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고서 <조선의 혁명운동> “빨치산이 서부 간도 지방에서 소대로 나뉘어 무장을 기도하고 있는 사이에, 북부 간도 지구 민중은 장래의 대규모 전쟁을 위한 준비에 집중적으로 종사하고 있었다. 전부 2개 사단의 완전히 무장된 강력한 일본군에 직면하여 적어도 10회에서 9회까지 적을 철저하게 패주 시킬 수 있었던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무슨 전투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청산리, 봉오동 등등에서의 엄청난 한인들의 승리는 가장 현저한 두세 가지의 사례일 뿐이다. 그곳에서 일본군의 전위는 압도적인 피해를 입었다.” 이는 <조선의 혁명운동>이라는 제목의 보고서 일부이다. 때는 1922년 1월 24일, 보고 현장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 피압박 민족대회”였다. 우사(尤史) 김규식 박사가 한국대표단 수석대표 자격으로 조선의 독립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 자리에는 양대 대첩(大捷)의 주인공 홍범도 장군도 참석하고 있었고 한국대표단은 52명으로 전체 대의원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 “극동피압박 민족대회”의 김규식 김규식은 러시아 입국 조사표에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5년 전인가, SNS를 통해 퍼진 기괴한 사진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한 여대 의과대학 졸업식 사진으로 스무 명 남짓의 여성들이 눈만 내놓은 검은 부르카 위에 검은 졸업가운을 단체로 뒤집어쓰고 서있었다. 스무 명의 복제인간 같다고나 할까. 사진을 함께 보던 친구가 ‘설마 이렇게까지 하겠는가, 조작 사진일 것이다’라고 했고 나 역시 동감했다. 이슬람은 지구 상 18억 명이 믿는 보편 종교이고 불교, 기독교처럼 사랑과 자비를 내세운다. 신 앞에 누구나 평등하기에 여성 억압, 폭력은 교리에 반하는 것이며 몰상식한 행태들은 이슬람 문화가 아닌 지역별 오랜 관행이거나 어느 종교에나 있는 시대착오적 근본주의, 광신이 문제다......라는 게 내가 알고 있는 ‘오해를 걷어낸 이슬람 문화’였다. 미군 철수로 탈레반이 장악한 후 생지옥 된 아프가니스탄 실상에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전쟁도 아닌데 백주대낮, 탈레반의 총탄 앞에 스러져가는 민간인들의 모습은 비현실적이다. 내게 가장 충격을 준 것은 부르카 쓰지 않고 집 밖을 나왔다 바로 사살당한 여성의 사진이다.(사우디 아라비아 사진이 실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들의 거리가 된 나라. 여자들은 모두 죽지 않기…
폭력이란 무지하고 야만적인 자가 민중들에게 그들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을 강요하기 위한 무기이다. 그러나 그 무기가 작동을 중지하면 그 효과도 중지된다. 반대로 설득은 마치 강물이 우리의 관심이나 노력 없이도 스스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기울어져 있는 강바닥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활동을 지도하는 방법에 단 두 가지밖에 없다. 그 하나는 인간에게 그 사람의 성향과 판단과는 반대로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성향을 다스리며 이치로 설득하는 방법이다. 하나는 무지하고 야만적인 방법이므로 그 결과는 환멸뿐이지만, 다른 하나는 경험이 증명해 주는 바 반드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이다. (콩브) 강자의 권리는 권리가 아니며, 항의와 저항을 만나지 않는 동안만 권리로 통할뿐이다. 그것은 마치 난방과 조명과 지렛대가 없는 동안은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추위와 어둠, 무게 같은 것이다. 인류의 모든 산업은 거친 자연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정의의 진보는 바로 강자의 전제가 제한되어 온 역사적 과정이다. 의학의 목적이 질병의 극복에 있듯이, 인간의 행복은 맹목적인 동물성의 극복, 동물로서의 무분별한 욕망의 극복에 있다. 이리하여 나는 늘 하나의 법칙
언론개혁의 타깃은 정치권력이 아닌 언론자본권력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허위조작보도를 남발하는 언론사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려는 데 대해 반대하는 언론노조 윤창현 위원장의 말이다. “권력 압제에 맞서 언론을 되찾아오는 게 개혁 본질이었다.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정권이 언론에 위험을 가져다줄 수 있는 법안을 이렇게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 말에 대해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꿰뚫는 명언”이라고 추켜세웠다.(UPI 뉴스) 또 이 말에 대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의 심석태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항상 일관성을 보여주시는 강준만 선생님 글. 언론중재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 라고 칭송했다. 1987년 6월 항쟁까지 언론의 문제는 독재정권에 부역하는 언론에 대한 정치투쟁이었다. 그러나 6월 항쟁으로 독재권력이 붕괴된 이후는 스스로 권력이 되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민주주의를 왜곡하기 시작한 언론권력에 대한 투쟁, 즉 언론개혁 시민운동으로 바뀌었다. 김중배 선언은 그러한 현실의 변화를 정확하게 짚어낸 진짜 ‘명언’이었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는 소수 의견도 제도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대의민주주의는 협상과 타협을 원칙으로 한다. 협상과 타협을 통해 민주주의는 소수 의견마저도 제도에 반영할 수 있게 돼,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에 충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소수 의견을 반영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가장 효과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의견까지 반영해 만들어진 제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제도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특정 정치 세력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 없이, 합심해서 부작용을 극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 체제란, 협상과 타협에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효율적인 체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장 효과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체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덧붙여 말하고 싶은 점은,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가치가 아닌,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가치와 수단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수단이 정당했다고 그 결과가 민주주의 기본 원칙과 가치에 충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지난 18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여당 단독으로 문광위 안건
