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사람들이 꽉 들어찬 화물열차가 수용소에 들어왔어. 비가 내리고 있었고, 여기저기에 판자들이 부서져 작은 구멍이 나 있더군. 그런데 갑자기 한 구멍을 통해 어머니의 모자와 아버지의 안경과 미사의 창백한 얼굴이 보이는 거야. 나는 소리지르기 시작했고 가족들이 나를 보았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대재앙이야. 지난 24시간 동안 유대인들이 연이은 해일처럼 밀려들어와 수용소가 넘쳐나고 있어. 네게 이 말은 꼭 해야겠어. 오늘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미샤 때문에 충격을 받았어. 아버지는 완전히 무기력하고, 만 하루 만에 웃옷의 칼라가 훌쩍 커진 것처럼 보이고, 까칠한 흰 수염이 애처로워. 하지만 우리가 오늘 아침 빗속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리다가 여호수아기에서 놀라운 인용구를 찾아냈을 때 아버지는 작은 성경을 흔들어댔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 큰 막사에 있는데, 그곳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 찬 인간 창고 같아. 좁은 철제 침상 하나에 세 사람씩 자고, 매트리스도 없고 물건을 둘 곳도 없고, 아이들은 겁먹고 소리를 질러대서 정말 비참한 상태야. 나는 최선을 다해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려 노력할 거고, 더 기운을 내고 용감해질 거야. 이따금 암흑 말고
지난 2002년 3월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경선이 시작되기 직전 당시 야당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은 46.5%였으며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1~2%에 불과했다.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는 평범한 군소 후보 중 1인에 불과했던 노무현은 막상 경선이 시작되자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지만 ‘후단협’이라고 불리는 당내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힌다. 이로 인해 노무현은 정몽준 후보와의 길고 지루한 ‘단일화 과정’을 거쳐야만 했으며 투표 전날에는 정몽준의 단일화 약속마저 철회가 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바보 노무현은 굽히지 않았다. 이는 오히려 지지자들의 뜨거운 결집을 끌어내 투표 당일 날 수많은 인파를 투표장으로 향하도록 만들었으며,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돼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노무현이 이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그의 노력과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무모한 도전이 경선과정에서 제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흔히 투표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불린다. 유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경기도내 지역 YWCA가 운영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비공개 보호 시설에 ‘취득세 8500만 원’이라는 폭탄이 떨어졌다. 이 시설엔 가정폭력 피해자 15명과 그 자녀, 시설 직원이 머물고 있는데 얼마 전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이전했다. 이전이 필요했던 이유는 많은 인원이 생활하기에 비좁았던 탓도 있지만 노출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약 10년 전 노출이 돼서 이전한 일이 있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좁은 공간에서의 감염위험이 커지자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6억 원에 주택을 매입, 이전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전 과정에서 8500만 원이라는 세금폭탄을 맞은 것이다. 2012년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돼 취득세 감면을 받아왔지만 2019년에 개정되어 지난해 시행된 지방세 특례법은 이 시설의 세제 감면을 인정하지 않았다. 세제 감면 대상 사회복지시설 가운데 여성 폭력피해자 보호시설과 아동 보호 시설 등이 제외됐다. 양로, 아동양육 등 6개 시설은 사회복지법인으로서 정부의 관리를 받는 사회복지시설로 분류해 취득세를 면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비영리 민간단체인 여성 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은 공익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알 수 없었던 이 시설의
작업실에 놀러 온 음악광 친구가 유튜브 뮤직으로 이것저것 찾아 듣는다. 귀에 익으면서 낯선 선율이 심장을 훑고 지나간다. 무슨 음악인가 물었다. “시타르” “라비 샹카?” “아니 딸. 아누쉬카 샹카. 시타르 별로라면서?” “딸 건 좋네 ” 월드뮤직이 낯선 이에게 선문답으로 들리겠다. 정리하자면 친구가 틀었던 음악은 아누쉬카 샹카(Anoushka Shanker)의 시타르(인도전통악기) 연주인데 그의 아버지 라비 샹카(Ravi Shanker 1920-2012)는 세계적인 시타르 연주자다. 대가인 라비 샹카의 시타르 연주에 관심 보이지 않았던 내가 딸의 시타르 연주에 반응하자 의아했던 것이다. 친구가 음악광다운 한 마디를 보탠다. “하긴 월드뮤직은 전통, 민속만 고집하면 안 돼. 섞어야지” 시타르를 처음 만난 건 20년 전, 인도 배낭여행할 때다. 북서부 타르 사막 도시인 자이살메르까지 흘러들어 갔는데 초여름 비수기라 동행 여행자가 나 말고 서너 명뿐이었다. 가이드와 여행자들이 쉴 곳을 찾아 가는데 사막 풍경을 더 보겠다고 혼자 남았다. 사막은 처음이었다. 