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예언자라도 자기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라고 신약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안식일에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환자들의 병을 고쳐주었지만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보고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배척까지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한 예언자 또는 선지자는 고향의 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 채 아주 큰일을 도모하거나 인류를 구하는 성스러운 과업에 전념한다. 안목이 좁은 고향 사람들은 위인들을 못 알아보기 십상이다. 일제시대에 고향을 버리고 만주로, 시베리아로 떠돌며 피땀을 흘리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선구자들도 일생을 조국의 해방에 바쳤다. 그들의 가족이나 친척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향 사람들은 눈에 띠지도 않고 생사조차 분명하지 않은 선구자들을 잊고 지냈다. 그래서 그들은 가곡 ‘선구자’의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한줄기 혜란강은 천 년 두고 흐른다/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라는 가사처럼 고독한 생애로 일관하다가 초야에 묻혀갔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이 8년 만에 고향인 목포를 방문해 목포 역전에 몰려든 전라도 유지와…
신고유가시대 진입 경제에 큰 부담 다소비형 산업·가정 난방 획기적 변화 필요 정부에서는 지난 1985년 국무회의 의결로 11월을 ‘에너지절약의 달’로 설정하여 각종 에너지절약 행사를 실시하여 오고 있다. 범국민적인 에너지절약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마련된 11월 에너지절약의 달은 난방에너지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겨울철 에너지 절약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산업체와 가정에서의 에너지절약 실천을 유도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6.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작년 에너지수입금액만도 669억달러에 달하였다. 2005년 평균유가는 배럴당 49.37달러로 전년대비 약 46% 가량 상승하였고 2006년 들어서도 고유가 행진은 지속되어 평균 63.34달러 수준을 보임으로서 가히 신고유가시대로 진입하였다 하겠다. 한때 최고 7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던 국제유가는 우리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에서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과 안정적 수급은 우리경제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하겠다. 특히, 우리는 에너지소비 세계 10위로 선진국에 비해 에너지원단위와 에너지 다소비업종의 비중이 높아 지난해 에너지 수입액이 전체 수입액의 25%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입법을 준비 중인 민영의료보험법에 대하여 법안의 의의를 왜곡하는 재정경제부와 보험회사의 공세가 거세다. 지난 10월30일 생보·손보협 등 업계 사장단들은 이 법안에 대해 “민영의보 말살...서민부담가중”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규탄성명을 발표(경기신문 10월31일 11면)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이들의 주장엔 정작 이해당사자인 국민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시장작동의 시스템이 현행체계 하에서 어떻게 부정되고, 왜 민영의료보험법 제정이 국민의 기본적인 선택권을 높이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검토도 빠져 있다. 민영의료보험법은 국민의 알권리의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 현행 민영의료보험약관은 알권리의 보장과 거리가 멀다. ‘약관을 제시했으므로 제대로 못 본 소비자 잘못’이라는 보험회사의 주장은 최소한 질병정보에 관한 한 맞지 않다. 질병정보는 ‘소비자 무지’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보험회사와 같은 공급자에게 질병정보가 독점되어서 보험회사와 소비자의 대등한 계약이나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민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약관의 표준화 등 공익적 개입이 필요하다. 또한, 민영의료보험법은 현 보험업법을 통해 양산되고 있
임기말 풍습
이미 심각한 광우병의 위험성이 검증(?)되고 심지어는 상호 약속한 안전검증시스템조차 위반한 미국산 쇠고기가 30일 인천공항으로 반입되었다. 이로써 광우병균의 주요 매개체는 미친소를 수출한 부시정부와 수입한 노정부임이 밝혀졌다.