국수는 오는 것이다. 분틀을 타고 오고, 허공을 몇 바퀴 돌고 수십 개 가락을 만들어 오고, 돌돌 말려 칼에 샥샥 썰려 한 그릇 국수로 오는 것이다. 이렇게 오는 국수를 먹으면 장수한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식에는 백년해로하라는 의미로 잔치국수를 만들어 손님상에 올린다. 이러한 습속은 남북한이 다르지 않다. 삶은 면을 물에서 건져 올린다는 뜻을 가진 국수(掬水)는 북쪽에 고향을 둔 사람들에겐 일상으로 스며든 음식이다. 국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메밀이 많이 나는 지역인 북쪽에 국수가 있었다. 일반인들이 먹기에는 귀했던 시기 메밀로 만든 평양냉면은 서울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해방 후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피난민들은 고향 맛을 살려 함흥냉면집을 열었다. 현재 평양냉면은 메밀을 주 재료로 만들며 맛은 슴슴하게, 함흥냉면은 농마(녹말)로 만들며 매콤하게 하는 것이라고 자신들의 상표를 붙였다. 원조의 맛이 바래갈 때 탈북민이 이곳으로 왔다. 고구마 전분을 재료로 사용했던 함흥냉면을 원래의 감자전분으로, 슴슴하기 그지없는 평양냉면은 깊은 육수의 감칠맛으로 고향의 맛을 재현했다. 나는 서울에서 함흥냉면을 맛보았지만 함흥에 있는 ‘신흥관’에서 먹었던 농마 국수의 맛을
연합뉴스가 한국 언론사에 남을 큰 일(?)을 했다. 연합뉴스 덕분에 앞으로 뉴스 소비자들은 언론사가 돈을 받고 써대는 홍보성 기사에 속을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21일 언론전문지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연합뉴스는 수익사업 전문조직인 홍보사업팀에서 홍보성 기사를 작성해, 2019년 10월부터 네이버에 2000여 건을 송출했다. 보도자료는 ‘기사’가 아닌 ‘보도자료’란에 송출해야 함에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광고를 기사로 포장했다는 것이다. 불량식품을 정상식품 코너에 진열해 판매한 꼴이다. 포털의 언론사 제휴 심사를 담당하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지난 13일, 연합뉴스에 ‘한 달 노출중단 제재 및 재평가(퇴출평가)에 해당하는 벌점’을 의결했다. 연합뉴스의 소명을 거친 후 최종 확정된다. 기사형 광고는 도입 초기부터 논란이 됐다. 언론의 신뢰를 잠식한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광고 유치에 혈안이 된 신문사들이 쉽게 문을 열어버렸다. 2002년 신문윤리위원회가 주최한 전국 일간지 광고국장 세미나 주제가 ‘기사형 광고의 윤리 문제’였다. 기사형 광고는 언론 보도가 진실일 것이라고 믿는 뉴스 소비자를 기만했다. 미디어오늘의 용기 있는…
네가 좋다고 여기는 일을 할 경우에도, 남에게 적의를 느끼거나 남이 자신에게 적의를 느낀다면 즉시 그 일을 그만두는 것이 현명하다. 결국 너는 아직 그 일을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무슨 일을 하면서 신체의 어딘가가 아프다면, 너는 그 일을 잠시 중단하고 어떻게 하면 고통을 제거할 수 있는지 연구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좋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 같으면 잠시 중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너에게 그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없다는 증거이므로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남이 베푸는 선은, 설령 그것이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그들이 사람들의 존경을, 그것도 어쩌면 부당한 존경을 받을지 모르는 일시적이고 거짓된 선으로부터, 결국엔 뭔가 진지한 것이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칸트) 선을 행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선을 베풀어야 했는데 하며 늘 아쉬워함이 선을 행하는 자의 마땅한 도리이다. 선한 성품은 정신의 기본적 성격이다. 만일 사람이 선하지 않다면, 그것은 그가 어떤…
태초의 근원적인 힘이 우주를 탄생시켰다. 모든 에너지가 단 한 번의 폭발로 분출되어 단 하나의 선물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존재였다. 긴 시간이 흐른 다음 별들이 생겨나 반짝거리고 그 별빛 아래 도마뱀이 눈을 깜빡거리게 된다면, 그 또한 시간이 시작되었던 태초, 바로 그 순간 불타올랐던 그 신비한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태초의 우주는 스스로 섬세하게 자기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만일 공간의 생성 속도나 중력이 어느 한쪽으로 쏠렸다면 우주의 모험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 아래 돌고래가 파도처럼 높이 굽이치면서 헤엄쳐 나아가는 것과 같은 바로 그 생명력은 우주 태초의 절묘한 역학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우리는 돌고래와 태초의 찬란한 불꽃을 완전히 분리된 사건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죽음과 파괴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 우주를 지배하겠다는 인간 종(種)의 결정은 결국 인종주의, 군국주의, 성차별주의, 인간중심주의를 생기게 했고, 이것은 인류가 수용하기 벅찬 우주의 차원을 관리하려는 노력에서 생긴 잘못된 책략이었다. 각각의 시공간이 가진 창조성은 다른 모든 시공간의 창조성과 다르다. 우주는 모든 존재로 매 순간 우리에게 다가와 다음과…
찬 샘물 한웅큼 쥐어 마른 가슴 축이는 일 꽃피듯 새로 돋는 한 생각을 붙잡으며 지독한 짝사랑으로 절망이 낭자한 일 매일 밤 자맥질로 제 상처를 후비며 물결 위 윤슬 한 자락을 건져내어 쥐는 일 거미줄에 아침 이슬을 한낮에도 꿰고 앉아 가는 시간 한 도막을 덜어내어 새기는 일 ▶약력 ▶ 2021 계간 '한국시학' 봄호 등단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 전공 졸업 ▶수원공업고등학교 교사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