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열리면 제일 먼저 보이도록 맞은편 가득히 늘어놓았다, 슬리퍼까지 항상 벗어두던 그 자리에다 남은 자를 걱정하는 떠난 자의 갸륵한 배려 죽음과 삶의 동거방법이구나 날마다 이 구두로 나갔다가 돌아와 제자리에 벗어둔다고 뭔지도 모르는 온갖 상상공포에서 독거(獨居)를 지켜주는 친숙한 발 냄새. 저자 약력 안동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졸 [현대문학] 3회 추천완료 [거짓말로 참말하기] 등 14권의 신작시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등 다수의 수필집 정지용문학상, 소월문학상특별상, 월탄문학상, 구상문학상 등 현재 서울대명예교수
새해 1일이 되자 국민의 당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독재공화국으로 만든 ‘폭주기관차’를 반드시 멈춰 세우겠다”고 올 한해의 각오를 밝혔다. 사람마다 직업상 특정용어에 민감한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 ‘기관차’라는 단어만 들으면 귀가 쫑긋 서는데 그냥 기관차도 아니고 폭주기관차라니.. 얼마 전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첨예하게 부딪칠 때 언론마다 “브레이크 없이 마주달리는 폭주기관차처럼..”이라고 적었다. 맙소사.. 이제는 브레이크조차 없다니.. 기관사 입장에서 상상만 해도 끔찍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과연 ‘마주 달리는 폭주기관차’가 가능할까? (현실에서는 보안장치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만일 억지로라도 만든다면 무조건 둘 중의 하나는 신호제어를 아예 무시해야 할 것이다. 누가 무시했을까? 의미상 ‘신호제어’를 ‘지휘감독’으로 바꾼다면, 검찰총장이 장관의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혼자 돌진 해버리지 않는 다음에야 이런 상황이 생길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럼 분명해진다. 현실에서 ‘마주달리는 폭주기관차’는 없다. 신호제어에 따르지 않는 ‘미친 폭주기관사’가 있을 뿐이다. 폭주기관사는 어떤 때는 검찰이란 집단으로, 다른 때는 법조카르텔에
한해를 보내면서 진도 한춤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오판주 진도 문인협회 지부장을 통해서 였다. 학예사 문제로 만나 협의를 하던 중 갑자기 타이 가봐야 할 때가 있다면서 나를 끌고 나서는 거였다. 평소에 워낙 조용하신 분이라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찾아간 곳은 다름아닌 진도한춤 보존회였다. 대강당으로 꾸며진 곳에 김해숙 보존회장이 회원 한 분과 춤 동작을 하나씩 연마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하셨는데 인사를 나누고는 이내 방문해주셔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차를 직접 끓여 오셨다. 진도는 삼별초의 항몽 유적지인데 이 삼별초의 유적지가 있는 군내면 용장사지와 지산면 안치 인근 마을 여성들의 춤사위를 채록한 춤이 바로 진도 한춤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진도한춤을 진도 유배지 춤이라고 하는 것은 십분 이해가 된다. 오선생의 간청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 진도한춤의 시연을 볼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춤의 도입부는 완만하면서도 애처로움이 묻어났다. 힘들게 견뎌나가는 생활의 부분을 묘사하기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마음의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손끝에 외로움을 풀어 허공에 흩기도 하다가, 뱅 돌면서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는 듯도…
