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김인구 불일암, 무소유길을 걷는다. 후박나무 그늘 아래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법정의 뒤안길 푸르른 하늘은 푸르른 하늘을 쏟아내고 뭉게구름은 뭉게구름을 따라 돌아가지. 순연의 초록은 흐드러지는 초록으로 남아 느릿, 느릿 바람도 뒤짐 지고 걷는 불일암. 문득 고개를 드니, 아주 높은 곳에 뭉게구름이 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하도 고요하고 깊어, 시인은 호수의 밑바닥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길섶에는 젖은 나무와 바위들이 짙은 가을에 흠뻑 취해 있다. 대나무도 온몸을 흔들며 늦은 가을의 서늘한 휘파람을 분다. 삼나무, 편백나무, 상수리나무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움켜쥐고 있다. 그런데 저기, 찻잎처럼 맑고 그윽한 후박나무 아래 법정의 묵언이 소스라치는 듯하다. “푸르른 하늘은 푸르른 하늘을 쏟아내고 // 뭉게구름은 뭉게구름을 따라 돌아가”야 하는 무소유의 실천이란 숲으로 향하는 목어의 강렬한 집중이 아닐까. 느릿느릿 바람이 불어오고, 순연의 초록이 목과 어깨를 감싼다. 시인은 겨우 불일암에 도착한다. 눈이라도 쏟아지면 차라리 그윽하다고 할 것인가. /박성현 시인
의료보험공단에서 검진 대상자라고 연초부터 안내장이 왔다. 속도 별로 안 편하고 검사한지도 오래되었으니 이번 기회에 꼭 건강검진을 하리라 연초부터 다짐을 했다. 별로 바쁜 일도 없으면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연말에는 병원이 혼잡하니 서둘러 검진을 하라는 안내장을 받고는 그래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 서둘러 하자라고 또 마음먹었다. 마음만 먹었을 뿐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여름엔 너무 더우니 가을에 하자고 미뤘고 가을이 오니 가을걷이며 여행 그리고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없이 지나가고 12월이 왔다. 이제는 더 물러설 곳이 없어 병원 예약을 하려하니 만만치가 않았다. 처음 마음먹었던 병원은 12월 말일경에나 내시경 검사가 가능하다고 해서 다른 병원에 확인해보니 12월 중순경에는 가능하다고 해서 다음날 방문해 보니 그사이에 오전 예약은 안 되고 오후는 가능하다고 한다. 오후에 검사를 받게 되면 하루를 다 소비해야 해서 망설이다가 예약을 하고 오면서 나의 게으름에 대한 후회를 했다. 오후에 하면서도 2주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무엇보다 연초에 한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편함이 컸다. 12월의 달력은 유난히 짧은 것 같다. 해야 할 일…
‘복지국가’의 개념과 정의는 국가, 시대,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될 것이다. 대한민국 역대 어떤 정부든 국정기조는 ‘복지국가’였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복지국가인가? 다른 선진 복지국가들과 비교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수준의 ‘복지국가’인가? 복지국가에 대한 개념정의는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복지국가는 국민의 일상생활과 관련하여 발생한 사회문제에 대해 국가가 개입해 정부의 예산과 기구를 동원하여 모든 국민이 개인의 안전을 보장받도록 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즉, 복지국가는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이며, 국민의 복지향상을 가장 중요한 책임과 의무로 삼는 국가를 ‘복지국가’라고 정의할 수 있다. 복지국가 역사를 보면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는 구휼 제도와 함께 민간 차원에서 행해진 두레, 품앗이, 향약, 계 등의 상부상조 활동도 구제 사업으로 볼 수 있다. 삼국시대의 구빈사업(救貧事業)과 고려시대는 흑창(黑倉), 의창(義倉), 상평창(常平倉), 유비창(有備倉), 동서 대비원(東西大悲院) 등과 조선시대의 비황 제도, 구황 제도가 있었다. 광복 이후에…
