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람들을 만나면 저마다 선거를 앞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떤 이들은 기존에 자기가 밀던 후보가 생각보다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부터 이전에 지지했던 정당들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애정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각자 갖고 있던 정치 색깔을 대변해 활동할 대리 정치인을 뽑기 위해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정치로 인해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정치하는 이를 잘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수 십 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인을 제대로 보기 위해 꼼꼼하게 선거 공보물이나 전단지를 훑어 봤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리고 후보자들을 잘 알기 위해 노력을 해 본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정치하는 분들과 특별하게 관계가 없다면 왜 정치를 하려 하는지, 비젼이 뭔지, 이사회를 어떻게 이끌고 싶은지에 대해 알 길이 없을뿐더러 주어지는 공적인 내용으로는 개인적인 인간 됨됨이나 리더로서의 고뇌를 살피거나 그의 정치철학을 알 수 없다. 마치 나와 매우 밀접하고 앞으로 수 년 동안 내 삶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로부터 소외되기 십상이었다. 내가 스스로 정치적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이번
지난해 정치권을 달군 것은 정치인들의 기행적인 태도 보다도 그들의 막말 퍼레이드였다. “춘향전은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는 얘기”(김문수 경기도지사) “너 진짜 맞는 수 있다”(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원) 이밖에도 잎에 담지도 못할 언어폭력들이 난무해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사과 한마디로 어물쩍 현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말은 행위자의 인격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막말 정치인이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묵인해야 하느냐 하는 의문부호를 남기게 된다. 4·11 총선이 불과 6일 앞이다. 선거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불길한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여야 가릴 것 없는 부실 공천으로 함량 미달 후보들이 어느 때보다 많을 것으로 우려됐지만 최근 불거진 후보들의 자질 논란을 보면 착잡하다 못해 억장이 무너질 정도다. 서울 노원갑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의 과거 막말은 정말 상스럽고 저질스러운 것이다. 정치인 도덕성이 갈수록 추락하는 추세라지만 이런 사람들이 총선 후보라니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김용민 후보는 2004년 한 인터넷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테러대책이라며 “유영철(연쇄살인범)을 풀어 라이스(전 미국무장관)는
염태영 수원시장이 5일 한 라디오 아침방송에 나와 수원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자전거 보험을 들어주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점차 심각해져 가고 있는 도심교통난을 해소하는 동시에 자동차 매연으로 인한 공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친환경 녹색 교통수단인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시켜 고유가 시대 에너지를 절약하고 시민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조치이다. 전시민의 자전거 보험료도 수원시가 일괄적으로 부담하겠다고 하니 자전거 이용자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지자체들도 자전거 보험가입에 보다 적극적이길 바란다. 요즘 ‘자전거족’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경유와 휘발유값 부담 때문이기도 하지만 친환경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고 특히 건강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원시의 경우 지난 2010년 기준 통계에 따르면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율이 1.9%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앞으로 2014년까지 2.4%로 높일 계획이란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자전거를 이용하다 보면 위험요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이다. 차량과 부딪힐 수도 있고 복잡한 도심에서 대인사고를 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자전거 타기 확
농사를 짓는 일이란 인간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농사꾼은 인류의 행복을 짊어진 사람들이다. 마을 앞에는 이조시대에 호조에서 농사를 관장하고 일찍이 경지정리를 한 들판이 지금은 시흥시 곡식창고라고 할 수 있는 호조벌이 있다. 호조벌은 넓어서 안현동, 은행동, 미산동, 포동, 매화동, 연성동을 걸치고도 또 여러 동이 걸쳐 있다. 안현동 앞 호조벌은 앞방죽, 오구재, 응담말, 개자리 등의 아주 토속적인 이름을 가진 논들이 있다. 지금은 농사짓는 일도 기계화돼 손쉽게 농사를 짓지만 1970년대 만해도 소가 논을 갈고 써레질하며 농사를 지었다. 시아버님은 집에서 기르는 암소에 멍에를 씌우고 쟁기를 달고 논으로 나가셨다. 그런 날은 여물에 콩이나 보리를 더 넣어 구수하게 쇠죽을 끓여서 먹이고 소를 부리셨다. 집집마다 소를 끌고 나와서 3월 중순이나 4월이 되면 호조벌은 여기저기서 “이랴, 이랴, 워, 워”하고 소 모는 소리가 왁자해 생동감이 일었다. 부녀자들은 점심과 새참을 해서 나른다. 때가 되면 남보다 뒤질세라 서둘러 음식이 든 광주리를 이고 논으로 나서는데, 논에서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새참이나 점심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논길에 할머니, 중년 부인,…
