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서 /안미옥 내게는 얼마간의 압정이 필요하다. 벽지는 항상 흘러내리고 싶어 하고 점성이 다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어 한다. 냉장고를 믿어서는 안된다. 문을 닫는 손으로. 열리는 문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옆집은 멀어질 수 없어서 옆집이 되었다. 벽을 밀고 들어가는 소란.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게 다리가 네개여서 쉽게 흔들리는 식탁 위에서. 팔꿈치를 들고 밥을 먹는 얼굴들. 툭. 툭. 바둑을 놓듯 -안미옥 시집 ‘온’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고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나를 꾹 눌러 너에게 매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압정이란 무엇인가. 물론 벽이나 가구 등에 무엇을 붙이고 떼어낼 때 쓰는 물건이다. 하지만 주변의 그 작고 하찮은 것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크다. 벽지는 벽에서 항상 흘러내리고 싶어 하고 점성이 다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어 한다. 냉장고 또한 열리고 닫히는 문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너와 나,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어 나도 모르게 내뿜게 되는 불안이 있다. 그리하여 다리가 네 개인데도 쉽게 흔들리는 식탁 위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한다. 쉽게 허물어지
사람의 마음을 이용 상대방에게 타격을 가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심리전. 예부터 전쟁 필수 아이템이었던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중국 한(漢)나라는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나라가 아닌가 싶다. 기원전 202년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의 군사가 한나라의 명장 한신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한신은 한나라 병사 중 초나라 출신들을 뽑아 밤마다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했다. 초나라 병사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결국 전의를 상실해 도망가거나 항복하고 항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물론 덕분에 유방은 통일까지 이뤘다. 고사성어 사면초가(四面楚歌)도 여기서 유래 됐다. 중국은 이와 비슷한 심리전을 6·25때도 사용 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을 때 중공군 30만 명이 투입됐다. 그들은 밤마다 피리와 나팔을 불고 꽹과리를 요란하게 두들기며 유엔군을 공격했다. 영하 30도를 밑도는 추위와 악기 소리 공포에 떤 유엔군이 결국 싸움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물러났다. 바로 ‘1·4 후퇴’다. 남북한이 방송 및 확성기와 삐라를 통해 서로의 체제를 비난하는 심리전을 펼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방송이 심리전에 단골메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 3당이 결국 23일 이른바 드루킹 사건과 관련한 특검법안과 국정조사요구서를 국회에 공동으로 제출했다. 6.13 지방선거의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정면돌파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때를 맞춰 이철성 경찰청장도 특검 얘기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감출 이유도 없고, 수사진을 더욱 보강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 번복에 따른 불신이 더해지는 상황에서 언론보도의 오해라고 해명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사건의 진상 규명과 혼란 차단을 위해선 특검 도입이 순리라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정치권이 속히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분위기다. 왜냐하면 더불어민주당원의 댓글 조작 사건이 자칫 지방선거 정국의 변수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를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이 지난 두 달간 사건을 수사하면서 혐의를 포착하고도 압수수색을 하지 않아 정부와 여당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기에 특검 도입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당사자인 김경수 의원 역시 경남지사 출마를 선언하면서 “특검을 포함한 어떤 수사에도 응하겠다. 야당에서 제기하는 모든 의혹에 대해 남김 없이 조사해