커튼의 존재 /김호성 부풀어 오른 커튼을 칼로 찌른다 창밖으로 밀려난 바람에는 표정이 없다 말없이 등불을 가져다 놓고 사라진 남자가 그 속에 있다 눌린 얼굴로 창문을 밀어내며 창문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새들의 목이 잘린다 낮은 지저귐만이 벽을 연하게 만든다 벽 틈에 꽂힌 칼날이 짧은 머리카락처럼 굵어진다 창틀에 묶인 남자는 아주 납작해져서 방의 주인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천장에 달라붙으려 한다 맨살에 얼음 알갱이가 돋아난다 한 방향으로만 굴러가는 상처는 마녀의 혀를 닮아간다 옮아가는 커튼의 몸부림에 실려 다음 밤으로 가기 위해, 피 묻은 티슈들이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 입김 위에 올라타듯이 창문 밖으로 남자를 던지면, 한 순간 정적이 생긴다 사람들이 떨어지는 남자를 받으려고 손을 뻗는다 커튼이 흩날릴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로 배치되어 있다. 불안하고 위험하며 유동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화자는 커튼 속에서 “등불을 가져다 놓고 사라진 남자”를 연상한다. “창문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새들의 목이 잘린다”거나 “벽 틈에 꽂힌 칼날이 짧은 머리카락처럼 굵어진다”는 감각적인 표현에서 좌절과 우울의 정조
12월 임시국회가 얼마남지 않았다. 하지만 주요 민생법안과 공공부문 채용 비리 의혹 국정조사 계획서 처리와 선거제 개혁 논의를 위해 지난 15일 소집된 임시국회가 현안마다 여야의 팽팽한 대치로 열흘째 공전을 거듭, 빈손 국회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오는 27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의 민생법안처리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각 당이 쟁점 현안들을 서로 연계하는 전략을 펴는 데다 청와대 전 특별감찰반원 의혹 공방까지 부상해 민생법안 이슈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민생법안 처리에 실패할 경우 국민의 정치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다. 만약 민생법안 처리도 제때 절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무리 설득력 있는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국회의원 수를 늘려달라는 주장 쪽으로 국민을 돌려세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민생법안은 정치적 사안과는 분리해서 27일 본회의에서반듯이 처리해야 한다. 유치원 3법과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안 등 관련 법안의 처리도 마찬가지다. 유치원 비리 사태에 학부모와 여론이 분노했지만, 비리 근절책을 담은 '유치원 3법'은 법안심사소위 단계에서 여전히 막혀 있다. 정부가 국가관리 회계
국방부가 2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과 관련 2개 안을 보고했다. 1안은 36개월, 2안은 27개월이다. 1안이 36개월인 것은 육군병사의 현행 복무기간이 21개월인데 오는 2021년 말까지 18개월로 단축되기 때문에 그 두 배 기간을 적용한 것이다. 그런데 복무기간이 1안인 36개월로 정해지더라도 1년 범위에서 조정이 가능토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최대 1년까지 복무기간 단축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기존 병역법에는 현역병은 6개월 이내, 사회복무요원과 산업기능요원 등은 1년 범위에서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승인을 거쳐 복무기간을 조정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 있긴 하다. 병역거부로 인한 대체복무자들에게도 이와 동일하게 복무기간을 일정 범위에서 조정, 복무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복무기간이 36개월로 확정되고 1년 범위에서 조정할 수 있는 조항이 반영되면 실제 복무기간은 24개월까지 줄어들 수 있다. 물론 최대 48개월까지 늘어날수도 있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병의 1.5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했으므로 복무기간이 늘어날 가능성은 별로
30대 초반에 트럭 운전수 경력, 대학교 중퇴라는 보잘 것 없는 학력의 소유자가 있었다. 그는 이력서에 적을 것이 별로 없었다. 자격증도 졸업장도 내세울 것이 없는 이 사내는 교육환경이 부족한 마을에서 태어났으나 공상과학소설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과학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이력서에 쓸 것인가? 그는 15세 때 스킨스쿠버다이빙을 배우면서 3천시간 이상 바다와 함께 했다. 당연히 바다생물의 다양성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바다에서 보던 갑각류 생물이 우주 어느 행성의 외계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상상은 강한 산성의 피를 지닌 ‘에일리언’이 되었고, 이력서를 쓰기 곤란했던 그 사람은 영화감독이 되었다. 에일리언이 워낙 오래 전 작품이라서 ‘타이타닉’과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이라고 소개해야 좋겠다. 학교의 교과서보다는 바다를 더 많이 보았던 그는 뭔가 골고루 배우지는 않았지만 어느 영역에서 매우 섬세하고 깊이 있는 경험을 했다. 이처럼 편중된 경험을 깊이 있게 하는 방식은 주식투자에서 리스크를 안고서 특정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는 ‘바벨전략
