 뒤척임을 말하지 않았다 아이는 창가 햇빛이 눈부셨다 아이는 목이 말랐다 아이는 개미를 손가락으로 눌러 죽였다 아이는 누구도 물을 주지 않았다 아이는 문고리를 핥았다 아이는 점점 베란다를 기어올랐다 아이는 혼자 자랐다 - 출처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창비시선 (2011년) “당신에게는 어떤 방에 대한 기억이 있나요?” 나지막이 묻는 것 같다. 과거형 시제가 자꾸 현재로 읽힌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혼자 밥 먹고 혼자 아프고 혼자 뒤척이면서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를 장난감 삼아 노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아이를 노인으로 바꾸어 읽어도, 다른 고유명사로 바꾸어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너무나 순해서 아니 세상이 너무 어두워서 혹은 다른 방법이 없어서 밖에서 잠근 문, 다행인 것은 그 안에서도 시계는 째깍거리고 위태로움 속에서도 살아있는 것들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 다는 것, 어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부흥-국민행복-문화융성을 통한 희망의 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제난 등 국외문제는 차치하자. 52대48로 갈라진 국민 표심이며, 북한 핵실험, 아직도 미처리된 정부조직개편안, 인사청문회 등의 끝없는 정쟁과 윤리와 도덕이 무너진 흉악범죄, 패륜범죄 등 우리내부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이러한 갈등을 빛과 소금이 되어 조정하고, 화합시키고, 국민의 뜻을 모아 방향을 제시하여야 하는 언론과 방송, 종교계, 시민단체들마저 패가 갈리고 현실정치에 발을 담가 국민의 신임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이러한 사회의 흉악범죄와 패륜범죄는 끝없는 인간의 탐욕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러한 인간의 탐욕을 절제하고 남을 배려하게 만드는 예의, 윤리, 도덕 교육을 경시한 당연한 결과로서 앞으로 더욱 흉악한 신종 범죄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게 된 것도 현실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며, 대통령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오로지 우리 국민의 의식
남양주 슬로푸드 국제대회 계획안이 확정됐다. 대회조직위원회가 지난 27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오는 10월 1일부터 6일까지 남양주시 이패동과 조안면 일원에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40여 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1천여 가지의 음식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아시아 구스토(Asia Gusto)라 불리는 이 대회의 주제는 ‘생산은 유기농 밥상은 슬로푸드’와 ‘슬로푸드 맛으로 바꾸는 세상’으로 정해졌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이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삶의 지혜가 담긴 맛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취지를 높이 사며, 현란한 속도를 자랑하는 현대문명의 병폐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대회가 ‘이색적인 세계 맛 대회’로 전락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슬로푸드 운동은 미각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각을 존중하고 미각을 향상시킬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운동의 정신에 충실하지 않으면 ‘속도의 노예상황’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프라인으로 옮겨놓은 TV 맛 프로그램 종합선물세트 수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대회 계획안을 살펴볼 때 에듀
오늘은 제94주년 3·1절이다. 해마다 3·1절이 되면 기억나는 인물들이 있다.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한용운 등 33인과 유관순 열사 등이다. 그런데 경기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극렬했다. 화성 제암리와 발안장터, 안성 원곡과 양성의 독립운동 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만세운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경기지역에서도 유관순 열사 못지않은 자랑스러운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이선경과 김향화란 인물이다. ‘독립운동의 꽃’ 이선경은 순국 당시 유관순과 비슷한 나이인 18세의 소녀였고, 김향화는 놀랍게도 기생의 신분이었다. 이선경의 이야기는 수원박물관의 기획·제작지원으로 한 방송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지난해 8월15일 광복절에 방영됨으로써 세인에게 알려진 바 있다. ‘경기도의 유관순’이라 불리는 이선경 열사는 지난해 3·1절에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사실이 인정되어 순국 90년 만에 건국포장 애국장에 추서되어 독립유공자로 포상 받았다. 이선경은 3·1운동 직후 수원지역의 젊은 청년들이던 박선태 등과 함께 수원에서 구국민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활동했다. 이후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 끝에 풀려났지만 고문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한 채 9일 만인