광명시 광명동굴이 다른 지자체의 모델이 되고 있다. 광명동굴은 2015년 4월4일 유료로 개장한 뒤 10개월 만에 100만 명이 찾았으며, 현재까지 누적 유료관광객은 368만 명에 이른다. 광명시는 시는 올해 목표를 유료 관광객 150만 명, 세외 수입 100억 원, 일자리 500개 창출 등으로 정했다. 그런데 한 겨울철인데도 지난 3월 초에 벌써 10만명을 돌파했다. 흉물이던 폐광산이 지역의 대표적 관광상품으로 변신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상의 전환으로 성공을 거둔 곳은 경기도 내에 또 있다. 포천군과 파주시다. 포천군에는 포천 아트밸리가 조성돼 있다. 최근 전북 익산의 폐 채석장에 맹독성 비소가 포함된 폐기물 수만 t을 불법 매립, 침출수가 농경지와 지하수를 오염시켜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포천에도 지난 몇 년 간 흉물스럽게 방치됐던 폐채석장이 있었다. 잦은 민원으로 애물단지였던 폐석산은 지역주민과 공무원 간 상호 노력의 결과 문화예술 공간 포천 아트밸리로 다시 태어났다. 중학교 교과서에 국내의 대표적인 지역 재생 사례로도 수록돼 있다. 지금은 한해 4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드라마 ‘푸른 바다
백범기념관은 효창공원 내에 있다. 효창공원은 원래 정조의 아들인 문효세자의 묘역인 ‘효창원’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문효세자의 묘소는 서삼릉으로 옮겨지고 ‘효창원’은 ‘효창공원’으로 변경되었다. 해방 후 삼의사 묘역과 임정요인 묘역으로 새롭게 조성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효창공원 하면 백범기념관과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떠오른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백범기념관과 효창공원에 자리한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보자. 백범 김구 선생의 중국 내 이동경로를 따라 2층 전시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2층 전시관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신년 축하식 기념사진과 태극기로 시작한다. 기념사진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찾아보지만 평소 알고 있던 모습만 가지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진 속 인물들의 이름이 적힌 패널을 보고서야 백범 김구 선생은 맨 앞줄에 자리하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전시내용은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백범 김구 선생의 모습이다. 상하이 교민들을 보호하고 임시정부를 지키며 밀정을 찾아내서 처단하는 업무를 총괄하는 경무국장시절의 김구 선생도 만날 수 있고, 지금의 행정안전부 장관과 비슷한 내무총장 시절의 김구 선생도 만날 수 있다. 독립운동가 나석주 선생이 김구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4자매와 남편들이 동행했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2박3일의 여행이었다. 2박3일이라지만 첫 비행기로 출발해서 마지막 항공기로 돌아오는 일정이라 그리 아쉽지는 않은 일정이다. 공항에서 터진 웃음은 여행 내내 계속됐다. 우스갯소리 잘하는 둘째가 기쁨조 역할을 했다. 별 내용 없는 말도 둘째의 입을 거치면 웃음이 되고 즐거움이 됐다. 성격과 취향은 달라도 함께 하는 것이 설레고 즐겁다. 머리가 허연 맏이는 유채꽃 밭에서 요조숙녀 같은 표정을 연출하고 둘째는 각설이 패 같은 포즈와 행동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나이를 잊고 꽃과 한통속이 되어 즐기는 모습이 노란 나비들 같다. 꽃처럼 터지는 웃음은 여행의 청량제이고 비타민이다. 녹록치 않은 살림 일구고 자식들 키우며 힘겨운 일상을 버티며 살아가는 형제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그저 내 형제자매이다. 유년으로 돌아가 동생들 업어 키운 이야기며 남자친구 사귀다 아버지께 들켜 쫓겨난 일을 흑백 필름 돌리듯 풀어냈다.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보면서 언니는 가슴에 묻은 동생을 떠올렸다. 여동생 넷에 다섯째로 얻은 남동생이 설사병으로 병원을 드나들다가 끝내 목숨을 잃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김기식 사태’로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정권 출범부터 장관 후보자와 참모진의 연이은 낙마로 190여 일 만에 내각 구성을 마쳐 역대정권 최장 1기 조각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은 문재인 정부가 ‘김기식 사태’로 또다시 검증의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번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까지 벌써 8번째다. 김 전 원장은 지난 2015년 같은 당 국회의원 20명과 함께 창립 당시 1천만원을 내고 이후 매달 20만원 씩의 회비를 낸 ‘더좋은미래’ 연구소에 2016년 5천만원을 기부한 것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본인의 해명과 버티기, 청와대의 ‘김기식 지키기’에도 불구하고 중앙선관위가 이 같은 ‘5천만원 셀프 후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결론내리자 사퇴형식으로 물러났다. 검찰의 수사 등 법적 판단은 남았지만 재벌 및 금융개혁의 ‘저승사자’란 별명을 들으며 기대반 우려반 속에 ‘금융검찰’의 수장에 오른 김 전 원장은 오히려 그들로부터 역공을 맞으며 임명된 지 18일 만에 사퇴해 최
