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이란 한결 같지가 않아 다른 것이 마치 얼굴이 똑같이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러니 입은 화근이 드나드는 문이므로 절대 조심해야 하고(口是禍之門), 혀는 자기 육신을 동강내는 칼과 같으므로 잘 놀려야 한다(舌是斬身刀). 사람들은 남의 재능을 질투하고(妬人之能) 남의 실수를 퍽 다행으로 여긴다(幸人之失). 남은 삶이 이제 얼마나 되랴(一生復能幾), 번개 치듯 흘러가니 빠르기만 하구나( 如流電驚). 죽고 태어남은 밤과 낮이 물 흐르고 꽃피는 소식이니(死生晝夜水流花開) 오늘에서야 콧구멍이 아래로 향한 도리를 알겠네(今日乃知鼻孔向下). 백성들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면 백성들도 그의 즐거움을 즐거워한다(樂民之樂者民亦樂其樂)라는 말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싫어한다(世俗之人皆喜人之同乎己而惡人之異乎己也). 어진 사람을 사귀지 못하고 악한 사람을 멀리하지 못하면 위태로운 것이다(善人不能戚惡人不能疏者危).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나와 같고 또 같아야 한다고 생각 말라. 겉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근당 梁澤東(한국서예박물관장)
설 명절을 앞두고 가평지역의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 시간에 손님들 간 옥신각신 입씨름이 벌어졌다. 내용인즉 어린이가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옆 좌석 손님이 ‘조용히 해라. 먼지가 난다’며 타이르자 어린이의 부모가 ‘우리 애 기죽인다.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며 반발, 어른 간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내 자식 귀한 것만 생각하지 남이 불편하다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는 지금의 작태다. 뿐만 아니라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지나친 과민반응을 불러일으켜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조기교육이 붐을 이루면서 유치원을 보내기도 전에 영어, 피아노, 미술, 태권도 등 사설학원에 등록시켜 ‘무엇이든 다 배워놔야 한다’는 부모들의 욕심으로 학습에 시달리는 자녀들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선 교육자와 ‘내 자녀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학부모와 사뭇 다른 입장차이로 갈등을 초래하고 있기도 하다. 내 자녀가 학원에서, 학교에서 꾸지람을 듣고 인상을 찡그리고 집에 들어가면 일부 학부모는 바로 학교나 학
입춘이 지났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각급 학교의 졸업식이 연이어 개최된다. 포천시의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이 조금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졸업’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설레는 마음 가득한 축복의 시작을 맞이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몇 가지 당부한다. 첫째, ‘독서’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책들이 있다. 교보문고를 기준으로 본다면 23개 정도의 큰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으며, 매년 각종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1천500권 정도 배출되고 있다. 그런데 통계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3명은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월평균 성인 독서량을 비교해 보면 미국 6.6권, 일본 6.1권인 반면 우리나라는 0.8권으로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예부터 지식을 가장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으며, 인생을 성공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독서’를 꼽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등 첨단 IT시대에 익숙해져가는 학생들에게 생활의 편리함이라는 장점도…
숲속에 누워 나무의 사랑을 이야기 하다 /이경렬 엉켜 있어 보여도 서로 붙잡고 있지 않았구나 욕심처럼 붙잡고 있지 않아서 서로 바라볼 수 있구나 이만치의 거리로 바라보아서 서로 마음을 줄 수 있구나 따뜻한 마음을 줄 수 있어서 서로 기댈 수가 있구나 닿을 듯 기댈 수 있어서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구나 시인은 산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은 인생과 삶의 축약본이겠지만 여행에서 서로마주하고 치유를 하기도 한다. 산을 오를 때 보이지 않던 것이 내려올 때 보인다하지 않은가, 시인이 겪는 교단의 고달픈 단상과 천진무구한 자연학교에서 정리해야 하는 순환의 질서를 밟으며, 성찰과 사색의 시간이 깊어간다. 삶을 계획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것은 내안의 욕망과 욕심이란 굴레 때문일 것이다. 여행은 지속될 수 있지만 또 다른 일상과 충돌이 수반한다. 결국 시인은 산행에서 지리멸렬한 삶을 벗어나려하지만 뜻대로 안 된다. 여행은 언제든 그만둘 수도 있지만, 삶은 그럴 수 없다. 버리고, 지우며 살아가려는 지나가는 인생열차에서, 문학의 길에서 돌아보니 비로소 보이는 쓸쓸함일지라도 가장 인간적인 마음과 情이 많은, 사람 좋은 시인은 회상의 늪으로 서 있는 듯, 하지만 그래서
이맘쯤이면 유난히 고향이 생각난다. 온 동네에 하얗게 눈이 쌓이고 물 고인 논에서 얼음을 지치던 유년의 시절이 사뭇 그립다. 설빔으로 사 주신 양말을 신고 썰매를 타다가 물웅덩이에 빠지면 신발과 양말을 말리겠다고 모닥불을 피우곤 했다. 축축이 젖은 짚과 콩꼬투리를 모아 불을 피워놓고 꽁꽁 언 손발을 녹이다 보면 양말에 구멍이 뚫리기 일쑤다. 구멍 난 양말을 어찌하지 못해 끙끙대다가 결국엔 혼쭐이 나곤했다. 수수깡을 반으로 쪼개어 신발 밑에 동여 매고 동네 언덕배기에서 스키를 타기도 하고, 그것도 시원찮으면 비료포대를 깔고 앉아 눈썰매를 타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하루해를 훌쩍 넘기곤 했다. 달이 떠오를 쯤이면 이웃집 아저씨가 마실을 왔고 막걸리 심부름은 우리들 차지였다. 명절에는 누룩을 띄워 뒷방 아랫목에 막걸리를 담가 두었지만 그 술이 떨어지면 심부름은 늘 나와 동생의 몫이었다. 왕복 한 시간은 족히 넘는 거리를 주전자를 들고 다녀와야 했다. 가는 길엔 저수지가 있고 높은 산이 있었다. 산에서 퍼런 불빛이 언뜻언뜻 보이면 호랑이나 늑대가 마을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한 겨울 저수지가 쩡쩡 울면 여름에 빠져죽은 영혼이 우는 소리인 줄 알았기 때문