드디어 그녀가 2주간 3일을 빼고는 매일 걸었다는 표시가 된 체크리스트를 나에게 주었다. 시간도 기입하였는데 보행시간이 모두 30분은 넘고 1시간씩 되는 날도 몇 번 있었다. 치료 초기에는 위장기능이 극도로 저하되어 속도 쓰리고 잘 먹지도 못해서, 통증으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서, 두통이 심해서. 생리통이 심해서 등등의 이유로 계속 주저되었고 몸의 증상이 조금씩 호전이 되자 조금 활동이 느나 싶더니 곧, 비가 여러날 와서, 날씨가 추워지면서 나가기 싫어서. 김장을 하느라 며칠간 몸살이 나서, 또 나가서 걸으면 귀가 너무 시려서 라는 아주 다양한 이유로 주저되었던 걷기였다. 체크리스트를 나에게 건내면서 그녀는 계속 걸으니 소화가 좀 되고 장이 움직여서 그런지 식사량이 좀 늘었어요, 두끼가 먹어져요. 라고 덧붙인다. 몸도 더 가벼워지는 것 같단다. 과연 체크리스트를 비교해보니 30분씩이라도 걷기를 지속한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 되니 식사가 한끼에서 두끼로 늘기 시작했다. 좋은 면역을 위한 영양섭취와 소화를 위해 움직임이 필요하고 최소한 하루에 30분정도의 걷기를 권했던 5개월만의 일이다. 그동안 위장통증, 설사를 비롯하여 불안장애도, 화병도, 대상포진도, 진통제
나는 국회의원 강민정의 후원회장으로 정치후원금 모집을 책임지고 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됐다. 첫째, 교사출신, 공무원출신 국회의원은 과거의 동료선후배들한테 소액정치후원도 받지 못하도록 법이 금지한다. 공무원, 교사의 신분을 이유로, 좋아하는 국회의원한테 소액후원조차 못하게 막는 건 과잉금지의 전형이다. 법 개정이 요구된다. 둘째, 지금의 세액공제 정치후원금제도는 겉보기와 달리 정치의 부익부빈익빈을 강화하고 부익부빈익빈의 정치를 재생산하는 아주 몹쓸 제도다. 국세청 자료가 입증한다. 2018년 근로소득 상위1%는 정치후원금의 24.2%, 상위5%는 48.4%, 상위10%는 62.6%, 상위30%는 90.1%를 제공했다. 압도적이다. 반면 근로소득 하위50%는 2%, 하위70%는 9.9%를 제공했다. 보잘것없다, 종합소득 상위1%는 33.8%, 상위5%는 61.8%, 상위10%는 75.9%로 더 집중이 심하다. 소득중하위집단도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를 받는다. 자기부담이 전혀 없이 정치후원금을 낼 수 있지만 기회를 쓰지 않는다. 실은 고소득층도 정치후원자 비중은 5%를 넘지 않는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8년에 후원금을 한
허위를 항일지사로만 아는 사람이 많다. 항일 의병장으로 이름을 알리고, 일제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최후를 마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허위는 정당정치가 도입되기 전에 ‘책임 정치’의 문화를 이 땅에 선보인 뛰어난 지도자였다. 의병항쟁이 무위로 돌아가자 한양으로 올라온 허위는 세 차례에 걸친 ‘소청운동’을 연속적으로 벌였다. 첫 번째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원수를 갚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자는 ‘복수소청’이었고, 두 번째는 주변 열강의 침탈을 분쇄하고 내정 개혁에 필요한 ‘건의소청’이었다. 마지막으로는 국정운영 현안에 대한 ‘광의소청’이었다. 허위는 이러한 소청운동으로 여론전을 벌이는 한편으로 황국협회에 참여하여 독립협회가 주관한 만민공동회에 대한 반대활동을 벌였다. 허위를 비롯해 황국협회의 선봉에서 근왕운동을 펼친 인물들은 을미년에 항일의병을 일으켰던 의병장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세웠던 위정척사 이념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거리에서 싸우고, 현실정치에 참여했다. 허위의 경륜과 포부를 들은 고종이 부르자 관직에 나갔다. 그러나 관직에 연연하여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조금도 유보하지 않았다. 평리원 판사와 의정부 참찬, 비서원승 등의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전 세계 항공시장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한 항공 수요와 공급의 급감, 국가 간 출입국 제한 및 격리 조치 확대 등으로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 전문가들은 항공여객의 경우 전년 대비 40% 이하로 하락해 전년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2∼5년이 소요된다고 예측했다. 2030년까지 2만1760대가 예정된 항공기 완제기 제조도 30% 이상 감소해 항공 MRO 시장도 장기불황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한데 정부는 항공산업의 구조 재편에 가속도를 냈다. 