도롱뇽 /김영준 며칠간 도롱뇽은 길을 잃었다 늘 다니던 길을 잃고 허우적거리다가 그 길 위에서 말라 죽었다 어느 촌로가 흘린 마른 멸치처럼 무더기로 쏟아졌다 산길 오르막에 콘크리트 길을 만든다고 쳐놓은 틀에 갇혀 염천이 그들을 건조하고 있는 동안 내가 생각한 건 고작 멸치 육수뿐이었다 물에서 나오는 즉시 멸하는 작은 짐승 불어터진 국숫발처럼 나도 나의 발걸음도 동강동강 끊어지고 있다 - 김영준 시집 ‘물고기 미라’ 중에서 오늘은 뒤돌아보고 성찰해보자. 내가 모르는 나의 행동이 다른 생명의 길을 막지는 않았는지, 혹은 내가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 결과를 세심하게 살피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해독이 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다른 생명이 길을 잃고 말라 죽지는 않았는지, 또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도 모르게 쳐놓은 틀에 갇혀 멸치처럼 마르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이 나의 불민함으로 죽도록 고생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멸치국수의 국물 맛이나 면발이나 고명에 대하여 툴툴거리고나 있지는 않은지, 내가 해주는 만큼 그들이 나에게 주는 게 없다고 인상이나 박박 쓰고는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과 눈빛부터 살
매거진(magazine)의 어원은 ‘창고’ 라는 뜻의 네델란드어 ‘magazien’이다. 이 단어가 잡지(雜誌)로 바뀌어 통용 된 것은 1731년 케이브라는 사람이 런던에서 정보및 오락 제공용으로 만든 정기간행물에 ‘젠틀맨스 매거진Gentleman"s Magazine’이란 이름을 붙이면서부터 라고 한다. 반면 매거진 형태로 발간된 세계 최초의 잡지는 1665년 파리에서 출간된 ‘르 주르날 데 사방’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은 오늘날의 도서목록과 흡사한 초보적인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선 1896년 도쿄의 대조선일본유학생친목회에서 만든 ‘친목회 회보’를 효시로 친다. 출판계에선 1908년부터 4년 동안 23호까지 발간된 ‘소년’을 근대 잡지의 원조로 삼고 있다. 때문에 소년의 창간일인 11월 1일을 잡지문화의 새로운 기점으로 잡아 지난 66년 ‘잡지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그 후 한국 잡지는 정치사적 기복에 따라 수난을 겪으며 발전해 왔다. 80년 7월 1천4백34종이었으나 지금은 1만 7607여종에 이른다. 덕분에 잡지 산업도 급성장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정기간행물 산업의 전체 매출액은 2014년 말 기준 1조3754억원으로 집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속도위반 고지서에 찍힌 사진 속 차량 보조석에 검은칠을 안 해서 누가 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는 부부싸움의 빌미가 되곤 했다. 이후 경찰이 검은칠을 했지만 경찰은 여성인지 남성인지 그 존재를 알고 있다. 이같은 일은 인공지능(AI)의 진화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AI가 꼭 밝혀주길 바라는 일 외에도 너무 많은 일을 동시에 알게 되면서 문제들이 생길 것이다. 신입사원들의 SNS 댓글을 분석해 이념적 성향과 성격을 알려주기도 하며, 회사 내의 AI는 직원들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타이핑 속도까지 파악하고 있다. 아직은 외국의 사례지만 이는 AI 진화의 과도기에 한국에서도 등장할 일이다. AI가 운전하는 자율주행차와 무인 전쟁로봇이나 드론의 등장으로 윤리적 논의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자율주행차가 다니는 도로가 인간들이 운전하는 도로보다 안전하며 무인 전쟁로봇이 멀리 날아가는 미사일보다 안전하다. 졸음운전이 사라질 것이고 미사일 조작의 미세한 오류로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는 일이 더 적어질 것이다. 당분간은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내거나 자율형 무기들이 사망사고를 낼 경우 관계자들이 책임을 분산하여 질 것이다. 누가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