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갔다. 생각지도 못한 까마귀떼의 공습으로 얼룩진 거리와 겨울가뭄에 눈도 제대로 못 뜨게 괴롭힌 미세먼지까지 한방에 날려주며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뚫고 이름값 하는 (대한)추위까지 함께 간 마트는 주말다웠다. 이미 열흘쯤 전에 아기 주먹만한 감자가 세알에 6천원이 넘는 것을 본터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북적이는 사람들과 달리 장바구니와 카트들은 절반 넘는 공간을 여백으로 남긴채 이리저리 이동하고 있는 풍경이 반복됐다. 사실 평소같으면 집에 있어야 할 날씨에 굳이 마트를 간 건 비행기 타고 물 건너온 미국산 달걀에 대한 호기심때문이었다. 그러나 표백제를 두른 것처럼 새하얗다는 미국산 달걀은 볼 수 없었고, 여전히 1인당 한판이라는 문구와 텅 빈 달걀 코너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아 이놈의 AI’란 말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명절 대목을 앞둔 폭설의 수년간의 반복학습의 효과일까? 조금이라도 더 오르기 전에 사둬야 한다는 위기감 속에 흡사 난리통이란 말이 어울리는 과일과 야채코너 근처를 점령한 사람들 사이에서 팍팍함만 묻혀서 빠져 나오는 것이 더 급했다. 그런데 나만 그랬을까? 괜히 억울한 기분이다. 그래도 뭐 특별한 방법
맹자는 항심(恒心)이란 도덕을 지키려는 마음, 법을 지키려는 마음, 원칙과 상식을 지키려는 마음이라 했다. 그러면서 ‘거짓’은 항심을 잃었을 때 나온다고 설파 했다.옛 선현들은 일찍이 이런 진리를 깨닫고 불항기덕(不恒其德))하면 혹승지수(或承之羞), 즉 “항심을 잃거나 변하면 반듯이 수치스러운 일을 당 한다”고 했다. 서양에서도 거짓말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파멸의 길을 걷게 한다는 진리를 똑 같이 인식하고 있다. 해서 거짓 행위 자체를 ‘악(惡)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철학자 몽테뉴는 거짓말을 “저주받은 악”이라 정의했다. 악의적 모함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하는 거짓말을 빗댄 표현이다. 괴테는 “영혼을 갉아먹을 정도로 남을 해치는 무형의 무기”라며 “매우 간악한 것이다”라고 했다. 심리학자 폴 에크먼 교수는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속이는 기쁨”이 존재해서라고 했다. 거짓말을 통해 남을 속이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있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자존감 유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조그만 사
느낌이 좋은 사람 /권현형 봄눈은 바라보는 자의 눈동자에 쌓인다 첼로와 하프를 위한 흰 눈의 낙법(落法) 저 장엄한 서사의 주인공은 봄눈 내리듯 깨끗이 사라지는 이마 자기 발자국 소리를 천둥처럼 듣는 자 나비, 나비의 흰 망령(亡靈)들 찍히는 자의 혼을 들여다보느라 사진 찍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사진작가의 눈 느낌이 좋은 사람과는 밥을 함께 먹지 않겠다고 고집 부리는 너의 이마 위에 봄눈이 내린다 시는 글로 쓰는 그림이라고도 한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봄눈이 내리는 풍경이 그려지는 시다. 나비의 혼령처럼 사뿐사뿐 봄눈 내린다. 섣부르게 기지개를 켜려던 꽃망울, 기침을 하던 새싹 위로 내리고 있다. 오랫동안 천천히 들여다봐야 할 봄눈을 시인은 느낌이 좋은 사람이라 했다. 사람을 마음에 두면 그 사람만을 쫓아 눈이 따라가듯, 봄눈 내리는 풍경이 가슴으로도 가득 안겨온다. /박병두 문학평론가
2013년으로 기억한다. 모교인 고려대학교 학내 서점에서 책 한권을 골랐다. 법철학 서적을 뒤적이던 중 한권의 책을 발견했는데, ‘법철학: 이론과 쟁점’이 그 책의 제목이다. 실무가인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다양한 쟁점을 잘 정리한 책이었다. 책 중간에 독자에게 던진 질문이 의미심장하다. “법치주의 원리가 법의 지배를 뜻하며 사람의 지배를 뜻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누군가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법률가들이 그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법치주의는 사실상 법률가의 지배로 귀결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법의 지배가 아닌 법률가의 지배’. 이러한 문제의식은 변호사인 필자에게 매우 뼈저리게 아픈 날선 비판으로 꽂혔다. 최근 탄핵정국에서 변호사는 국민으로부터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언론의 보도기사에는 변호사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따가운 질책이 담겨져 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 신랄한 비난이 쏟아진다. ‘법률가의 지배’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대통령 대리인단과 최순실, 안
가평에 위치한 아침고요수목원을 다녀왔다.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관심을 이어가고 있는 ‘힐링 문화콘텐츠’에 대한 탐방이었다. 일상이 바쁘고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문화콘텐츠를 통해 ‘마음의 치유’가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 요즘 추세이다. 이곳 수목원은 겨울에 더 그 존재감이 빛을 발한다. 매년 겨울에 개최되고 있는 이색 겨울축제로 정원을 활용한 ‘오색불빛 정원전’은 10만여 평의 야외정원 속에서 화려한 빛의 잔치를 만들어낸다. 정원 전체가 꽃 속의 조명을 통해서 상상 속 꿈의 나라를 만들어내고 있다. 추운 겨울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밤에 이곳을 찾는다. 넓은 정원을 여유롭게 산책하듯이 구경하며 좋은 공기와 휴식을 취할 수 있고, 각 나무마다 예쁜 전등들을 설치해 오색별빛으로 정원은 장관을 이룬다. 유심히 이곳을 찾는 이들이 누군가를 본다. 국내 관광객들도 많이 이곳을 찾아오지만 특히 외국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수목원 관계자들의 오랜 노력 끝에 이제는 최고의 명소가 되었다. 이곳은 정원마다의 테마정리가 잘된 곳이다. 입구 바로 앞 구름다리를 건너면 바로 이어지는 길 옆 테
