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런, 이런 /정숙자 사돈댁에서 꼬막을 한 상자 보내왔다 뻘이 잔뜩 묻어 있다 와르르 쏟아붓고 문질러 씻는다 살아 있다는데 얼마나 무섭고 어지러울까 꼬막끼리 부딪는 소리가 하늘에 찬다 씻고, 씻고 몇 번이고 또 씻고 끓은 물에 꼬막을 집어넣는다 “살아 있는 꼬막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다 는 사부인 말씀대로 정확(鼎?)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꼬막 이렇게 믿을 만한 것이 예쁘게도 생긴 것이 요렇게 작은 몸을 하고 묻혀 있었다니, 뻘밭에서 뒹굴고 있었다니 - 정숙자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 / 천년의 시작 “살아 있는 꼬막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작은 꼬막 하나의 고집과 비밀은 끝까지 밀고 간다는 당연한 의지가 얼마나 필요한 시대인지요. 자고 나면 말의 화근이 사건으로 이어지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요즘입니다. 뻘밭, 그 원형의 자연과 험난한 환경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꼬막의 귀엽고도 야무진 신념이라니요. 어찌 예쁘고 기특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더구나 사부인의 선물이란! 혹여 딸의 흠이 있더라도 끝까지 꼬막처럼 예쁜 입을 당부하는 넘치는 센스이지요. 서
풍요로운 계절이다. 집을 나서면 초목이 열매를 익히느라 분주하다. 누렇게 넘실대는 들판에 꼬투리를 만들고 알곡을 채우는 콩이며 들녘의 사연을 빼곡히 저장하는 해바라기까지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즐겁다. 이런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다. 낭창낭창 허리를 흔들며 바람을 불러들이는 갈대숲엔 제 몸을 반쯤 강물에 동동 띄운 오리가 물질이 싱거운지 낮게 날아올랐다간 이내 갈대숲으로 들어 분탕질을 한다.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며 서해의 해넘이를 보았다. 붉은 하늘을 끌고 바다로 잠입하는 하루의 마지막 태양을 전송하며 뭔가 모를 새로운 다짐을 한다. 짝꿍은 바다낚시를 하고 나는 파도에 기대어 별을 세다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이내 등대 옆에 앉아 졸기도 했다. 자정이 넘도록 바다와 놀았다. 낚시가 잘 안된다며 자리를 옮긴다고 했다. 안면도에서 대산 쪽으로 이동하던 중 자동차가 쿨럭쿨럭 한다. 가슴이 덜컹한 나와는 다르게 ‘어 타이어 펑크인가’하며 짝꿍은 대수롭지 않게 차를 갓길에 정차한다. 뒤쪽 타이어가 펑크 난 정도가 아닌 아예 터져버렸다고 했다. 타이어 교체시기가 지난 것이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망설여지긴 했지만 예비타이어도 있고 긴급출동 서비스
가을이면 지역마다 다채로운 행사들이 풍성하게 열린다. 그 중 수원화성문화제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정조대왕 능행차 등 다양한 퍼포먼스와 체험행사들이 펼쳐지는 대표적인 전통문화관광 축제이다. 이를 맞이하여 수원시 인권위원회에서는 화성행궁에 대한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하였는데,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필자도 참여하였다. 휠체어와 함께 직접 행궁을 둘러보면서 아무리 지식으로 알고 있어도 체감하는 것과의 차이는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입구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매표소 앞에 놓인 조형물로 인해 휠체어를 타고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각 출입구마다 문지방이 높아 보행약자가 이용하기 불편하였다. 경사로 마저 없는 출입구에는 아예 진입자체가 불가능해서 휠체어로는 행궁의 가장자리만 빙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가다 보면 50㎝ 이상의 높은 턱에 가로막혀 돌아 나와야만 한다.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안내 또한 잘 갖추어져 있지 못했다. 이는 결코 화성행궁만은 문제는 아닐 것이다. 2013년 실시된 장애인편의시설 실태조사 결과 평균 설치율이 7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화성과 같은 문화재의 내외부에 편의시설을 설