건물과 사람과 소음이 일상이던 도시인에게 ‘아무것도 없는 곳’이 주는 충격은 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나는 수용소에 내가 가든 다른 누가 가든 상관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흥분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내가 체념의 미소를 지은 채 파멸의 품속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럴때 조차 궁극적으로 그들은 우리에게서 중요한 것을 빼앗을 수 없음을 확실히 알기에 버틸 힘을 얻는다. 나는 결코 피학증 같은 것 때문에 수용소에 가려하거나 지난 몇 년간 내 경험의 기반이었던 소중한 것들에서 분리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일에서 내가 면제된다고 해서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은 살아남아서 해야 할 일이 많고 남에게 줄 것이 많기 때문에 숨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계속 말한다. 하지만 내가 남에게 무엇을 주어야 한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 줄 수 있다는 걸 안다. 친구들과 함께 여기에 있듯 강제수용소에 있든 상관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하기에는 자기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순전히 교만일 뿐이다. 그리고 만일 신도 내가 할
류시화. 그를 생각하면 ‘인도’가 떠오른다. 써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라는 건 진즉 알았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 사람을 90년대 이후 불어온 인도 열풍에 편승한 상업주의 작가라고 의심해왔다. 그가 쓴, 이름이 생각 안 나는 인도 여행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대중영합적인 책이구나"라는 심증이 더 강해졌다. 며칠 전 딸아이 보라고 도서관에서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대신 빌렸다. 반납하기 전에 소파 위에 놓인 책을 심심풀이로 들쳐봤다. 의외로 흡인력이 강했다. 술술 읽혀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말 그대로 마음이 '덜컥' 흔들리는 듯 충격을 받았다. 47페이지 '세 가지 만트라' 대목이었다. 왜 그랬을까. 류시화가 명상 수행을 위해 북인도 히말라야 산록을 찾았을 때 이야기다. 산모퉁이 납작바위 위에서 명상에 빠진 요기(요가수행자) 싯다 바바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 순간 작가는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완벽한' 스승임을 직감하고 반 어거지로 제자가 된다. 문제는 이 스승이 제대로 된 명상은 하나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물 길어오기, 밭 갈기, 땔감용 소똥 주워오기 등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온종일 일만…
- ‘금기’가 된 죽은 자의 이름 인류학, 민속학, 종교학, 문학 그리고 예술 등의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친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J. G. Frazer)가 쓴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에는 여러 “금기(taboo)”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가운데는 호주의 어느 원주민 공동체에서 죽은 이의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경우가 보고된다. 망령(亡靈)에 대한 공포 때문인데 이는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관습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슬픔과 공포 그리고 기억이 희미해지게 마련이어서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의 이름은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붙여져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기도 한다. 어떤 부족은 아기가 탄생한 지 7일 뒤 여러 조상의 이름을 의미하는 쌀들을 물잔에 떨어뜨려 그 쌀의 움직임을 보고 아기와 인연이 닿는다고 여긴 이름을 선택한다고 한다. 금기에도 수명이 있고 그건 시간의 통로를 지나 사회적 생명을 얻어 재생되기도 하는 것이다. 《황금가지》의 부제는 “마술과 종교에 대한 연구(A Study in Magic and Religion)”라고 되어 있다. 그 제목대로 이 책은 아득한 시절에 살았던 인간의 원시적 정신사를 다룬 것이기도 하
슬픔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슬픔이 짓누르는 것 같은 때에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매우 강하고, 틀림없이 슬픔은 우리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슬픔으로부터 도망가면 안 되고 어른스럽게 슬픔을 견뎌야 한다. 증오를 통해 슬픔을 줄이려 하지 말고, 모든 독일의 어머니들에게 복수하려 하지도 마라. 그들도 아들이 죽임 당하고 살해당해서 슬픔을 겪는 어머니일 뿐이다. 우리 안에 슬픔을 담기에 마땅한 공간과 안식처를 마련하라. 모든 사람이 슬픔을 정직하고 용감하게 견디면 세상을 가득 채운 슬픔이 누그러질 것이다. 반면에 슬픔이 머물 수 있는 적절한 안식처를 준비하지 않고 내면을 대부분 증오와 복수할 생각으로 채우면, 거리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슬픔이 생겨날 것이고, 이 세상에서 슬픔이 결코 그치기는커녕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전쟁은 근원에 있는 인간, 사랑하는 데 실패한 인간, 끔찍한 결과를 맞은 인간, 비탄과 슬픔에 빠진 인간을 나타낸다. 우리가 직시할 수밖에 없는 엄연한 사실을 포기한다면, 즉 엄연한 사실이 우리의 머릿속과 가슴속에 깃들 곳을 마련하여, 그것이 자리 잡고 우리를 분발시킴으로써 우리가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