생전의 김수한 추기경은 종종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그때마다 강론에 앞서 들려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신부시절 기차를 타고 어려운 이웃을 만나러 가는 길,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내가 과연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무슨 보탬을 줄 것인가? 인생이 무엇인가? 등등 삶에 대해 골몰히 생각하고 있을 때 기차통로 저쪽에서 판매대를 밀고 오는 홍익회 판매원이 이렇게 외치며 다가오고 있었단다. ‘삶은 계란이요. 계란’ 김수한 추기경은 속으로 ‘아하 그래…’. 그날 이후 “삶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삶은 계란’이라는 대답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2003년 서울대 강연에서 이 같은 얘기와 함께 들려준 그의 “삶은 거창하지도, 멀리 있지도 않다. 계란처럼 작고 가까이 있다. 그러니 즐기고 행복하고 사랑하라”고 한 내용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달걀은 식재료로 삶과 연계시켜도 절묘하게 어울린다. 언제나 소소한 모습으로 우리 생활 속 먹거리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40∼50년 전, 손님이 오거나 생일, 제사 등 특별한 날이 아니면 밥상에 오르지 않는 귀하신 시절도 있었지만, 학교 소풍과 운동회 때는 삶은…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사람의 머릿속에는 기억이라는 문이 있다. 평생 그 문을 드나들며 살아야한다. 누구도 이 문을 드나들지 않고서는 생이라는 일기를 써 내려갈 수 없다. 시인도 지금 그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열무를 팔러 간 엄마가 오지 않고 있다. 시인의 마음에 밑줄이 그어지는 순간이다. 어떻게 하나, 팔리지 않는 엄마의 열무는. 어떻게 하나, 방안 가득 넘쳐흐르는 고요한 빗소리는. 그저 무서워 눈물밖에 흘릴 수 없었던 기억 속 아이를 불러내어 달래고 있다. 울지 말라고, 곧 엄마가 먹을 것을 사들고 돌아올 것이라고 안심시키고 있다. 오래 시간이 흘러가도 문의 뒤편에는 엄마라는 우리 모두의 기다림이 있다. /김유미 시인
학대를 받던 초등생 아들이 실신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토막낸 뒤 냉장고에 보관해오던 부모에게 온국민이 충격을 받았다. 인간은 과연 짐승과 신(神)의 중간에서 방황하는 존재일까?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의 밧줄이다”라는 니체의 말은 동양 고전 ‘서경’에 나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하늘의 마음은 알기 어렵다”라는 뜻의 ‘인심유위 도심유미(人心惟危 道心惟微)’. 인간은 왜 가끔 짐승처럼 행동할까? 진화론이 보편적 지식이 되기 전에는 사탄이 그 원인이었고 마녀사냥이 그 해법이 되곤 했다. 그러나 인간과 폭력적인 침팬지와의 유전자 차이가 2% 미만이고 보노보와 인간의 습관이 비슷한 것이 알려지면서 진화심리학은 보다 더 주목받게 되었다. 가족에 대한 폭력성은 환경이 나빠지면 촉발된다. 자연계에서 동물들은 먹잇감 환경이 좋을 경우에는 남보다 자신의 DNA가 전달되도록 가끔 남의 새끼를 죽이는 선택을 한다. 계부나 계모의 폭력성은 이에 해당한다. 그러다가 먹잇감 환경이 나빠지면 자식들 중에서 약한 개체를 먹거나 버리며 다른 건강한 자식만 먹인다. DNA가 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국민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역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전열을 재정비하겠다고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수사의 최대 관문 돌파에 실패함에 따라 앞으로 박 대통령과 다른 대기업을 겨냥한 수사 동력이 약화될지 모른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세간에도 ‘수많은 증거들이 있음에도 영장을 기각한 것은 말도 안 된다, 뇌물로 보는 증거가 미약해 기각은 당연하다’는 등의 여론이 분분하면서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조의연 부장판사는 전날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2시10분까지 영장실질심사를 했고 이날 새벽 4시50분쯤 기각 결론을 발표해 결론을 내리는 데만 18시간 이상 걸렸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법하다. 특검이 영장청구를 이틀이나 고민한 것도 사안의 중대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 판사는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관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내용과 진행과정을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상황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 구
18일 한 언론이 ‘내수 활성화를 위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허용하는 가액 한도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부 관계자가 청탁금지법상 ‘3·5·10만원’으로 규정하고 있는 금액 한도를 ‘5·5·10만원’으로 수정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전기한 ‘3·5·10 규정’이라는 것은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의 가액기준이다. 그러니까 ‘5·5·10’으로 수정한다는 말은 이 중 음식물 허용 기준을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올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막상 청탁금지법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같은 날 이같은 보도내용을 부인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사실여부를 묻는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에게 권익위 내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며 청탁금지법 시행령 수정을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하거나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현재 실태조사가 시행중이므로 이 결과를 보고 정부 부처 간 협의를 거쳐 방침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또 다른 언론은 정부가 시행령 개정 추진에 앞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일각의 분석도 소개하고 있다. 사실 5·5·10만원 상향 방안은 정치권과 정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여야 정책위의장들도 정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