오히려 엄청난 공적자금을 투입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주도했다. 국적항공사의 경영 정상화와 국제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세계 7위권 대형항공사(FSC)와 동북아 최대 저비용항공사(LCC)를 만들 요량이다. 또한 ‘항공MRO 통합법인’도 설립해 FSC‧LCC의 안전운항 역량 제고와 국부유출(외주 54%, 1조5000억 원)도 막을 계획이다. 이런 방침을 공항경제권 구축에 온전히 담아야 할 인천국제공항의 역할이 막중해졌다. 하지만 정치권의 몰이해와 지역이기주의로 벌써부터 엇나가고 있다. # 국민안전 위해 항공MRO 육성 시급해 정부와 산업은행은 ‘1국가 1FSC(Full Service Carrier)…
“천지의 물을 떠가서 남녘 한라산 물과 섞으려고 해요. 남북을 하나로 합치는 거지요.” “그 장한 소원 꼭 이루어지도록 저도 노력할게요. 이별 70년, 재회의 시작이군요.”
아이 하나가 엉엉 울면서 내게 다가온다. 보통은 다른 친구가 우는 아이를 토닥이며 데리고 온다. 눈물을 쏟는 아이를 달래며 자초지정을 묻자 친구 A가 자신을 때리면서 욕했다고 말한다. 한참 성토대회를 열던 아이는 이때부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낸다.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하고 폭력을 쓰는 건 선생님께 혼나야 하는 일이니까. 친구가 얼마나 혼날지, 내가 어떤 판결을 내려줄지 기대감이 차오른다. 막상 A를 불러서 삼자대면 해보면 나쁜 행동을 저지른 나름의 이유가 있다. B가 먼저 놀리고 도망쳤거나, B가 먼저 때렸거나, B가 예전 어느 날에 자신을 놀리면서 때렸거나. 보통은 셋 중 하나의 이유로 귀결된다. 장난치려고 먼저 때리는 경우는 있어도 아무 이유 없이 욕하면서 건드리는 경우는 드물다. 과거의 어떤 사건이 마음 속에 남아 있다가 갑자기 행동으로 드러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상담하면서 두 아이 모두가 잘못한 점을 발견했을 때 담임교사인 나는 홀가분한 마음이 된다. 잘못의 경중을 크게 따지지 않아도 되고, 서로 사과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는 걸로 종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지만 본인들도 잘못한 점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남과 북의 흥겨웠던 시간은 어느새 백년은 지났나 싶게 아득하다. 실제 백년 전쯤으로 한번 돌아가볼까. 1898년은 “제국 아메리카의 시발점”이다. 미국은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 쿠바와 필리핀을 독립시키겠다며 노쇠한 스페인 제국과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사실은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쿠바와 필리핀은 독립은커녕 졸지에 주인만 바뀐 식민지로 다시 전락했다. 1895년 청일전쟁으로 조선반도에서 중국을 몰아내고 “조선은 독립국”이라고 선언했으나 조선을 식민지 비슷하게 거머쥔 일본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1905년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귀결되자 조선의 식민지화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러나 어디 그게 일본 혼자의 힘이었던가. 러일전쟁 자체가 영국과 미국의 지원으로 치러진 전쟁인데다가 태프트-카츠라 조약에 따른 거래가 깔려있지 않았는가? 그 거래라는 게 뭔지 이제는 다 안다. 필리핀의 주인은 미국이고 조선의 주인은 일본으로 하자는 거 아니던가. 미국의 이른바 아시아 태평양 체제는 이렇게 우리에게 역사적 고통을 강요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러니 미일전쟁(美日戰爭)이기도 한 아시아 태평양 전쟁 마무리를 한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