북한의 10.9핵 실험 이후 미국의 한반도 개입이 너무 노골화 되고 있는 듯 하다. 노무현 정부의 외교· 국방· 통일 장관이 줄줄이 사임하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 미국이 한국의 장관 인사 문제를 들고 나온 데서 이를 보게 된다. 미국의 압박은 그 동안 우리 입장에서는 가장 민감하고 심각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쉽게 표현하면 ‘북한 선박에 대한 검문· 검색’ 활동에 적극 동참하라는 선이었다. 이제는 장관마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채우라는 데까지 미치고 있다. 워싱턴 발 보도에 따르면 지난 27일, 미 국무성 숀 맥코맥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장관 자리에 언제 누구를 앉힐지는 본질적으로 내정문제”라면서도 “각 부처에는 노련하고 강력한 전문가 집단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 안보 관련 장관 인사 문제는 “심각하고 중요한 이슈인 만큼 최고위급에서 최대한 주의를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요지의 말을 했다. 이 같은 한 국무성 관리의 말은 우리에게는 ’내정 문제‘가 아닌 ’내정 간섭‘으로 들린다. 그가 말한 ’전문가 집단‘이란 표현은 미국에서 교육받은 ’친미파‘를 등용하라는 뜻일 것이고, ’최고위급‘이란 말은 ’대통령‘을
지난 주 언론에서는 최규하 전대통령과 김일 선수의 장례식을 크게 보도했다. 우선 최규하씨는 엄숙한 국민장으로 치러졌음에도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 국민없는 국민장의 모습이었다. 이는 전직 대통령이었고 우리 외교사에 큰 업적을 남긴 공훈에도 불구하고 1979년 10.26사태 이후에서부터 이듬해 신군부가 집권하기까지 보여준 그의 행적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을 것이다. 아직도 아궁이를 연탄화덕으로 사용한다는 검소함이 거론되어도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연도를 지나는 시민들만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전직대통령의 장례행렬을 지켜보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우리들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그러나 토요일 장례식을 치른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는 거창하지도 않았고 유명인사의 명단이 줄줄이 채워져 있는 장례위원회도 없는 조촐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빈소에는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잇따랐고 영결식에는 마지막 그의 모습을 아쉬워하는 이들로 식장이 메워졌었다. 아마도 국민들 대부분 김일 선수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픔을 함께 했을 것이다. 그는 지난 6, 70년대 국민들을 흑백 TV 앞에 모여 목이 터지게 함성을 지르게 했던 주인공이었다. 아니 그는 언제나 역경을…
다양한 전문교육 늘려야 여성농민 지원책 뒤따라야 보조자에서 농업핵심 역할 DDA·FTA 등 개방화시대 파고에 모든 농촌지역이 어려운 것은 공통이지만. 그 실태는 지역별로 매우 다르다. 어떤 지역은 발전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다. 활력있는 지역사회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농촌여성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두드러 지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농업분야의 기간노동력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농촌여성은 농업의 유지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핵심 대상이 되고 있으며, 최근 다원적 기능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농업·농촌사회의 유지를 위해서도 반드시 고려되야할 대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통계를 보면 여성은 106만7천명(2004년 기준)으로 전체 농업 종사자의 53.0%를 차지한다. 2001년의 52.9%(120만4천명)보다 높아졌다. 인구 구조로 볼때 농업·농촌은 여성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농가인구의 감소로 농업노동력이 부족하고 영농형태도 논벼 위주에서 원예작목 중심으로 변화함에 따라 농촌여성의 농업 노동 기여도 역시 남성보다 높은 게 현실이다. 특히 여성 기여도가 높은 과수·원예·축산
인간에게는 자유가 소중한 만큼 평등 또한 소중하다. 이들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때에 사회는 안정되고 개인은 행복하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경우에나 치우치기를 잘한다. 어떤 사회는 자유를 강조하다 평등에 손상을 입는가 하면 어떤 사회는 평등을 강조하다 자유가 침해를 당한다. 자유주의 내지 민주주의는 자유를 강조하다 평등이 손상을 입기 쉬운 사회이고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는 평등을 강조하다 자유가 손상되는 사회이다. 그런데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이 땅 한반도는 지난 반세기 동안에 북녘은 평등, 평등하다 자유를 잃어버린 사회가 되고 말았고 그 평등도 함께 굶주리는 평등에 이르고 말았다. 반면에 남녘은 자유를 추구하는 어느 정도의 자유는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되었는데 평등에 손상을 가져와 빈부간에 격차가 많이 벌어지게 되었다. 물론 몇십년 전에 비하면 경제적인 수준은 전체적으로 많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비하여 상대적 빈곤감이 더욱 두드러져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옛날에 비하여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추구하고 나가야 할 대안(代案)이 무엇일까? 다름아니라 자유와 평등이 균형있게 어우러져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건설이다. 성경이 위대한 것
한반도의 ‘북핵 문제’를 남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지가 늘 궁금하던 차에 가 28일자로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실었다. 필자의 서론은 길었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미국을 움직이는 힘은 북한이다’라는 결론이다. 중동 지방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는 말이다. 중동 전쟁 때나 가끔 국내 언론에 소개되는 ‘알자지라’에서 카툰을 담당하는 슈자아트 알리의 동영상(10월 13일자 게재) 네 편이 뒤늦게 우리에게 소개되었다. 카툰 제목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North Korean Bomb Scare)’이다. 장면 1은 진땀을 흘리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권위와 가치의 상징이다. 이 여신상이 땀을 흘린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장면 2는 여신상이 한 문서(그 안에는 CTBT와 NPT가 쓰여 있음)를 쥔 채 놀라고 있는 모습이다. 장면 3에서는 여신상이 ‘이제 그만(Oh! No! Please!)’하라며 떨고 있다. 네 번째 그림은 핵을 탑재한 미사일을 쥐고 웃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이다. 작가는 한반도의 핵 위기와 관련, 미국의 몸통을 움직이는 주체는 북한 김 정일 국방위원장이라는 것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중동 사람들의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