박근혜 당선인의 지지율이 자꾸만 내려가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에 비하면 지지율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앞으로 5년이 괴로울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르다. 그 반대 현상도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당선인 시절의 높은 지지율이 정권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추락했고 이른바 광우병 정국 때는 10%대까지 낮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높아도 나중에는 얼마든지 지지율이 낮아질 수 있고, 역으로 지금 낮아도 앞으로는 지지율을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지지율이 낮다는 사실은 그만큼 기대치가 낮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정권에 대해 실망할 확률도 그만큼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히려 일을 부담 없이 벌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지지율에 만족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지지율이 낮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지지율을 올려야 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인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낮은 지지율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먼저 박근혜 당선인의 지지율은 원천적으로 그렇게 높을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할 수…
명절이면 TV를 통해 만나게 되는 ‘판관 포청천(包淸天)’의 주인공 포증(包拯)은 실존인물이다. 중국 송나라 청백리로 그의 공명정대한 판결은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았다. 황제라는 절대권력을 중심으로 권력이 분배되던 봉건시대에 있어 역린(逆鱗)과도 같은 황제의 인척도 처벌했다. 송사(宋史)에는 “포청천의 성품은 매우 강직하여 귀족이나 외척, 환관들조차 모두 그의 소문을 듣고 두려워했다. 아이로부터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적었다. 1062년 사망한 포청천은 지옥의 5번째 관문을 주관하는 판관이 되었다는 전설 속에 민속신앙을 통해 신격화됐다. 한족과 만주족 등 왕조의 색깔과 상관없이 포청천은 청렴하고 능력 있는 관리의 표상이었다. 사후 그와 관련된 각종 희극과 시가 인기를 끌더니 관리들의 부패와 무능이 극에 달한 청나라 말기, ‘포청천 연구’는 애국지사들의 교과서였다. 그런 포청천이 사후 900년이 지나 TV를 통해 홀연히 나타나 다시 스타가 됐다. TV에 이어 경극과 만화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심지어 컴퓨터게임의 캐릭터로 동심까지 자극했다. 국내에는 1997년 한 방송사가 명절프로그램으로 임시 편성했다가 그 인기에 화들짝 놀라…
대학교육연구원이 11일 대학 입학금에 관해 주목되는 조사 결과를 하나 내놓았다. 대학알리미에 공개된 전국 199개 대학의 입학금을 따져보니 대학 간 편차가 매우 크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입학금이 가장 비싼 고려대는 104만원이나 되지만, 광주가톨릭대와 인천가톨릭대는 아예 입학금이 없고, 영산선학대는 15만원이었다고 한다. 한 학기 수업료가 기본인 등록금과는 달리 입학금에 대해 제대로 아는 학생과 학부모는 거의 없다. 사회적 논의도 등록금에 집중되어 있을 뿐 입학금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상식적으로, 입학금은 입학과 관련된 제 경비가 기본일 터이다. 입학식 및 입학식 준비와 관련 행정 경비가 산정의 주 근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수십만원, 심지어 100만원이 넘는 입학금은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해 산출된 것일까? 가령 입학금이 90만원인 학교의 신입생이 2천명이라 가정하면 그 대학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받는 입학금은 18억원에 이른다. 아무리 초호화판 입학식을 한다 해도 몇 번을 치르고 남을 액수다.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가는가? 입학금이란 대학이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입학시켜주었다고 받는 ‘축하금’일 리도 없고, 대학 사회에 들어가기 위한
화성시 남양동 주민들이 동에서 읍으로 전환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행정단위를 격상시키는 게 아니라 낮춰달라는 것이다. 이곳이 남양동으로 바뀐 것은 2001년 화성군에서 화성시로 승격하는 과정에서 시청사가 있는 남양읍을 동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동이 된 지 12년이나 지난 지금 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유는 뭘까? 같은 이유를 여주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르면 오는 9월 중 여주군이 여주시로 승격될 예정이다. 그런데 일부가 반대한다. 남양동 주민이나 여주군 일부 주민들이 읍 전환요구나 시 승격 반대 움직임을 보이는 등 기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대학 입학 시 농어촌 지역 학생에게 유리한 농어촌 특례제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이 농어촌 특례 입학으로 대학을 가고 있는데, 이게 상실된다면 학생들에게 많은 피해가 가는 게 사실이다. 화성시 남양동의 경우 농어촌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행정구역상 동으로 분류돼 학생 및 교사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 남양동 학생들은 농어촌 특례입학 혜택이 사라지자 인근 면지역 학교로 전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농어촌인데도 교사 가점이 없어져 교사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최근 남양동 주민들은 행안부에 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