햄릿에서 여자를 약한 자로 묘사했지만 몇몇 스포츠 분야에서는 남자는 여자보다 별로 우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우선 얼른 떠오르는 것이 골프와 양궁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한다면 승마다. 골프나 양궁처럼 국내외 무대에서 통계적으로 나온 자료는 아니고 순전히 내 개인적인 느낌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남자들은 그까짓 말을 못 타느냐고 처음부터 큰소리를 친다. 그러나 막상 말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경우가 여자보다 많다. 사실 말에 오르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고소공포증이 없더라도 말 위에 앉으면 우선 겁부터 나게 마련이다. 설상가상으로 말은 자신이 태운 사람이 초보자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차린다. 말은 사람이 겁에 질렸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 냄새를 맡는다고 한다. 카리스마를 상실한 기승자는 이미 말과의 기싸움에서 진 것이다. 그러면 즐거운 승마는 이미 물 건너 간 것과 같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앉은 키에 말 등의 높이가 더해지니 그 높이는 평균 2m 이상은 된다. 자신의 키와 별로 차이가 안 나지만 막상 올라 앉으면 이게 만만치가 않다. 거기다가 내 마음대로 제어가 안 된다. 끈 하나로 그 덩치 큰 말을 움직여야 하니 보통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거리에서 캐럴이 자취를 감춘것은 오래전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인데도 듣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안 난다는 얘기도 많이 한다. 캐럴이 사라진 이유가 뭘까. 우선은 저작권 문제가 있다. 음악저작권 관련 단체들은 2006년부터 바닥면적 3000㎡ 이상인 백화점 대형마트 등에 음원 사용료를 내라는 소송을 본격 제기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길거리 매장들도 캐럴을 트는 데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캐럴과 함께 크리스마스의 또 다른 상징은 트리다. 트리가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약 600년 전. 독일 제빵사들이 1419년 프라이부르크에서 집 없는 사람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성령구빈원 앞에 트리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그 지방 역사서에 남아 있다. 이밖에 산타, 카드, 선물도 크리스마스하면 빼놓을수 없는 것들이다. 중국에선 성탄전야에 선물로 사과를 나눠주는 독특한 풍습이있다. 그래서 성탄절이 다가오면 상점마다 평안이나 복을 비는 글씨를 새겨넣은 선물용 사과인 ‘평안과(平安果)’세트를 대량으로 쌓아두고 판매하곤 한다. 세계유일이다. 유래는, 크리스마스 이브 성탄전야를 ‘평화로운 밤’이란 의미로 ‘평안야(平安夜)’라고 쓰고 발음은 ‘핑안예(pingany
매년 연말이 되면 일선 학교 교사들은 학교폭력 예방 및 해결 등에 기여한 교원에 대한 승진 가산점이 부여되며, 해당 교원 중 40% 안에 들기 위해 몸살을 앓고 있다. 많은 교사들이 “저는 아무것도 도움을 준 것이 없는데, 해당 교원들이 가산점 받길 거부해서 제가 대신 받아요”, “아이들 학폭을 담보로 승진가산점을 받다니”, “저 선생님은 담임도 아니고, 생활지도 한 것도 없는데, 단지 교무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요”, “정작 비교과교사인 진로진학상담교사나 전문상담교사가 포함돼야 하는데, 그분들은 아예 신청도 하지 않아요”라고 민낯을 알린다. 가산점 부여계획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과 가산점 신설을 위한 교육공무원 승진규정 개정, 가산점 축소를 위한 교육공무원 승진규정 개정으로 추진되고 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11항(교육감의 임무)은 ‘교육감은 관할 구역에서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 마련에 기여한 바가 큰 학교 또는 소속 교원에게 상훈을 수여하거나 소속 교원의 근무성적 평정에 가산점을 부여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