흐린 잉크가 기억보다 낫다는 말이다. 사람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력이 서서히 사라지게 되어 있어 망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를 놓치지 않고 살리는 것은 더욱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언지무문행지불원(言之無文行之不遠)이라 했다. 기록 없는 말은 절대로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기억력이 좋다 하더라도 기록하는 사람에게는 당할 수 없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기록문화의 중요성이 구전문화(口傳文化)와 어찌 비교될 수 있나.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모자 속에 종이와 연필을 넣어 다닌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다니는 도중에 떠오른 생각이나 남에게서 얻어 들은 유익한 말들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않았는데도 세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유명한 음악가 슈베르트도 악상이 떠오를 때면 곧바로 입고 있던 자기 옷에 악보를 그려 기록한 덕분에 가장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메모하는 습관은 공부하는 습관이라고 말한 이가 있다. 메모란 정확성을 기하고 책임감을 가지며 계획성을 실천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요즘같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수첩
백년해로 하는 부부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사회동향 자료에 따르면 황혼이혼율이 1990년 5.2%에서 2011년 25%로 불과 20년 동안 5배 늘었다고 한다. 배우자 만족도 내용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의 만족도가 낮은 편이며, 50대 중년 여성으로 갈수록 남편에 대한 점수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황혼이혼이란 말은 최근까지 낯선 단어였다. 사회의 비판적 시선 때문에 이혼을 망설였으며 자식이 ‘보호인자’ 역할을 하였으나 여성의 권익이 향상됨에 따라 참고 사는 미덕이 끝난 것이다. 황혼이혼이 늘어난 이유는 많이 있으나 그중에서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크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고 부부간의 지위가 동등해지면서 결혼과 이혼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다. 또한 기대수명의 증가로 부부가 자녀를 출가시킨 후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지만 가부장 문화에 따른 낮은 친밀도로 황혼이혼이 높아진 것이다. 오죽하면 ‘60대는 살갗만 닿으면 이혼 당하고’, ‘70대는 존재 자체가 이혼 사유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경기도의 최대 현안인 GTX 추진과 광역철도사업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을 줄여주도록 하는 내용의 수도권 교통대책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GTX 사업을 수도권 교통대책의 핵심으로 본 김문수 도지사가 앞장서 차세대 미래 발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이에 반해 KTX 광명역세권 개발 및 활성화 대책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면서 시민의 비난여론이 지역 정치인들에 쏠리고 있다. 역세권 개발사업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며 향후 광명역 이용객들의 분산으로 인한 대안은 무엇인지 궁금증을 해소해야 함에도 지역주민의 숙원은 뒷전인 채 중앙 무대에서 자신들의 위치 지키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KTX 광명역은 10여 년 전 전국철도망을 연결하는 시발역으로 건설됐지만 출발시점부터 중앙 정치권의 큰 벽을 허물지 못하고 지금까지 시발역은커녕 향후에는 중간 정차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그럼에도 역세권 활성화를 위해 어느 한 사람도 관심을 갖는 정치인이 없다는 현실에 시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만약 박근혜 정부에서 경기도 수원과 서울 강남·북을 있는 GTX와 제2의 KTX가 수서역까지 운행되는 수원으로의 신규 고속철…
아침 릴레이 /다니카와 슌타로 캄차카의 젊은이가 기린 꿈을 꾸고 있을 때 멕시코의 아가씨는 아침 안개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뉴욕의 소녀가 미소 지으며 잠을 뒤척일 때 로마의 소년은 기둥 끝을 물들이는 아침 햇살에 윙크한다 이 지구에서는 언제나 어딘가에서 아침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들은 아침을 릴레이하는 것이다 경도(經度)에서 경도로 말하자면 교대로 지구를 지킨다 자기 전에 잠깐 귀 기울여보면 어딘가 먼 곳에서 알람시계가 울리고 있다 그것은 당신이 보낸 아침을 누군가가 잘 받았다는 증거인 것이다 출처-김응교 옮김 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2009년 문학과지성사 캄차카의 젊은이가 “기린 꿈을 꾸고 있을 때”, 멕시코의 한 아가씨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고, “뉴욕의 소녀”가 “잠을 뒤척”이고 있을 때, “로마의 소년”은 “아침 햇살에 윙크”한다. 이 거대한 지구의 아침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바통을 이어주고 있다. 그러나 아침은 어떤 이에게는 달콤한 시작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간신히 눈을…
여자 프로골프 선수인 위성미의 미국 이름은 ‘미셸 위’다. 아니 본명이 미셀 위이고, 한국식 이름이 위성미라고 표현하는 게 옳겠다. 한국에서 이민 간 부모를 두고, 하와이에서 태어났으니 태어날 때부터 미국인이다. 10대 소녀시절, 남자선수도 어렵다는 300야드 이상의 엄청난 장타와 천재성으로 대기(大器)로 손꼽혔다. 17살 때는 이미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100인의 인물에 포함될 정도로 주목을 끌었다. 여기에 빼어난 미모와 아이비리그인 스탠포드대학에 입학할 정도의 명석함을 지녀 아이돌스타로 대접받았다. 그가 프로전향을 선언하자 곧바로 나이키는 1천만 달러의 수표를 내밀었고, 소니 역시 그에 버금가는 금액을 제시했다. 10대 소녀가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순간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전, 위는 한국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유달리 핏줄의식이 강한 한국사회의 특성상 그는 ‘배달의 민족’이었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 고향인 전남 장흥군민들은 그가 무명시절, 대회참가비 등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후원금을 모아 전달하는 온정을 보였다. 한국 골프계 역시 위에게는 늘 따뜻했다. 미국에서의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