오래전에 상영됐던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에 등장한 주인공이 “법이라는 것은 지켜야 할 최소한이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피해가 발생하고 또한 피해자도 발생한다. 헌데 돌이켜보면 지키는 사람이 지키지 않는 사람보다 더 피해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라는 다소 자조 섞인 대사가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법대로 한다”, “법을 지킬 뿐이다”라고 소리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수히 들어왔으며 또한 법대로 다스리는 것을 숱하게 보아왔다. 법치국가에서 법대로 다스리겠다는 데야 어느 누구인들 반론을 제기할 수 있으며 거역 할수 있겠는가? 흔히들 인간사회를 다스리는 기본 규칙은 그 사회의 생활관습이고 상식이며 이 테두리를 지키는 것이 그 사회의 윤리도덕이라 하고 법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동원되는 최후의 강제조치라고 한다. 이것은 인간이 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 이전에 인간윤리와 도덕 그리고 인간적인 이해선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자제하라는 뜻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특히 오랜 세월 동안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해 온 우리나라는 고래로 집안 사람끼리의 송사는 금기시 했고 송사자체를 인간관계의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 봄이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얀마는 ‘아웅산 수치’여사의 정계복귀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음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아웅산 수치’여사를 미얀마 야당의 대표적 지도자라고 표현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미얀마 국민들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표현하는게 그녀에 대한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국명(國名)을 바꾸기 전 명칭인 버마로 더 친근한 미얀마는 아시아 후진국가들이 걸었던 우울한 길을 따랐다. 근대화시기 유럽열강의 식민지로 고통받았고, 2차 세계대전이후 독립이라는 도식으로 진행됐다. 또 해방정국에서는 주도권을 둘러싼 독립운동 세력간 분쟁이 벌어졌고 이와중에 군부가 강압적으로 정권을 가져갔다. 이러한 과정이 수치여사의 가족사에 그대로 녹아있다. 미얀마의 독립영웅으로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수치여사의 아버지인 ‘아웅 산’장군은 해방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암살당했다. 수치여사의 정치입문은 우연성이 작용하는 역사와 잇닿어 있다. 영국인 남편과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수치여사는 1988년 와병중인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미얀마에 거주중 독재자 네윈이 물러나는 역사적 격변을 마주했다. 20여년의 철권통치로 국민을 유린
봄철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이 날씨가 뇌졸중을 부를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뇌졸중(뇌중풍)은 단일 질환 국내 사망률 1위다. 큰 일교차는 혈관수축과 혈압이 올라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졸중을 일으킨다. 또 봄철 극심한 운동도 뇌졸중의 한 원인이다. 대한뇌혈관외과학회는 국내 뇌출혈 환자 10명 중 4명이 목숨을 잃거나 식물인간, 반신불수 등 심한 후유증을 겪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119 구급출동의 한 사례를 들어본다. 어지러움에 처한 70대 남성의 구급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해 조치를 취했으나 2일 전 몸 일부가 마비된 사실에 놀라 의료기관에 검진 협조결과 뇌졸중이 크게 의심된다는 판정이다. 뇌졸중은 증상 발생 3시간(골든 타임) 내에 신속히 병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때문에 환자가 발생하면 치료가 가능한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일과성 허혈발작은 뇌졸중의 증상들이 나타났다가 15분 이내 증상이 사라지는 경우로 119에 바로 신고해 병원치료를 받는게 좋다. 뇌졸중 발생 요인은 연령, 성별, 가족력 등의 후천적으로 치유할 수 없는 위험요인이 있고 치유 가능한 위험요인에는 고혈압, 흡연, 당뇨병, 심장병, 고지혈증 등이 있다. 뇌졸중 예방법에는 체중감량과 금연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 공연기획이 우아한 사무직이 아니라 옥상에 의자 깔고 와인 안주까지 만들어야 하는 노가다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부평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들을 통해 공연장을 떠나는 관객들의 환희에 찬 표정을 볼 때, 블로그 후기에 올라온 감격에 찬 후기를 읽을 때, 그 모든 수고를 잊게 하는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내가 통제할 수 없으니, 이 고생을 자초한들 누구를 탓할 것이랴.” 필자가 근무하는 아트센터 소식지 이번 ‘호박’호에 실린 공연담당 최 과장의 ‘무대 뒤 이야기’다. 늘 아트센터 직원들과 공감대를 갖고 있는 것은 쉽게 기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민, 그리고 주변부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지역 아트센터만의 차별화된 문화예술 아이콘을 기획하자는 것이다. 개관 때부터 그것은 약속을 했다. 늘 스스로 지역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왜’ 하느냐는 것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그 답만 찾으면 ‘어떻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전문직’이 해야 할 일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려면 진단을 해야 하고, 그리고 처방을 해야 한다. 하물며 ‘영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알려진 대로 영국의 극작가이자 비평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묘지에 세워진 비문(碑文)이다. 소설가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라는 짧은 글로 스스로 자신의 생애를 마감하는 감회를 표현했다. 소설 ‘적과 흑’으로 유명한 스탕달은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는 짧은 글로 자신의 삶을 요약했다. 인생의 허무함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이탈리아 극작가 존 게이다. 그의 묘비명에는 “인생은 농담이야.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죽어서야 알겠구나”하고 탄식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한 소설가 모파상의 묘비명도 뒤지지 않는다. 여기에 “밑천과 수입을 모두 탕진하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갔노라”라고 노래한 시인 장 드 라퐁테의 묘비명이 이어지면 묘비명으로 인생수업이 가능할 정도다. 인생을 거침없이 살았던 걸레스님 중광의 묘비명은 더욱 해학적인데 “괜히 왔다 간다”고 설파했다. 삶에 대한 미련, 아쉬움, 허무함, 체념에 가까운 달관이 교차하는 묘비명도 그득하다. 시인 조병화는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을 다 마치고 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