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천양희 작은 꽃이 언제 다른 꽃이 크다고 다투어 피겠습니까 새들이 언제 허공에 길 있다고 발자국 남기겠습니까 바람이 언제 정처 없다고 머물겠습니까 강물이 언제 바쁘다고 거슬러 오르겠습니까 벼들이 언제 익었다고 고개 숙이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해 지는 줄 모르고 팽이를 돌리고 있습니다 햇살이 아이들 어깨에 머물러 있습니다 무진장 좋은 날입니다 -천양희 시집 ‘너무 많은 입’ / 창작과 비평사 펼쳐진 풍경을 보는 일만으로도 좋을 때가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행복할 때가 있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스스로 자연이 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답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좋다”로 전이될 때 우리에게 전달되는 감정은 배가된다. “다투”어 피려고 경쟁하거나 “발자국”을 남기려고 악착같이 하나 더 얻으려는 많은 이름들의 욕망들. “좋은날”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거슬러”오르는 일 없이 순리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벼들”처럼 겸손하게 살 일이다. /권오영
설마 했는데 사실이었다. 지난 5일 경기도의회가 개혁적인 ‘공무국외여행에 관한 조례안’을 부결시켰을 때만 해도 설마 도의원들이 그깟 해외여행 못가 안달 났으랴 싶었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본보 14일자 보도는 그게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무려 9개 상임위원회가 오는 4월 이전에 해외여행 스케줄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관광성 동남아 여행이라는 의심을 벗기 어려운 연수 일정이다. 이들에게 과연 어떤 표현이 어울리는지 찾기도 힘들다. 이들에겐 이제 명분도 염치도 남아있지 않은 것인가. 7일자 본란은 제대로 된 해외연수라면 오히려 권장할 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도시환경위원회가 베트남 라오스에 가서 뭘 배워오려는 것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같은 나라로 가는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이들 나라가 여성 가족 평생교육의 모범국가인가. 아니면 반면교사여서 가는가. 경제과학기술위원회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로 가려는 건 좋다. 그런데, 보건복지공보위도 건설교통위원회도 기획위원회도 문화체육관광위원회도 왜 같은 나라로 가야 하는가. 이건 아니다. 도매금으로 매도할 일은 아니겠으나, 이 정도면 암까마귀와 수까마귀를 도무지 구별하기 어렵다. 지난
우리나라 국민들 사이엔 ‘먹을거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인간과 아이들을 상대로 장난치는 자들은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왜냐하면 식품은 곧 우리의 생명이나 다를 바 없고,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민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량식품 파동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텔레비전 뉴스를 도배한다. 국민들이 좋아하는 식품에서 곰팡이가 발견되고 칼날이 나오는가 하면 심지어 유명식품에선 생쥐머리까지 나왔다. 연이어 터지는 식품안전사고로 소비자들은 ‘믿고 먹을 게 없다’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식품 제조·유통·관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식품 노이로제에 걸려있다. 국내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한때 수입 식품 매출이 크게 늘어나기도 했지만, 이것도 안전하지는 않다. 일본의 방사능과 미국의 광우병 때문에 기피하고 있다. 중국은 비위생적으로 생산 유통된 불량 식품 수출로 수많은 파문을 일으켜온 대표적인 사례다. 먹을거리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식품위해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재발을 막겠다고 밝혔지만 부정 불량 식품 판매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강
교양 글쓰기에서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글의 유형이 바로 자기소개서, 즉 ‘자소서’ 쓰기다. 스스로에 대해 자신만큼 정확하게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싶지만, 자기소개서를 쓰다보면 자신에 대해 치명적인 정보의 빈곤감을 느끼게 된다. 자기소개서 쓰기는 이력서 쓰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보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빠짐없이 객관적인 근거로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이력서와는 달리 자기소개서는 잘 써야 한다. 바로 이 잘 써야한다는 부분이 여러 학생들의 어깨에 부담을 얹어주고, 심지어는 절망하게 하고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준수한 외모에 유명 대학의 인기학과를 졸업하고 화려한 스펙을 마련해둔 사회초년생들도 때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여러 번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소개서 쓰기를 지도하다 보면, 예전에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던, 나름대로 안타깝고 절박한 사연들이 겹쳐 떠오르곤 한다. 거기에는 놀라울 만큼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런 글을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저는 엄부자모 슬하의 평범한 가정에서 2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너무 익숙해서 버려질 수밖에 없는…
어떤 분쟁에 있어 한 편의 말만 듣게 되면 상대방은 공평하게 대하지 못하는 결과가 되어 절친하고 가까운 사이였다 하여도 곧 원성을 사고, 이내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중국 고대 무소(武蘇)라는 사람은 말 한마디를 잘하는 게 천금을 가진 것보다 도움이 될 수 있고(一言之益重於千金), 한 번 행동을 잘못 하면 독사에 물린 것보다 더 지독할 수 있다(一行之虧毒如蛇蝎)라고 했다. 또 공자는 여러 사람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피고(衆惡之必察焉), 여러 사람이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衆好之必察焉)고 했다. 노자도 남이 알아서는 안 될 일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고(欲人不知), 남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게 하려면 처음부터 말을 안 하는 것이 좋다(欲人不言莫若不言) 말이 많음은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가장 방탕하게 하며, 기운도 또한 덜게 되고 꿈속에 정신도 또한 편안치 못하다. 마음을 펴놓았으면 거두어들일 줄 알고, 말을 하려는 때는 간단하고 침묵을 생각하라. 많은 말로 허물을 만들지 말고 다른 이의 허물을 듣더라도 내 부모 이름 듣는 것같이 하여 설사 듣더라도 입 밖에는 내지 말라. 시비는 듣지 않으면 자연히 없어질 것이니…