‘영란세트’. 지난 추석 국내 유명 백화점에서 내놓은 선물세트 이름 이다. 오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에 맞춰 구성한 중저가 상품군, 즉 5만원 이하 선물세트를 일컫는다. 이런 ‘영란세트’가 올해 최고 인기 추석 선물이었다고 한다. 지난주 국내 유명 백화점 업계가 내놓은 분석한 결과다. 분석에 따르면 5만원 이하 선물세트 구성비가 90% 이상인 가공식품과 생활필수품 선물 매출은 55.2%의 신장세를 보였다. 또 멸치와 건어물, 전통장, 올리브유, 비타민, 와인 등 5만원 이하 선물 세트 주문이 120% 가량 증가했다. 5만원대 이하 선물의 판매 증가세가 미미했던 지난해까지의 명절 선물 풍속도와 확연히 다른 것이어서 김영란법의 파워(?)를 실감하기에 충분 하다. 도내 일부 음식점에선 ‘영란 세트’라는 새로운 메뉴도 등장했다. 주로 일식집과 한정식집, 한우 전문점등에서 선보인 이메뉴는 가격이 김영란법에서 접대기준 상한 금액으로 정한 3만원미만 선이다. 한우 전문점의 경우 점심가격 기준으로 한우 120g과 된장찌개가 2만9500원이다. 또 4인 기준 11만9000원짜리 메뉴도 선보였다. 일식집은
인천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공항이다. 인천은 그동안 개항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관문이자 서울의 관문역할을 해왔다. 인천국제공항은 국제공항협의회(ACI)로부터 세계 최초로 6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상’도 받았다. 세계 여러나라를 여행해봐도 인천공항만큼 서비스와 친절도, 신속성이 뛰어난 곳은 없을 정도다. 공항은 그 나라의 문화와 서비스 그리고 기술력 등을 한눈에 파악해볼 수 있는 잣대이다. 그만큼 국가브랜드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천시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적인 항공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항공산업육성 방안을 마련했다. 이번 추진계획에는 ‘항공도시 인천’을 비전으로 하여 항공 혁신도시 구축, 미래형 항공산업 지역 혁신 클러스터 육성, 신규고용 8만5천명 창출과 글로벌 항공부품 기업 100개사 육성 등 3대 정책 과제를 담았다. 이와 함께 인천도시공사가 지분을 갖고 있는 영종도 땅 60만7천㎡를 현물로 출자해 인천공항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3% 지분확보에도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백령도 신공항 건설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항공분야 신사업 개발을 위해 무인항공기(드론) 산업 활성화도 추진한다. 그러나 이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예산확보가 관건이
지난 23일 오후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2016년도 경제민주화 포럼’이 열린 바 있다. 경기도, 경기도의회, 학계, 법률 전문가, 중소기업, 가맹사업자 등이 참석한 이날 포럼의 핵심은 ‘지방자치단체에도 불공정거래에 대한 분쟁 조정·조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발제를 통해 밝힌 경기도의 입장은 ‘중앙정부의 인력과 예산만으로는 기업 관계의 복잡성, 소규모 분쟁, 지역적 특성 등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별 불공정거래 특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에게 불공정거래 사건을 접수·조사하고, 적극적으로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현행법상으론 지자체에 법적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아 불공정거래 분쟁 해결에 한계가 있다. 서울시 민생경제 자문관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중앙정부 위주 직권규제 방식의 법 집행은 한계가 있으므로 ‘선택과 집중 하에 사안의 경중을 가려 지자체에 위임·위탁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도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도의회 역시 각 지자체의 권한을 강화해 사안을 능동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며 도에 힘을 보탰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었던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들이 최종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된 후 국민들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학대 사건의 판결을 예의 주시한다. 그동안 아동학대 사망사건 판결은 살인죄 적용을 상상할 수도 없었고, 처벌수위도 심각하게 낮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아동학대처벌법 시행 전까지는 형법상 ‘학대치사’나 ‘상해치사’로 기소되었고 형량도 미미해서 금세 풀려나는 사건이 많았다.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온 학대행위자들은 아이들에게 더 큰 폭력으로 더 큰 고통을 주었다. 아동학대 판결은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사건’을 시작으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살인의 고의가 없다며 상해치사죄를 적용한 1심과 달리 항소심 법원은 이례적으로 계모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하여 징역 18년을 선고하였던 것이다. 이후 25개월 된 입양아를 옷걸이용 지지대로 때려 숨지게 한 양모(養母)와, 30개월 딸을 대걸레 봉 등으로 살해한 부모, 평택 초등생 암매장 사건에서의 부모에 대하여도 살인죄가 인정되었다. 또한 아동학대를 방조한
