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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희칼럼]‘친북좌파’와 ‘보수우파’ 시대착오적 대결

20세기 용어에 ‘중도’ 언급 李 후보 발언 정체성 의심
인문학적 용어 개념 이해로 유권자 현혹시키지 말아야

 

우리나라가 한때 IMF금융지배를 받는 사이, 경제는 꼼짝없이 세계화 속으로 쓸려들고 말았다. 세계화의 와중에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양극화 현상은 더욱 선명해졌다. 서민경제가 사라진 것이다. 서민들은 오직 ‘경제’만을 살려내라고 아우성이다. 이 바람을 타고 혜성처럼 나타난 정치인이 이명박 후보이다. 그가 뜬금없이 ‘이번 대선은 친북좌파와 보수우파의 대결’이라는 20세기적 용어를 썼다. 그것도 주한 미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말이다.

‘친북좌파’라는 말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아깝게 진 박근혜 후보가 즐겨 쓰던 용어다. 그는 반공주의자 박정희의 계승자답게 범여권을 향해서 틈만 나면 ‘친북좌파’정권이라고 공격을 해댔다. 그러나 경쟁자 이명박 후보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21세기 지구상에서 좌우이념 논쟁으로 싸우는 국가는 거의 없다(2005년 12월 30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북한의 1인당 소득이 10년 안에 3천달러가 되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2006년 6월 26일).”고 말하는 등 겉으로는 ‘중도’라는 인상을 주었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부시 맨이다. 그는 가끔 내정간섭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상전인 부시대통령은 기독교 원리주의자이다. 그래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매도하고 김정일 체제를 전복시키려 했다. 그런데 요즘은 대북인식이 많이 변한 듯하다. 자신의 임기 안에 북핵 문제의 해결과 동시에 북미수교를 성사시키려 하고 있다. 부시가 변하는 만큼 버시바우 대사도 변할 것이다. 이 후보가 그런 사람 앞에서 ‘나는 보수우파’라고 말한 것은 아첨으로 들린다. 버시바우는 속으로 웃었을 것이다. 사실은 ‘나는 친미우파’라는 뜻이니.

한나라당의 이념성향은 ‘보수’이다. 20세기 영국의 저명한 보수사상가 오우크셧(M. J Oakeshott)은 ‘보수적’에 대해 “미지의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시도되지 않은 것보다는 시도된 것을, 미스터리보다는 사실을, 가능한 것보다는 현실적인 것을, 풀려 있는 것보다는 제한된 것을, 먼 것보다는 가까운 것을, 남아도는 것보다는 부족함이 없는 것을, 완벽한 것보다는 그저 편리한 것을, 유토피아적 행복보다는 현재의 웃음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후보의 언행을 보면 이 말과 딱 맞는다. 나쁜 것은 아니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지난 세기에 종말을 고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아직 ‘보수의 포로 상태’이다.

한나라당의 대표적 반공정치인 김용갑 의원은 성명을 통해 “나는 이 후보의 이념성향을 왼쪽으로 줄곧 의심해 왔다. 그러나 주한 미 대사와의 발언은 이 후보의 정체성을 정말 헷갈리게 한다. 상대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실용주의라고 생각한다면 정치지도자로서 철학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의 발언 가운데 ‘철학’이라는 단어가 흥미롭다. 어느 대통령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도 ‘진짜 철학은 없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철학은 인문학의 기본이다. 올 대선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대통령이 뽑혀야 할 텐데 이 후보가 정말로 철학이 없다면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친북좌파’라는 말은 참으로 어이없는 말이다. 국가보안법 하나로 지난 반세기를 통치해온 이 나라 반공집단이 툭하면 쓰는 말이다. 친북좌파라면 ‘7.4공동성명’을 채택한 박정희도 친북좌파이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남긴 노태우도 친북좌파가 되는 셈이다. ‘6.15공동성명’을 합의한 김대중만 친북좌파일 수는 없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핵 문제는 끝나지 않았지만, 끝나가고 있다. 문제는 내 임기 안에 북핵 문제를 끝낼 수 있느냐는 것인데 그럴 수 있고, 그렇게 되길 원한다. 나는 선택했다. 이제는 북한 지도자가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자신의 임기 중(내년 중) 북미관계 정상화가 가능할 것임을 밝혔다. 이 후보의 논리대로라면 부시 대통령도 ‘친북좌파’라는 말이 성립된다.

이 후보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대기업에서 CEO로 성공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경제만 살린다고 국민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 말고도 대통령이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앞으로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대학에서 못 배운 인문학 특강이라도 받아서 인문학적 용어의 개념을 제대로 알고, 다시는 시대착오적인 ‘친북좌파’니 ‘보수우파’니 하는 20세기의 언어로 유권자를 현혹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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