기상청은 2월 하순부터 기온이 영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보했다. 이에 따라 대형 공사장 등 해빙기 붕괴사고와 얼음이 녹으면서 발생하는 산악사고 등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계절이 다가왔다. 해빙기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지반이 얼고 녹는 일이 반복돼 겨울철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하면서 수분을 점점 많이 함유해 공사장, 축대, 옹벽 등이 약해지는 시기로 2~4월 사이의 기간을 말한다. 소방방재청은 최근 5년간 2~3월에 지반침하, 흙막이벽 붕괴, 절개지 유실, 구조물 붕괴 등 모두 66건의 사고가 발생해 15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2009년 2월에는 성남 판교신도시 내 터파기 공사현장이 무너지면서 3명이 사망하고 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2006년 3월에는 서울 영등포 공장 건설현장에서 H빔이 붕괴돼 2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했다. 이런 사고 현황을 보면 전체 사상자 39명 중 89.7%인 35명이 공사장에서 발생해 건설회사 관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해빙기 산행할 때 등산로에 대한 이해나 준비가 부족하거나 날씨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산행을 즐길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낙석과 낙빙 역시 주의해야…
오는 25일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소기업인들의 기대가 대단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첫 정부 업무보고도 중소기업청이었다. 중소기업이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이야기다. 흔히들 중소기업을 ‘9988’로 표현한다. 대한민국 전체 기업수의 99%를, 전체 고용인원의 88%를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즉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축’이며, 국민소득 3만 달러로 가기 위한 대들보라는 말이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중소기업의 존속률은 50%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는 기업환경의 펀더멘털이 약하다는 뜻이며 동시에 기업의 체질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기업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거칠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기업의 발 빠른 변화와 적응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국내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자금이나 인력 측면에서 이러한 환경 변화에 쉽게 대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러한 여건을 감안할 때, 중소기업의 대외경쟁력 강화가 요구되는 것은 명약관화하며, 중소기업의 자체 여력이 부족하고 도의 기업지원 재원이 한정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정부에서 추진 중인 다양한 중소기업지원사업의 혜택을 보다 많
봉숭아 꽃물 /박해성 아홉 살 돌팔매가 잔별로 뜬 새벽 두 시 모닥불 약쑥 연기 진양조로 흔들리면 제풀에 불콰해졌지, 꽃잎파리 싸맨 손톱 손톱이며 가슴까지 으깬 꽃잎 동여매고 초경보다 더 붉게, 붉게 젖어 타던 속내 어머니 혼불 지피셨지, 손가락 끝 끝마다 -박해성 시집 <비빔밥에 관한 미시적 계보> 중에서 사춘기의 여름은 봉숭아꽃물로 절정에 이른다. 대개는 어머니 손에 의해 물들이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어머니는 모깃불 피워놓은 마루에 앉아 짓이긴 봉숭아꽃잎을 성장한 딸의 손톱에 정성들여 싸매준다. 하룻밤 자고나면 이튿날 아침 손톱에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롭고 아름다운 빛깔이 물들어 있게 된다. 어떤 이는 발톱에까지 곱게 물들인다. 누이의 손톱에 물들여진 봉숭아꽃물을 훔쳐보며 알 수 없는 설렘으로 사춘기를 보내지 않은 대한민국의 남성은 없을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사춘기는 건강하게 자랐으며, 에너지 넘치는 청년기로 들어설 수 있었다. 봉숭아꽃물의 어떤 속성이 우리를 설레게 만들었을까. 붉은 봉숭아꽃물은 강렬한 젊음의 징표이고 상징이며 전유물이다. 건강한 생명의 미래를 열어가는 성에너지의 무한 표출이다.
지난주 설 명절을 앞두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여성동지(?)들이 바쁜 짬을 내어 힐링의 시간을 갖기 위한 여행이었는데, 나는 친정부모님을 뵐 요량으로 앞장서서 나선 일정이었다. 우리 삼총사 일행은 친정부모님의 관심과 배려를 받으며 저지곶자왈도 걷고, 다랑쉬 오름도 오르고, 해수탕에도 다녀왔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선천적으로 한쪽 눈에 장애가 있어서 항상 안대를 하고 다니는 친구이다. 그 친구는 준비하는 데 항상 시간을 지체했다. 외출 준비를 할 때에도, 목욕탕에 들어가서도, 화장실에 가서도… 아마 짐작하건대 안대를 갈아 끼우느라 시간이 지체된 듯했다. 그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싫은 것은 주민등록증을 분실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주민등록증을 갱신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려면 안대를 벗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소에는 “눈에 다래끼 나셨나 봐요” 하면 “네” 하고 그냥 넘겨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의 마음에는 항상 불편함과 불안감을 안고 오십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함께 3일 동안 생활하면서 한 번도 안대를 벗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목욕탕에서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