과천누리馬축제가 시작되었다. 과천누리馬축제는 기존의 ‘공연 관람형’축제에서 ‘시민 참여형 축제’로 변화하면서 ‘예술’과 ‘생활’이 하나 되는 ‘문화공동체’축제를 지향하면서 만들어졌다. 특히 과천시의 상징 동물인 ‘말’을 축제의 테마로 도입하여 지역의 특성을 살린 문화 관광형 축제를 목표로 삼아 다양한 ‘말’관련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축제는 지역의 환경과 지리적인 여건, 지역 문화 콘텐츠의 상징성 등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이 지역 문화 자본이 더욱 더 큰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지역 축제도 마찬가지다. 지역의 자부심이자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축제란, 지역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문화자본에 근간하고 있는 것을 소재로 삼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래야만이 축제 때마다 지역민들이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고 참여를 하면서 감동을 함께 할 수 있다. 바로 지역민들의 참여와 소통이 이루어진 축제야말로, 경쟁력을 갖춘 축제가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앞에서 말한 그 지역의 상징성을
우리말의 ‘쌀’은 고대 인도어 ‘sari’가 어원이다. 쌀이 살(肉)에서 왔고, 식물의 살(쌀)과 동물의 살(고기)을 먹고 사는 게 ‘살암(사람)’이란 속설도 있다. 학명은 라틴어 ‘오리자(Oryza)’다. 오리자가 이탈리아에서 ‘riso’가 됐고, 이탈리아식 볶음밥인 리소토(risotto)도 여기서 나왔다. 영국으로 건너가선 ‘rys’로 변했다가 오늘날 영어 ‘rice’가 됐다. 이런 쌀은 옥수수 밀과 함께 세계 3대 곡물이다. 옥수수는 주로 사료용으로 쓰이는 것을 감안하면 식량 공급을 양분하는 것은 쌀과 밀인 셈이다. 벼농사는 1만 년 전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기원은 중국 위난, 인도 북부 아삼, 동남아 등 설이 분분하다. 한반도에는 약 4000년 전 유입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쌀은 한국인에게 주식(主食) 이상의 존재다. ‘밥심’으로 산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소득이 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쌀 소비는 30여 년 만에 반 토막 났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980년 132.4㎏에서 작년 67.2㎏으로 준 것이다. 때문에 요즘 같은 수확철만 되면 농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진다. 매년 풍년을 이뤄 재고는 쌓이는데 가격은…
먼지가 보이는 아침 /김소연 조용히 조용을 다한다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 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 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했던 어린 날처럼 나는 나대로 극락조는 극락조대로 먼지는 먼지대로 조용을 조용히 다한다 - 김소연 시집 ‘수학자의 아침’ / 문학과지성사 여기서의 먼지는 한 생이 다하여 한 몸의 형체가 부서지고 마침내 분해되어 각자의 길을 떠도는 최후의 입자라고 하겠다. 그러니 ‘먼지가 보이는 아침’이란 내 생애의 끝에 가닿는 느낌이며 다음 생의 시작을 떠올려보는 시간이리라. 지금은 더위의 계절이다. 매미울음소리 사방으로 번지고 있다. 태양은 기를 쓰고 열기를 퍼붓고, 지붕은 납작 엎드린 채 소리와 열기를 받아낸다. 길은, 풀은, 나무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더위라는 욕망을 견뎌내고 있다. 곧 처서가 올 것이고, 더위는 결국 물러가고 햇빛의 각도는 차츰 사선으로 변할 것이다. 그때 어쩌면 유순해진 햇빛에 놀라 ‘조용히 조용을 다하’는 자의 시선에 잡히는, 아직 길을 찾지 못한 먼지를 만난다면 서로 쓸쓸한 목례라도 건넬 일이다. /이미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