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사람들은 새해에 잘 될 거라고 응원했다. 나는 ‘고독이 축복이 될 때까지’라며 방에 흐리게 박혀있었다. 이곳 남한산성 밑 고골에는 하남 교산 3기 신도시 재개발로 주인이 버리고 간 개들이 들개라는 오명을 쓰고 쓰레기를 뒤진다. 빈집에 몸을 숨긴 길고양이들과 남은 몇 집은 서로의 불빛에 의지하고 있다. 멀쩡했던 마을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포클레인에 휩쓸려 전쟁이 지나간 것처럼 참혹하다. 그 틈을 이용한 고물상들은 창틀, 전선, 전등, 정원수, 심지어 축대였던 돌을 뜯어내 돈벌이를 한다. 군락지 소나무 숲은 전기톱 공세로 황량하기 그지없다. 갈 곳을 찾지 못해 남아있는 집을 상대로 LH는 소송을 걸었다고 윽박지른다. ‘선이주 후 철거’를 약속했던 그들, 곳곳에 쇠기둥을 박고 가림막을 설치했다. 뉴스에서나 볼만한 터전을 빼앗기고 자살한 사람들처럼 내가 궁지에 몰릴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 없었다. LH는 마치 이곳의 추억과 기억까지 보상한 양 이사 가라고 압박한다. 이곳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보낸 집주인 아저씨와 노모는 정든 고향을 떠나기 싫어 말라 갔다. 떠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거라는 서류를 받고 주민들은 지난해 난민처럼 이사 갔다. 집주인 노모는 고골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최근 연합뉴스는 2023년 6월 인천 송도신도시 부영타워에 둥지를 튼 재외동포청이 서울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는 재외동포청장과의 신년 인터뷰를 보도했다. 애초 서울 입지를 선호해 온 재외동포 단체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재외동포청 유치의 당사자인 인천광역시와 지역 언론·시민사회는 반발하고 있다. 현 청사 임대차 계약 만료를 앞둔 이 논란은 2026년 재외동포청이 추진해야 할 동포 데이터베이스(DB) 구축, 핵심 민원 해소, 한인 사회 네트워크 강화, 포용적 귀환동포 정책, 정책 추진체계 일원화 등 중점 과제를 압도하며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도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검토–보류’와 ‘철회–사과 요구’가 맞서는 공방만 이어질 뿐 논쟁의 초점은 흐려지고 있다. 출범 3년도 채 되지 않은 신생 중앙행정기관의 본청 위치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된 이유를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2023년 4월 재외동포청 본청은 인천 송도로, 통합민원실은 서울 광화문으로 이원화한 결정에서 비롯됐다. 당시에는 국제공항·항만 접근성, 개항과 근대 이민사의 상징성, 국제도시로서의 성장 가능성,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정책적 명분과 함께…
최근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유령집회’와 ‘알박기 집회’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법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집회 형식으로 타인 또는 다른 집단의 정당한 헌법적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 같은 얌체 행위는 심각한 폐해다. ‘집회’가 목적이 아니라 ‘장소 선점 장악’이라는 불순한 목적으로 자행되는 편법 행위는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특히 상습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개인이나 단체부터 과태료 가중부과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집회 신고만 하고 실제 집회는 하지 않는 것을 이른바 ‘유령집회’라고 한다. 더 나아가 집회는 거의 하지 않으면서 장기간 특정 장소를 선점해 집회 신고를 하는 방법으로 다른 단체의 집회나 행사를 차단하는 것은 ‘알박기 집회’라고 한다. 적극적으로는 집회 장소를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내려는 목적으로 선점하는 것이고, 소극적으로는 예고 플래카드 등을 통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편법적 목적으로 악용한다. 경기신문이 입수한 경찰청 공공데이터포털 자료에 다르면 전국 집회 신고 건수는 2021년 357만 9541건에서 2022년 430만 4917건으로 37%가량 증가했다.그러나 실제 집회가 열린 건수는 2021년…
보일러가 고장 났습니다. 하필이면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버린 날이었어요. 그것도 저녁 무렵이었지요. 대리점에 전화했지만, 일과가 끝난 시간이라 보일러 기사는 다음날에야 방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상한 일이었지만 난감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집안은 점점 더 싸늘해졌어요. 추운 겨울이라지만 실내에서조차 몸을 움츠린 채 서성이는데,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그러고는 이토록 사소한 일에 반응하는 나를 보며 마음이 또 가라앉아버렸지요. 잠깐의 불편도 참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게 아찔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쌓아두었습니다. 씻는 일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왔어요. 차가운 물로 이를 닦고, 고양이 세수를 했어요. 전기포트에라도 물을 끓이면 될 것을,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따뜻한 물이 그리웠습니다. 이미 경험한 것, 오래 누려서 익숙한 것이 끊겨버리자, 그리움은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 틈으로 묻혀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몸 하나가 다 들어가는 빨간 고무통. 우리는 속옷만 입고 엄마의 호명을 기다리며 오돌오돌 떨고 있었어요. 차례를 기다리며 먼저 들어가기 싫다고 뻗대다가 다 씻고 나온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했지요. 뜨거운…
경기도에 거주하는 여성 4명 중 1명이 일상생활에서 스토킹, 교제 폭력, 디지털 성폭력 등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성 폭력은 우리가 타파해야 할 성차별 문화 중 으뜸 항목이다. 1988년에 여성정책 총괄·조정업무를 전담하는 정무장관(제2)실이 설치된 이래 역대 정부는 모두 성평등 정책을 강화해 왔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사회에 여성 폭력의 공포가 이렇게 깊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진정한 성평등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일대 각성이 필요하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은 지난 2022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여성 폭력 실태 조사를 실시해 ‘2025년 경기도 여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재단은 경기도에 거주하는 만 19~79세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신체적, 정서적, 성적, 경제적, 스토킹, 디지털 성폭력 등 6개 폭력 유형별 피해 경험, 폭력 피해 발생 상황에서의 대처, 폭력에 대한 인식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중 무려 24.0%가 ‘성추행이나 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답변한 점이 눈에 띈다. 적어도 여성의 4분의 1은 일상적으로 성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산다는 뜻이어서 안타깝다. 폭력에
필자는 요즘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하고 있다. 처음부터 맨 땅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색하다. 체중을 팔에 실어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손목이 먼저 아프고, 시선은 어디를 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벽에 기대어 다리를 들어 올리고, 손바닥에 체중을 실은 채 숨을 고른다. 이마저도 쉽지 않다. 1분도 버티기가 힘들다. 다리가 공중으로 뜨는 순간, 몸은 본능적으로 균형을 거부한다. 넘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몇날 며칠을 시도하다보면 조금 나아진 듯하다가도, 어느 지점에서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흔한 말로 ‘벽’을 느낀다. 아무리 연습해도 넘어가지 않는, 분명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한계. 그 벽을 넘기 위해 근력을 키우는 일은 물론, 손의 각도, 시선의 위치, 호흡의 리듬, 몸을 맡기는 감각 등의 여러 기술도 몸에 익혀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누가 대신 알려줄 수 없다. 실패를 반복하며 스스로 몸으로 익혀야 한다. 그래서 물구나무서기에서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구간은,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순간이 아니라, 아직 넘어가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서 버티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단계를…
새해를 맞아 여러분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가? 색다른 여행을 꿈꾸고 있지는 않으신지? 식상한 일상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이들에게 소개하고픈 곳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상투메 프린시페(São Tomé et Príncipe)가 바로 그곳이다. ‘성 토마스’와 ‘왕자’를 의미하는 이 두 섬은 대서양 한가운데 울창하게 솟아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봉 해안과 적도, 그리고 그리니치 자오선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자연 애호가나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최적의 여행지다. 원시 그대로의 보석이자 세상 변방에 자리한 무공해 파라다이스이니까. 이 진가를 알아 본 유네스코는 지난 9월, 나라 전체를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정했다. 한 국가를 통째로 지정한 예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상투메 프린시페는 1975년까지 식민지였다. 포르투갈의 탐험가인 산타렘과 에스코바르는 1470년 12월과 1471년 1월 각각 이 섬을 발견했다. 그 당시 군도는 숲으로 뒤덮인 무인도였다. 물론 지금도 대부분 야생 그대로이지만 말이다. 울창한 열대우림으로 뒤덮여 있고 구리 빛 모래 해변이 가장자리를 따라 펼쳐져 있다. 포르투갈인들은 이 섬들을 노예무역의 중심지로 삼았다. 그러나 1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마다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장의 대규모 인사, 이른바 선심·보은·정실 인사 논란이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도 특정 인맥이나 측근 위주의 인사가 단행되거나 예고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직사회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인사는 단순한 자리 이동이 아니다. 조직의 가치관과 운영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행정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임기 말에 이루어지는 무리한 인사는 공정성과 책임 행정이라는 지방자치의 기본 원칙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공정성에 대한 신뢰 훼손이다. 성과와 역량보다는 개인적 친분이나 정치적 고려가 인사의 기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다수의 공무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열심히 일해도 소용없다”라는 냉소가 조직 전반에 퍼지면 행정의 동력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차기 지방정부의 인사권 침해 문제다. 임기 종료를 앞두고 국·과장급을 포함한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거나 핵심 보직에 장기 근무가 가능한 인사를 배치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다음 단체장의 합법적인 인사권을 제약하는 효과를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